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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88화 (88/206)

제88화

그와 그녀의 거리가 단 일보로 다시 가까워졌다.

“……아.”

“그러길래 꺼지라고 했잖아.”

가까워진 그의 눈빛은 여전했다.

‘완전한 실패야…….’

그제야 그녀는 이전과 다른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벌인 모든 매혹.

지금까지 해낸 모든 일을 제쳐두고 마력을 소모했음에도 실패를 해 버렸다.

이는 그녀로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모를 전생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실패였다.

누굴 매혹할지 선택하는 쪽은 언제나 그녀였고.

다시 매혹을 풀어 준다 하더라도 그건 필요에 따른 일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기에 전생의 그녀도, 지금의 그녀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혹시 그거 알아? 네가 사용한 매혹이라고 해 봐야…… 천족이 사용하는 거에 비하면 하급 능력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

“그게 무슨 말이야.”

“뭔 말이냐면, 이제 내가 실패의 대가를 받을 때라는 거야. 바로 지금부터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읏…….”

그녀가 모르는 그것은 매혹에 실패했을 때의 반작용.

모든 정신계 능력이 그러하듯, 실패 시 그 반작용을 받는 건 시전자란 거였다.

아니라고 거절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지닌 가호 : 매혹의 조종자가 상대에 의해 완전히 파훼됐다.]

[파훼된 매혹의 힘이 당신에게 역류한다.]

“읏…….”

거절 할 새도 없었다.

그녀가 지한휘에게 쏟아부었던 모든 마력이, 다시 그녀에게로 들이닥치고 있었으니까.

“아…… 안 돼!”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판정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잘 가고.”

그녀는 자기 자신의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가호 : 매혹의 조종자의 매혹에 당했다.]

깊은 암전이 그녀에게로 찾아왔다.

* * *

전생에서 나는 나헤나가 매혹을 당하면 어떻게 나오나 했다.

많은 자들을 매혹해서 제 세계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여왕처럼 굴던 그녀다.

태생부터 남을 다스리기 위해 태어난 듯 구는 그녀인데.

“…….”

매혹을 당하고 나니, 그 누구보다 수줍어한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고, 양손은 꼼지락댄다.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모습인데?’

이번 생에서 나헤나를 보는 건 처음이다마는, 전생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나로선 의외의 모습이다.

전생에 동료들이 보면 놀랄지도.

퍽이나 재밌긴 한데.

“자, 이걸 어떻게 한다.”

-뭐 재밌는 거라도 시키지 그러느냐? 이사야라면 흑역사라도 만들어 줄 것이다.

“고작해야 그런 걸로 소모하기엔 아깝지.”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 시간은 점차 지나가고 있는데.

“그래. 그게 문제지.”

아쉽게도 이 매혹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이건 당연한 거다.

나는 능력의 동력원으로 영력을 사용한다.

매혹의 마력은 쓸 줄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나헤나에 대한 유혹을 계속 지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헤나에게 역류해 돌아간 마력.

그 마력이 전부 소모되는 순간 매혹은 풀린다.

잘해야 몇 분, 길어야 십 분 정도가 그녀를 매혹할 수 있는 한계다.

‘차라리 천사는 상급 능력이라, 한 번 사용하면 필요 마력도 없어서 평생 써먹을 수 있는데 말이지.’

아쉬운 노릇.

하지만 이 시간 가운데 그녀로부터 뽑아낼 건 최고로 뽑아내야 했다.

그게 무엇일까.

“으음…….”

이곳으로 보낸 거야 누군지 뻔하고.

그녀가 지닌 재산을 달라고 해봤자다.

재산을 받기도 전에 타임 아웃일 거다.

자, 어떻게 한다?

이왕이면 평생 우려먹고 싶은데.

한참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오…… 딱 알맞은 게 있었네?”

-무엇이더냐?

“이게 있잖아.”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림자 주머니 아래 보관해 놓았던 물건 하나.

스스스-

겉으로 봐선 평범한 목걸이.

-……그건?

“예속의 목걸이지.”

그러나 제 손으로 차게 되면, 상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예속의 목걸이다.

제 의지로 따르게 하는 나헤나의 매혹과 달리, 목숨을 인질로 삼아 명령을 내리는 물건일 따름이다만.

지금으로선 이거만 한 게 또 없다.

“나헤나. 이걸 차.”

“응! 이렇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가 건네준 목걸이를 찼다.

찰칵.

이것으로 끝이었다.

* * *

몇 분의 시간이 지나가고.

모든 마력이 사라지자마자 그녀는 제 의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제 목에서 작은 이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알수 없는 물건을 오래 둘 이유가 없었다.

풀어내려 하는 순간, 잊고 있던 지한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풀려고 하지 마. 그러다 죽어.”

단호한 목소리.

그녀는 순간, 섬찟한 공포를 느끼며 물었다.

“이, 이게…… 뭐야?”

“예속의 목걸이.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잘 알지?”

“아…….”

그 공포는 실체화됐다.

예속의 목걸이라니.

제 손으로 차 버리면 그 자체로 끝이나 다름없는 지독한 물건.

목숨을 버리지 않고서야 벗어날 수 없는 물건이지 않나.

그제야 나헤나는 완전히 상황 파악을 했다.

자신이 역으로 매혹에 당했을 때.

그때를 노리고 상대는 목걸이를 차게 한 거다.

제 손으로.

예속의 목걸이가 지닌 조건은 단 하나.

제 스스로 목걸이를 차야 한다는 거니까.

그 조건이 완료되는 순간, 그 누구도 이건 풀어낼 수 없게 된다.

그제야 그녀는 실감했다.

‘……완전히 당해 버렸어.’

언제나 당하게 하는 쪽은 자신이었는데. 이번은 반대라는걸.

이건 생각지도 못한 방향이었다.

순간 그녀에게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 나를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거야?”

“적어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쪽은 아닐걸?”

“내가 뭘 생각했는데?”

“뭐, 아니면 됐고.”

반대로 지한휘 쪽은 여유만만이었다.

그래. 이미 승리를 했단 거겠지.

하지만 너무 쉽게 패배를 자인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패배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자신은 정신까지 예속당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경고하듯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면 차라리 죽어 버릴 거야.”

“예상한 말이야. 너는 실제로 그럴 녀석이고.”

다행히 그 경고는 먹힌 듯 보인다.

왜인지 지한휘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겉모습과 달리 부러질지언정, 휘어지는 꼴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그녀 자신의 성격을 말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불리한 상황에도, 억지로 요구했다.

풀어 달라고.

“그걸 알면 어서 풀어 줘. 나를 상대로 시킬 일을 별로 없을 거니까.”

“무리야. 이대로 풀어 주면 네가 무슨 깽판을 칠지 모르거든.”

그러나 답은 거절.

그럼 대체 이 자는 자신을 상대로 어떻게 하자는 걸까.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평생 옆에서 데리고 다니려고?”

“그건 더 무리지! 너 같은 걸 어떻게 평생 데리고 다니냐?”

“윽…….”

왜인지 자존심이 상하지만. 자신을 데리고 다니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대체 자신으로부터 뭘 요구하고 싶은 걸까.

다행히 그 답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만난 게 웃기긴 하지만, 지금부터 제안을 넣을 거야.”

“……나는 무슨 제안이든, 이 상태로는 받을 생각이 없는데?”

“들어 봐. 너에게도 꽤 재밌는 일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우선은 말이지…….”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제안을 설명했다.

무조건 거절하려 했던 그 제안.

들으면 들을수록 달라졌다.

‘이거, 꽤 재미있잖아?’

그것은 지한휘의 말대로 그녀에게도 꽤 재미난 일이었으니까.

자신이 지금, 러시아로 돌아가 그의 말대로만 행하는 거.

그녀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지한휘, 네가 말한 대로 행하면 내게 너무 큰 이득이지 않아?”

“그러겠지. 대신에 러시아는 약간 혼란스러워지겠지만 말이야. 겸사겸사 중국도 시끄러워지겠지.”

그 대신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는 혼란스러워질 거다.

그런데 그럼 어떤가.

러시아나 중국이나 어차피 국민이라고 개개인을 챙겨 주지는 않는 나라인데.

자신이 하나가 더해져서 엉망이 된다고 해서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였다.

다만 궁금하기는 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그때가 돼서 그녀의 힘은 꽤 강해질 거였다.

예속의 목걸이가 걸리긴 한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몇 가지 수단을 사용하면 그조차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시키다니.

궁금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때 가서 네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쩌려고?”

“뭐, 그건 그때야. 사실 혼란스러워진다고 해봐야 피해 보는 건 기득권이지. 국민들은 딱히 흔들릴 것도 아니잖아. 어때? 내 생각이? 꽤 매력적이지 않아?”

“재밌네.”

아쉽게도 목적이 뭔지에 대한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근데 그러면 또 어떤가.

그의 계획대로만 따라주면, 그녀의 구미에 딱 맞는 일들을 할 수 있을 텐데.

자신도 있었다.

‘지한휘는 실패했어도…… 다른 자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자신의 매혹이 깨어진 건 이번 한 번뿐이니까.

이다음의 실패는…… 없었다.

“좋아. 그럼 네 말대로 움직여 볼게.”

“그래, 그거지!”

그녀의 확답에 지한휘는 그제야 만족스레 웃어 보였다.

짜증스러움이 사라지고 나온 웃음.

그건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환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아쉽네.’

나헤나로선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지만 어찌할까.

그를 억지로 웃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 바로 가? 정말 이걸로?”

“그래. 그걸로 내 명령은 끝이야.”

“……그래. 끝이지.”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떠날 때였다.

“그럼 간다.”

나헤나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한휘에게 한 번 지어 보이고는.

샤아아아-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 마력을 이용해 몸을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갔네.”

-완전히 사라졌느니라.

지한휘의 말대로, 그 주변에 그녀의 인기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것은 때아닌 해프닝이었다.

암살자의 공격 뒤로 일어난, 생각지 못한 일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작은 일이라고 하기엔 그 여파는 절대 작지 않을 거였다.

-그런 작전은 언제 또 구상했느냐? 지독하더구나. 그 정도면 러시아는 꽤 흔들릴 것이다.

“아주 예전에. 이사야가 짜 놓은 거야. 미래 길드를 잡아 먹는 게 실패하면, 러시아로라도 돌아가서 세력을 쌓으려고 짜둔 작전 중 하나거든.”

-허.

“지금에 와선 필요 없는 걸 써먹었을 뿐이야. 이렇게 써먹을 줄은 나도 몰랐지만 말이야.”

-완벽한 재활용이로구나.

“그럼 셈이지.”

그 계획. 무려 이사야와 함께 짜둔 러시아 전복 계획 중 하나였으니까.

한국이 안 되면 러시아.

그곳에서 세력을 쌓으려 했던 그 방식을 읊어 줬을 뿐이었다.

세세한 부분은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상관없다.

‘나헤나 정도 머리를 굴리는 애면 충분히 하고도 남지.’

자신에게 실패했을지언정, 나헤나가 가진 능력은 진짜니까.

설사 그녀의 능력이 부족해도, 다른 자를 매혹해 이용할 테니.

작전의 성공률은 결코 낮지 않았다.

지한휘로선 직접 가서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갈 수는 없었다.

그도 여기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중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하나.

“어쭈. 그사이 두 놈이나 사라졌네?”

처음 지한휘를 이곳까지 유인시킨 암살자들.

광신도임이 분명한 그들의 영혼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내는 거였다.

-……신에게로 가야 하거늘!

“이야기 좀 하고 꺼지도록 하자.”

그리고 정보를 얻은 이다음은 꽤 재미난 일이 벌어질 터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정보를 캐내고, 또 캐낼수록 지한휘의 몸이 슬슬 달아오르고 있었으니까.

&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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