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한 판만 붙자.”
“아, 싫다고.”
녀석은 한사코 내게 붙어왔다.
“그럼 검에 관해서 논하자.”
“뭔 소리야.”
“논검을 하자는 거다. 네가 움직이기 싫어하니 논검이라도 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미친 새끼.”
검사도 아닌 내게 논검까지 하자니.
웃기는 이야기였다.
“심심한데 대련이나 할까?”
“오늘은 대련하기 좋은 날이군.”
“대련이다!”
내 기억 속에 녀석은 검에 미친 자식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한.
“하하. 왜 질질 짜고 있나?”
“눈물 하나 안 흘리고 있는 거 안 보이냐?”
“가슴은 울고 있는데?”
“……미친 새끼.”
나에 한에선 귀신같이 감정을 파악하는 놈이었다.
날 파악하는 이유도 퍽이나 웃겼다.
숙적인 나의 감정은 승리에서 있어서 중요 요소라나?
진정으로 미친 소리다.
“대련해 준다고? 진짜? 넌 진짜 좋은 친구다.”
“친구는 무슨. 대련 한 번 안 해 주면 삐지는 자식이…… 형님이라고 해라.”
“뭐? 따거라고 해달라고. 내가 아는 따거는 다 죽었어, 임마.”
대련 한 번 해 준다 하면, 신나서 총총 찾아오는 꼴이라니.
산책하자고 나가는 개처럼 신나 하는 게 웃겨서 몇 번은 어울려 줬다.
녀석은 그게 우정을 나누는 거라 말했고.
‘……친구는 개뿔이.’
닳디 닳은 나는 피식 웃곤 그 말을 넘기곤 했다.
그렇게 보내온 시간이었다.
최후의 칠 인이 되고.
결사대가 만들어지고.
점차 찾아오던 마지막 날까지도.
그는 그다웠다.
“이제 곧 마왕에 닿는다. 살아나면…… 그래, 살면…… 그땐 한 판 붙어 줄 거지?”
“미친 자식아. 이 판국에도 그런 말이 나오냐?”
“……안 해 줄 거냐?”
“안 해. 죽어도 안 해! 내가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너랑 대련은 안 한다.”
“허……. 졸라 나쁜 새끼.”
마지막에는 해 준다고 말할 걸 그랬나.
풀이 죽은 개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게 그리 좋은 꼴은 아니었다.
하기는…….
무슨 상관이냐 생각했다.
마왕을 죽이고 나도 녀석의 시체도 전부 <공허>에 잡아먹혔을 뿐인걸.
대련 따위 나눌 시간이 있을 리가.
아니 대련을 나누고 싶으면 살았어야지.
살아남아서 같이 발광이라도 했어야지.
나 대신 마왕의 공격을 받고 죽어 버리지 않았나.
멍청이가.
검사란 녀석이 왜 방어를 하겠다고 나선 거냐.
그 틈 하나로, 마왕에게 한 방 먹이면 뭐 할 건데.
어차피 공허란 녀석에게 우리는 다 잡아 먹혀서 뒤질 건데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귀찮음에 뒤로 미루고, 또 미뤄왔지만.
언제고 보게 된다면 한 번은 붙어 주겠다고 생각했었다.
서로 엇비슷했던 실력을 지닌 전생과 다르게.
아주 곤죽을 내놓아서.
더는 들러붙지 못하게 참교육을 해 주겠다고 벼르기까지 했다.
그래. 그랬는데.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리바이.”
왜 이러고 쓰러져 있는 거냐.
대체 왜.
지금쯤이면 특무대에서 발광하고 다닐 때 아니냐.
스승도 만나고 그로부터 교육도 받고.
재능을 꽃피울 그런 시기가 아니냐고.
그런 놈이 어째서.
-…….
여기 이러고 죽어 쓰러져 있느냐 이 말이다.
“X발…….”
나오는 거라곤 욕지거리뿐이었다.
대전사가 되고 난 자를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저 애도를 표하는 게 다일 뿐이었다.
내 생각대로.
리바이의 육신은 얼마 가지 못했다.
스스스스-
놈은 내게 설명도 없이 제 몸을 재처럼 흩어져 갔다.
공허의 대전사로서 죽었고.
그 임무에 실패했으니, 어디론가 떠내려가듯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어차피 오염되어 버린 육신이다.
남지 않은 게 차라리 나았다.
그 영혼조차도 이미 변질돼 있었다.
떠나가는 그의 영혼뿐.
그 영혼 속에서 느껴지는 기운이라곤 외신의 것이 가득했다.
검게 칠해진 기운들은 결코 벗기지 못할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래.
여태껏 보내 주었던 다른 공허의 대전사란 것들.
그들이 지닌 영도 전부 저런 형태였다.
그때마다 나는 아쉬워했다.
더러운 이 세계에서 고생했다 말해 주며, 그들을 보내 주었었다.
그러곤 우습게도 리바이의 말처럼.
울어 주셨다.
남몰래. 다른 자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질질 짜대는 게 내 최선이었다.
너는 그걸 알아줬었더랬지.
‘웃기는 이야기야…… 그래. 웃기는 이야기였지. 그게 너와 내가 같이 했던 과거고.’
놈이 재처럼 사라져 가는 지금.
앞으로 그러한 일들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한휘! 정신 차려라!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어?”
-어서 멈춰라!
뭐였을까.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영혼을 향해 손을 뻗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발악일까.
아니면 미쳐서 하는 광기일까.
[당신은 오염된 영혼을 마주하고 있다.]
[외신이 특별히 여기는 영혼이다.]
[당신이 마주한 오염된 영혼은 외신에 소유된 것이다.]
[경고!]
[영혼의 주인인 이름 모를 외신이 당신의 행위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나는 쉼 없이 이어지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영혼을 잡아당겼다.
놈이 내게 비무를 해달라고 쉼 없이 들러붙었던 때처럼.
마지막까지도 대련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미친 소리나 해대는 녀석처럼.
그렇게.
오기를 부렸다.
[이름 모를 외신이 당신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크으윽…….”
그 대가로, 내게 쏘아지는 이름모를 외신의 분노.
[당신이 지닌 영력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
[당신이 지닌 육체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
그 분노는 내 육체와 영력 모두에 타격을 가하였지만.
나는 미친놈처럼 그 영력을 당기고 또 당겼다.
이건 발악.
당장 내가 외신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그 반항이 갸륵하기라도 한 걸까.
무언가 알 수 없는 또 다른 변수가 작용하기라도 한 걸까.
그도 아니면 내 미친 짓에 리바이가 동조라도 하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느 순간 리바이의 변질된 영혼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내게 당겨졌다.
성공이라니.
전생엔 그 어떤 공허의 전사도 살릴 수가 없었는데?
‘뭐지?’
끌어당기는 데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무언가가 ‘작용’하였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듯 쏟아지는 알림음들.
[당신은 외신의 분노를 이겨내었다.]
[당신은 외신이 지닌 영혼을 가두는 데 성공하였다.]
[당신의 행위가 체계에 기록되었다.]
[당신의 행위가…….]
그것은 리바이의 영혼을 내게 가져왔다는 것에 대한 증거.
또 다른 이름 모를 외신의 분노를 일으켰을지 모를 반항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나는 미처 다 읽지도 못하였다.
“……컥.”
-이걸 해내다니. 정말로 미친 녀석이로구나.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큰 고통에 정신을 잃어버렸으니까.
* * *
지한휘가 정신을 잃은 사이.
옛 북한 전역에 남겨져 있던 기운들이 요동쳤다.
요동친 기운들은 각기 변질된 던전 안을 파고 들어갔다.
그런 일부 던전들은 지진이라도 난 듯 게이트를 떨어대었다.
그리고 얼마 뒤.
파사삭-
변질된 게이트를 떠받치고 있던 검은 연기들이 흩어져갔다.
그 연기들.
공허의 대전사라 이름 붙인 리바이가 지녔던 검은 기운과 동일한 것들이었다.
변질된 던전이 파괴되면, 그 뒤는 뻔한 이야기였다.
-키이이……?!
-켁!
변종 몬스터들이 힘을 잃어갔다.
종이 다름에도 함께 모여 움직이던 몬스터들이 서로를 공격했다.
광신도들이 세운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사태에, 광신도들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했다.
-대체 어째서!
-누구냐! 뭐냔 말이다!
당장, 몬스터들 사이에 지어 놓았던 그들의 기지.
이 사태를 일으키기 위하여 그들의 자원이 모두 집약된 그곳이 터져나갔다.
터져나가고 남은 구멍.
-키이이!
그곳엔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들.
그간 광신도들의 수작에 놀아났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들을 향해 가하는 공격이 꽤 매서웠다.
-막아! 막으라고!
-키키. 다 죽었어. 죽었다고.
그 난리 통 속.
광신도들은 그걸 막겠다고 대응해 갔다.
-크에엑…….
-끼익!
그러나 수가 너무 부족했다.
대다수 하급 광신도기에 지닌 전력마저 부족했다.
몬스터들 가운데서 큰 규모를 자랑하던 기지가 점차 무너져 내려갔다.
그런 가운데 상급의 광신도들은 하급의 희생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들로서 중요한 건 하급 따위의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현 상황 파악이 그들에겐 죽음보다 중요하였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야?
-유희의 것들은 뭘 하고 있고? 대전사는?
이들은 각각 다른 외신을 모시고 있는 상태.
서로의 사도를 만들고자 임시로 동맹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물음은 여러 곳에서 나왔다.
다행히 답은 하나였다.
-최남단의 대전사 하나가 쓰러지고부터 이 상황이 시작됐습니다!
지한휘. 그가 대전사가 된 리바이를 죽이고부터 이 현상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그에 광신도들은 혼란을 느꼈다.
고독의 형태로 최강의 대전사를 소환하고.
이에 외신의 의지를 덧씌워 사도를 만들어 내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현재의 상황에서 다소 무리를 하기는 했다.
한국에서부터 광신도 토벌이 일어났거니와.
수많은 계획이 흐트러지면서 그 세가 많이 줄어들었으니까.
때문에 이번이 중요했다.
계획보다 이른 사도를 빚어내고.
그리하면서 잃은 세를 다시금 복구함을 넘어, 정복을 시작하려 했다.
그를 위해 광신도들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했다.
계획은 완벽했는데, 이게 왜 실패란 말인가.
-조각 중 하나가 망가진 거뿐이지 않으냐?
-그 조각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될 일이잖아?!
-그런데 왜 이 난리가 나? 키킥. 다들 무슨 수작질 부린 거 아냐?
-수작? 그건 유희의 자식들인 네녀석들이 부린 게 아니냐?
-캭 퉷!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혼란이 내분으로 치닫는 듯했다.
그러나 광신도 측에선 다행스럽게 그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과 통하는 외신.
그 외신을 따르는 자식들이 그들에게 직접 상황을 전달하여 주었다.
본래는 회수되었어야 할 조각.
그것이 지한휘에게로 흡수가 돼 버렸고.
그럼으로써 열 개의 광신도가 모여 만든 열의 대전사가 서로를 떠받치는 형태가 무너졌노라고.
그 뒤로 도미노처럼 조각들이 무너져 내렸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일러주었다.
-켁…… 크르륵…… 컥.
-아아. 그리…… 그리된 것입니까.
무려 외신의 자식들이 직접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걸 아니라 거부할 신도가 있을까.
선택권은 없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뒤이어 외신의 자식들은 그들이 행할 것들을 재차 일러주었다.
-히, 힘을 보존해야겠군요.
-당장 그리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희자시여!
-대적…… 대적이라 말입니까? 예…… 해내겠습니다!
대다수는 피하라 말을 했고.
호전적인 외신의 자식들은 최후까지 항쟁을 명령했다.
제각기 다른 여러 명령들이 더해졌다.
-해내겠습니다!
-신을 위하여!
그들은 그를 행하기 위해, 각자 찢어져 갔다.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어냈던 사도의 무리가 흩어지는 덴,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였다.
남은 건 끝까지 항쟁을 하라 명을 받은 소수의 무리들뿐.
그렇게 리바이 하나가 죽음으로, 거대한 웨이브 사태가 격변을 이루는 그 찰나.
“아……!”
“한휘!”
지한휘의 눈이 다시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