제128화
[앞으로 승화자라 불러주시면 되오.]
“승화자?”
[한 걸음 더 나아갔단 의미요. 이게 끝은 아니나 스스로 자존하는 데 성공한 게지.]
“흐음. 말투까지 같이 변한 거 같은데. 내용을 보면 꼭 무도가 같은 말이네.”
[무도가라…… 조금은 다르지만 그리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소. 어쨌건, 우리가 당신들과 함께 이곳을 공략한다는 건 다르지 않을 테니.]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승화자가 되어버린 서른의 개체들.
그들은 각기 생존자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다들 나를 따르시게.]
[이왕이면 같은 특성끼리 모이면 좋겠군.]
남은 생존자들은 그들의 명을 따랐다.
그들은 비슷해 보이는 승화자들에게 붙었고.
함께 조를 짰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는 한 승화자당 평균 열 정도씩 무리를 이루었다.
극단적으로 적은 경우 하나가 겨우 붙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군.]
[나쁘지 않아.]
그들 스스로가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들은 만족을 넘어 자신감에 차 있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점차 영역을 넓혀가면서 움직일 거요.]
“괜찮겠습니까? 여기서 전력을 나누었다가 전멸하는 건 바라지 않는데.”
[후후. 걱정 마시오.]
이전에는 거점에 온 힘을 쏟아부어 공략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부터는 전에 토벌전에서 그러했듯, 영역을 점차 넓혀가며 단번에 적들을 뿌리 뽑는 방식을 택했다.
즉, 애써 파놓은 지름길들을 이용하는 게 아닌 정면 대결로 나서자는 뜻.
이리 진행하면 위험도는 상당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기습전과 달리, 정면 승부는 몰려드는 적 전력 전체를 상대하자는 의미기도 하니까.
“본인이 그렇다면야…… 한번 해 보시죠. 우리는 우선 그 뒤를 따르며, 부족한 부분들을 메꿔줄 테니.”
[배려 고맙소.]
그러나 이들은 자신감에 차, 스스로 길을 뚫겠다 하고 있었다.
나로선 말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붉은 눈동자로부터 느껴지는 의지는 진짜였으니까.
처음, 불안해하는 자가 있기는 하였다.
“……저거 괜찮겠습니까?”
“음…… 저러다 각개격파 당하게 되면, 우리가 커버치기 힘들 건데요?”
이진성이나 한이수의 경우는 그 불안이 꽤 커 보였다.
이해는 갔다.
방금 전까지 거점 보스 하나를 처리하겠다고 나섰다가, 수십이 넘게 몸이 상한 생존자들이다.
이제 와서 승화라는 걸 거쳤다고 하나 그 전력 상승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그런 자들이 흩어져 움직이게 하는 거.
‘누가 봐도 미친 짓이지.’
무모하며, 멍청한 짓으로 보일 수 있다.
애써서 살려 놓은 자들이 다 죽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전보다 더 처참하게 망가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저들을 막을 순 없었다.
이미 허락한 걸 떠나, 저런 식으로 나서는 자들은 어떻게 해도 말릴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장 나만 해도 저런 경우엔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저들이라고 다를 리가.
그걸 알기에 쉽게 보내줬을 뿐이다.
막아도 막아지지 않으니까.
‘잘 해내길 빌어야겠지.’
저들이 잘 해내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 * *
승화자란 이름을 지녔으면서.
저들이 지닌 전투 방식은, 구도를 하기보다는 다 부수는 파괴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돌진 형태로 가지. 이제는 수복이 가능하니까.]
[예!]
지금까지의 전투는 최소의 전력만 내보였던 것일까.
이들은 자신들의 몸 형태를 아낌없이 변형시켰다.
일부는 인간의 형체를 버려버린 드릴의 형태로 몸을 변형.
눈앞에 있는 적 개체를 향해 말 그대로 돌진해 버렸다.
콰드드드득-!
걸리는 족족 갈려 나가는 게 다수.
일부 거대한 로봇 팔 등은 그것을 잡아 막으려 했지만.
콰아앙-!
잡으려는 그 손마저 갉아 버림으로써, 드릴 형태들은 위용을 과시했다.
변형된 형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다중의 형태로.]
자신의 온몸을 수백 개로 나누는 자도 있었다.
그 하나, 하나가 작은 형태의 드론이 되었다.
작은 드론들은 날거나, 기었는데.
작음에도 그 기동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어지간한 헌터 이상의 속도잖아.’
빠른 속도로 적을 향해 급습!
거리가 좁혀지면, 드론들은 자신을 더 잘게 쪼개었다.
너무 작았다.
저 작은 크기가 움직이는 건 신기하다만.
저래서 뭘 할까 싶었다.
공격력에 크기가 전부는 아니라지만, 꽤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더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투웅- 퉁-
벌레처럼 작아진 형태의 드론들은 바깥이 아닌 안을 노렸다.
적에게 다가가는 순간, 적 로봇 사이에 있는 틈을 파고들어 갔다.
적 로봇이 그걸 막을 새도 없었다.
손가락보다 더 작은 크기의 것들이 수십 마리가 들어가는 걸, 단번에 막을 수단은 없으니까.
화르르륵-
적 중 일부가 화염을 뿜어보기야 하지만.
화염의 속도보다 드론이 안으로 파고드는 게 더 빨랐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적의 마력 흐름이 곳곳에서 변화하는구나.
즈즈즈즈즉-!
로봇 안의 마력 흐름. 그 흐름들 전부가 순식간에 엉켜갔다.
누가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지는 뻔했다.
퍼어엉-! 펑!
안에서 계속해 일어나는 폭발을 일으키는 드론들이겠지.
‘대단한데.’
제아무리 단단한 금속으로 이뤄진 로봇이라도 안에 들어간 것들을 방어할 수는 없다.
의외로 안에 있는 회로들이 더 약한 경우도 수두룩했다.
이걸 직접적으로 공격해낼 줄이야.
[당신의 동료가 적성 개체 : CA-123492를 처리하였다.]
[당신의 동료가 적성 개체 : …….]
.
.
순식간에 적 로봇들이 쓰러져 갔다.
크기가 작든 크든 상관없었다.
순식간에 부서져 갔다.
이에 적 로봇들도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없다만.
던전 전체에 소식이 전해진 건 분명했다.
“점차 모여드는 거 같은데요?”
“경보라도 울린 거겠지.”
주변에 있던 로봇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쿠우웅. 쿵.
로봇으로 만들어진 군세였다.
저쪽도 총력을 다하려는 듯했다.
본래라면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할 거대 로봇들이 제 몸을 분해하여 오고 있었으니까.
크고 작은 로봇들이 한데 모여 오는 거.
그러한 군대의 전진은 꽤 큰 위압감이 있었다.
“전투 준비해.”
“우리도 껴야 할 거 같으니까.”
뒤를 보고 있던 우리로서도, 이젠 본격적으로 참전을 해야 할 때였다.
* * *
참전을 하자마자 우린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나의 경우, 순식간에 선두를 향해 치고 갔다.
‘전투 기술은…… 뒤로 갈수록 단순해지는 법이지.’
그러며 내가 꺼내 들 수 있는 전력을 순식간에 펼쳤다.
[당신은 영력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힘들 중에 가장 친숙한 건 둘.
그림자와 영력.
나는 이 둘을 불러일으키자마자, 두 힘 특유의 조화를 일으켰다.
[당신은 영력과 그림자를 합일시켰다.]
그것은 마치 태초부터 붙어있듯, 궁합이 잘 맞는 두 힘을 합일하는 거.
로봇이라 할지라도 육체를 지녔기에, 그림자는 존재하였고.
그 그림자를 전부 다 꺼내 불러일으키는 그 순간부터, 내 주변 모든 그림자는 나의 권속이 되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영력조차 조화를 시켰으니, 그 위력이 어찌 약할까.
내가 손을 드니.
한데 모인 그림자가 내 손의 형상을 따라 했다.
거대한 손이 일순간 공장의 천장을 가리는 듯했다.
거대한 그림자의 손.
그 가운데 담겨 있는 영력에 나는 한 가지 의지만을 실었다.
파괴.
모든 것을 파괴하라고.
쒜에에엑-!
그 의지가 실리자, 거대한 손은 이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그그그긍-
흡사 신화 속 거인이 내려치는 듯한 웅건한 공격.
그 공격이 내려앉음에.
[!!!!!]
[!!]
적 로봇들은 단체로 힘을 모아 막아 내려 했다.
온몸을 서로 합쳐대며 뭉치고.
틈을 막고자 부품을 떼어 합체했다.
그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대응이었다.
자신들의 육체가 지닌 단단함을 이용한 방어 방식이었다.
그러나.
차라리 저들은 한데 뭉치기보단 흩어져야 했다.
‘뭉쳐야 산다는 게 꼭 진리는 아니거든.’
뭉쳐지는 게 내게는 더 유리했다.
처음부터 이 거대한 그림자는 저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고자 나선 것이 아니었으니까.
거대한 크기는 적을 속이기 위한 허상이요.
불어넣은 영력은 그 허상을 위한 장치였다.
이후는 뻔하지 않은가.
후우욱-!
거대 그림자 손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저들을 스치고 들어간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허깨비처럼.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신기루처럼 꺼져 버린 거대한 그림자.
이젠 사라져 버린 거대한 손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사라졌다면, 그들 곁에 그림자가 가득해야 할 텐데.
여전히 저들 곁에 그림자는 없지 않은가.
[!!!!]
뒤늦게 그 이상함을 눈치챈다만.
내가 저들로부터 빼앗은 그림자는 저들에게 이미 돌려준 지 오래였다.
그들 아래에 있는 본래의 자리가 아닐 뿐이었다.
‘자, 움직여라.’
그것은 저들의 겉이 아닌 안에 위치하여 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짙은 어둠과 내가 보낸 그림자가 합일한다.
중간에 있는 영력은 합일을 위한 연료이자, 앞으로 있을 한 가지 행위를 위한 매개가 되었다.
그 행위.
“폭발은 예술이지.”
로봇에게 가장 어울리는 폭발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쾅-!
로봇의 몸속.
연속된 폭발이 일어난다.
로봇의 육체가 뒤틀린다.
뒤틀린 육체로부터 쏟아지는 부품의 파편들.
그러한 파편들은 다시금 적을 유린하는 폭탄이 되었다.
그 작은 파편에조차 그림자는 기생하는 법이었고.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들은 그와 함께 기생하며, 힘을 불어넣었으니까.
파드드드득-
곳곳에서 클레이모어가 터져나가듯, 조각들이 비산한다. 뒤이어지는 파편은 그걸 또 더하고. 폭발에 폭발이 더해진다.
이러니 예술이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끝나지 않은 폭발의 세례니까!
“크흐…….”
-악취미로구나. 고얀 악취미야.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즐기듯 바라보았다.
그것을 두고 마왕은 진득한 악취미라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저 승화자들로부터 힌트를 얻어 파괴한 거뿐이야. 적의 약점을 알았는데, 노리지 않는 거. 그게 더 악취미지 않겠어?”
-하여간 말은 잘하는구나.
“칭찬은 감사하고.”
-그것이 칭찬은…….
그러나 처음부터 내가 마왕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마왕의 질린 듯한 말투는 내게 즐거운 여유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는 동맹일지라도, 어쨌거나 한때는 누구보다 죽이고 싶었던 적의 질림이었으니까.
나는 그걸 음미하며, 어느새 다가온 적을 바라보았다.
그건.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을 거라 여겼던, 거대한 중앙 처리 장치의 본체였다.
“움직일 수 있었네?”
“와우……!”
그것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