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전에 제가 쓰던 그거요. 그거에 대한 위치를 구했어요.”
“음……? 아아.”
그녀는 전에 쓰던 그거라 말하며, 자신의 손을 향해 눈짓했다.
신호였다.
난 그걸 보고 눈치껏 알아냈다.
‘그거군. 지팡이야.’
그녀가 전에 쓰던 지팡이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아낸 게 분명하다.
그거.
꽤 대단한 물건이었더랬지.
그녀의 능력을 몇 배는 강화시켜 줬었으니까.
“그래도 위치만 알려 준다니 아쉽네. 쉽게는 안 준다는 건가.”
“규격 외의 것이니까요. 그래도 50등급 특별 던전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만족스럽죠.”
“그것도 그러네. 이해해.”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위치를 알아낸 거 자체로 특별한 보상이긴 했다.
“좋네. 다들 보상 하나씩은 한 아름 안기는 했으니까.”
“그러게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특별 던전의 보상 나쁘진 않다.
방식과 종류는 달라도 상관없다.
이걸로 다들 전력이 한 단계씩은 올랐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러다 보니 다들 신이 나 있는데.
딱 한 사람은 신이 나기는커녕, 안타까움을 보이고 있었다.
그 한 사람, 김시연이었다.
실장으로 바쁜 몸이긴 하다만.
마리의 시험도 겸한 특별 던전에 그녀가 특별히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내 팀은 그녀로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으니까.
해서 나오긴 나왔는데, 그 외의 것이 퍽 만족스럽지 않은 거 같다.
그녀는 딱 한 가지를 아쉬워했다.
“축하드려요. 던전도 깼으니 이제 명실상부한 헌터네요.”
“그전에도 제대로 된 헌터였지 않나?”
“그건 그렇죠. 그래도 인정받은 게 중요하잖아요. 그러니 다들 개인적인 성장을 해내신 건 좋긴 한데…… 여기 나온 물건들은 영 좋지가 않네요.”
“그런가.”
“봐봐요. 다들 고물이라구요.”
그녀가 아쉬워하는 건 던전 정복 부산물.
그것들을 보고 그녀는 울상을 지었다.
* * *
2차 특별 던전.
지한휘 팀의 던전이기에 김시연으로서도 기대가 각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던전 행마다 가져온 결과는 꽤 특별했다.
그는 항상 수많은 사체를 가져왔다.
그 상태도 최상이었다.
현재 그가 지닌 명성을 떠나서, 그가 가져다준 부산물 수입만 해도 상당했다.
계약상 그가 부산물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가져가게 되어 있다만.
대신 그걸 매입하는 건 미래가 독접하기로 계약했었다.
미래는 그로부터 매입한 걸 가공해서 팔기만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이 남았었다.
그러니 기대했다.
이번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남길 거라고.
그런데 와서보니 전부가 고물이었다.
방망이. 도리깨. 낫. 곡괭이…….
무엇 하나 괜찮아 보이는 게 없다.
저걸 재가공해 봐야 나오는 건 나무나 쇠다.
던전제가 내구성 하나는 튼튼하긴 하다만.
딱 그 정도 수준이라면 실망이다.
그러니 꽝이랄 수밖에.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이거다.
마지막에 나온 물건.
“왜 마지막에 나오는 게 하필이면, 망치인지…… 차라리 보따리였으면 좋았을 건데요.”
“돗가비 보따리에선 금은보화가 나오니까?”
“예. 금은보화가 꼭 아니라도 특별한 것들이 나오니까요.”
하필이면 나온 게 망치다.
그녀 말대로 보따리가 나왔다면?
돗가비는 부와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다.
돗가비 보따리를 풀어 젖히면 그 안에서 온갖 귀한 게 나오곤 했다.
그것도 보따리가 사라질 때까지 끝없이!
일종의 당첨이 확정된 뽑기다.
한 하급 헌터 중 하나가, 보따리를 얻고 떼부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기도 했다.
그런데 망치라니.
그녀가 울상을 지을 수밖에.
근데 지한휘의 표정은 정반대다.
그는 반대로 기뻐 보였다.
“제가 다 안타까운데, 지한휘 헌터는 왜 그리 기뻐 보이는 거예요?”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예?”
대체 왤까.
지한휘는 활짝 웃기까지 했다.
“내가 가끔가다 재밌는 아이템들 가져오는 거 알지?”
“알죠. 광신도 감지기도 임시지만 쓸만했고. 여러 장비도 관련해서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게 있는 건가요?”
“아쉽게도 개조 쪽은 아냐.”
“그럼요?”
개조도 아니고. 만들기도 아니라니.
그런데도 활짝 웃는다?
김시연으로선 없던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뭐, 지금 보여줘도 나쁘진 않겠지. 어차피 언젠간 알려질 일이니까.”
“대체 뭘 하려고 그래요?”
“지금 보여줄게. 일종의 자격 증명 마지막이기도 하고. 마리, 이리로 와 줄래?”
“예!”
가만 보니, 옆에 서 있는 마리도 웃는 기색이다.
‘뭔가 있다.’
김시연과 같이, 다른 자들도 뭔가를 느꼈다.
다들 희희낙락하다 말고, 망치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한휘가 과연 무얼 해 낼까 궁금한 모양.
다행히 그는 길게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동력원은요? 아직 그게 없어서 저만으론 모자라요.
“힘은 걱정하지 마. 이번에 내가 얻어낸 게 있으니까.”
“와. 설마 가호라도 오른 거예요?”
“글쎄?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후후.”
“어쨌든 힘은 준비됐다니. 그거면 됐어요. 뭘 하실지도 이해했고요. 바로 시행할게요.”
“그래. 부탁하지.”
둘은 알 수 없는 말로 금방 상의를 끝마쳤다.
고오오오-
그러곤 지한휘는 거대한 영력을 풀어 헤쳤다.
[당신은 동료의 거대한 영력을 느꼈다.]
“읏……!”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에요?!”
“와…….”
거대한 영력의 흐름.
그 거친 흐름에 다들 감탄을 하기 바빴다.
영혼 술사도 아닌 자에게 영력을 느껴지게 하려면 얼마나 큰 힘을 써야 하는지를 알았으니까.
‘그새 더 강해졌네?’
거기다 그 힘이 더 커졌다.
특별 던전에서 힘을 더 얻은 게 분명하다.
그에 대해서 묻기도 전에.
“……후우.”
눈을 반개한 마리는 거대한 영력의 흐름에 몸을 담갔고.
그 흐름 중심에 서더니, 기운을 전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걸 컨트롤한다고……?’
그 모든 영력이 그녀를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이었다.
김시연으로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거친 기운을 담아두는 거.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번에도 괴물을 데려온 거야. 역시…… 보통 사람을 데려온 건 아니라 이거지?’
지한휘가 저만한 능력을 쓰는 거도 대단한데.
그걸 같이 다루는 동료가 또 나올 줄이야.
이사야 이후로 저러한 일이 가능한 자는 처음이다.
그걸 보았기에 그녀는 잔뜩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람은 끝이 아녔다.
뒤 이어지는 마리의 말이 더 놀라웠으니까.
“부활의 기도. 대상은 그가 깃들어 있었을 망치. 수천 년을 묶여 있는 혼령이여, 부름에 응답하여 다시 일어나세요.”
“부활요……?! 대체?!”
김시연의 물음에 상관없이.
마리가 다시 기운을 뿜어냈을 땐, 주변에 신성함만이 가득했다.
없던 신앙심도 생겨날 정도의 고귀함이 그녀로부터 묻어 나왔다.
샤아아아-!
그 모든 기운이 향하는 곳은 망치였다.
거대한 기운 전부가 집어삼켜진다.
자애로운 듯하며, 동시에 웅장한 기운들이 망치를 휘감는 그 순간.
-크흥…… 나를 이렇게 일으킨다고?
망치가 스스로 떠오른다.
떠오른 망치에서 손부터 생성되더니, 금방 돗가비의 혼령 하나가 훅하고 튀어나왔다.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 망치가 말을 해?”
“엇?! 아까 그 보스!”
“와, 씨……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냐.”
저 망치에서 깨어난 자.
아까 지한휘가 끔찍하게 참살해 버렸던, 돗가비 보스였으니까!
* * *
‘옳지! 될 줄 알았다.’
사람만 한 크기. 길게 늘어진 돗가비 옷만 입고 있는 형태. 잔뜩 겁먹은 눈초리. 그 위에 나 있는 굵은 뿔.
딱 아까 내가 처리했던 돗가비의 형상.
부활 의식이 제대로 먹혔단 의미.
나는 이걸 보고, 현재 상황이 최고라 여겼다.
‘처음엔 특별 던전이 꽝이라 생각했는데, 이럼 이야기가 다르지.’
김시연은 망치가 나와서 망했다고 생각한 거 같은데.
나는 전혀 달랐다.
장인의 상징인 돗가비. 그가 지닌 망치.
이게 나오면, 고작해야 금은보화 따위가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망치를 본 순간 쾌재를 불렀다.
이번 던전행에 생각보다 더 큰 수확이 있겠노라고!
‘안 그래도 슬슬 제대로 된 장인이 필요로 했는데 말이야.’
해서 한 달에 한 번 시행할 수 있는 부활의 기도를 사용하게 한 거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성공.
“성공이에요. 어디 하나 잘못된 부분이 없네요. 돗가비 자체가 영체이다 보니 신체 부위 손실도 없구요.”
“고생했어. 역시 해낼 줄 알았다니까.”
“헤헤…….”
부끄러운 듯 웃고 있는 마리.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해내지 못할 기적이었다.
이미 회귀 전에 몇 번이나 겪어 봤던 나로선 꽤 익숙한 광경이기도 하다.
대신, 우리 둘을 제외하곤 모두가 놀라고 있는 거 같은데.
이거야 우선 그대로 두도록 해야지.
급한 건, 여기 나오자마자 훌쩍이고 있는 돗가비다.
이 녀석으로부터 몇 가지 이득을 얻어야 하니까.
가장 처음 얻을 이득은 이 돗가비 녀석으로부터다.
보아하니, 이 돗가비 잔뜩 골이 나 있기는 하다.
내가 급작스레 깨워서겠지.
-차라리 나를 오래도록 휴식하게 두지……! 으으…… 이런 차원 가운데 나오다니.
“휴식은 무슨. 마을 가 있으면 보나 마나 혼자 궁상떨면서 장비나 다시 만들고 있을 거였잖아? 아니, 거기는 조각난 세계였으니 같은 걸 반복했으려나.”
-네가 뭘 알아?! 응?! 돗가비 마을이라도 가 봤어?!
“이번이 처음이긴 하지. 그런데 들은 건 많아.”
괜히 궁상맞게 구는 녀석의 사정도 이해한다.
녀석의 말대로 나는 이미 돗가비 도시를 가 봤으니까.
수많은 던전을 오고 가는 중에 돗가비 도시를 가 보지 않을 리가.
그걸 여기서 대답해 줄 수 없는 게 아쉽긴 하다.
회귀 전 일이니까.
어쨌건 도시에서 돗가비 장인을 몇 봤었다.
하나같이 뛰어난 장인들이더랬지.
그중에 이 녀석을 본 기억은 없다.
뻔하다.
내가 돗가비 도시에 도달하기 전에 무슨 이유로든 사라졌을 거다.
죽었거나, 내쫓겼거나.
아무래도 내가 보기엔 후자인 거 같았다.
-뭘 들었는데?
“예를 들면, 네가 본래 있던 큰 도시에서 쫓겨난 거 같다는 거? 돗가비 중에 장인 정도 되면 귀한 취급받고 있어야 하는데 도시가 아닌 마을에 있는 것도 이상하고 말이야. 너 쫓겨났지, 그치?”
-아, 아니야……!
“딱 봐도 맞는데? 그 덩치. 그게 문제잖아. 아냐?”
-……너어!
놈이 씩씩대며 나를 바라본다.
빙고.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이 녀석, 쫓겨난 쪽이다.
내가 돗가비 풍습은 조금 알거든.
“돗가비에서 덩치는 곧 계급이잖아. 근데도 그리 작은 걸 보면, 뻔하지. 최하네.”
-씨이…… 네가 다 망쳤어! 다 망쳤다고! 내가 어떻게 그런 걸 만들었는데!
“망쳤다니. 네가 거짓으로 덩치를 키웠을 뿐이잖아? 안 그래? 아니면 아니라고 해 보든지.”
-…….
조용하다.
거짓을 말하긴 힘들겠지.
안 그래도 작은 혼령인 돗가비가 거짓을 말하다간, 페널티가 붙을 테니까.
원래 혼령이나 영혼 상태에선 진실을 말하는 편이 좋은 법이거든.
그래서 영혼 그 자체인 악마 같은 것들도 교묘한 수를 써서 계약을 진행하지, 거짓말은 잘 안하는 편인 거다.
페널티는 죽어도 싫으니까.
어쨌거나.
이제 상황 파악은 됐다.
힘이 곧 덩치.
덩치가 곧 힘인 게 돗가비다.
그런 돗가비 세계에서 저리 작은 거.
아무리 희귀한 장인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덩치 때문에 신분의 한계를 크게 느꼈겠지.
그러니 억지로 덩치를 키워댔을 거다.
제 신분을 키워 보려고.
문제는 후에 그게 들켜서 쫓겨났을 거란 건데.
‘던전이 조각난 세계다 보니…… 시간대는 추론이 잘 안되긴 하는데. 어쨌건 맞혔다는 게 중요하지.’
이러면 이야기가 쉬워질 거 같았다.
자, 우선 계획대로 이득 하나부터 얻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