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중국 단둥성 부근.
몬스터 사태를 가장 먼저 겪은 중국은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들에겐 지금이 기회였다.
특무 부대가 목숨을 건 작전을 시행해 한숨을 돌린 사이.
그 틈을 이용해야만 다시 방벽을 쌓는 게 가능하니까.
때문에 많은 인력이 동원됐다. 단시일 내에 해내야 했으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중국의 특산물이라 하면 사람이고.
그러한 사람을 데려와 복구에 힘을 쏟으면 되니까.
그런데.
“저게 뭐지?”
“음? 뭘 말하는 건가.”
“저기, 저거!”
“몬스터다!”
더는 보이지 않아야 할 몬스터 떼.
그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
-끼익?!
그들은 무언가에 놀라 도망쳐 오기라도 한 거처럼.
혼비백산하여 복구 작업이 한창인 단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붉은색을 보면 흥분하는 황소처럼 달려드는 몬스터들.
그들을 상대로 일반인들이 대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도망쳐!”
“으아아아……!”
다들 손에 쥐고 있던 연장을 내팽개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덴 일반인이 아닌 헌터도 포함돼 있었다.
일반인보다 조금 사정이 나을 뿐.
그들도 저만한 수의 몬스터를 상대할 방법은 없었으니까.
차라리 장벽이라도 복구가 되어 있다면 사정은 나았을 거였다.
하지만, 장벽은커녕 공사를 위한 자재들만 이리저리 널려있었다.
널려 있는 장비는 그들의 길을 방해하는 방해물일 뿐이었다.
치이이익-
-무슨 일인가?
“몬스터! 몬스터들이 또 쳐들어왔습니다!”
급작스레 온 무전. 그 무전에 대답을 해 주는 게 그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그날.
특무 부대를 희생양 삼아, 복구를 하던 단둥에 다시금 피해가 생겨났다.
흘러나온 몬스터는 다수는 남부와 동부의 것들이었다.
한날한시.
그것들이 급작스레 쳐들어오게 된 경위에 대해선 알아낼 자가 없었다.
어떤 세력이, 혹은 한국이나 러시아가 만들어 낸 현상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하기야, 피해를 더 알아볼 시간도 없었다.
-크르르륵…….
-키키킥!
재차 단둥을 무너트린 몬스터들은 중국 내륙을 향했으니까.
현상 파악 이전에, 사태를 해결부터 해야 했다.
* * *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사태에 대한 원인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고 파악을 해야, 이후 한국에도 이러한 상황이…….
길게 이어지는 TV 소리 가운데,
덜컹-
방구석 동생 컨셉을 자처하고 있는 이사야.
그녀의 귀에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 왔어.”
“오! 한휘!”
뒤 이어지는 한휘의 목소리에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도도도- 달려서 지한휘에게 다가간 그녀.
그녀는 반가움에 차서 인사를 하기보다, 제 질문이 먼저였다.
“네가 했지? 응?”
“뭘?”
“저거 말이야! 중국의 난리통!”
그녀가 가리킨 TV엔 중국의 대참사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슬쩍 보아도 중국 헌터들의 피해는 상당해 보였다.
그걸 본 지한휘는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아아. 어차피 움직일 거 조금 밀어줬을 뿐이야. 쓱- 하고.”
명백한 긍정이었다.
이 사태를 자신이 일으키도록 했다는 것에 대한 긍정.
그에 이사야는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밀어줘?”
“어. 웨이브로 영역이 얽히고섥혔는데 몬스터들이 가만 있겠어? 또 다른 영역 다툼이 나는 거지. 나는 그걸 가서 슬쩍 밀어줬을 뿐이야.”
“허…… 그게 돼?”
“안 될 건 또 뭐야? 적당히 영력을 써서 위장하고, 부풀리면 다 돼.”
말이 쉽지.
그건 복잡한 작업이었다.
영력을 부풀려서, 존재감을 키우고.
이를 이용해 약한 몬스터 무리를 움직이게 하고.
이 약한 몬스터들을 먹이로 삼는 거대 몬스터가 움직이게 하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지한휘도 꽤 공을 들여서야 겨우 맞춘 일이었다.
“중국도 우리 쪽에 한 방 날렸는데, 이쪽도 한 방은 날려 줘야 공평하지.”
“와우…….”
그런 일을 홀로 가서 잘도 해낼 줄이야.
이사야로선 감탄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도 들어가 있지?”
“당연한 소리를. 리바이를 그렇게 만들도록 던졌는데, 선물은 줘야 하지 않겠어? 죽은 리바이는 얼마 안 되는 착한 중국인이었다고.”
“……미친 소리를 그렇게 하다니.”
“뭐, 미치면 어때. 받은 만큼 돌려준 거뿐인걸.”
“대단하네.”
되로 건드리면, 말이 아니라 톤 단위로 돌려주는 건가.
‘나도 미친 녀석이지만, 저 녀석도 확실히 미친 녀석이야.’
지한휘만의 계산 방식에, 그를 먼저 건드리지는 않겠다고 내심 마음먹는 이사야였다.
건드렸다간 뒷감당이 안 될 테니까.
잘도 저런 일을 한 주제에.
어느새 지한휘는 집 안 가득 쌓인 것들을 살펴대고 있었다.
“이건 다 뭐야?”
“선물.”
“오…….”
선물을 살피는 그의 표정은 평온해 보이기만 했다.
하기는 그런 일 따위, 받을 걸 돌려줬을 뿐이지 않나.
그에겐 그딴 일보다는 눈앞에 선물이 차라리 중요할지도 몰랐다.
겪으면 겪을수록 지저를 향해 가고 있는 세계를 구하기 위한 그의 의욕이란걸.
저 선물이란 것들은 한껏 높여 줄 때가 있으니까.
문제는.
“……컥.”
[당신은 강대한 마비의 저주를 받았다.]
[악의가 없는 저주로 판정되어, 가호 : 상급 저항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 방향이 다소 잘못되어 있는 선물이란 거겠지.
* * *
저주가 풀리는 덴 두어 시간이 걸렸다.
그 상태 그대로 굳어 있어야 했던 지한휘로선 긴 현타가 오기는 했다만.
동시에 며칠간 굴렸던 육신이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우습게도, 저주를 통해 몸이 이완되어 버린 거다.
분명 득은 보기는 했는데, 그도 짜게 식은 표정까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새끼냐…….”
“저 정도 저주 술사라면 분명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일 텐데. 나도 보고 싶네.”
-진심으로 대단하긴 하다.
반대로 그의 동료들은 감탄하기만 했다.
그에 괜히 지적을 해 본다만.
“이런 건 걸렀어야지!”
“거른다고 거른 거야. 아마 거르지 않았으면, 이 집 안 전체가 선물 보따리로 채워져 있었을걸.”
“그런 미친 게 그렇게 많이 왔다고?”
“어.”
“……미친.”
이게 거르고 거른 거란 말에는 그도 할 말이 없었다.
‘대체 내 팬이라는 것들은 왜 정상적인 놈이 없냐…….’
독도 저주도 다 거르고 남은 게 이런 저주라니.
보아하니 이사야에게는 통하지도 않은 거 같은데.
그럼 저주 대상을 정확히 설정한 거란 소리다.
불특정 다수를 저주하는 게 더 쉬운 부분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네.’
지한휘로선 대체 어디서부터 이 삐뚤어진 일이 시작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는 짜증을 내고 있지만 저것들 전부가 그의 인기를 보여주는 증거들이었다.
당장 인터넷만 가 봐도 그러했다.
-신도들을 모집합니다!
-미친, 이 시국에 뭔 신도야? 광신도냐? 너 어디냐?
-지한휘 재림교요!
-……아, 거긴 ㅇㅈ. 어쩔 수 없지.
그는 꽤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방식, 소위 팬질이라고 하는 게 엄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소위 신도라 하는 걸 모집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만큼 그에 관련된 굿즈도 쉼 없이 팔려나갔다.
비틀거나, 휘어잡거나, 뽑으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화하는 굿즈들이긴 하다만
지한휘에게 돈쭐을 내주고 있단 점.
그 부분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이득이 되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진짜 다 태워 버릴까.”
“정신 차려. 그러다 인기 사라지면? 대업에 차질이 온다구.”
“씁…….”
정작 본인은 이 상황을 거절하고 싶어 한다는 건데.
이사야의 대업이란 말 앞에서 그의 거절은 거절당할 수밖에 없었다.
떼쓰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제 본론에 들어갈 때.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후. 그래도…… 준비는 확실히 됐지? 부활 의식 말이야.”
“물론이지!”
그것은 부활 의식에 대한 확인.
“다 늘어진 추리닝 입고 그 꼴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짐작하기는 했어.”
“……내 꼴이 뭐 어때서!”
-부활 의식이 아니라, 창조 의식이래도!
이상한 반말이 있긴 하지만, 의식 준비는 완료되었다.
그럼에 지한휘는 안숨의 한도를 내쉬었고.
“시끄럽고. 그럼 바로 가자.”
“알았어!”
새로운 의식을 시행한다는 거에 잔뜩 들뜬 이사야와 함께, 모든 준비를 끝낸 지하로 향했다.
* * *
들어선 지하.
즈즈즉-
전보다 더 정교하게 새겨진 마법진들이 보였다.
그사이 알 수 없는 조정을 더 한 게 분명했다.
“효율을 늘려봤어. 어때?”
“대단하네.”
그 짧은 사이 마법진 개조를 해낸 거다.
나로선 감탄만 표하고 있는데, 흥분한 건 마왕이었다.
-그런 일을 잘도 하는구나. 조금이라도 조종이 잘못되면 어찌 될 줄 알고!
“문제없잖아?”
이해는 간다.
마왕으로서도, 이 일은 중요했다.
둘의 부활이 마왕의 일을 돕는 데 보탬이 될 테니까.
그런 마법진을 잘도 개조를 했으니, 불안할 수밖에.
웃긴 건.
마왕으로서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단 거였다.
-……그래. 그런데도 문제가 없는 부분이 여는 어이가 없구나.
“히히. 인정받았네.”
-칭찬이 아니니라!
개조된 마법진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효율도 마왕이 보기에 전보다 높아진 듯했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과연. 사령 마법사로서 이사야의 재능은 특출 나다.
“좋냐?”
“칭찬 들으니 좋지. 히히. 한휘는 이리로 와.”
나는 그에 감탄하며, 안내해 주는 이사야의 뒤를 따랐다.
그녀가 안내한 곳엔 전에 없던 의자가 존재했다.
그건, 그녀의 취향이 가득 들어간 의자였다.
“……전기의자? 사형에 쓰이는 거 아니냐, 이거?”
-여기 보기에도 그렇구나.
“무슨 소리야! 영력을 효율적으로 끌어 올리게 하는 장치라고!”
“으음…….”
“헛소리할 거면 어서 앉기나 해!”
아무래도 이상하다만.
묘한 박력으로 밀어붙이는 이사야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그녀가 재촉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고.
철컥. 철컥.
내가 앉자마자 의자는 팔과 다리를 봉쇄했다.
이건 마치 사형수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 꼴이지 않은가.
“이거, 역시 이상하잖아?!”
“아아. 그건 취향 좀 들어갔어. 그래도 효율은 높였다고? 어서 양손에 영혼석들이나 쥐고 있어. 죄수 녀석아!”
“미친 녀석.”
역시, 저 녀석은 미친 게 분명했다.
이사야는 만족스러운 듯, 싱긋 웃어 보이더니 마법진 중앙으로 갔다.
스스스스-
가서 주문을 읊기 시작하는 이사야.
그녀는 내게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말했었다.
‘순수한 영력을 뽑아서 전달해 줘야 한다고 했지.’
그건 바로 마법진의 동력원으로서 영력을 전달해 달라는 거.
[당신은 동료에게 영력 사용에 대한 요청을 받았다.]
[동의하는가?]
“당연하지.”
나는 그 요청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스스슷-
허락을 하자마자, 내 몸 안의 영력들이 점차 마법진 전체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순수 영력을 뽑아내는 거.
내게 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네.’
공허의 대전사라 불리던, 리바이를 죽이며 흡수한 기운.
그때 얻은 기운은 수많은 외신의 것들이 섞인 기운이었다.
이건 여전히 내 내부에 잠재워져 있었고.
이 상태에서 순수한 영력을 뽑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해 난이도가 어려워졌다.
“이대로만 해. 한휘. 조금만 더.”
“후우…….”
그러나 버텨내야 하는 거겠지.
둘을 보기 위해선 말이야.
[당신의 동료가 창조 의식을 시행하고 있다.]
[당신의 동료가 창조 의식을 위한 제물들을 받쳤다.]
엘릭서, 용골, 악마 다룬의 시체 조각…….
의식이 진행됨과 함께, 그간 노력해서 모은 수많은 것들이 제물로 바쳐져 갔다.
의식은 순조로웠다.
초반을 넘어 중반.
끝인 종반에 다다라서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지금이다!”
[당신의 동료가 인간 중 최초로 창조 의식에 성공했다.]
[대단한 업적이 체계에 기록된다!]
창조 의식의 성공.
그것은, 체계조차도 흥분해 말할 정도의 일이었다.
체계의 증명이다.
의식은 분명 성공했다!
그런데.
“……어?”
무언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