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환하게 밝아오는 빛 앞에서 내 시야는 점멸하듯 꺼져 버렸다.
‘요즘 들어 너무 시야를 잃잖아……?’
시답잖은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
다시 돌아온 시야 속에 존재하는 건, 분명 내가 그리워하는 존재였다.
“유보라……?”
유보라.
그녀였다.
그녀가 지닌 영혼의 본질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그녀가 유보라라는 걸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며 동시에 나는 부정하듯 물었다.
“아니…… 너는 유보라가 아냐. 뭐지?”
-바로 눈치채지는 않길 바랐는데.
그런 나를 그녀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니.
무슨 말일까.
그러나 영혼의 근원을 찾으며 영력을 단련한 나다.
내 감은 동시에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저건 유보라고.
동시에 유보라가 아니라고.
무언가 섞였다.
“유보라는 맞아. 그런데, 동시에 아니네?”
-그렇지. 이게 대가였어.
“대가?”
대가라니. 그게 무얼까.
-우리의 회귀. 그게 고작해야 인간 셋과 마왕 하나로 빚어져 만든 결과라고 하기엔 이상하지 않아?
“…….”
회귀의 대가였구나.
나는 그녀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과 초인에 가까운 자들 셋의 영혼이 귀하긴 하다지만.
그것이 신들과 체계조차 제대로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회귀라 하면.
그 대가는 싸게 먹힌 게 맞았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다.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왜 계속 들어차는가 했다.
그런데 그 감이 맞을 줄이야.
역시 안 좋은 감은 항상 들어맞는 법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대가를 왜 네가 받는 건데? 날 보내는 걸 선택한 거도 너고. 받는 것도 너고. 그게 대체 뭐냐?”
-따지는 거부터 보면, 지한휘답네.
“답을 해.”
그녀를 몰아붙여 보지만.
-말 안 할 거야. 그게 내 선택이니까.
“하 씨…….”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럴 때 유보라는 누가 뭐라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영혼이 어딘가 뒤엉켜 있어, 반은 그녀가 아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남은 반의 고집으로 나를 이겨 먹겠지.
전에도, 지금도.
“……X발.”
-…….
“내가 이런 대화엔 취미가 영 없는데 말이야. 이런 대화는 그 뭐냐. 연인 같은 것들이나 하는 거잖냐. 그래. 그래서 영 아닌데. 그래도 이건 아닌데 말이지. 하…….”
내게서 질러지는 욕지거리.
그녀는 그걸 보고 되레 빙긋 미소 지었다.
자애로운 미소였다.
회귀 전에도 가끔 보던 표정이다.
내가 그녀의 계획에 따라 죽어라 날뛰었을 때.
그러고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나 자신에게 화낼 때 유보라는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그러곤 한 번은 꼭 안아 줬었지.
지금처럼.
“……뭐냐?”
-꼭 돌아갈 거야. 다행히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무한한 게 아니거든. 네가 일부 치러주기도 했고.
“그러니까. 지금 오라고! 나 빡 대가리라 힘들다니까? 안에서 봐서 알지 않냐?”
-알지. 누구보다 잘 알지.
“근데도 안 오냐?”
-미안.
대체 그녀가 바친 대가라는 게 뭘까.
영혼을 바치고도 남는 대가라는 게 있을까.
아쉽게도 내 머리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해서 설명을 바라지만, 그녀는 꾹 닫힌 입으로 말하고 있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겠노라고.
유보라는 이미 선택을 한 거다.
내가 알지 못한 선택을.
경험상. 이럴 땐 이유를 묻지 않는 게 나았다.
차라리 다른 물음을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대가를 되돌릴 수 있냐?”
-시간이 흐르거나. 혹은 네가 확실한 인과율을 쌓아오거나.
“인과율? 그걸 어떻게 쌓는…….”
투욱.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
그녀는 다시 나를 밀어 버렸다.
* * *
그리고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한명이 추가 돼 있었다.
“……아.”
“한휘! 나 돌아왔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리.
모든 제물을 흡수하여, 새로운 육체를 빚은 그녀가 내게 안겨 와 있었다.
그리도 반가운 걸까.
항상 내 앞에선 수줍어만 하던 그녀가, 지금은 너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그 어떤 때보다 밝은 모습으로.
그래도 예전의 동료로서다가, 한마디는 해 줘야겠지.
“나도 반가워, 마리. 근데 옷은 입고 반가워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예? 예엣?! 엑?! 꺄아아아아악!”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비명을 지르는 마리.
많은 게 변한 와중에서도, 가끔 나사가 빠진 듯 굴었던 그녀.
그럼에도 거창하게 성녀라 불렀던 그녀가 당황해한다.
그걸 보고서야 실감했다.
‘여전하구만…….’
그래도 한 명은 돌아오게 하는 데 성공했노라고.
물론, 그 부작용으로다가.
[당신은 이름 모를 성좌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저 새끼는 또 그러네.’
전생에도 난리였던, 마리를 지키는 성좌의 분노는 덤이었다.
* * *
“흠흠…….”
미리 준비해 주었던 옷을 입고도.
마리는 한참 부끄러워했다.
반가움을 표출하던 아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 해도 감정 자체가 풍부한 건 전과 같았다.
“나는 다 잊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마리.”
“그게 잊혀져요? 이렇게 빨리요?”
[당신은 이름 모를 성좌의 분노를 사고 있다.]
저 자식은 또 왜 그러는 거지.
“……그럼 기억하고 있다고 해야 해?”
“으음. 몰라요.”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 줘야 할지를 모르겠다만.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은 정식으로 인사를 해 줘야 할 때다.
한때의 동료.
앞으로도 동료로서 활동해 줄 그녀를 향한 나의 인사.
“돌아와 줘서 고마워, 마리.”
“저야말로, 돌아와서 기뻐요!”
담백하기만 한 나의 인사를.
마리는 누구보다 환한 표정으로 받아들여 주고 있었다.
드디어.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 * *
전생의 마리가 말이 이렇게 많았던가?
그녀는 회귀 한 이후, 내 영혼에 함께 있었던 그때를 꽤 길게 말하였다.
내가 바깥에서 날뛰고 있던 사이.
그녀는 안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고자 여러 시도를 했다고 한다.
처음은 말을 걸어 보려 했었고.
그도 안 되면 의지라도 실어 보려 했단다.
모두 실패.
이때부터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되어 도와주었던 이름 모를 성좌를 찾았다는데.
그조차도 실패였다.
내가 지닌 근원의 벽을 뚫고 외부와 접촉을 할 방법이 없었단다.
“모든 방법을 시도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보라도 그때는 포기하자고 하더라구요.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한휘. 우리가 빠져나가는 건 당신에게 믿고 맡기도록 하고. 우리는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답을 찾은 것이 바깥이 아닌 안이었다.
“가장 먼저 한 게 당신의 가능성을 개화시켜 주는 거였어요.”
“그게 되나……?”
“의지를 실어 보내는 건 안 되지만, 무의식을 움직이게 하는 건 되더라구요.”
내가 더 쉽게 움직일수 있도록.
조금씩 도와 왔단다.
-……어쩐지 이자가 뭐든 빨리 배우더라니. 그 이유를 알겠구나.
“저희 덕이 있긴 했을 거예요.”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작은 파편들로 힌트를 심어 주면,
그것으로 내가 점차 발전을 해 나갔다던가?
“조금 소름돋는데? 둘이서 날 조종한 건가?”
“전혀요. 그건 불가능해요. 말했잖아요. 무의식에 파편들을 흘려보내는 거뿐이라고. 한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저 흘러갔을 거예요.”
“일종의 영감을 키워 준 거네.”
“예. 딱 그 정도긴 해요. 다행히도 한휘가 그걸 제때제때 받아주곤 했어요.”
“휘유.”
그렇게 안에서 쉼없이 날 도왔단다.
둘은 단순히 날 돕는 데서만 만족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거였더라면.
전생에서도 최강자 중 하나가 될 수는 없었을 거였다.
둘 나름의 수련 방법을 찾아갔단다.
“육체가 없는 영혼의 상태. 그러면서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수련도 있을 거라 봤지요.”
“어떤 수련들을 했는데?”
“처음은 한휘가 먹고 남은 영력의 부스러기들을 삼켰어요.”
“……너희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겠네.”
“예. 그들에 담긴 염(念)을 삼키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영혼 술사도 아닌 이들이 영력을 삼키는 거.
미친 짓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 담겨있는 염과 한, 원한.
이러한 것들은 일개 개인이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부스러기라 말하였지만, 그런 부스러기였기에 더더욱 안 좋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을 거다.
그런 걸 잘도.
둘은 계속해 흡수해 나갔단다.
“푸흐…….”
“그런 걱정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지 말아요. 우리가 선택한 거니까.”
“그렇다 해도, 안 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염을 삼킴으로써 성장의 틀을 마련한 둘.
이때부터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단다.
“보라는 마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그게 되나? 마법서 따위도 없었을 건데. 이미 아는 마법은 최대한 개발한 상태였을 거고.”
“한휘가 사용하는 사령 마법으로 힌트를 얻었다던데요. 전생과 달리 영혼 주술사가 아닌 마법사가 된 게 컸죠.”
“영혼 마법을 익히기 시작하는 보라라. 그거 무섭네.”
“예, 대단했어요. 지금쯤이면 한휘도 모르는 온갖 영혼 마법들을 다 만들어 냈을걸요? 거의 궁극에 도달했으니까요.”
“과연…… 유보라야.”
유보라는 자연스레 마법을 익혔다.
순식간에 그 극의에 도달해 나가더니.
“네. 그 뒤론, 저도 알 수 없는 길을 향해 갔어요. 무언가 알수 없는 존재와 합일을 하기까지 한 거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인과율을 쌓고 오라 한 건가.”
“예. 한휘가 그러했듯 그녀의 영혼도 그 안에서 비대해졌으니까요. 당신이 지금까지 구한 의식의 대가는 분명 대단한 것이지만, 그간 쌓은 업에 비해선 부족하죠.”
“휘유. 대단하네.”
안에서부터 쌓아 온 수련의 결과가 영혼이 강해질 정도의 효과라니.
과연 유보라다.
그러기에 의식에 실패했단 건가.
뭐, 내가 직접 보기엔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상의 뭔가가 있긴 해. 회귀의 대가로 섞였다는 녀석이 심상치 않기도 하고.’
마리도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겠지.
당장, 중요한 건 눈앞의 마리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내 영혼 안에서 마리도 무언가 해냈다.
“마리, 네 말대로라면 너도 모든 재료를 소모하고서야 겨우 부활했잖아. 우리 예상보다 의식의 대가가 더 커진 셈이라고. 너는 안에서 대체 무슨 수련을 한 거야?”
마리가 안에서 얻어낸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의 궁금증에 마리는 싱긋 웃으며 답을 해줬고.
“……뭐?”
나는 다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 귀로 듣고도 너무 어이가 없는 능력을 안에서 얻어와 버렸으니까.
이게 지금 나올 수준이 아니었거든.
“가서…… 뭘 얻었다고?”
“부활요. 부활의 기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미친. 벌써 그게 된다고?”
“예!”
부활의 기도.
그것을 내 안에서 얻어와 버렸단다.
‘……대체 내 안에 뭣들이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