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그 변수. 나로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거다.
중앙 처리 장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우리. 그런 우리를 붙잡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리로 지금 가면 죽어요! 이리로 와요!]
육성이라고 하기엔 기괴한 음성. 마치 기계어를 말하는 거 같은데, 이해는 다 되는 괴이한 언어가 내 귀로 들려왔다.
이는 내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나를 따라오다 말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저, 저거 뭡니까?”
“이전이랑 전혀 다른 존재들인데!?”
그러곤, 기괴한 언어를 내뱉은 자를 바라봤다.
그는 바닥 일부를 뚫고 나와 상반신만 드러내고 있었다.
드러낸 상반신의 절반은 기계였고.
또 절반은 우리와 비슷한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그 형태였다.
절반의 육체는 다른 어떠한 거보다 기괴했다.
마치 인간의 육체를 잠식하듯, 기계가 붙어 있었고.
그런 가운데 팔이 하나 있어야 할 곳엔 세 개가 존재했다.
또한 우리를 바라보는 눈에는 인간의 눈동자 대신에, 기계 안구가 박혀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적 아니야!?”
“우리 속이는 거 같은데……!? 팀장님, 무시하고 갑시다!”
팀원들이 보기에도 기괴함이 느껴진 게 분명하다.
저자는 분명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이지만.
그 기괴한 외모 때문인지, 도와준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적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본래라면 보자마자 입을 열기도 전에 부숴버렸을 거다.
겉으로 느껴지는 저들의 기세는,
쿠우웅- 쿵-
우리를 사살하기 위에 뒤에서 달려오는 저들과 다르지 않았다.
육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기계 몸도 적들과 똑 닮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경험이 있지.’
나는 이들과 다른 경험이란 게 있다. 그 경험 속에 있는 기억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유보라는 누구보다 이 안에 생존자들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중앙 폐쇄 장치를 정리하고, 그들의 시체를 찾아냈을 때.
그 아쉬움은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아깝네. 이 안에 있는 자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거야.”
쓸데없는 연민 때문에 아쉬워한 게 아니었다.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결과의 다름 때문.
“무슨 결과?”
“이곳을 더 활용할 수 있었겠지.”
“활용이라…….”
“지금처럼 단순 대피소만이 아니라, 그 이상도 됐을걸? 그러니 아까울 수밖에.”
이들이 기계에게 죽지 않고 살아만 있었더라면.
이곳 생존자들을 이용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그때의 아쉬움은 꽤 컸다.
공허가 내려앉으면 내려앉을수록 아쉬움은 더 커져갔다.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던전은 갈수록 더 거대해져 가는 주제에, 그 안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존자 하나 없이 전부가 죽어있는 공간을 볼 때마다 더 그러했다.
모두가 죽어 있는 게 마치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거처럼 느껴졌으니까.
해서 나는 불쑥 드는 퉁명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말했었다.
“에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꼭 우리 편이 될 보장은 없지 않나?”
저들이 설사 살아 있다 하더라도, 우리 편이 될 보장은 없다.
도리어 호감도에 따라서 적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이성적인 성격을 지닌 유보라다.
그거라면 그녀를 설득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꽤 의외의 것이었다.
“그거야 하기 나름이잖아. 우리는 그걸 잘할 수 있을 거고. 안 그래, 한휘?”
“그런가?”
“응. 그런 거야.”
그녀답지 않게, 나를 그리고 우리를 믿어주는 말을 했으니까.
논리에 상관없이, 우리라면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유보라였다.』
그런 보라의 표정을 역시나 나는 잊을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러하겠지.
그래서일까.
나는 결정을 내리기 쉽다 느껴졌다.
“어디 한번 안내해봐.”
[예?]
“죽지 않는 길로 안내해보라고.”
[아, 예!]
생존자.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 * *
생존자를 따라가기로 결정은 했다만.
‘방심은 안 하지.’
완전히 믿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안은 조각난 세계다.
등급이 올라가면 갈수록, 내가 상대해야 하는 던전의 크기는 커진다.
즉, 조각난 세계의 크기가 커진단 소리다.
등급이 100이 되지 않은 지금은 최대 도시 정도 크기.
등급 100이 넘어가면 도시보다 더 큰, 작은 소국 정도 크기가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한 세계는 조각이 났다 하더라도, 역시 거대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렇잖은가.
한 보통의 인간이 삶을 살아간다 치자.
현대에 이른 지금에야 여행지로 이곳저곳을 간다고 한다만.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특히 몬스터 사태가 일어난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이동하는 거 자체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자원과 심력을 소모하는 법이니까.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다가.
‘도시급만 해도 완전 다른 세계라 해도 무방하지.’
이곳은 곧 다른 세계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주민은 보통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야 ‘체계’라는 게 보정을 해준다만.
문화나 삶의 방식, 사회 구조 자체가 꽤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뭐 그러니까 한마디로.
‘여기 애들이 호의를 표한다고 하는 게, 호의가 아니라 적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거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믿기가 아주 힘들다.
이러한 차이점도 짜증 나는 부분인데, 여기에 다른 것들도 껴든다.
악마나 마족 혹은 정신 오염.
조각난 세계에 오래 있으면서, 정신이 물들어 버리는 거다.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으로.
처음엔 착하던 생존자도, 흑화한다 이거다.
어떤 땐, 처음 던전에 출입할 때는 누구보다 날 귀하게 대하던 녀석이 다음번에는 무슨 원수처럼 덤벼드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을 정도다.
이런 걸 경험했는데 믿으라고?
‘될 리가.’
어지간해서는 믿을래야 믿을 수가 없다.
반대로, 팀원들은.
“와……. 던전에 이런 곳이 다 있네요?”
“생존자들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오오……. 다른 문명이다. 이런 걸 다 볼 줄이야.”
생존자들이 사는 터전.
지하에 마련된 대피처를 보고서는 놀라 감탄만 표하고 있었다.
새로운 문명에 감탄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걸 봐야 할 텐데.
-한휘, 저기 봐라. 대포의 포대가 너희를 향하고 있다.
‘알아.’
아쉽게도 마왕, 이사야, 마리 정도나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뭐, 저들도 포신을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는 거. 이해는 간다.
우리를 적대하자고 하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사태를 생각해서겠지. 기껏 데려왔더니 우리가 저들을 공격하면 또 안 되니까.
그런데도 왜 우리를 데려왔느냐 하면 저들도 살자고 우리를 데려온 것이다.
무슨 소린고 하니.
[오……!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이로군! 그쪽 세계 기준으로 2년 만인가!]
[추격당하고 있는 걸 겨우 데려왔습니다!]
[잘했네!]
이 조각난 세계의 원주민이자 생존자인 이들.
이들은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했다.
[혹시,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부탁이라면……?”
[그것은 말일세.]
그 필요는 단순하며 어려웠다.
[죽은 멸망의 공장 : 생존자가 당신에게 의뢰를 진행하려 합니다.]
바로, 체계가 인정하는 의뢰라는 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으니까.
* * *
———————————————
[죽은 멸망의 공장 재생]
죽음만을 바라는 멸망의 공장.
그곳의 생존자들이 당신들에게 재생을 바라고 있다.
-생존자 적대 세력의 멸망
-생존자 터전 재생
-고립된 생존자 구출
-위급한 생존자 회복
-생존자 물자 지원
———————————————
회귀를 해서 처음 받은 퀘스트.
길기도 하다.
사실 이 모든 걸 다 해낼 필요는 없다. 해낼 수 없기도 하다.
막말로 고립된 생존자를 구출하는 거?
내가 퀘스트를 받자마자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망겜망겜 거리고는 있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고 실제 현실이니까.
게임은 불가능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이룰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현실은 반대다.
‘체계는 가차 없지.’
절대 깨지 못할 것도 퀘스트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퀘스트를 깨는 건, 일종의 인정이 필요하다.
[받아주겠는가?]
내 앞에서 애걸복걸하고 있는 늙은이.
듣기로 이 생존자 터전의 장로라 부르는 이자가 퀘스트의 완료를 인정해줘야 한다.
몇몇 가지 사항은 지키지 못했더라도, 최선은 다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뭐, 억지는 부리진 않는다.
저쪽도 퀘스트를 볼모로 억지를 부리게 되면 ‘체계’가 나서서 패널티를 부여하는 듯하니까.
체계도 나름 밸런스를 본다 이거겠지.
내가 보기엔 그 밸런스가 아주 안 좋지만 말이다.
어쨌건 그런 게 이 던전이라는 곳에서의 퀘스트다.
‘이거, 오랜만이네.’
회귀한 이후 처음 받은 퀘스트.
나로선 새삼 성장했다는 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기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글쎄. 내가 이걸 꼭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뭣?]
“퀘스트란 걸 내가 꼭 할 필요는 없잖아. 분위기를 그렇게 몰아가지 말라고.”
[……허. 대체 무슨 소리를…….]
생존이 필요해서 내게 의뢰를 하는 주제에 ‘받아주겠는가?’ 하고 묻는 거만한 자세를 봐라.
이 퀘스트라는 거.
처음 받게 되는 초짜들은 냅다 받고 본다.
앞뒤를 재어 보지도 않는다.
‘웃기지도 않은 일이지.’
지구의 다른 인간이 냅다 구해 달라느니 뭐니 부탁을 하면, 받기는커녕 콧방귀나 뀔 게 헌터란 족속들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며, 폭력을 행사하는 놈도 있을 거다.
그런 놈들이 이 던전이란 곳에 오면 잘도 받아버린다.
그게 이득이 되는 줄 아니까.
실제로 이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긴 하다.
던전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체계에 기록되기 마련.
퀘스트를 완료하게 되면 그러한 기록들로 말미암아, 전보다 더 큰 성장을 하긴 할 거니까.
하지만.
기껏 목숨 걸고 하는 퀘스트의 보상이 기껏해야 성장에 조금 도움이 된다고 하면 웃긴 이야기지 않나.
‘말도 안 되는 거지.’
해서, 나는 퀘스트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가 갑인지 을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이 장로라는 자.
이자에게 현실 파악부터 하게 할 참이다.
“나는 무조건 받을 생각이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소린가.]
“우리 지구 말에 이런 말이 있지. 눈에는 눈, 피에는 피라고.”
-이에는 이 아니었느냐?
‘시끄러.’
자, 내 말을 과연 알아들었을까.
장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런 그에게 오랜 시간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나는 되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장로는.
[……이해했네.]
다행히도 내 의도를 이해했다.
자, 그럼 진짜는 이다음이다.
“이해가 빨라서 좋네. 그럼 이제부터 심도 있게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어?”
[허…….]
나는 거저 움직일 생각이 없으니, 이제 이자가 날 움직이게 할 조건을 만들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