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죽은 멸망의 공장.
처음 들어선 그곳은, 내 머릿속 정보와 똑 닮아 있었다.
“이거 아포칼립스 시대가 구현된 겁니까?”
“정확히는 조각난 세계겠지.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세계말이야.”
“햐…… 이런 곳도 있군요. 지구랑 비슷한 거 같은데.”
이 안은 말 그대로 공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한때는 자동생산의 한 축을 이뤘을 기계 팔과 손이 즐비해 있었다.
그 사이사이, 거대한 기계 팔을 대신해 움직일 듯한, 인간 형태의 로봇들도 존재했다.
인간 형태였지만, 하나같이 괴이했다.
팔이 여덟 개 달려 있거나.
손이 달려야 할 곳에 온갖 기계 장치가 달려 있었으니까.
보기에 따라 괴이하긴 하다만.
어찌 보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그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육체였다.
문제는 그런 육체들이.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육을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는 거다.
“옵니다! 저것들 일어나서 온다고요!”
“호들갑 떨지 마. 보이니까.”
위이이잉-!
손에 있는 드릴을 쉼 없이 돌려댄다.
절삭을 위해 만들어졌을 곳에선 칼날 대신에 광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광선의 정체는, 레이저 따위가 아니었다.
마력이었다.
-마력을 로봇에게 이식하다니. 대단한 기술력이구나. 이곳은 지구와 비교가 불가할 정도야.
‘마공학이 발달한 세계가 조각난 거란 거겠지.’
-마공학이라…… 오랜만에 듣는군.
‘나도 전에 여기 와서야 알게 됐던 단어다.’
-……대단한 곳이야.
이 공장은 마공학이 발달 되어 만들어진 곳.
기술과 마법의 결합에 의해서 탄생한 곳이 이곳이었다.
그러기에 저것들은 로봇이자 동시에 골렘.
골렘이며 로봇이기에, 그 무엇보다 단단하며 재생을 하기까지 한다.
형태도 다양하였다.
단순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만이 적이 아니었다.
쿠우웅-! 쿵!
우리를 향해 덮쳐오는 거대한 기계 팔과 손은 모두 하나하나가 골렘이었다.
그러한 골렘 로봇들 모두가 우리를 향해 적의를 내뱉고 있었다.
* * *
온 곳곳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옆으로 피해!”
“큿…….”
계속해 몸을 놀려 피해야 했다.
다량으로 적들이 달려오기에 이쪽도 꽤 많은 것들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림자 주머니. 이어서 영혼 병사 소환.”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주머니를 사용했다.]
바깥에서부터 품고 나온 던전제 무구를 다량으로 쏟아내었다.
쏟아낸 무구들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특성 : 전투 지능이 발휘된다.]
스스스슷-
죽어 있던 영혼 병사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 위에 그림자 병사들이 더해진다.
“부딪쳐!”
콰아앙! 쾅!
다량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병사들.
그 군세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그그그극-
거대한 기계 팔이 그림자 짐승을 짓누른다.
-키에엑!
압축되듯 짓눌리는 그림자 짐승.
본래라면 피할 수 있어야 했다.
모든 물리적인 공격에 면역된 게 그림자 짐승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 안의 모든 적은 마력을 다룰 수 있었다.
다룰 수 있는 마력이 적든 많든 상관없다.
마력이 있음으로, 그림자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츠즈즈즉-
그 결과가 저것이다.
[당신이 소환한 그림자 짐승이 소멸되었다.]
[당신이 사용한 영력 일부가 함께 소멸되었다.]
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던 그림자 짐승조차, 소멸되어 버린다.
적은 그런 무자비한 공격을 한 주제에.
만족감조차 느끼지 못한 듯했다.
-키이익!
-키이…….
처어억. 척.
하나의 개체를 죽이고 나면, 또 다른 개체를 죽이고자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무감각하고 효율적이다.
그러기에 잔혹한 전투방식이었다.
‘전에도 겪었지만 정말 빌어먹을 곳이라니까.’
산 자를 죽은 자로.
죽은 자를 다시 조립하여 하나의 로봇이자 골렘으로.
이곳 공장은 그러한 곳이었다.
매년 삼 일간, 게이트를 열어 헌터들을 끌어들이고.
끌어들인 헌터를 재료 삼아 다시 크기를 부풀리는 곳.
그런 기계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어딘가에 있을,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 세계의 생존자들을 죽이는 거다.
물론 내가 돌아왔을 땐, 이 세계의 생존자들이라 추정되던 것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정확히는 죽어서 또 다른 로봇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터였다.
본래 조각난 세계란 건 멈춰 있는 세계나 다름없으니까.
그나마 이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다.
‘오래도록 미정복 게이트가 되어 있으면서, 던전 자체가 이 지구와 함께 고정되어 있지.’
게이트가 브레이크가 일어나지도, 그렇다고 정복당하지 않으면서 오래도록 존재가 고정되어 있었다는 거다.
후에 우리는 이런 던전을 고정 던전이라 불렀다.
굳이 다른 던전과는 다른 명칭을 붙인 이유는 하나였다.
신기하게도 이런 고정 던전은 정복 후가 다른 던전과 달랐다.
일반적인 던전은 던전 핵을 파괴하면, 그대로 리셋이 되어 버린다.
잠시 게이트가 멈췄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러한 고정 던전은 그게 아니었다.
‘핵을 파괴해도 모든 게 그대로지. 게이트는 계속해 돌아가고…….’
리셋이 되지 않는다.
그저 게이트로서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우린 그걸 고정 던전이라 불렀다.
대다수의 오래된 미정복 던전이 그러한 상태로 머물렀었다.
때문에 우리는 회귀 전 이러한 고정 던전을 우리만의 방식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그대로 고정된 세계. 몬스터도 나오지 않는 세계.
달리 생각하면 다른 어떤 세계보다도 안전하지 않은가?
우린 그걸 대피소라 명명하고 사용했다.
‘쓸 만은 했어. 쓸 만은…….’
등급 50 이상의 던전부터는 그 크기가 거대한 터.
이곳, 죽은 멸망의 공장만 해도 어지간한 도시만 한 곳이었다.
그러기에 꽤 많은 사람이 대피소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아포칼립스와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
물론 완벽한 대피소는 아니었다.
고정된 세계.
그런 곳에서 식량이나 생필품을 구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대다수의 던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매 주기마다 식량을 구하러 나가줘야 했고, 그때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긴 해야 했다.
대피소마다 연결하는 것도 큰 문제였고.
안에 있다 보니 다들 회까닥 돌아버려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나중에 가선 대참사들이 일어났었다.
‘……그 빌어먹을 악마들이 침공해 왔지.’
-적어도 우리는 안 그러지 않았느냐?
‘그거야 너희들은 게이트를 형성할 줄은 알아도, 변질시키는 건 약하니까. 가성비가 안 맞아서 대피소까진 안 온 거잖냐?’
-크흠…… 잘도 알아챘구나.
‘내가 아니라 보라가 알아채기는 했지. 어쨌거나…… 그때 생각하면, 악마 자식들은 다 죽여 버려야 한다니까.’
-그건 동감하느니라.
게이트를 변질시킬 줄 아는 악마.
그러한 것들이 이곳 대피소를 향해 끝없는 침공을 시도해 왔다.
오히려 마족들은 자주 출몰하지 않았다.
오로지 악마들만이, 최후의 보루 중 하나랄 수 있는 대피소를 노려왔다.
그때 얼마나 많은 자들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던가.
나중에 가선 악마가 없는 대피소보다, 악마가 잡아먹은 대피소가 더 많았다.
나는 그런 대피소를 부활시키고자 온 거였다.
‘이곳은 특별했으니까.’
폐허의 공장을 완벽하게 정벌하고.
리셋되지 않은 세계를 내 영지로 삼으려고 온 거였다.
그러기에 주력 무기인 하데스의 사슬과 사신의 낫을 두고서라도, 기어코 이 안에 들어온 거였다.
일 년이라도 더 빠르게 던전을 정복해 놓아야만.
나와 이사야가 짜놓은 계획의 진행률을 더 높일 수 있을 테니까.
해서, 힘을 아끼지 않고 무더기로 사용했다.
“내가 지정한 거 위주로 파괴해. 멀리서 움직이지 못하는 기계 팔들은 무시하고.”
“옙!”
“우선 최대한 나를 따라오도록 해. 내가 원하는 방향까지 돌파해야 해.”
“예!”
“따라갈게요!”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분출하고 있다.]
[당신은 파괴된 영혼 병사의 영혼을 영력을 통해 수복시키고 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을 연속해 사용하고 있다.]
머리로는 영력에 관련된 기술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수천이 넘는 적을 상대 하기 위해, 계속해 병사들을 소환했다. 그럼에도 적의 수는 계속해 불어났지만, 이 외에 다른 수는 없었다.
그러며 동시에 몸을 날렸다.
서걱-
양손에 든 묵검을 휘둘렀다.
지금은 죽어 버린 리바이.
그가 내게 전수해 줬던 검술을 이도류로 사용했다.
콰즈즉- 콰즉-
베고, 자르고, 찌르고.
터져 나오는 적의 윤활액을 최대한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후우…….”
“성령의 힘을 빌어 회복을……!”
“고마워.”
그것은 꽤 고되기만 한 길이었다.
그러나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하기 위해선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저 멀리 던전의 중심.
그곳에 보이는 거대한 기둥!
그 기둥에 내 영력을 불어 넣어줘야 했다.
‘그래야 계획대로 돌아가게 돼.’
본래 이 공장의 컨트롤 타워였을 곳. 그곳에 영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컨트롤 타워를 파괴해야만 했다.
그렇게만 되면.
‘이전과는 다르게 되겠지.’
회귀 전엔 이곳을 단순히 대피소로만 사용했다면.
지금은 컨트롤 타워만 부수고 남아 있는 것들을 이용하여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게 된다.
회귀 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를 위해서.
콰아앙-!
부수고, 나아가기를 한참이었다.
저 거대한 수십여 미터의 기둥에 다다르기까지.
나와 일행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당신은 상당한 영력을 소모하였다.]
걸어가면 갈수록.
앞으로 나아갈수록, 소모된 힘을 되찾을 길은 없기에 피로도는 상당하였다만.
“크흐…….”
“조금만 더요! 조금만!”
그렇다 해도 우리는 나아갈 거였다.
홀로만 걷는 길이 아니었다.
마리는 지속된 회복의 힘으로 팀원들을 북돋웠다.
이사야가 사용하는 사령 마법이 검게 빛날 때마다 적의 육체를 산화시킬 수 있었다.
냥곰은 어느샌가 거대한 화살을 소환해 제 몸을 띄우더니, 공중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박동길은 묵묵히 내 옆을 지켰고.
한이수와 이진성은 그 사이를 움직이며, 사각을 노리고 다가오는 적을 찔러 갔다.
스슷-
이진아의 몸이 보일 땐, 여지없이 적이 쓰러졌다.
‘그래. 이거지……!’
모두가 날 따라주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팀워크였다.
이대로만 나아가면 된다 여겼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그때까지는 결코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
-저건 무엇이냐?
변수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