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처음부터 선택 따윈 필요 없었다.
사람을 살릴 수 있으면 전부 살려야지.
왜 사람을 가리고 그러나.
사람 목숨의 무게는 전부 공평한 법이다.
‘크…… 오랜만에 뽕한다.’
나는 전부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바포멧 영혼 몇이 사라지긴 했다.
뽕을, 아니 빵을 뽑아내다 보니, 존재 자체가 사라지더라.
왜인지, 사라질 때 어딘가 해탈한 표정을 짓긴 했다.
마치 모든 걸 놓은 부처님 표정 같은 걸 지었는데.
나로선 왜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몇 마리 사라진 거쯤이야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체할 악마의 영혼은 넘쳤으니까.
‘빵이 없으면 케이크로 대신하면 되겠지. 아직 영혼은 많으니까.’
-허튼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어허이. 뭔 소리야. 내가 진짜 이 정도면 5천은 먹여 살린다니까?’
-……여가 악마가 불쌍해 보이기는 처음이구나.
‘허 참. 어마 무시한 종족 차별자가, 그런 소리 하면 안 찔리냐?’
-오늘만큼은.
그 부작용으로다가, 마왕도 어딘가 질려 버린 거 같기는 하다.
대체 어느 부분이냐.
내가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해서 그런가.
하기는, 100명의 거지 중 단 하나도 죽지 않았으니까.
점수로 치면 100점.
제아무리 마왕이라도 여기서 100점은 못 받았겠지.
이해했다. 그럼 저건 질투군.
마왕의 질투라.
뿌듯한 부분이다.
이 백 층에 오르기까지, 어마어마한 과부하와 함께 전투를 벌여왔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빵을 먹은 거지들은 죄다 배가 올라와 있었다.
“사, 살았습니다. 꺼윽…….”
“……끅. 감사합니다.”
“흠…… 감사 인사에 영 진심이 안 담겨 있는 거 같은데……? 아직 배고픈가?”
“아닙니다!”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네.”
이거 봐라.
다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내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크. 이 맛에 선행을 하는가 보네. 하기는…… 회귀 전에도 다들 어떻게든 먹여만 주면 감동하긴 했지.’
보람차다.
나로선 오랜만에 코를 쓱 만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마음속 깊이 따뜻함이 우러나오는 듯하다.
“그, 그럼 저희는 갑니다.”
“어디로……?”
“살아남으면 떠나갈 수 있으니까요.”
파아앗- 파앗.
거지들은 마술을 부렸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하나, 둘씩 사라졌다.
이윽코, 모든 거지가 다 떠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던 시험 합격 통지가 떴다.
[……당신은 시험을 통과했다.]
[다음 시험에 도전하겠는가?]
“흠…… 어쩐지 말투가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하긴 시험을 내면서도 내가 100점을 맞을 줄은 몰랐겠지.”
-그건 아닌 거 같다만…….
“뭐, 이 정도 점수가 나오면 질투는 당연한가. 당연히 도전할 거다.”
[…….]
스스스스-
울림은 말없이 재차 계단을 생성해 주었다.
자자, 올라가 보자고.
* * *
통합한 스킬의 활성화를 해내 가고.
때때로 스킬 조합을 시도해 가면서 점차 위로 올라갔다.
과부하는 갈수록 커져 갔지만.
지치진 않았다.
“크하아아앗……!”
-……한휘. 거지 시험 때부터 너무 흥이 오른 거 같구나.
“그럴지도 모르지. 꽤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 거, 오랜만이거든. 다른 건 다 적응이 되서 무덤덤한데, 이 부분은 먹일 때마다 뿌듯한 느낌이 있어. 그래서 항상 확 꽂힌달까?”
-엄마의 마음 같은 거냐?
“그거보단 쌩으로 먹방시키는 마음일지도?”
-대체 무슨…… 남이 먹는 걸 보고 대체…….
“그런 거 있잖아. 하도 굶는 경험을 하다 보니, 남이 먹기만 해도 배부른 거. 전투 벌인다고 십수년을 굶어 봐라. 어떻게 되겠냐?”
-여도 이해했…… 아니 해 보겠느니라.
“네가 이해를 하겠냐. 생각해보면 너 때문에 굶은 건데 말이야.”
-흠흠…….
남을 먹이면서 신이 나는 거.
이건 꽤 특수한 부분이긴 했다.
회귀를 하고 나서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알았더라면, 진즉에 많은 자를 먹여 살릴 걸 그랬나 싶긴 하다.
뭐, 지금은 그래도 아포칼립스 수준은 아니니 그건 불가능할지도.
어쨌거나.
덕분에 나는 올라갈수록 의욕적이었다.
그 의욕을 살려가면서, 꽤 많은 악마를 대량으로 잡아내고 있었다.
-끼이이이…… 크놀라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괜히 반항 말 거라. 반항하다가 나처럼 되느니라.
-……대체 그 녀석은 누굴 던전에 집어넣은 거냐.
수가 너무 많아졌나.
나의 일용할 양식들이 되어 줄, 악마들은 저들끼리 쑥덕대느라 바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 귀가 아파질 무렵이었다.
[당신은 200층에 도달하였다.]
“오…… 또 거지인가?”
거지들이 또 있었다.
“히이이익!”
“정말로 와 버렸어!”
“캭 퉷…… 내려가 버리지! 큭…….”
그리고 그 들 중 일부는 이미 낯이 익었다.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 아무래도 배가 덜 불렀었나 보네.”
“쿨럭…….”
내가 적이라고 하면, 가차 없이 죽이는 게 일상이다마는.
이미 아는 얼굴, 거기다 거지인 자를 안 챙기고 배기겠는가.
안 그래도 시험이 저들을 계속해 살리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
“이번엔 케이크로 해 보자.”
-끼웨에에엑……!
살려야 한다. 살릴 시간이다!
* * *
계단 하나마다 위치가 달라지니 층이라 칭해 왔다.
200층을 전부 살리고.
다시 300층에 이르렀을 때도, 굶주린 자를 치료하는 기회가 왔다.
또 거지들이었단 소리다.
‘슬슬 뇌절 같기는 한데…….’
-내가 봐도 그러니라.
‘아무래도 내가 회귀 전에 굶주린 게 한이 돼서 이런 게 시험으로 나온 건가.’
-흐음…… 한휘, 너의 추측치고는 그럴싸하구나.
그렇게 다시 400층, 500층을 돌파했다.
과부하는 여전히 견디기 힘들긴 했다.
하지만, 철도 담금질을 하다 보면 점차 더 강해진다고 했던가.
[당신은 기술 : 육체 강화를 극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발걸음을 극한으로 응용하고 있다.]
[당신은 기술 : 무게 약화를 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나 자신을 담금질해 나갔다.
방만해졌던 육체에 근육이 더 성글게 맺혀갔다.
육체는 더 단단해졌고, 지구력은 상승했다.
육신 자체가 강화되어 갔다.
이건 상태창이 보여주는 스탯 따위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극한의 단련, 그로 말미암아 육체가 지닌 능력과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전생에서도 던전을 수년 정도 다니고 나서야 얻을 수 있을 수행.
그러한 수행을 압축으로 시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른바 실전 압축 근육을 만드는 듯해.”
-……정신 좀 차리거라.
뭐, 그 대신으로다가.
느껴지는 과부하에 정신력이 꽤 소모돼서인가.
계속해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대기야 했다.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이런 부분들은 돌아가면 금세 회복될 부분이거니와.
때로 이런 식으로라도 정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언제고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니까.
이것도 일종의 버티는 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정신에 철벽을 치고, 몸을 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더 돌파를 해 나갔을까.
대망의 700층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 * *
“어……?”
-계단이 변화하지 않는구나. 아니, 아예 끊어져 버렸다.
“뭐지?”
계단이 끊어졌다. 더는 변하지도 않았다.
그 끝을 1,000층을 예상했는데.
내 예상이 깨진 걸까.
‘마리도 이쯤에서 지팡이를 얻었다곤 들었다만…….’
괜한 의문이 커져 갔다.
의문은 더 이어질 새가 없었다.
파앗-
얼마 가지 않아 변화가 생겼으니까.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무구로 저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존재였다.
그 존재. 이전에도 보았었다.
“……천사? 천사가 왜 여기에?”
저자를 상대하면 되는 건가.
하기는 수많은 악마를 상대했다.
100층마다 등장하는 불쌍한 거지들을 전부 살려냈다.
이쯤이면, 어지간한 중소 규모 던전 몇 개는 클리어한 규모다.
그 마지막으로 천사를 상대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른바 마지막 전투란 거다.
“후우…… 마지막으로 당겨 볼까.”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몸을 점검했다.
거대한 과부하가 있는 가운데 담금질된 몸.
그런 내 몸은 연신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게 어떠한 형태든 이뤄줄 느낌이 들었다.
큰 고양감과 전능감이 느껴졌다.
이 상태로 만족지 않았다.
내가 담금질한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가호와 기술들도 있었으니까.
그러한 것들을 전부 꺼내 들었다.
‘여기에 다시 한 방 더 불어 넣어야지.’
[당신은 기술 : 육체 강화를 사용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발걸음을…….]
[당신은 가호 : 상급 저항에 영력을 불어 넣…….]
그럼으로 전투 태세는 완벽히 준비되었다.
“한판 붙어 보자고.”
투우웅-!
몸을 띄웠고. 전력을 다해 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여간 거만한 자식 같으니라고. 한 방 먹어라.”
-…….
그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낸 천사는 나를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와 천사의 몸이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고작해야 한 걸음도 남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전력을 다한 공격을 천사를 향해서 날렸다.
확신이 있었다.
‘이건 먹히지.’
천사, 아니 치천사 급이 온다 해도 이건 못 막는다.
전생에서도 이 정도 공격이라면 천사에게 타격을 가하는 데 성공했었다.
하물며 던전에 갇혀 있는 천사 따위.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촤아악!
거친 공격이 녀석에게 닿았…….
아니 닿았을 거라 여기는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쩌어어엉-!
천사와 나. 그 사이에 투명한 벽이 순식간에 생겨나 있었다.
거대한 막은 내 공격 자체를 막아섰다.
그 벽.
작은 실금들이 갔을 뿐, 여전히 단단해 보였다.
“어……?”
-던전의 개입이다!
마왕은 이를 던전의 개입이라 칭했다.
던전의 개입이 뭐지……?
그것에 대해 더 물을 시간은 없었다.
-……오랜만에 보았으나 여전히 추악하구나.
“뭔 소리야!?”
-여전히 멍청하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천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앙!!
놈이 땅을 박차자, 공간이 흔들렸다.
이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이 천사에게 호응을 해 주는 듯한 광경이었다.
* * *
마치 던전이 나를 배제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죽어라.
천사가 공격을 날릴 땐, 던전에 있는 모든 기운이 그를 돕는 듯했다.
내게는 반대였다.
“크흑…….”
-고약한지고.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과부하가 심해졌다.
기운들이 나를 배제하는 듯했다.
그간 나 자신을 담금질하며 얻은 스킬의 조화.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진즉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저항감 가운데 버텨 내는 거.
쉬울 리가 없다.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지.
그 상태에서 내가 겨우겨우 버텨 내는 건, 그간 내가 쌓아 놓은 무기 하나가 있어서였다.
그건 바로 영혼.
내 영혼으로 흡수를 할 수 없으나, 써먹을 수 있는 악마의 영혼들이 있잖은가.
-키야야아아악……!
-악마를 이렇게 쓰다니!
[당신은 악마의 영혼 : 바포멧을 폭발시켰다.]
[당신은 악마의 영혼 : 크놀라스의 광전사의…….]
나는 막기 어려운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악마 영혼을 던졌다.
그때마다 악마 영혼들은 샌드백이 돼서 터져나갔고.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천사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
‘……아까워도 살고 봐야지.’
그리하여, 수많은 희생 끝에서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역으로 반격까지는 도모하기가 어려웠다.
‘틈이 보이질 않아. 아니, 틈이 없어지고 있다.’
천사가 공격하고 남은 틈.
그틈을 노리려 하면, 던전의 공간이 나섰다.
천사를 공격하려는 그때마다.
쩌어어엉-!
여지없이 투명한 벽이 생겨났다.
그 벽이 내 공격을 쉽게 막아 냈다.
그럼 다시 원점이었다.
틈이 사라진 천사는 나를 향해 다시 공격을 날려왔다.
-허튼짓이라 했지 않느냐. 내 오늘 너를 죽일 것이야!
“치사하고 야비한 새끼가! 네 신이 그러라고 시키든?”
-이놈이! 감히!
여기서 내가 먹히는 공격이라곤 하나.
입으로 어그로를 끌어대는 거뿐이었다.
이 상황대로면 내가 불리했다.
아니, 나는 죽을 거였다.
상대의 공격은 겨우 막아가고 있을 뿐이고.
수집한 영혼은 수없이 소모한 지가 오래다.
그나마 틈을 노리는 공격은 막힐 뿐이다.
이 모든 상황이 마치, 나의 죽음을 위해서 그려진 듯한 느낌이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차라리 공평하게 일대일을 하게 해주라고! 그럼 내가 이길 건데!’
갑작스러운 죽음의 위기라니.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이건 너무 어이가 없지 않나.
난이도 조종이란 게 전혀 안 된 거지 않느냔 말이다.
X랄 맞은 상황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내 심경과 상관없이 상황은 점차 안 좋아졌다.
“크으으…….”
-죽어라!
내가 부리던 모든 영혼이 부서졌다.
더 이상 나를 대신해 샌드백 삼을 것이 없었다.
결국 나는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푸우욱-
그 뒤, 가슴팍에 들어 온 천사의 검이 치명타가 됐다.
몸은 더 놀리기 힘들어졌고.
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악다구니를 써서 버텨보았다.
하지만, 결국 천사가 휘두르는 검이 내 목에 닿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르륵-
목과 검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가 뜨겁게 느껴진다.
이대로.
‘……죽나?’
정말로 죽겠다 싶었다.
X바. 욕이 새어 나온다.
여태까지 이리 달려왔는데, 이리 죽는다고?
-웃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 어이없음에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문뜩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만……?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