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그건 희망이었다.
내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희망.
일부만으로 무려 저 정도 존재감을 지닌 게 신이다.
그러한 것들이 분노하게 하는 일을 내가 해내고 있었다.
저들에 비하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힘을 지닌 나다.
그런 나를 신경 쓰고 있다.
착각이 아니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놈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깨달았다.
놈이 나를 억지로 불러낸 건 분노해서다.
농락자인 제가 하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계속해 방해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나를 설득하기 위해 불러들였다.
그 설득하는 방법이 인간인 내가 느끼기엔 과격한 방법이고, 말도 안 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결국 신이란 작자들의 방식을 생각하면 그건 설득이었다.
무슨 방법을 쓰던, 내가 그의 말을 듣게 되면 그게 설득이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 신에 고개를 숙이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차라리 죽고 말지.’
이제 와 신좌고 외신이고 하는 것들에게 집중할 생각은 없다.
내겐 그럴 겨를도 없다.
저들의 신경을 좍좍- 긁어낸다는 거만으로 나는 할 일에 더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니 희망을 얻을 수밖에.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단 거니까.
거기다 이걸 봐라.
[체계가 예상치 못한 사태로 피해를 받은 당신에게 보상을 정산하였다.]
[체계가 당신의 등급을 50으로 상승시켰다.]
[체계가 외신 : 유희의 농락자가 지닌 계획의 일부를 파쇄시켰다.]
무려 그 체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 보상을 던져 준다.
등급을 상승시키고, 덜덜 떨려오는 온몸에 있는 피로도를 모조리 씻어 주었다.
체계치고 이 이상 친절할 수 없을 모습이라 여기는데.
[체계가 파쇄시킨 계획을 일부를 그대에게 주었다.]
투우욱-
여기에 무언가를 하나 던져줬다.
“뭐지, 이거?”
그건 돌이었다.
처음 보는 돌의 형태지만, 어딘가 낯이 익은 듯했다.
그 돌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 순간.
[정산은 끝이 났다.]
화아아악-!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던전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 * *
나 외에 다른 팀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던 듯싶다.
“후. 끝이다.”
“이야. 이번도 성과가 좋은데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등급 상승이라니! 크…… 쥑이네요.”
“마음에 드는 보상이었어요.”
그들 모두 불안은커녕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이진성이 오버하는 걸로 봐선, 다들 예상 이상의 보상을 얻은 듯했다.
어울리지 않게 무뚝뚝해진 박동길이도 미소 짓고 있는 걸 보니 확실하다.
나는 그제야 다시 본래의 세상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내가 예상치 못한 다른 하나는 아니었다.
-그걸…… 네가 어찌 갖고 있는 것이더냐?
벨린카니스. 마왕이 어느덧 내 옆에 가까이 붙어서 손에 쥐고 있는 돌조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원을 깨닫게 되고 난 이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왕과 의사소통 정도는 하게 된 나다.
영력을 활용한 의지 싣기였다.
나는 의지를 실어 물었고, 답은 금방 나왔다.
‘너, 이게 뭔지 알아?’
-알다마다. 그건…… 외신들의 조각이지 않느냐.
‘이게?’
외신들의 조각이라.
외신마다 조각의 종류가 다르다는 건가.
이건 회귀를 경험한 나도, 처음인데.
보아하니 벨린카니스는 이러한 조각을 몇 번 접한 듯했다.
그 종류까지 맞혀냈다.
-그래. 보아하니 그건 유희의 농락자의 것이로구나. 안 그래도 보상의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갑작스레 연결이 끊어지더라니…… 뭔가 일이 있긴 했구나. 너는 그걸 어떻게 얻었느냐?
‘그래서 그때 네가 없었나. 이건 말이지…….’
나는 마왕에게 보상의 공간 안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언어보다 더 깊숙이 전달되는 게 의지.
그 의지를 들은 벨린카니스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 사태에 대해 평하였다.
-그를 지금 만날 줄이야.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로구나. 그러고도 여전히 네가 너인 채로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나지. 그럼 누구겠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라. 체계가 도왔다 해도 본래는…… 아니다. 너이니 가능한 일이었겠지.
그 평이 마왕답지 않게 심각했다.
어울리지 않은 심각함이었다.
나는 그러한 감정에 물들세라, 주제를 바꿨다.
그 주제, 본래 목적에 관한 거였다.
‘됐고. 이거라면 최소 가능성의 기물급은 맞지? 이거면 부활 의식도 가능하고?’
-몇 개만 더 모으면 맞느니라.
‘……이거 하나론 부족하다고?’
근데 그 대답이 영 부정적이었다.
마왕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그러곤 가능성의 기물이 지닌 대단함에 대해서 말했다.
-대체 가능성의 기물이 뭐라 여기느냐. 그건 차원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다. 애당초 그리 쉽게 얻은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게야.
‘와 씨. 그럼 이걸 몇 개는 얻어야 하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만. 적어도 셋은 있어야겠지.
‘씁…… 세 번이라.’
영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적어도 세 번만 던전을 털어먹으면 된다 했으니까.
난 혼자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체계가 그의 계획을 파쇄했다고 했으니, 던전을 깰 때마다 나오지 않겠느냐.
‘하기는…… 다른 토벌대도 던전을 갔지. 거기서 추가로 나오는 걸 매입하면 되겠네.’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이거지. 이거 기대되는데.’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내가 이곳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던 이유가, 가능성의 기물급의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마왕의 말대로라면 그러한 물건을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짚어주는 던전에서라면, 이러한 것들이 몇 개는 더 나올 수 있을 테니까.
해서 나는 더 큰 희망을 가졌다.
“팀장님은 안 잡니까? 오늘 던전행으로 피곤할 건데.”
“다른 던전 토벌 어떻게 되나 보고 자려고.”
“에이. 그런 걸 뭘 다 기다려요. 알아서 성공하고 오겠지. 그리고 우리만큼 빠르겠습니까? 다들 시간 걸릴 겁니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속도라고요.”
“초 치지 말고 잠이나 자!”
“……씨. 뭐 걱정을 해줘도 그럽니까. 알았습니다. 갑니다, 가.”
“오냐.”
그 희망에 잠도 자지 않았다.
다른 토벌대의 던전행이 어서 성공하기만을 바랐다.
그들로선 영문도 모르고 구했을 외신의 조각.
연구를 하겠답시고 가져가는 자도 있겠지.
하지만 그중 서너 개 정도만 더 구해 와도 내 부활 의식을 위한 준비는 끝이었다.
그런 상황에 잠이 올 리가 있겠나.
‘얼마 안 남았다. 둘 모두 기다리라고.’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치이익-
얼마 가지 않아, 내가 기다리던 무전이 왔다.
* * *
-오성 길드의 이수향 토벌대 던전 클리어했답니다.
던전 클리어 소식이었다.
우리 측 토벌대에서 이다음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성 길드 쪽이라니.
그래도 나쁘진 않다.
미리 말해 둔 게 있으니까.
“오…… 김시연 실장은? 바로 접촉했대?”
-예. 나오자마자 접촉하셨습니다.
내가 활약하는 만큼 실세가 되어가고 있는 김시연 실장.
그녀가 오성 길드의 토벌대의 협상자로 나서기로 해줬다.
안 그래도 토벌대 중 우리 측 속도가 가장 빠르다.
여기다, 가장 어려운 방향을 맡기까지 해 줬다.
이 상황에서 그녀의 입지는 꽤 큰 편이었다.
때문에 협상만 하면 필요한 물건은 금방 구해 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내가 표본으로 보여주었던 물건은 구하셨대?”
-잠시만요. 확인까지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얼마든 기다려 주지.”
-예.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 물건 자체가 나오질 않았답니다.
“……어? 그래?”
-예. 혹여나 숨긴 건 아닐까 확인하셨다는데, 그건 아니랍니다.
조각 자체가 나오질 않았단다.
하기는, 가능성의 기물만 못하다 해도 몇 개면 그에 비견되는 물건이다.
‘한 번에 나오길 바라는 게 욕심이겠지.’
아무리 포인트를 찍어 던전을 정복한다 해도, 꼭 나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던전 완본제 장비만 해도 매번 나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 욕심이 과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차분히 말을 전달했다.
“안 나올 수도 있지. 다른 곳도 부탁한다고 전달해 줘.”
-예. 바로 하겠습니다.
“오케이.”
이다음도 토벌 소식만 나오면, 알려달라고.
그 물건만 구해 준다면 어떤 대가라도 치러 주겠다 몇 번이고 말해 줬다.
그때까지도 기대 만반이었다.
‘세 개. 아니 두 개만 나와라. 그러면 된다고 했으니까.’
잠도 오지도 않아, 무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치이이익- 치익-
두 번, 세 번 무전이 전달될 때마다 내 기대감은 마모되듯 사라져갔다.
-없답니다.
-이번도 없습니다.
-그 물건이 있기는 한 거냐고 전달해 달라십니다.
-없습니다.
토벌 되는 던전은 많아지는데, 더 나오는 조각은 없었다.
이러면 내려지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거 내가 직접 뛰라 이거지?”
-여가 보기에도 그런 거 같구나. 체계가 쉽게 내려주지 않고 있어.
“빌어먹을. 내 어쩐지 쉽게 간다 했다.”
내가 직접 뛰지 않는 한, 조각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증거나 근거 따위는 없다만 내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망겜 망겜 거리는 체계가 퍼준다 했다.’
외신의 조각.
내가 직접 발로 뛰지 않곤 절대로 나오지 않을 거였다.
“젠장…… 토벌 준비하라 해야겠네.”
던전을 더 빠르게 돌파해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 * *
지한휘는 토벌 결과에 실망이 그득 찼다만.
토벌대를 이끄는 자들과 그에 포함된 헌터들은 갈수록 신이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토벌 효과가 커져 가서다.
특히 던전을 포인트를 하나 공략하면, 그때마다 근방의 몬스터들은 기이한 힘을 잃었다.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이 툭툭 떨어져 나갔고.
쾅!
폭발을 사용하던 녀석은 제 몸이 스스로 터져나갔다.
독을 쓰던 변종들은 주변의 몬스터와 같이 산화되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효과가 가시화되어 가고 있었다.
또한 이건 기회였다.
-던전을 파괴한 이후 되레 약화되고 있습니다.
-급작스러운 강화가 사라짐에 따른 부작용이겠죠.
-몬스터들도 이런 경우엔 후유증을 느끼는군요. 이거 연구 한번 해 봐야겠는데요.
-연구는 나중에. 이 정도면 목표를 넘어서까지 토벌이 가능합니다.
적의 전력이 약화된 순간을 노리는 건 전략의 기본이었다.
몬스터 자체가 약해진 이때, 자연스레 토벌 목표를 높였다.
-금천, 세포, 회양까지 북진해 보죠?
-좋네요. 계산상 가능합니다.
-찬성합니다.
각자 개성에서 금천으로. 평강에서 세포, 금강에서 회양까지.
예상보다 많은 지역을 올라가야 했지만,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되레, 지원자들이 몰려오고 정부의 지원이 더해졌을 정도다.
토벌이 성공만 한다면, 그에 따른 성과는 분명했으니까.
당장 토벌이 끝나기라도 할 거처럼.
모두가 성공을 점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한휘는 차분히 선두를 지켜나가며, 던전행을 지속해 나갔다.
-드디어 하나 나왔구나.
“세 번 더 돌아서 하나인가. 이럼 더 분발해야겠는데.”
목표로 삼았던 조각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예상대로, 체계는 그가 와서 토벌을 해야만 조각을 던져 줬다.
그것도 쉽게는 주지 않았다.
광신도와 악마들의 손길이 들어간 던전 중 가장 강력한 곳에서 조각을 던져줬을 뿐이다.
쉽게는 못 간다는 의미.
‘꿀 빠는 건 못 봐주겠다 이거지?’
때문에 지한휘는 가장 어려운 던전행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자연스레 최전선을 향한 길이 되었다.
토벌행이 슬슬 끝을 보이고 있는 지금.
어서 결판을 내기도 해야 했다.
해서 그가 서둘러 북진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이제 마지막 하나만 남았느니라.
‘그래. 알지. 그러니 서둘러야 하는 거고. 근데 저건…… 뭐지?’
그의 감각에 무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크아아아악!”
“적이…… 컥!”
사상자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