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후…… 힘든 일이었다.”
한 회장.
그와 이뤄진 협상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게 투자를 한다 하면서도, 그는 내게 뭘 줄지 한참을 두고 입씨름을 해왔다.
수 시간을 협상하는 데도 그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되려 신의 육체를 지닌 내가 지칠 지경이었다.
제아무리 신의 육체라도 정신력까지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어차피 내줄 거면서 그런 식으로 길게 끌 줄이야.
결국엔 내가 원한 걸 다 내주면서도, 웃는 표정을 지었던 걸 생각하면.
‘그 사람. 즐기고 있었던 게 분명해.’
그 회장이란 자는 명백히 즐겼다.
또한 회장으로선 날 탐색한 거기도 할 거였다.
미래가 아닌 나, 지한휘란 존재.
그러한 존재가 과연 협상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탐색을 한 거겠지.
결과는 좋았다.
“내 예상 이상이로군. 나쁘지 않아. 아니 좋다고 해야 하나. 젊을 적 나보다 더 나은 거 같네만? 자네가 헌터가 아니었으면, 내가 직원으로 직접 스카웃 했겠어.”
“여태 그리 몇 시간을 끌어 놓고도 그런 이야기입니까. 이제 와 금칠해 봐야 늦었습니다만은?”
“허허. 내가 허튼소리를 하던가?”
“……됐습니다. 어쨌건, 받을 건 받았으니 되었죠.”
“상호 만족스러운 거래였으면 하네.”
“물론이죠.”
나는 그로부터 온갖 운송 수단에 대한 권리를 받았다.
그러는 동시에 그가 인천과 군산, 부산 항구에 가지고 있는 지분 일부를 받을 수 있었다.
지분은 일부라지만 꽤 컸다.
“내가 내걸 나눠주는 일도 다 있군. 자네가 등을 돌리면, 경영권 보호도 힘들겠는데?”
“우는 소리는 그만하시죠.”
“흘…… 늙은이가 가끔 부리는 엄살 정도는 들어주게나.”
회장의 말대로 내가 지닌 지분을 이용하면, 그의 경영권을 흔들 수 있을 정도다.
그래봐야 저 노괴나 다름없는 괴물은 어떻게든 막긴 하겠다만.
‘흔들 수 있을 정도란 게 중요하지.’
거대한 회사를 흔들 수 있는 지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이것으로 나는 적어도 돈이라 하는 화폐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매년 가져다주는 배당금만으로도 당장 재벌 행세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뭐…… 그래봐야 나중에 가면 종이 쪼가리긴 하다만.’
문젠 이게 유통 기한이 있는 거란 거다.
던전이 터져나가고.
그 뒤에 정부들이 툭툭 터져나간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애당초 한국이 예외였다면, 미래 그룹이 세계 5대 세력으로 발돋움할 일도 없을 테니까.
고로 그때가 되면 정부가 찍어내는 화폐란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돈은 단지 종이 쪼가리가 될 뿐이고.
그 용도라고 해봐야, 모아서 태우는 데 쓰이는 연료 정도였다.
그때 가서는 큼지막하게 50,000원이라고 쓰인 신사임당보다, 빵 한 조각이 더 가치가 있는 시대다.
그런 내게 배당금이라.
결국 아무 쓸모가 없을 수밖에.
그러니 이에 대해 미리 조치를 취해 놓아야 했다.
그 조치 단순하며 쉬웠다.
“자네가 말한 것들을 잊지 않고 최대한 매입하도록 하지. 미스렐에, 아다티윰. 거기에 던전제 완본 무구들이라…… 참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걸 아는가?”
“저는 다 쓸데가 있어서요.”
“그 많은 돈을 다 매입하는 데 쓴다면…… 시세가 들썩이긴 하겠군.”
내가 얻는 이득.
그 배당금들을 전부 내가 쓸모로 하는 던전 물건들을 구하도록 만들었다.
단순하게는 금속에서부터.
나중에는 쓸모 있어질 던전 완본제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 용도를 모르는 걸 모으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도 잊지 않고 말했다.
그것은 식량.
보존될 수 있는 식량을 끌어모으게 만들었다.
‘배양식은 질릴 정도로 먹었으니까.’
설사 아포칼립스 시대가 오더라도, 내 사람들 정도는 챙길 수 있을 정도의 양을 요구했다.
그걸 보고 화승 회장은 이해 못 할 거 같단 표정을 짓긴 했다.
그로선 내가 돈X랄을 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구만.”
“시간이 지나면 선견지명이 있었구나 하실 겁니다.”
“허, 참. 알겠네, 알겠어.”
하지만 말은 그리하면서도 눈을 빛내는 걸 보자면.
‘나 모르게 회장도 매입을 시작하겠군. 본능적인 감 하나는 죽여 주는 사람이니까.’
그도 분명 매입을 하기 시작할 거다.
어쩌면, 내가 그리고 있는 아포칼립스에 대한 걸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곤 그 감을 따라서 나보다 더 집요하게 필요한 자원들을 모을지도.
아니…… 어쩌면 정도가 아니라 분명 그럴 거다.
화승 회장.
그가 지닌 능력은 진짜니까.
그때 가선 그가 지닌 자원이 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가 지닌 자본의 힘은 나보다 더 거대하니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때쯤이면 나는 나대로 내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어쨌거나, 이렇게 인연이 맺어진 그는 내 편이기도 하니.
‘그때 가서 큰 힘이 되겠지.’
그는 먼 미래에 가서도 분명 내게 큰 힘이 되어줄 거였다.
그래서 대놓고 알려준 거였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면 이득이 될 거라고.
그런 내게서 또 뭔가를 읽어 들인 걸까.
“내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제가 하는 일에 크게 무리인 일만 아니면요.”
“허허. 무리는 아닐 걸세. 분명 도움이 될 일이야.”
“그래요? 뭔가요?”
“짐 하나만 떠맡아 주게나.”
“예?”
“그게 말일세…….”
그는 내게 생각지 못한 부탁을 해 왔다.
* * *
그 부탁의 결과는, 다른 게 아니었다.
협상을 마치고 화승 본사 아래로 내려왔을 때.
회장이 말한 짐이 곧바로 내 앞에 대령되어 있었다.
“처음 뵙 겠…… 아니 처음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 바로 이렇게 온다고?”
내게 곧게 인사를 해 오는 자.
한이수.
내가 본 마지막까지 스무 명의 치유계 헌터들이 능력을 불어 넣어주던 그가 일 층에 서 있었다.
그가 바로 회장이 내게 떠맡긴 짐이었다.
-다시 죽어도 좋네. 아니 또 죽는다면 그건 운명이겠지. 큰 인물이 되었으면 하는 아이야. 그러니 맡아주게나.
그것도 기껏 살려 놓았더니, 다시 죽어도 좋다고 떠맡긴 짐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회장에게 분명 말했다.
저 미래의 금지옥엽이라는 냥곰-김민하-도 생사의 위험을 항시 겪고 있다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어려운 길을 계속해 갈 거라 말했다.
내가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은 위협을 스스로 감내하기 때문이니까.
회장은 그걸 아는데도 한사코 내게 맡겼다.
어차피 큰물에 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아등바등해서 얇게 사느니, 차라리 나처럼 굵게 사는 게 났다던가.
제가 지닌 지분까지 나눠주면서 살린 자의 말 치고는 대범하다 못해 미친 짓거리기는 한데.
호부에 견자.
아니, 호부에 견손자는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건지.
내게 인사해 오는 한이수의 표정은 생글생글한 미소만 맺혀 있었다.
넉살도 좋다.
“뭐든 빠른 게 좋으니까요.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장비 챙기고 왔습니다!”
“그러다 빠르게 하늘나라로 갈 뻔하지 않았나? 자기 할아버지보다도 더 빨리?”
“큼…… 크흠…… 두 번은 안 갈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
뭐, 그 넉살도 결국 내 독설 앞에서는 침몰하긴 했다만.
여태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면 나쁜 녀석은 아니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겠지…….’
본래라면 죽었어야 할 녀석이다.
이걸 내가 살렸다.
이것도 변수라면 변수다.
누가 보아도 나쁘지 않은 변수.
웃긴 건,
‘어째 살릴 때마다 다가와서 들러붙냐…….’
그런 변수가 죄다 살기만 하면 내 편이 된다는 건데.
어느새 보면, 미래에 오성이 더해졌는데. 거기다 화승의 유일한 후계까지 내게 붙어 버렸다.
무슨 재벌가 헌터도 아니고 말이야.
노린 건 아닌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게 있다면, 오성 하나 빼곤 화승이나 미래는 그리 더럽게 세를 불린 건 아니란 거다.
미래는 자기들 능력으로 미래 정보를 알고 커버린 거고.
화승은 이번 대의 회장이 지닌 능력이 특출나 자수성가해 버린 거니까.
한 마디로 살려놔도 찜찜한 것들은 아니라 이 소리.
뭐, 오성은…….
“왜 그리 보십니까?”
“아니, 이번에도 엄한 녀석을 주웠는데, 그쪽이랑 결이 비슷해서?”
“흐음…… 그도 그렇군요.”
저 수완 좋은 동길이를 데려다가 흑화시켜 버린 곳이니 뭐 말할 게 없긴 한데.
어쨌거나 동길이도 그런 오성과 연을 끊고 와버렸으니까, 꼭 죽일 놈은 아니었다.
‘원래대로 빌런이 됐으면 뚝배기를 깨버리는 건데 말이야.’
말이 세기는 했는데, 어쨌건 나쁜 녀석은 아니란 소리.
그 대신.
조건이 하나 있긴 했다.
재벌 가문이라고 해서 쉽게 패스해주면, 그건 안 되지 않나.
안 그래도 내 팀원 되겠다고 아우성치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만한 자격을 증명해야 했다.
그 증명, 내가 몸을 굴릴 필요도 없었다.
“회장님한테 들었지. 나는 곱게는 안 키워 주는 거.”
“예! 들었습니다!”
“기합 하나는 좋네. 어디 그 기합만큼 잘하나 보자고. 동길 씨, 데려가.”
“제가 시험해 봐도 되는 겁니까?”
“수호자인 동길 씨만큼 잘하는 녀석이 또 있겠나.”
“인정입니까? 감사합니다.”
“이젠 슬슬 인정할 때가 됐지.”
이제는 든든한 동료가 된 박동길.
그가 시험을 봐준다면 될 테니까.
처음이야 거부감이 들었다만.
지금에 와선 팀원들 중에 꽤 믿음직한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에게 이 한이수란 자의 능력을 시험하게 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만 보내면 아쉽지 않나.
“아, 그리고 이진성도 데려가고. 지X 맞은 놈이라 그 옆에 있으면 힘들 거거든.”
“난이도가 높아지는 거군요.”
“그렇지.”
“제대로 굴리고 오겠습니다.”
미친 광대 이진성.
그를 옆에 붙여 놓으면, 내가 있지 않아도 시험 난이도가 급상승 할 거다.
안 그래도 전에 나랑 처음 갔던 [개미 둥지].
그곳에서 내 덕에 한창 굴렀던 경험 때문인지, 신입만 오면 똑같이 굴리겠다고 벼르고 있었으니까.
아쉽게도 그 첫 타가 박동길이었는데.
‘수호자란 가호를 지녀서 제대로 버텨냈지.’
이진성이 한을 풀기도 전에, 박동길이가 금방 커버렸다.
이번은 다를 거였다.
그 이진성이 꽤 성장했으니까.
미친 듯 굴리겠지.
암흑같이 어두운 미래를 예견한 걸까.
“잘해. 아까 패기처럼. 과연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제대로 해 보겠습니다.”
“그래.”
한이수의 표정을 보니 처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자식. 감 하나는 좋네.’
눈을 감으라고 해봐야 하나.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어둠.
그게 네 미래라고 속삭여 주는 거도…….
‘에라. 내가 안 그래도 언제 뒈질지 모르는 앤데. 내버려 두자.’
나는 슬그머니 드는 악마 같은 유혹을 우선은 버렸다.
그 사이, 동길이는 알아서 한이수를 수습해 갔다.
그러고 남은 건.
그간 내 옆을 묵묵히 지켜 주고 있었던 마리였다.
그녀는 부활 의식으로 피로할 텐데도, 여전한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영력으로 느껴지는 걸로 보아하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쨌거나 무리를 했으니까.
이런 그녀를 두고 갈 곳은 하나지 않은가.
“가자.”
“그래요. 이제 오랜만에 집이네요.”
바로 집이었다.
들어가면, 이제 쉴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으아아아! 어떻게 그걸 가져온 겁니까!
“……뭐야, 이 자식은.”
전에 주운 게 또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