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거대한 영력의 파동.
그것이 주변을 휩싸기 시작한다.
우리가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퍼졌을 신성력도 이러한 식으로 퍼졌을 거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하나다.
목적성의 유무.
이전의 신성력은 목적 없이 그저 휘몰아쳤을 거다.
그리함으로써 수많은 병자는 치유했을지 모르나, 그보다 더 많은 광신도와 몬스터를 불러들였다.
이번 마리가 던진 신성력은 다르다.
휘오오오-!
목표가 존재했다.
그것은 외신 레문트가 만들어낸 링크의 해체!외신이 공을 들여 만들어냈을 그들 간의 연결을 해체하는 데 있었다.
정확한 표적을 만들어낸 기도 주문의 효과는 뛰어났다.
[동료의 신성력으로 적성 개체의 연결이 해체되고 있다.]
-키이이이!
-캭…….
저들의 연결성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어느 순간 해체 수준을 뛰어넘었다.
여태껏 미친 듯 달려들고 있는 적들.
광신도와 몬스터에게 신성력은 하나의 거대한 파괴 광선과도 같았다.
츠츠츠츠-
피부가 낱낱이 해체되고. 가죽이 벗겨진다.
벗겨진 가죽 사이로 피를 흘릴 새도 없었다.
짙은 녹빛과 검은빛의 피는 신성력에 닿자마자 산화되듯 사라져갔다.
그나마 버텨내는 건, 소수뿐이었다.
-그륵…….
-키이……!
‘링크’를 통해 이미 거대해진 개체들.
크기를 키워가며 등급 자체를 올린 광신도들은 버텨 냈다.
온몸을 웅크리고.
제 몸에 기운들을 일으켜 신성력으로부터 저항했다.
링크를 통해 이뤄낸 거대 육체를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내가 가만둘 리가 있나.’
횟수로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전투를 벌여 온 나다.
하나의 진리만은 확실히 알았다.
적이 위험에 빠졌을 때가, 내겐 기회란 거.
그 기회를 버릴 이유가 있겠는가.
‘영력을 쓰다간, 기도 주문을 방해할 수 있으니…… 직접 뛰어 봐야지.’
나는 재빨리 거대 개체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거대한 그들의 육체를 표적으로 삼았다.
콰즈즈즉- 콰즉-
그 뒤, 사신의 낫으로 그들 목을 수확해나갔다.
하나, 둘씩.
목을 잃은 개체들이 쓰러져 나갔다.
-키이이이이!
뒤늦게 저항하려는 개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수명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웅크리는 몸을 펴 봐야.
샤아아아-!
그를 기다렸다는 듯 신성력 더미가 몸을 치게 돼 있으니까!
그리하여 더 약화만 될 뿐이었다.
그리 약화된 육체를 지닌 녀석의 목을 치는 거 따위.
‘어려울 리가.’
콰즈즈즉-
벼를 베는 거보다도 더 쉬운 일이었다.
드러낸 육체를 그대로 난도질 했다.
쿠우웅. 쿵.
그럼으로 살아남아 겨우 겨우 버티고 서있던 광신도들이 점차 박멸돼 갔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 주변으로는 살아남은 광신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두었던 링크?
존재할 리가.
깡그리 박멸을 해낼 것이라 여겼는데…….
“어……?”
변수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 * *
[외신 레문트가 당신들의 행위에 크게 분노했다.]
[외신 레문트가 대가를 지불했다.]
[외신 레문트가 현실 일부를 개변시켰다.]
외신 레문트.
소위 연결된 자들의 왕이요. 군집 개체들을 조율하는 자.
세상이 공허에 잡아먹히는 마지막까지 남아, 제 군체를 키우고자 했던 그것이 나섰다.
대가를 지불했단다.
그 대가가 무엇일지는 나는 알 수 없었다.
체계와 외신의 거래 항목 따위를 알아낼 재주는 존재치 않았으니까.
그러나 하나는 안다.
“이 미친 새끼가!”
‘개변.’
놈들이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서 만들어 내는 그것은, 거대한 재앙과 같았다.
말 그대로 현실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으니까.
저러한 외신들이 만들어 내는 개변은 결코 이쪽에 유리한 것일 리 없다.
그들은 언제나 죽음을 갈구하고.
그 죽음 가운데 세력을 키워나가는 괴물들이니까.
‘신이란 이름도 아까운 것들 같으니라고.’
휘오오오-!
나의 욕지거리에 상관없이, 뻗어나가던 일대의 신성력 다발이 멈췄다.
멈춰버린 신성력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졌다.
삭제되어 버리듯이.
말 그대로 흔적조차 없어졌다.
신성력 줄기가 뻗어나간 게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의 변화다.
저것이 개변의 효과다.
말 그대로 현실을 바꿔버린다.
신성력이 사라지고 나자, 개변은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섰다.
그다음 단계는 나로서도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겨우 죽인 적들을 살릴까 싶었다만, 그따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걸 살리기보다, 이미 죽은 것들을 바꾸기 위한 개변이었다.
영혼 상태로 울부짖던 몬스터.
신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환호하던 광신도.
그들의 영혼이 한데 모여들었다.
거대한 영혼의 군집체가 만들어졌다.
원한과 원망으로 물들어버린 저것은 거대한 사령의 군집이었다.
군집이라.
외신 레문트가 입맛에 딱 좋은 형태지 않은가.
“한휘 저 형태는…….”
“강림이라도 시키려는 거겠지. 제 자식이라도 말이야.”
저러한 군집체가 만들어질 줄이야.
저것은 현 수준에서 대응할 것이 아니었다.
저 거대한 사령의 군집체.
저것은 아무리 영혼의 마법사란 나라도 쉬이 건드릴 게 아니었다.
당장 들어가 저 거대한 사령에 몸을 맡겨 보아봐야.
남는 건 원한이 들어찬 것들에 의해 미쳐버리는 거뿐이니까.
그러기에 전에도 저러한 것은 나라도 막아 내기 힘들었다.
그나마 저것을 조율하고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건.
‘이사야뿐이었지. 그것도 리치기에 가능했던 마법이었어…….’
그 가능성은 내가 아닌 다른 동료에게 있었다.
결국 현재는 막을 수 없다는 소리다.
이사야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리치가 아닌 인간일 뿐이니까.
제아무리 그녀라도 저만한 사령엔 잡아 먹힐 거다.
막을 수 없는 재앙이 내려앉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어디부터 어긋난 거지.
외신 레문트가 이렇게까지 나설 이유는 없을 터인데.
공허가 한없이 내려앉아, 지구가 멸망 직전에 가서야 저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외신이 저리 자극됐는지를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하나다.
피해야 한다.
“……모두 대피하라고 해.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 테니까.”
“한휘.”
“알잖아. 지금 저걸 잠시라도 지체시킬 수 있는 건 나 정도야.”
“그렇다면 저도…….”
그리고 모두가 피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서야 했다.
이 와중에 나서서 막을 수 있는 건 딱 나 하나 정도다.
“마리는 우선 애들을 대피시켜줘야지. 그래야 내가 마음 놓고 날뛸 수 있지 않겠어? 전처럼 하자구.”
“……알겠어요.”
그리해야만.
지금까지 내가 모아온 자들. 저들 팀원들을 살릴 수 있다.
애써 키워 온 가능성들을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 절 따라오세요!”
“한휘. 저도 남아서…….”
“시끄럽고 어서 가!”
남은 팀원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내 옆에 서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쓸데없는 책임감. 그따위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명확한 계산이 있어서였다.
‘피해만 커질 뿐이야.’
지금 수준에서, 나조차 겨우 버틸 뿐이다.
다른 팀원들이 끼어봐야 저들 군집체에 보태어 줄 영혼밖에 되지 못할 거였다.
그때가 되면 군집의 일부가 될 사령을 내가 잘라내야 하겠지.
그러니 뒤로 빠지게 한 거뿐이다.
“어서가!”
최대한 버텨 내고. 또 버텨 내어.
저것을 지체시켜야만 하니까.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지 못하겠으나.
‘개변도 한계가 있어. 그게 규칙이니까.’
성공만 한다면 저 재앙도 결국 물러나게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섰을 뿐이었다.
“어디…… 내가 영력을 어디까지 잡아먹을 수 있을지 보자고.”
-한휘, 미친 짓이다! 여가 보기엔 너도 물러나는 것이…….
마왕의 말은 무시했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남아 있는 영력을 모두 뽑아내었고.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저 군집체를 흡수할 생각으로 전진해 나갔다.
영력을 흡수하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며.
그 대결 끝에서 저 거대한 영력의 군집을 막아 내려 했다.
-그어어어어!
-그륵…….
설사, 저들의 원한에 파묻히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내가 해야 할 최선이었으니까.
그러기에 몸을 날려 군집체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어?”
순간.
나보다도 더 빠르게.
휘이이익!
저 거대한 군집을 향하여 뛰어드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내게 너무도 익숙한 사람 중 하나였다.
“이사야!!!!!”
시험 던전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그녀.
어느새 그녀가 거대한 사령의 군집체에게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 * *
아니, 이 무슨…….
언제 모습을 드러낸 걸까.
아무리 군집체가 떠돌고 있는 지금이라도, 눈치는 챌 만한 거리였는데.
나로서 전혀 예상도 못 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사야를 말릴 틈도 없었다.
샤아아아아-!
그녀의 몸은 이미 군집체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아…….”
-이건 말도 안 되느니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그 놀라운 상황에, 마리의 리드로 도망치려 하던 헌터들 조차 잠시 멈출 정도였다.
‘대체 뭘 하잔 거야!’
뒤늦게 짜증이 몰려왔다.
이제 와 자기 하나 희생을 하겠다는 건가.
아니 희생도 정도가 있지 않나.
저기 들어가 봐야 이사야는 수많은 희생자 중 하나가 될 뿐이었다.
아니, 이사야 성격에 희생을 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막자고 들어갔다 이건데.
‘착각도 유분수지!’
제아무리 그녀라도 저러한 군집체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원한으로 가득 찬 사령을 다루는 데 있어, 그녀가 나보다 나은 건 사실이다만.
그래봐야 한계는 명백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해낼 수 없다.
그런 계산을 순식간에 마친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갔다.
-한휘…… 그것은 아니니라! 너조차 죽을 수 있음이니!
“닥치고 보조나 해줘!”
군집체에게로 몸을 쏘아 올렸다.
저 안을 비집고 들어가 아직 안에 있을 이사야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녀를 잃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 한편으로, 내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이사야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그녀도 무언가 계산한 게 있으니 들어갔을 터였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그 계산에 내가 포함됐을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맞춰줘야 한다 여겼다.
해서 군집체에게로 몸을 날렸는데.
“크윽…….”
터어엉-!
이사야는 잘도 들어간 영혼의 군집체는 한순간에 뭉쳐지며 나를 막아 냈다.
-끼끼끼……!
“이 새끼들이!”
그런 나를 비웃듯 들려오는 괴성들.
나는 양손에 영력을 빌어, 저 거대한 군집체를 찢어 내려 했다.
촤아악.
그러나 찢어도 찢어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복구될 뿐이었다.
‘망할!’
저들은 필사적으로 나를 막아 내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사야는 왜 받아줬단 말인가!
어이가 없는 지경!
그에 열받아, 내 정신이 미치더라도 저들 전부를 흡수하려 했다.
‘어디 누가 뒈지나 보자.’
내 모든 영력을 이용해, 저 군집체의 흡수를 시도했다.
스스스슷-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얼마 가지 못하였다.
“……어?”
곧바로 또 다른 이변이 발생해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