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그것은 허깨비와 같았다.
“캭…….”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
어딘가에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비명 소리가 들릴 때면, 예외 없이 헌터가 쓰러졌다.
“치유계 뭐해!”
“가고 있…… 컥! 사, 살려…….”
서로를 도울 새도 없었다.
허깨비는 움직이는 자가 타깃이라도 되는 듯, 먼저 다가가 죽음을 선사했다.
어떻게 죽였는지도.
어떻게 죽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단 거였다.
“우욱…….”
멱이 따이고. 심장이 사라졌다.
상황이 심각해졌다.
밤이 아닌 낮임에도, 저마다 표정엔 어둠이 내려앉았다.
“대체 뭐야!”
“모여! 모이라고! 틈을 보이지 마!”
토벌대란 이름으로 한 대 모여있던, 자들이 각 그룹으로 찢어졌다.
서로가 엉겨 붙듯 달라붙어서 틈을 조이려 했다.
틈바구니가 없으면, 허깨비가 뚫지 못 할 거라 여겼으니까.
좋아 보이는 수였다.
그러나 그게 패착이었다.
쑤욱-
“크아아악!”
“그륵…….”
허깨비는 그 틈바구니를 겁도 없이 뛰어들었다.
스치듯 지나가며, 걸리는 모든 헌터들을 향해 거침없이 무언가를 휘둘렀다.
일직선으로 사람들이 갈라졌다.
후두두둑-
이때가 가장 처참했다.
모든 게 일직선으로 갈라졌으니까.
그 선상에 놓인 자들은 차라리 낳았다.
일수에 죽어 버리는 걸로 되었으니까.
문제는 그 중간에 껴있던 자들이다.
반만 걸쳐 있던 자들은 반으로 갈라지고.
팔이 걸려 있는 자는 팔이 사라졌다.
참혹했다.
그 참혹함이 허깨비에게 내려앉았다.
일직선으로 움직이며 온몸에 피 칠갑을 해 버렸다.
온몸이 붉어졌다.
덕분에 눈에 띄게는 되었다.
그 눈에 띄는 형태는 분명 인간으로 보였다.
“이, 인간이야 저거?”
“뭐야?!”
“같은 헌터가 여기서 살인이라고?!”
온몸이 피 칠갑으로 가득 찬 몸엔 사지가 달려 있었다.
양손엔 검을 쥔 채였다.
그러나.
“저, 저…… 사람이 아냐!”
“눈을 보라고!”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검게 지운 듯 지워져 있었다.
얼굴이 없는 인간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괴, 괴물이야!”
“튀어!”
허깨비는 모습이 드러나고도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다시 검을 재차 쥐어 들더니.
몸을 움직여 한 방향을 향했다.
그쪽을 향해 일직선상으로 벤다는 의지가 멀리까지 전해졌다.
“또, 또 온다! 막아아아!”
“차라리 도망쳐!”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투우웅-!
얼마 가지 않아, 허깨비는 직선으로 달려 나갔다.
대다수의 헌터가 그 움직임을 놓쳤다.
뒤늦게 스쳐 지나가는 붉은 궤적만이 보일 뿐이었다.
“으아아아! 온다!”
빠르다.
피하려고 하지만 늦었다.
그나마 무기를 쥐고 막아보려 하지만.
발악도 되지 않는다.
‘죽는다……!’
죽을 거라 여길 뿐이었다.
이제 수십이 또 도륙 나겠지.
처참한 광경이 그려질 거였다.
모두가 참사를 예측하는 그 순간.
콰아아앙-!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 대신에, 거대한 폭음이 났다.
허깨비가 등장하고 처음 있는 충돌.
처음으로 막힌 것에 허깨비는 고개를 들었다.
그 앞.
“너, 뭐냐?”
지한휘가 막아서고 있었다.
* * *
처음 허깨비가 출현했을 때.
지한휘도 그걸 보지 못했다.
그만큼 빠른 기습공격이었다.
뒤늦게 2타가 터질 때쯤. 몸을 날렸지만, 이미 일직선상으로 헌터들이 갈려 나갔다.
순식간에 50여 명의 피해자가 속출했다.
지한휘는 혀를 탁 차며, 3타가 들어서서야 허깨비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제야 허깨비의 정체를 파악했다.
암흑으로 비어 있는 얼굴. 저 형태.
익숙한 것이었다.
‘공허의 대전사. 저게 벌써 나왔나? 막는다고 막았는데…… 늦었나? 어쨌건 이 형태는 까다로운데.’
저것은 광신도들이 만들어낸 것들 중 한 형태다.
이번 웨이브 사태 자체가 고독과 같은 존재를 만들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이지 않은가.
저 공허의 대전사는 그 중간 형태.
정확히는 완성형의 바로 직전!
광신도들의 목표대로라면, 저러한 전사급들이 최소 열은 태어난다.
그 열이 서로 영역을 다투고.
마지막 살아남은 하나에 외신의 의지가 깃들어 내린다.
그게 사도다.
그러한 대전사를 막자고 던전행을 다니지 않았나.
그런데 벌써 만들어질 줄이야.
이쪽에서 토벌의 성과를 얻고 있다 여겼는데, 저쪽도 칼을 갈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쪽도 무리를 했을지도?’
하기는 저들의 사정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콰아아앙-! 쾅-!
저들이 온힘을 다해 빚어냈을 공허의 대전사는 강력했다.
“큿…….”
-…….
순간에 수십여 번의 검이 휘둘러졌다.
이어지는 충돌.
그로서도 사슬을 쉼 없이 움직이고, 영력을 돋워서야 막아낼 성질의 공격이었다.
그러한 공격이 막혔음에도 대전사는 계속해 움직였다.
앞을 막은 지한휘를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다.
‘하루 종일도 공격할 녀석이지.’
놈은 지치지도 않았다.
공격에. 또 공격.
오로지 방어도 없이 공격만을 지속했다.
지한휘는 그러한 대전사의 틈을 끝없이 노렸다.
콰드드드득-!
결국 틈을 뚫고, 대전사의 몸을 찢어 내는 데 성공했다.
검을 쥐고 있던 대전사의 왼팔이 떨어져 나갔다.
“우와아!”
“X발. 막아낼 줄 알았다고!”
그걸 본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스스스스-
공허의 대전사의 걸굴에 자리한 검은빛.
그것의 일부가 흘러내리자, 다시 팔이 재생되었으니까.
하물며 그 손에 쥐어졌던 검도 다시 재생되었다.
몸뿐만 아니라 무기마저 대전사의 일부였던 것이다.
재생된 팔을 휘두르는 대전사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콰앙! 쾅!
되레 전보다 더 강해진 듯, 검을 휘둘러댔다.
그걸 보고 누가 환호할까.
모두가 고요를 지켰다.
그런 가운데, 지한휘는 다시 사슬을 들었다.
그는 이따위 상황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한방에 될 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 이제부터가 진짜야.’
그는 절규하는 대신 오랜만에 전의를 불태웠고.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일으켰다.]
[당신은 영혼 마법 : 갑옷을 사용하였다.]
[당신은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를 사용하였다.]
[당신이 만들어낸 악령들이 하데스의 사슬에 깃든다.]
[원혼이 깃든 하데스의 사슬이 울부짖는다.]
[사슬에 실린 저주의 힘이 강화되었다!]
그에 걸맞은 행위로, 자신을 강화시켰다.
때로 힘엔 힘으로 상대하는 게 그 무엇보다 강력한 공략 방식인 터.
적이 끊임없는 재생으로 강화되어 간다면, 자신은 그보다 강력한 힘으로 적을 으스러트리면 될 뿐이지 않은가.
“2차 전이다. 어느 쪽이 지칠지 해 보자고.”
-캬아아아아……!
투웅-!
온몸에 악령을 두른 채로, 원한 서린 저주 속에서 지한휘의 몸이 튀어 나갔다.
* * *
겉으로 전투는 선방하는 거처럼 보였다.
공허의 대전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고.
대전사는 다른 틈을 노리지만, 그걸 빠져나가기 위해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내가 밀어붙이는 듯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게 쉬울 리가.
애당초 대전사 자체가 막기 쉬운 존재가 아니다.
‘뒤지겠네, 진짜.’
스스슷-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흐르는 검은 기운.
저것은 전염병의 씨앗과 같은 거였다.
기운은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번져나가게 돼 있었다.
번져나간 기운의 목표는 하나.
감염시키는 거.
감염된 존재는 대전사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후보가 된다.
즉, 고독을 위한 제물이 되는 거다.
결국 완성되면 외신의 의지가 깃든 사도와 같은 존재가 되는 거고.
나는 대전사를 상대하면서도 이를 막아내야 했다.
-캬아아!
덕분에 끝없이, 악령을 부려 주변에 흩뿌려야 했다.
퍼지는 기운을 제거해야 했으니까.
검은 기운은 쉽게 제거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 기운 중 일부는 내가 흡수해야 했을 정도다.
대다수는 영력으로 짓누를 수 있기야 하다만.
‘나중 가면 고생 꽤나 하겠어.’
그중에도 남은 지독한 잔여물을 씻어내려면 고생을 해야 할 거였다.
그러며 대전사도 상대해야 했다.
콰아아앙!
놈은 계속해 내게 짓쳐 들면서도, 도망갈 틈을 노렸다.
나를 상대하긴 어려우니 몸을 내빼려는 거였다.
그런 주제에 공격 방식은, 방어 없이 오직 공격뿐이었다.
“이제 슬슬 뒤질 거 같지? 근데도 무식하게 공격하는 걸 보면…… 대체 이전에 뭘 해 먹던 놈이냐?”
-…….
보아하니.
이 검은 기운이 빙의된 존재 자체가, 살아생전에 공격만 갈구하는 타입인 거 같은데.
그게 누군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형태로 보아하니, 검은 기운에 잡아 먹히기 전엔 인간인 건 분명하다.
가진 검술 수준으로 보면 결코 하수는 아닌데.
‘분명 보통 놈은 아닐 건데 말이야.’
지금 시기에 이 정도 능력이라면, 살아만 남으면 최후의 칠 인에 비견 될 수준이다.
그런 존재가 이번 사태로 잡아 먹힐 줄이야.
아쉬운 인재 하나가 날아가 버린 거다.
“너를 살릴 수 있으면 좋았을 건데. 안 그러냐?”
-…….
“뭐, 대답할 리가 없지.”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공허의 대전사로 잡아 먹힌 존재를 다시 부활 시킬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알았더라면 회귀 전에서부터, 잡아먹힌 수많은 헌터들을 살리는 데 썼겠지.
전에도 죽어라 연구했지만 결국 되돌릴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러니 아쉽기만 할 뿐이다.
좋은 재주를 지닌 헌터 하나를 내 손으로 찢어 죽여야 하는 거니까.
그나마 내가 이러한 존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금방 죽여 주마.”
츠츠츠츠측-
그 고통이 오래가지 않도록, 빠른 죽음을 선사해 주는 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시간 선을 비튼 건 나였으니.
그 결과물로 인해서 공허의 대전사가 되어 버린 희생자를 책임지는 게 내 의무기도 하고.
그러기에 나는 쉼 없이 움직였다.
후우웅-
영력을 이용해 사슬을 조종하였다.
넓게 벌린 사슬을 이용 놈의 도주를 막아냈다.
대전사가 오로지 나만 바라보도록 억지로 만들었다.
놈이 나를 보았을 때.
내 양손은 비어 있었다. 사슬을 이용해 망을 만들어 내니, 더는 손에 쥘 게 없었다.
그러나.
빈 건 채우면 되는 법이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을 사용하였다.]
[그림자 짐승이 검의 형태로 빚어진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발걸음을 이용해 속도를 높였다.]
촤아악-!
그러며 그림자 짐승을 검으로 빚었다.
양손에 하나씩.
거침없이 이도류를 휘둘렀다.
이건 회귀 후 아직 만나지 못한 리바이가 가르쳐 주었던 검술이었다.
검사였을 대전사를 상대로 이러한 검술을 보여주는 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의 예의라 생각하며 수십 합을 검을 휘둘러 박아 넣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터어엉. 텅. 터엉.
놈은 내 이도류를 상대로 수십 합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방어도 할 줄 모르니,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타격을 받을 때마다, 얼굴에 깃든 검은 기운이 소모돼 갔다.
대전사의 생명력을 대신해 기운이 스러진 거다.
여기까지 예상했던 바인데.
“어쭈……?”
-…….
이 녀석, 순식간에 내 검을 실시간으로 익혀내고 있었다.
내가 그려내던 이도류를, 자신도 똑같이 흉내 내고 있었다.
마치 제가 원래 가져야 할 것을 찾은 거처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야 닿았을 경지를 흉내 내듯, 놈의 움직임은 내 것을 닮아가고 있었다.
‘……뭐냐, 진짜.’
괴물 같으니라고.
검사에 대한 예의로 꺼내어 든 것을, 대전사인 상태로 익혀 버릴 줄이야.
이건 정말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의도 상대를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나 부리는 거였다.
“감상은 여기까지고. 이제 끝을 내자.”
-…….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검은 기운.
그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자, 나는 지금껏 아끼고 있던 마지막 한 수를 꺼냈다.
리바이류 검술의 비기.
그중 하나,
단절(斷切)!
이름 그대로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그 검술이, 내가 지닌 영력의 힘을 빌어 세상에 처음 펼쳐졌다.
리바이가 지녔을 본래의 수준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할 수준이다만.
‘이름 모를 검사 녀석 끝을 챙겨주기엔 이거만 한 게 없겠지.’
이번 사태에 휩쓸려 버린 자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엔 충분한 검이었다.
손에 쥔 이도류가 맞대어지고.
그 검이 하나처럼 합쳐지며 빚어진 영력의 검기.
그것이 대전사의 몸을 꿰뚫어진다.
촤아악-
그 순간, 대전사의 모든 육체가 반으로 갈라지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기운은 단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찢어발겨진다.
쿠웅.
반으로 갈라진 몸이 쓰러질 곳은 전투로 거칠어져 버린 대지 위였다.
대전사의 마지막을 기꺼이 바라보고자, 나는 쓰러진 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건.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이 사태에 죽은 희생자 정도는 내 눈 속에 담아두는 게 예의라 생각했으니까.
해서 바라본 대전사의 얼굴.
내게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리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