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여기가 중요하다.’
단순히 기운을 뿜어내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기운이 많다고 해서, 강자라 한다면 등급만 높아도 그는 강자가 될 테니까.
요령을 알아야 했다.
샤아아아-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과 영력을 섞어 내고.
섞은 가운데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영력에 대한 통제를 놓쳐선 안 된다.
통제력을 잃은 영력은 흩어져버리고 말 테니까.
그래.
이건 일종의 춤과 같았다.
마리와 내가 함께 어우러져 추는 춤.
[당신은 동료가 사용하는 기도 : 부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춤을 주도하는 것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마리.
그에 맞는 지휘봉은 생명의 지팡이.
그녀가 지휘하는 흐름에 맞춰 나는 끝없이 영력을 내뱉어야 했다.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방출하고 있다.]
사령에 가까운 영력은 솎아 내고.
최대한 신성력에 가까운 영력을 뽑아내야 했다.
아무렇게나 뽑아내서도 안 된다.
자칫 한 영혼의 영력을 한 움큼 뽑아내다가는, 그 영력에 담겨 있는 혼이라고 하는 게 손주라는 자에게 뻗어갈 수 있으니까
그리하였다가는 그 혼이 손주의 정신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잡아먹지 못하더라도, 섞이고 혼재되어 정신 이상을 불러오겠지.
그러니 제대로 조율해야 했다.
-히야…… 저걸 어떻게 하는 거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뭐지?
그러기에 옆에서 들여오는 치유계들의 이야기는 내게 소음밖에 되지 못했다.
‘정신 사납게.’
차라리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나는 고작해야 이런 자들의 인정이나 받자고 이 부활 의식을 행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영력을 돋우고, 조종하길 이어갔을까.
“지금이에요!”
또렷하게 눈을 뜬 마리가 내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신호였다.
고오오-!
나는 내가 끌어 올린 영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한이수.
화승 한창운 회장의 손자.
지금은 차게 식어 버린 시체인 채로 죽어버린 그.
그에게 영력을 불어 넣는 거 자체도 일이었다.
‘차라리 그대로 뒀으면 좋았을 텐데. 쓸데없는 짓들을 해버렸단 말이지.’
그가 죽지 않게 하려고 치유계 헌터들이 한 조치.
죽고 나서도 시체가 썩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했던 처리들.
그러한 것들 덕분에 한이수의 육체는 온갖 기운이 혼재돼 있었다.
나는 그러한 기운들을 쓸어 버려야 했다.
샤아아-
뒤이어 들어오는 마리의 신성력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했다.
그것도 몸 전체를 한순간에!
이게 쉬울 리가!
어느새 온몸이 땀에 젖은 가운데,
“후우……! 됐어!”
그 모든 일을 행하는 데 성공했다.
때마침 이어지는 마리의 목소리.
“성령이시여, 그를 인도하여 다시 삶을 찾아올 수 있게 하기를……! 부활의 기도!”
그와 함께 내가 흩뿌렸던 모든 영력이 흩어지고.
마리가 쏘아 올린 거대한 신성력이 그에게 흡수되었다.
과연 성공일까.
[당신은 동료의 기도 : 부활을 돕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차원 : 지구 최초의 부활 의식을 도왔다!]
[대단한 업적!]
[당신의 업적이 체계에 기록된다.]
……답은 성공이었다.
차게 식었던 한이수의 몸에 열이 돌아온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흐르기 시작한 피는 하얗던 그의 피부에 작은 홍조를 피워냈다.
“아…….”
그렇게 그가 다시 눈을 떴다.
* * *
모두가 멍하니 그의 부활을 바라봤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죽은 자의 부활이다.
죽은 지 나흘이 넘은 자가 일어났다.
우리가 익히 아는 부활에 대한 이야기도 사흘이었으니, 나흘이 넘은 지금은 역대 최대 부활 기간이겠지.
앞으로야 이러한 기적을 툭툭 보여 낼 참이다만.
지금은 이 지구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니.
“저, 정말 부활했다.”
“와…….”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치유계 헌터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이해가 되는 바다.
그러나, 다들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피식 웃어주며 말했다.
“뭣들 해? 어서 보조해 줘야지. 여기까지 우리가 해 주라고?”
“아, 알겠습니다!”
“당장 움직여!”
어서 조치를 취해달라고.
이제 막 어머니의 배에서 나온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라 하지 않나.
지금 정신을 차린 한이수도 마찬가지였다.
떠났던 영혼을 안착하게 하고.
신성력을 이용해 억지로 부활 의식을 치르긴 했다만.
아직 온몸에 고통이 남아 있을 거다.
거기다 페널티도 무시할 수 없다.
‘억지로 일으켰으니 부활 페널티도 심할 거야.’
본래 받아야 할 거보다 더 받은 상황이니, 숨이 꼴딱 다시 넘어갈 수도 있다.
때문에 지금부터는 남은 치유계 헌터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다행히, 그들은 밥값은 해주고 있었다.
“치유의 기도!”
“오오…… 신이시여, 갸륵한 이자에게 회복의 인을!”
“힘이여……!”
다들 신성력을 양껏 뽑아내, 한이수에게 부여하고 있었으니까.
이 시국에 힘을 강화시키는 녀석이 왜 있나 싶기는 한데.
‘……저게 효과는 있네? 저 자식도 눈여겨봐야겠어.’
어쨌건, 신음을 삼키는 한이수가 점차 회복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마리의 판정.
“안정기에 접어들었어요. 다시 죽을 일은 없어요.”
수많은 자를 살리며, 인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그녀다.
전생의 경험까지 말미암아, 어지간한 의사보다 더 뛰어난 그녀의 판단은 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나는 그녀의 판정을 들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며 나는 회장에게 물었고.
“들었죠? 저희는 약속을 지킨 거 같습니다만.”
“……허허. 인정할 수밖에 없군.”
그 답은 꽤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우리 이수 옆을 지켜 주고 싶지만…… 공과 사는 가려야 하는 법이겠지. 내가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협력에 대해 심도 있게 이야기해 보지.”
“얼마든지요.”
그 답. 내게 꽤 이득을 가져다줄 이야기였으니까.
* * *
지한휘와 한 회장이 새로운 이권과 그에 대한 나눔을 어찌 처리할지를 상의하는 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손자 한이수를 구해 준 그 자체는 회장 개인으로서 감사한 일.
그러나 기업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지한휘에게 모든 걸 넘겨주는 건 무리인 일이었다.
개인의 감정과 기업가로서의 입장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러나 지한휘로서도 그의 모든 걸 얻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전부 주지도 못할뿐더러, 이 일은 내가 화승을 삼키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
그는 전사지, 기업을 이끄는 경영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화승을 어물쩍 넘겨받아 봐야 경영을 해낼 수 있을 리가.
화승은 화승대로 회장이 경영을 하고.
그는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넙죽넙죽 받아 내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기에 지한휘는 여유 있게 제시했다.
“크게는 안 바랍니다. 던전 사업, 던전을 오가는 데 필요한 루트의 제공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허허. 크게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것 치고는, 아예 껍질까지 벗겨낼 기세로구먼.”
문제는 그가 제시한 여유로운 조건이라고 하는 게 현재로선 생각보다 크다는 거지만.
화승의 회장은 속이 좁은 인물은 아니었다.
“에이, 회장님치고 엄살이 심하십니다? 이미 유럽에 가서도 회장님의 힘을 한번 겪어 본 거 같은데요. 생각보다 더 쓸 만하더군요.”
“쯧…… 내 너무 큰 것들을 보여 준 거 같으이. 흠…… 그래도 상관은 없을 거 같긴 하군. 자네가 이번에 내 손주를 도와준 걸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야.”
“논외로 치더라도요?”
“그래. 자네가 지닌 가치가 충분함을 증명하였으니…… 어디 제대로 이야기해 보지. 나는 자네 말대로 미래가 아니라 자네 그 자체와 협상을 하고 싶으니까.”
“시원해서 좋군요. 어디 본격적으로 해 보죠.”
그는 현재의 지한휘.
그리고 그 미래 너머의 그에 대한 가치 평가를 끝마친 듯했다.
그래선지 그는 생각보다도 더 통 크게 협상안을 처리하고 있었다.
몬스터 사태가 최초로 일어나던 당시, 온 힘을 다해 올인을 했던 그때처럼. 지한휘를 바라보는 화승 회장의 눈은 분명 크게 빛나고 있었다.
* * *
그리고 때로 그러한 화승 회장과 같은 빛은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날 수 있는 법이었다.
화아아아악-!
“터진다! 터져!”
“으아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남쪽.
나훗카.
흔히 연해주라고도 알려진 항구도시. 그곳 곳곳에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환한 빛이 터져 나오고, 뒤이어.
그그그그긍-
거대한 폭음이 자리하는 거대한 폭발들.
그 폭발은 일반적인 폭발과 분명 달랐다.
“건물은 멀쩡하잖아!?”
“어……? 폭발이 가짜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전부 다 보고 대피했는데!”
폭발이 이는 데도 물리적인 것들은 멀쩡하였다.
문제는 그 안이었다.
“사, 사람! 그 안에 사람은…….!”
“……없어. 없다고!”
폭발이 일어난 건물.
그 안에 있던 자들이 전부 사라졌다.
신기루처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음에 그 안에 들어간 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야! 어디가!?”
“우리 집! 우리 집 주변에도 폭발이 일어났다고!”
“……아. 그럼 우리 집도잖아! 같이 가!”
그러한 폭발이 도시 곳곳에서 일어났다.
상황을 눈치챈 시민들이 자신의 집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제발 아니기를.
자신들의 가족이 있을 집만은 예외기를.
그리 바라며 그들은 하염없이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자신의 보금자리.
세상의 모진 풍파를 다 겪더라도, 영원한 안식처가 되는.
그곳은 더 이상 없었다.
“……없어!”
“안나!”
“예까냐!”
함께 해야 할 자들이 연기처럼 사라졌으니까.
가족, 친우, 친지.
하물며 때로 가족보다 더 소중하다는 애완견과 고양이도 전부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삭제되어 버리듯이.
그건 갑작스러운 재앙이었다.
하나 재앙은 갑작스러워도 그 여파는 멀리, 오래가는 법이었다.
-나훗카가 난리가 났어. 이러면 우리가 하는 일들도 전부 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사라진 사람이 만 명이 넘어.
-하…… 하필 이런 시기에 재앙이라니.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모르지…… 나헤나. 어쩌면 우리는 계획을 다시 짜야 할지도 몰라.
-……어렵게 됐네.
가깝게는 나헤나.
저 아래 어두운 곳에서부터.
자신을 죽이려 하는 권력자들과 투쟁하며, 다시금 자신만의 제국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계획에 치명타가 가해졌다.
그리고 멀리는 이 재앙이 끝이 아니란 것이다.
-문젠…… 그게 끝이 아니란 거야.
-끝이 아니라니?
-점차 번져나가고 있어. 다음 방향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아. 소식이 들어왔네. 이번은…… 남쪽이군…….
-……남쪽이면 한국이 있는 방향?
-아마도.
-……бля.
그러한 재앙이 계속해 번져나가고 있었으니.
나헤나로선 작게 욕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욕할 때가 아니라고. 자, 우선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같이 이야기해야 할 테니까.
-그럴게. 그전에 소식 정도는 전달해주도록 하고.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진 가운데서도, 자신의 할 일이 뭐인지 정도는 알았다.
자신에게 예속의 목걸이를 채우긴 했다만.
현재로선 조력자에 올라서 있는, 지한휘.
그에게 연락을 남기는 게 우선이었다.
문제는.
-연결을 할 수 없어…….
“뭐라는 거야. 정말. 또 어딜 가 있는 거지?”
그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는 거였다.
음성이 안되면, 문자로라도.
그녀는 자신이 아는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넘겨주고서는.
“그라면…… 알아서 해내겠지.”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제국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