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현재로 중요한 것.
그건 단순했다.
바로 도주다.
개변으로 만들어진 사령의 기둥이 사라지고.
땅 위로 안착한 이사야를 받아들인 지가 고작해야 몇 분.
잠시 걸음을 옮기는 그사이에, 살아남은 프랑스 헌터들. 대다수는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 가운데 몇몇의 눈빛은 꽤 수상했다.
그중 몇은 어딘가에 은밀히 연락을 취하는 게 보였다.
그에 바로 반응이 왔다.
“한휘. 슬슬 사람들의 기척이 더 느껴지고 있어요.”
“……이럴 땐 어느 나라나 빠르단 말이지. 자기들끼리는 제대로 해결도 못 하는 주제에 말이야.”
개변이 일어날 때는 도망치기 바빴던 것들이.
이제 와 일이 해결되고 나니까 이런 흐름이라.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아라 이거지?’
아마.
어째서 이런 던전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것.
우리가 나오고 나서 시험 던전의 게이트는 사라지고, 대신 사령의 기둥이 생겨난 것에 대해 추궁을 하기 위함이겠지.
그들의 입장에서야 이해는 간다.
그들이 자랑하던 약탈의 흔적인 루브르 박물관이 이 난리 통에 거의 파괴되어 버렸으니까.
그에 대한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잡고자 하는 거다.
그 속내를 경험 많은 내가 모를 리가.
재밌는 건.
‘새끼들…… 몬스터 사태 터지고, 진짜들은 따로 보관해 놓고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이 자식들 피해라고 해 봐야 건물이 파괴된 거 정도라 이건데.
그건 물질 복원 능력을 지닌 이능력자를 데려오면 될 것을, 이런 식으로 나온다라.
이제 와선 이런 걸 가지고 실망할 거도 없다만.
‘우습긴 하네.’
이렇게 오는 거 자체가 우스웠다.
이유야 어쨌건, 결과론 적으론 프랑스 내 외신 레문트의 광신도를 쓸어버린 건데 말이다.
“자, 그럼 더 오기 전에 나가보자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넓게 펼쳐 놓았던 영력을 재흡수하였다.
동시에 사신의 낫 바깥으로 펼쳐 놓았던, 내 영혼의 근원을 흡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스스-
다시 돌아온 영력들에 한결 숨이 가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후우…… 영력 폭발.”
[당신은 영혼 마법 : 영력 폭발을 사용하였다.]
[당신이 사용한 영혼 마법 : 영력 폭발이 특수하게 발현되었다.]
[당신이 사용한 영혼 마법 : 영력 폭발이 상대의 영혼을 뒤흔든다!]
콰아아앙-!
슬금슬금 다가오려는 자들에게 크게 한 방을 날려줬다.
-……커어억!
-quel…….
-explosion!
그에 다가오던 프랑스 헌터들은 신음을 내뱉었다.
영력을 쥐어짜도록 만들어낸 영력 폭발.
그에 느껴지는 영혼이 흔들리는 느낌에 쓰러지는 자들도 속출했다.
“일어나면 고생 좀 하겠지.”
“한휘. 악취미가 늘었잖아?”
“뻔뻔하게 나오면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지.”
모르긴 해도, 일어나면 몇 달은 요양을 해야 할 거다.
차라리 육체에 일으키는 폭발은 치유 헌터를 동원하면 쉽게 치유하겠다만.
지금처럼, 영혼을 흔드는 특수한 폭발은 되려 치유가 더 힘드니까.
뭐, 나만 한 수준의 영혼 술사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만.
‘있을 리가 있나.’
현재로 나만 한 능력을 지닌 자는 없으니까.
꽤 많은 자들이 헌터 전력에서 사라지겠지.
그 때문에 수많은 전력 공백이 생기기야 하겠다만.
적어도 나를 건드렸으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특수한 영력 폭발을 날렸을 뿐이었다.
쿠우웅. 쿵.
꽤 많은 헌터들이 얼마 가지 않아 쓰러졌다.
어느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헌터들은 전부 사라졌다.
저 멀리서 거친 호루라기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상황은 급박해져 갔다만.
“가자.”
“휘유…….”
되려 우리는 유유히 빠져나올 뿐이었다.
* * *
우선 유유히 박물관을 빠져나오긴 했다만.
프랑스를 벗어나는 일이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
나라 해도 폐허나 다녔지, 아직까지 도시라는 기능을 하는 프랑스를 자주 다닌 건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누굴 기다렸는고 하니.
“크흑…….”
“정신을 차렸습니까?”
“대체 다 무슨 일이랍니까…….”
바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던 화승의 직원, 이은수.
그가 깨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강력한 이능력을 지닌 우리와 달리 이은수는 등급이 낮았다.
사실 처음엔 헌터라는 걸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아주 약한 자였다.
그러니 그 난리 통에 기절을 한 거였다.
아마, 팀원들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진작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그는 깨어나자마자 상황 파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뭐…… 설명하면 깁니다만…… 우선은 그것보다 여길 빠져나가는 게 먼저인 거 같습니다.”
“예? 빠져나가…… 아, 설마…… 프랑스에서 추격이 붙는 겁니까?”
“아마도요……?”
그것은 도주.
이은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허…… 대체 회장님은 무슨 사람들을 제게 데려온 건지 모르겠군요.”
“무려 은인 후보를 데려온 거죠. 어쨌거나, 가능하겠습니까?”
“……으음.”
나는 그런 그에게 뻔뻔하게 도주 루트를 요구했다.
그는 1-2분 정도 고심했다.
그러더니 답을 내려줬다.
“프랑스에서 이 난리를 쳤으니…… EU의 다른 곳들도 우리에게 추적을 붙일 수도 있긴 합니다. 그렇다 해도…… 도주 루트를 짜긴 짤 수 있겠군요.”
“최대한 빨리 가야 해요. 우리가 늦으면 회장님의 손주가 죽거든요?”
문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거다.
전처럼 며칠씩 추격전에 시달리다가는, 의뢰는 실패니까.
그는 내 말에 인상을 퍽 찡그리더니.
“……젠장. 두 배는 더 빠르게 해 줘야겠군요.”
“부탁하죠.”
“후. 어떻게든 해 보죠.”
한국인 특유의 근성으로다가, 순식간에 우리를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열흘 내외 정도.
시험 던전에게 있으며 보낸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고작해야 반나절이 조금 넘었을 뿐이니까.
이 모든 이유는.
시험 던전 내에서 보낸 시간보다, 바깥에서 흘러간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시간비는 알 수 없다.
대략적으로 현실의 한 시간 정도가, 던전 안에서 하루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저는 누굴 살려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백 층쯤 가서는 죽을 뻔했어요.”
나보다 먼저 나왔던 파티원들도 며칠은 지냈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마리는?”
“저는 스무날이 더 넘을지도 몰라요. 꽤 거친 곳이었거든요. 다시 가고 싶지는 않네요.”
“한휘, 나는 안 물어?”
“그래. 너는 어땠는데?”
“정말 뒤지는 줄 알았지. 크. 내가 거기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풀면 한 권은 더 나올걸? 나중에 자서전에 길게 써 보면 이해할지도?”
“……그건 나중에도 쓰지 마라. 안 팔릴 거 같으니까.”
“칫…….”
마리나 이사야는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 듯 보였다.
나만 해도 수십 일은 더 시험 던전에서 보낸 기분이었다.
계단 한 칸, 한 칸을 올라서는 것도 힘들었거니와.
매 십 층마다 벌어지는 전투의 경우 오르면 오를수록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으니까.
그런 경우로 보자면, 이번 던전은 많이 특별했다.
‘시간 자체가 괴리되는 던전은 흔하지 않은데 말이지.’
시간 괴리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다들 안에서 꽤 많은 일을 겪었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시험들을 해결한 걸 들을 수 있었다.
이진성, 이진아는 150층 정도.
김민하는 의외로 200층에 도달했단다.
그럼으로써 꽤 많은 능력 상승과 아이템을 얻은 거 같았다.
의외인 건 박동길이었다.
“저는 220층이었습니다.”
“뭐? 그게 됐다고?”
“되던데요?”
“……허.”
그는 220층이었다.
나, 마리, 이사야를 제외하면 최고층.
그가 헌터가 된 지 얼마 안 된 걸 생각하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성과다.
‘타고났네. 이런 녀석이 대체 왜 전생엔 악마 계약 따위를 한 거야……?’
220층이라니.
타고난 건가.
그야말로 재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서 그는 직업을 상승시킬 수 있었단다.
“수호자에 하나의 칭호가 붙더군요. 최후의 수호자라고.”
“갑자기 직업이 강화됐다고?”
“뭐…… 팀장님이 영혼 술사에서 영혼의 마법사가 된 거랑 같은 식 아니겠습니까?”
“대단하네.”
이 또한 흔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전생에 악마충이었던 녀석이, 줍고 보니 재능충……?
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쨌거나 다들 박동길 만큼은 아니어도 꽤 성과를 얻었다.
그러니 광신도들이 날뛰는 와중에서도 프랑스 헌터들과 함께 방어진을 구축할 수 있었겠지.
그런 방어진을 같이 구축해 줬음에도.
“……벌써 추격이 온 거 같군요. 다들 저흴 찾는다고 난리입니다.”
곳곳에서 찾으라느니, 탐색을 서두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게 우습고 슬플 따름이다.
아주 본격적으로 추격을 해오고 있었으니까.
그 와중에 우리가 걸리지 않게 잘도 안내를 하고 있는 화승의 이은수.
그가 지닌 능력이 꽤 탐나는 현재이기도 했다.
보아하니 가진바 육체 능력은 낮은데, 길 찾기 능력은 아주 타고났으니까.
‘타고난 가호가 안내자와 관련된 건가.’
돌아가서 화승 회장의 손주를 구하고 나면.
그에 대한 대가 중에 하나로 이 길잡이를 데려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정도로 그는 빠른 안내를 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프랑스를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거도 러시아에서처럼 전투를 미친 듯 벌여야 하는 상황이 아닌, 기척을 죽이고 잘만 도망치면 되는 정도였다.
이 정도면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증명 될 정도이지 않은가.
그러니 욕심이 날 수밖에.
해서 그런 욕심이 나는 와중에서도, 나는 문뜩문뜩 튀어나오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근데 마리나 이사야는 대체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얻은 거냐? 지팡이는 물론이고, 그 힘들이 대체 뭐냐고.”
“후후. 글쎄요.”
“……비밀이야. 원래 내가 비밀이 많은 편이잖아?”
이사야와 마리. 그 둘이 던전행을 통과하고 난 이후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를 어떻게 겪었는지, 또한 무엇을 얻었는지를 알고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나 둘은 내 직설적 물음에도 빙긋 웃음 지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하 참…… 전생엔 비밀 하나 없던 녀석들이. 이쪽은 근원을 써 가면서 구출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쯧. 수틀리면 흑역사들을 꺼내버릴까 보다.’
때문에 내 궁금증은 갈수록 더 커져 갔지만.
둘은 입에 접착제라도 바른 거처럼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다.
“한휘.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정리할 게 있어서니까요.”
“흐응…… 이쪽도 마찬가지야.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는?”
“후…….”
이럴 땐 무슨 짓을 해도 말을 하지 않는 둘이다.
우선은 한숨과 함께 기다려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답답한 와중에서도 도주는 빠르게 이뤄졌고.
“이 비행기만 타면 됩니다.”
“……오. 대단도 한데.”
“타시죠!”
프랑스를 지나 이탈리아의 작은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이은수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