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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89화 (89/206)

제89화

지한휘로부터 멀어진 나헤나.

그녀는 지체없이 움직였다.

그 방향은 인천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서늘한 목걸이의 촉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가 보낸 신호를 보고 온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홀로 오셨다는 건…… 실패란 거군요.”

“응. 아쉽게도 실패야.”

유창한 러시아였다.

그녀도 러시아어로 답을 해 줬다.

이자는 본래부터 약속된 자였다.

일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상관없이, 그녀가 신호를 보내면 오기로 한 자였다.

“상부에서 그리 좋아하지는 않겠네요.”

“그러겠지.”

“어찌 보고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태우기나 해. 보고는 내가 해야 할 거니까.”

“음…….”

그런데.

어쩐지 상대가 뜸을 들이고 있었다.

‘이거 설마…….’

지한휘에게 당했을 뿐이지, 그녀의 감은 좋다.

아니, 바로 전 지한휘에게 당했기에 그녀의 감은 더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처음 실패를 맛봤으니까.

그런 그녀의 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너 실수하는 거야.”

“하핫. 실수라니요. 무슨 소리신지…….”

착각이 아니었다.

상대는 음흉하게 웃음을 짓고 있다만.

그녀 주변으로 느껴지는 기척들이 심상치 않았다.

이건, 실패한 그녀를 처리한다는 신호일지도 몰랐다.

한 번 실패에 그녀를 버리다니.

뭔가 이상한 일이다.

‘그건가…….’

하기는 생각해 보니 또 이상한 일은 아녔다.

지한휘의 매혹을 실패하기 바로 직전.

과한 마력 소모로 인해서, 기존에 매혹에 걸린 자들의 족쇄가 풀렸다.

그녀가 매혹을 걸어둔 자들 중 대다수는 러시아서도 고위직에 있는 자들.

그들이 매혹에 풀리자마자 할 일은 뻔하지 않은가.

그녀를 역으로 노리겠지.

그녀의 유용성보다도, 그녀가 자신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클 테니까.

그러니 이런 식으로 그녀를 처리하려는 거.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공교롭게도 일이 어렵게 되었다.

지한휘가 알려 준 작전을 실행하려면, 협조가 필요하면 필요했지.

이런 방해가 있는 가운데서는 난이도가 더 올라갈 테니까.

그런데 왜일까.

‘일이 재밌게 되었네.’

일이 더 어려워졌음에도, 그녀는 절망을 느끼기보단 흥분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마치 처음 이능력을 깨달았을 때처럼.

가슴이 크게 뛰어댔다.

대체 어디서부터 흥분된 걸까.

알 수 없다.

하나 확실한 건 있다.

“너부터 시작해야겠네.”

“……뭐?”

“이리 와.”

[당신은 가호 : 매혹의 조종자의 마력을 사용했다.]

[당신은 상대를 매혹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자.

이자부터 포섭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이, 바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한 그녀의 구명줄이 될 테니까.

“……으윽…….”

“그래. 그렇게 와야지. 이제부터 꽤 애써 줘야 할 거야, 너. 나를 살려 줘야 하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그렇게 해드려야지요.”

“거봐. 누구와는 다르게 할 거잖아.”

그 구명줄을 그녀는 금방 잡아챘다.

그러고 얼마 뒤.

콰아아앙-!

그녀가 머무르고 있던 작은 항구의 일부가 폭음과 함께 불타올랐다.

폭발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그녀는 이미 없었다.

‘다음에 또 보자구.’

그녀는 이미 러시아행을 위한 작은 배에 몸을 실은 채였으니까.

지한휘가 러시아에 지독한 독을 풀었다.

* * *

그렇게 인천항 일부가 폭음에 휩싸인 사건이 일어난 사이.

지한휘는 새벽녘임에도 불구하고 제 막사에 팀원들을 불러들였다.

“상황은?”

“잘 처리하고 왔지.”

“몇이나 처리하고 왔습니까?”

“80명 정도.”

“휘유. 많네요.”

그가 비어 있는 동안 막사들을 책임진 팀원들이었다.

그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늦은 새벽임에도 잠든 자는 없었다. 피 칠갑을 하고 온 그를 걱정할 뿐이다.

이들을 두고 시간을 더 지체할 필요가 있는가.

지한휘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자, 우선 별일 없으니 됐고. 이번에도 정보를 얻어 왔는데 말이야.”

“용케도 영혼을 잡았나 봅니다?”

“응. 이제 광신도들도 잠시는 잡을 수 있더라고. 거기서 꽤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어. 사실 광신도들이 여럿 모여서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 본론.

이른 아침이 찾아오고 있음에도, 잠을 날리기에 충분한, 심각한 이야기들이었다.

게이트의 변질을 통해 몬스터 변종을 만들어 낸 이유.

그러한 변종을 풀어 넣고 수없이 많은 죽음이 나오게 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광신도들이 얻으려 했던 것.

이 시기에 나와서는 안 될 것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미친 새끼들인 건 알긴 했지만…… 이건 아닌데요.”

“그치. 북한이었던 곳 전체가 난리가 날 거니까. 그뿐이면 차라리 상관없는데, 이건 우리도 문제가 된단 말이지.”

그 계획대로라면 한반도 전체는 불길에 휩싸일 거였다.

불길은 어쩌면 크게 번져나가서 러시아와 중국도 잡아먹겠지.

지금 그것들을 막아내야 했다.

다행히 그는 그걸 막아낼 방안도 찾아왔다.

“녀석들이 뭘 하려는지 알았으니까, 이젠 그걸 막아야 해.”

“어떻게요?”

“광신도들이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곳들을 다 급습해야지. 다행히 그 위치는 이미 알아 냈어.”

그들이 계획을 벌이기 위한 장소.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온 지한휘였다.

본래라면 점조직 단위로 움직이는 광신도에게 이런 자세한 정보를 얻은 건 힘든 일.

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시기상 이들이 지금 벌이는 일은 전생보다 더 빠른 일이다.

쉽게 말해 광신도들도 지금 능력에 비해서 버거운 일을 벌였단 거다.

그런 상황에서는 저들도 더 많은 힘을 소모할 수밖에 없기에,

‘그게 약점이 됐지.’

점조직 형태가 아닌 유기적인 움직임을 필요로 했다.

덕분에 정보가 서로 공유되었다.

지한휘는 그걸 얻었고, 먼저 찌를 참이었다.

“우리는 작전 형태를 바꾸도록 해야 해.”

“우리만 바꿔서 되겠습니까?”

“아니지. 김시연 실장에게도 연락을 넣어야지. 믿을 만한 루트엔 전부 정보를 뿌려보자고.”

“그건 제게 맡겨주세요. 제가 더 빠를 거니까요.”

“오. 냥곰이가 해 준다면 나는 편해지지.”

상황에 맞춰 그는 작전을 변경했다.

그때쯤.

아침의 해는 점차 밝아 오고 있었다.

* * *

날이 환해진다.

하룻밤의 휴식을 놓쳤지만, 그는 계속해 움직여야 했다.

‘지금 그런 게 태어나선 안 돼.’

막아야 할 게 있으니까.

광신도들의 계획은 거창해 보이나, 사실 단순하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거.

고독이다.

옛이야기에 항아리에 100여 마리의 독충을 집어넣고, 그중 살아남은 한 마리를 고독이라 불렀다 하지 않던가.

100여 마리를 다 잡아 먹었기에 가장 강력한 독충이요, 힘을 지닌 것이라고 숭상하는 자들도 있었다.

광신도들은 그것의 규모를 키웠다.

옛 북한 지역과 중국 일부를 대상으로.

그들은 몬스터만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같은 광신도도 고독이 될 대상이며, 여기서 잡아 먹히는 헌터와 몬스터 전부가 그들의 고독이 될 대상이고 동시에 제물이다.

제물이 뭐가 되든 상관치 않는단 의미.

그게 뭐가 되든 완성되기만 한다면, 그때가 외신들이 나설 때였다.

가장 강력한 개체가 되어 버린 걸 외신이 잡아먹으려 달려든다.

그리곤 잡아먹은 그것을 이용해 사도를 만들겠지.

사도라니.

그건 재앙이었다.

그러니 이건 시간 싸움이었다.

광신도가 먼저냐, 이쪽이 막아내는 게 먼저냐의 싸움.

서둘러야 했다.

“가장 처음 저들이 만들어 낸 제단들이 있을 거야. 그걸 걷어내야 고독이나 변종들을 만들게 하는 것들이 사라져.”

“그것들이 어디 있는데요?”

“변형된 게이트 안. 토벌이 끝나고 나면, 재차 한 번 쓸어버리려고 뒀던 곳들. 그곳에 숨어 있더라고.”

시간 내에 변형된 게이트 안에 담긴, 광신도들의 제단을 쓸어야 했다.

그러니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는 팀원들을 데리고 가장 가까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변질된 라쿠인의 둥지에 들어섰다.]

* * *

체계에도 기록된 변질된 던전 안.

라쿠인이란 몬스터는 거대한 곰 수인 형태.

두꺼운 근육으로 가득 찬 육체를 이용한 육탄전을 벌일 듯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다.

적이 나오면 1미터에 가까운 날카로운 손톱을 검처럼 휘두른다.

휘두르는 손톱은 날카로우며 단단했다.

거기에 라쿠인의 기예가 더해져 어지간한 검사보다 더 강력한 검술을 자랑했다.

이러한 라쿠인의 약점은 의외로 연약한 몸이었다.

겉으론 두꺼워 보이는 근육을 지녔지만, 그 방어력은 매우 낮았다.

때문에 검 같은 손톱만 파훼하고, 공격을 하면 쉽게 죽일 수 있는 몬스터.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비늘! 안 뚫려요!”

“X랄 맞게 변질됐네.”

변종 특성 중 가장 많은 두터운 비늘.

그 비늘이 라쿠인의 약점을 상쇄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늘은 단순 물리 방어력에만 국한돼 있지 않았다.

후우욱-!

이진성의 불꽃놀이도 버텨냈다.

마력 깃든 화염을 쉽게 막아냈다.

물리도 속성도 먹히지 않는 상태.

본래 30등급 정도로 쳐지는 몬스터가, 변종이 되니 40등급 이상의 전력을 보였다.

결국 약점을 찾아내는 건 지한휘였다.

“비켜 봐. 이런 경우는 이거에 약해. 악령의 절규.”

“나도 해야지. 악령의 군대여, 부름에 답하라!”

[당신은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를 사용했다.]

끼야아아악-!

그의 손으로부터 악령들이 뻗어 나온다.

그러한 악령을 무장시키는 건, 시기적절하게 기술을 사용한 이사야였다.

순식간에 강화된 악령은 변종 라쿠인에게 쏘아졌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악령을 보고 라쿠인이 반응했다.

-크헝!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크릉……?

그러나 손톱은 허망하게 악령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악령에게 물리력은 통하지 않았으니까!

-키키키.

악령들은 그런 라쿠인을 비웃으며, 그대로 놈의 몸체에 깃들었다.

-크륵…… 크르륵…….

그때부터 라쿠인이 기이한 행동을 취했다.

눈이 시뻘게졌다.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크륵!

-크럭…….

그러더니 옆에 있던 같은 라쿠인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동족의 배신에 당황하는 라쿠인.

그러나 반응은 빨랐다.

콰앙.

한 손을 들어 라쿠인의 공격을 막아냈으니까.

설사 공격에 직격당해도 상관없었다.

-크르륵…….

그들의 무기인 날카로운 손톱은 비늘을 뚫어 내지 못했다.

공격이 상쇄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라쿠인은 머리도 썼다.

재차 몸을 움직이며 악령에 사로잡힌 라쿠인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지능적으로 피한 것이다.

“저 자식들 변종이 되면서 지능도 높아진 건가. 저거, 소용없는 거 아닙니까?”

“있어 봐.”

이진성의 말대로다.

악령에 쓰인 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저들끼리 자멸하기엔 그 서로를 뚫을 수 없는 창과 방패였으니까.

그나마도 지능적으로 피해 버리니 전혀 소용이 없어 보일 수밖에.

그러나.

악령이 무서운 건 처음부터 서로 간의 자멸을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크……롹?!

처음 악령에 쓰인 라쿠인.

어느 순간이었다.

녀석이 제 몸을 자해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몸을 공격했다.

비늘에 의해 그게 뚫리지 않자, 놈은 스스로 입을 벌렸다.

그러곤 강화되지 않은 입과 눈을 스스로 찔렀다.

날카로운 손톱이 머리를 꿰뚫는다.

변질되더라도 뇌가 뚫려 버리면 끝이었다.

쿠우웅.

거대한 몸체가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

“……어?”

“미, 미친……저게 대체 뭐야.”

그걸 지켜보던 팀원들이 놀란 눈을 한다.

그때 그들 귀에 들려 오는 건 나지막한 지한휘의 한마디였다.

“저게 악령에 먹혀 버린 거다.”

그 한마디가,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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