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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106화 (106/206)

제106화

[시험을 진행하라.]

그 울림은 던전에 들어선 모두에게 들렸다.

이 던전의 경우 이미 마리가 겪은 바가 있었다.

높이 약 1km.

땅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계단.

그로부터 시작하여 10칸을 오를 때마다 계단은 변화한다.

적이 나오거나, 각자의 시련이 나오는 방식으로.

싸우는 도중만 아니라면 던전 공략은 언제나 그만둘 수 있다.

대신 오르면 오를수록 강하고 특별한 것들을 보상으로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실패한다면?

지옥에 떨어져 내린다.

죽는다는 소리다.

직감적으로 그걸 알 수 있단다.

그게 회귀 전 마리가 겪었던 천국의 계단이란 던전이 보이는 방식이었다.

다만, 마리는 자신의 경우 그 방식이 다를 거라 여겼었다.

이미 이전에 한 번 겪어 보았으니까.

그러기에 그녀는 지한휘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었다.

“시험 던전이 이미 한 번 겪은 자에게 같은 시험을 내릴 리가 없어요.”

자신의 시험은 다를 거라고.

“우리는 회귀를 했는데? 마리 너도 나와 함께 했으니 반쯤 걸쳐 있고.”

“그렇다 해도요. 어쩐지…… 이 시험은 저를 지켜 주는 성좌가 내는 거 같았으니까요.”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러겠죠.”

근거는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감이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성좌.

그 성좌가 자신에게 내리는 시험이라는 감.

하지만 특혜를 줄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그녀만 시험의 종류 자체가 다를 수 있었다.

자신이 없진 않았다.

“전에도 해냈으니 해낼 거예요. 아니, 이번은 더 잘해 내 보려구요.”

“마리는 잘하겠지.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예.”

되레 그녀가 걱정하는 건 지한휘였다.

회귀 전, 그와는 다른 모습.

그 모습에 마리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전생에도 이러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리고…….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보라를 봐서라도 이럼 안 되지. 마리, 정신 차리자.’

그녀는 교차하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생긋 웃어 보였다.

“잘해 낼게요. 저도 최후의 칠 인 중 하나인걸요.”

“아무렴.”

지한휘는 같이 피식 웃어 주었다.

그게 비행기에서 있었던 그녀와 지한휘의 대화였다.

그런데 지금, 그 대화가 곧바로 증명됐다.

그녀가 들어선 던전 안은 전과 달랐다.

‘정말로 달라졌네.’

그녀 눈앞엔 계단이 아닌 다른 광경이 보였다.

그건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광야였다.

아무것도 없이 새하얗기만 하였다.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도 당장 알려주는 게 없었다.

또한 상세히 머릿속으로 규칙을 새겨 주던 이전과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서 머뭇거릴 생각은 없었다.

“가서 해내야 해.”

두려움 없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 * *

마리가 끝없는 광야를 향해 나아갈 때.

그와 동시에 떨어졌던 다른 동료들에게도 시험이 찾아왔다.

계단이 보였다.

마리가 이전에 설명해 주었던 대로다.

“흠…… 마리 씨의 말대로면 오르면 된다고 했었지. 정말로 규칙이 머리에 새겨지네?”

“으차아. 높네.”

“해 보자.”

“…….”

이진아, 이진성, 박동길, 김민하.

각기 다른 계단 앞에 선 동료들 모두는 제각기 다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위로, 더 위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 시험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다만 모두가 같은 건 아녔다.

발걸음의 방향이 전혀 다른 존재도 하나 있었다.

“……하필 여기였나?”

이사야.

누구보다 호쾌하게 앞으로 나서길 좋아하는 그녀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도무지 위로 올라설 줄 몰랐다.

그녀 앞으로 뻗어나와 있는 천국의 계단.

그 뒤에 있는 것이 그녀의 발을 계속해 잡고 있었다.

그녀가 뒤로 몸을 돌렸을 때.

풍경이 뒤바꼈다.

스르르륵-

환한 계단이 아닌 어둡고 칙칙한 계단이 자리해 있었다.

계단의 방향은 위가 아닌 아래.

밝기보단 어두웠고.

정상적인 자라면 누구라도, 감히 내디디기 힘들 만큼 음습해 보였다.

누구라도 피할 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계단을 두고 한창 고민했다.

이곳. 그녀는 이미 아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령왕의 던전이잖아?”

오래전, 그녀가 영웅의 전장 배치 전에서 전승을 달성했을 때.

아키텍쳐가 선심 쓰듯 그녀에게 위치를 알려줬던 던전이 있었다.

그 던전이 사령왕의 던전이었다.

그 던전 위치를 알려준 아키텍쳐는 그녀에 대한 분석을 원했었다.

호의를 표한 뒤, 요구를 해 온 거다.

그 분석이라 하는 건 말 그대로 그녀를 읽어 들이는 것.

아키텍쳐의 꿍꿍이를 들어 알고 있는 그녀가 그걸 원할 리가 있겠는가.

이사야는 그 제안 앞에서 되레 모종 역제안을 던졌었다.

그에 당황스러웠을까.

그 뒤로 아키텍쳐는 답이 없었다.

보류였다.

그 일 이후, 그녀도 애써 사령왕의 던전 자체를 잊고 있었다.

회귀 전, 그녀가 리치 변환의 마법을 얻은 곳이 바로 이 사령왕의 던전이었으니까.

리치가 됨으로써 인간의 한계는 초월했지만.

동시에 사령 마법의 끝에는 도달하지 못하게 한 족쇄가 되었었다.

그러한 던전을 다시 찾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기에, 잊고 또 잊었었다.

‘두 번 실수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을 줄이야.

공교로웠다.

또한 그녀로서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이가 없네.”

그녀로서는 피식 실소가 나왔다.

상황 자체가 웃겼다.

위로는 마리가 이야기한 천국의 계단이 던전으로 있고.

그 아래로는 자신이 잊으려 했던 사령왕의 던전이 존재한다.

그 상황이 우스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빛과 어둠. 신성과 사령이라…….”

무슨 동전의 양면도 아니고.

마치 마리와 이사야.

그 둘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존재함을 확인시켜 주는 거처럼 보였다.

마치 운명의 실타래가 서로 반대로 엮인 듯한 느낌이다.

누군가의 장난이라면 너무 지독하다.

본래 운명 따위는 믿지도 않는 이사야였지만.

이쯤 되면 괜한 오기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엿같이 붙여 놓는다면, 내 직접 확인해 줄 거야. 망할 아키텍쳐! 망할 이름 모를 성좌 녀석아! 사실 너희들 둘이 같은 존재 아냐? 어?”

그건, 두 눈으로 직접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오기였다.

누군가의 장난질 따위에, 제자신이 휘둘리는 취미 따위는 그녀에게 없었으니까.

각오는 이미 다졌다.

그녀는 곧바로 발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했다.

그 방향은 위가 아닌 아래.

마리가 지옥이라 칭하는 곳을 향해서였다.

* * *

끝도 없이 펼쳐진 광야.

그 안을 움직이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어디가 목적지인지도,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를 곳을 향하는 거니까.

그러나 마리는 차라리 그러한 점은 얼마든 버텨낼 수 있었다.

회귀 전.

그 끝이 공허였을지라도, 그녀는 절망 속에서도 버틸 줄 알았으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신성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그녀에겐 숨 쉬듯 자연스러운 신성력.

그 신성력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흩어지고 있다.

휘오오-

흩어진 신성력은 어디론가 향해 나아가고 사라져갔다.

그녀의 근간인 신성력.

그 신성력이 사라진다면 그녀는 조금 더 튼튼한 일반인과 같았다.

‘이전의 시험에서도 이러진 않았는데…….’

심각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목표로 하였던 생명의 지팡이가 필요하였으니까.

얼마나 걸어갔을까.

시간은 얼마나 흘러갔지?

극과 극은 통하는 것처럼.

어둠 안에서처럼, 환한 광야에서도 시간을 측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갈 뿐.

“아……?”

어느 순간 그녀는 걸음을 빨리했다.

신성력이 거의 사라진 그녀 눈앞에 목표가 보였다.

생명의 지팡이다!

신기루일까?

가 보면 알게 되겠지.

그녀는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도달한 앞.

생명의 지팡이는 고고하게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마치 지팡이는 그녀가 흩어 놓은 신성력을 먹고 자란 듯했다.

그녀 못지않은 거대한 신성력이 지팡이에 어려 있었다.

터억.

그녀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저항은 없었다.

마치 와야 할 곳에 온 거처럼.

지팡이는 그녀 품에 순순히 들어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다.

[당신은 신기 : 생명의 지팡이를 얻었다.]

[당신의 사용 자격이 성좌로부터 확인되었다.]

[당신은 생명의 지팡이에 적법한 주인이다.]

오롯이, 그녀가 가져야 할 지팡이를 가지게 되었다는 확신이었다.

“드디어…… 얻었어.”

지팡이를 얻은 순간, 그녀는 충만감을 느꼈다.

흐트러진 신성력이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지금의 충만감은 생명의 지팡이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었다.

자신이 지녔던 신성력은 없단 의미다.

그러기에 그녀는 불쑥 생각했다.

“더 많은 걸 얻어서 가겠다고 약속했어.”

지팡이를 얻은 거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이 이상을 얻어야 했다.

때문에 그녀는 움직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 방향, 그녀의 신성력이 흐르듯 사라졌던 방향이었다.

“가야지.”

그녀는 망설임 없이, 광야에서의 걸음을 재차 내디디고 있었다.

* * *

누군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가, 다른 누군가에겐 끝인 경우도 있는 법이었다.

이사야가 그러했다.

마리가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 그녀는 계속해 아래로 내려갔다.

처음엔 잔뜩 긴장했다.

위로 올라가는 천국의 계단은 열 걸음마다 시험이 등장한다 들었다.

그 반대되는 곳인 이곳은 사령왕의 던전이기 이전에.

지옥의 계단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기에 언제든 적을 상대할 요량으로 해골 병사도 잔뜩 소환해 놓았었다.

달그락- 달그락-

그렇게 계단을 꽉 채운 채, 계속해 내려갔다.

10, 20, 30…….

“뭐지? 시시한데…….”

그렇게 계단을 계속 내려서는데도.

그녀를 막아서는 존재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속도를 높여 볼까.’

순식간에 100여 개의 계단을 돌파.

더, 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총 1,000여 개 정도 된다고 유추하였던 계단.

그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내려서고 보이는 건 거대한 공터.

무언가를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제단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뭐지, 이게.

“제물이라도 바쳐야 한다는 건가.”

그런 취미 따위는 없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천국의 계단에 올라섰을 거였다.

그녀는 제단을 앞에 두고 온갖 짓을 다 했다.

해골 병사를 던져도 보고.

자신이 지닌 마력을 쏘아보기도 했다.

콰아앙!

사령 마법을 쏴서 데미지를 입혀보려고도 했다.

결과는 전부 실패.

그녀가 하는 행위로 인해서, 고요했던 공간만 시끄러워질 뿐이었다.

“나라도 바치라는 거냐?”

-…….

제단이 답할 리 없다.

그녀는 제단을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꽝이라 여겨졌다.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수는 전부 사용한 지 오래였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제단 위에 그녀 자신이 올라서는 거.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누군지 몰라도, 날 바칠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어. 그것만 알아둬.”

이번 생의 자신은, 리치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 남기로 결정하였으니까.

슬퍼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리치 따위.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 몸으로, 인간이란 그 격 아래에서 사령 마법의 끝을 볼 생각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미련 없이 제단을 두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뒤를 바라봤을 때.

“……어?”

스르르르르-

어느새 계단은 사라져 있었다.

공간 안에 거대한 게이트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답이 나오다니.

“이게 진짜 정답이었구나?”

그녀는 어이없어하면서도, 피식 웃었다.

이 던전을 설계한 자.

누군지 몰라도 상대를 놀리길 좋아하는 자신과 비슷한 동류의 냄새가 났으니까.

‘뭐…… 여전히, 리치가 될 생각은 없지만.’

짜증이 사라지고 흥미가 돋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그래. 한번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광야를 헤매길 원하였던 마리가 그러했듯이.

그녀 또한 끝을 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곧바로, 게이트를 향해서 몸을 실었다.

스스스스-

그녀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거대했던 게이트는 사라졌다.

…….

남은 건 그 어떤 일에도 반응치 않던 제단.

그리고.

-……갔구나?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일까.

그 제단 위에서 어느새 솟아난 무언가가 말하는 작은 독백뿐이었다.

* * *

그렇게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

지한휘 또한 그만의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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