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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87화 (87/206)

제87화

뭐야?

이 와중에 박수 소리라니.

숲 곳곳은 피 칠갑이 되어 있고, 암살자 시체들이 널려있는 이 상황.

여기에 박수는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다.

난장판이라 이거지.

거기다 나로선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씁…… 대다수가 빠져나갔네?’

내가 쓸어버린 암살자 수가 80명가량.

그중에 남은 영혼들은 고작해야 스물이다.

다른 영혼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뻔하였다.

광신도와 계약을 맺은 외신이 데려갔겠지.

그나마 스물도 나니까 겨우 남긴 거다.

영혼에 대한 내 강력한 흡입력이 아니었더라면, 이도 남기지 못했을 거다.

‘앞으로는 더 남기기 힘들 거야. 내가 영혼 술사인 걸 외신이고 성좌고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남은 스물이라도 정보를 뜯어내야지 하는 참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박수 소리라.

내겐 방해였다.

열불이 나는 게 당연하다.

자연스레 입으로 내뱉어지는 내 목소리도 호의적이지 못했다.

“뭐냐? 이 상황에 왜 박수를 쳐?”

“대단한 광경을 봤으니까요.”

“하…… 모습을 숨길 생각도 없나 보네.”

“제가 왜 숨기겠어요.”

그런데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의 목소리는 꽤 호의적이었다.

그러며 검은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그 실루엣이 꽤 인상적이긴 했다.

매끄러이 잘 단련된 육체를 지닌 게 분명하였으니까.

‘근력 위주보다는 민첩 위주로 단련된 육체야.’

드러난 선은 꽤 가냘팠다.

반대로 그 자신감은 얄팍하긴커녕, 강하게 느껴질 정도다.

상대는 그 자신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지한휘 헌터. 처음 뵙겠어요. 나헤나라고 해요.”

* * *

달빛 아래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곤, 가슴이 떨릴 법한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신은 가호 : 상급 저항을 통해 상대의 은밀한 공격을 막아내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상급 저항의 경험치가 상승하고 있다.]

진짜 가슴 떨리게 하는 공격이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은 그 공격을 무시했다.

당하지 않을 테니까.

나헤나는 그것도 모르는 채로, 점차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 찬 얼굴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나헤나라…… 당신이 여길 왜 있지?”

“왜 있겠어요? 당신을 보려고 온 거죠.”

“나 때문이라…….”

답은 쉽게 나왔다.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 때문이겠지.

실제로 그녀는 계속해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신은 가호 : 상급 저항을 통해서…….]

계속해 눈을 스쳐 지나가는 알림이 그 증거.

그녀는 자신이 실패하리라곤 생각도 않는 듯했다.

“당신이 아니면 이 오지까지 올 이유가 있겠어요?”

“잘도 친한 척하는군.”

“지금부터 친해질 거니까요.”

나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눈에 비친 자신감이 커져 갔다.

그럴수록 은밀한 공격은 계속해 강해졌다.

실제로 강력한 공격이기는 했다.

이 녀석이 지닌 능력은 매혹.

그것도 특별한 호칭이 붙는 매혹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매혹은 조건만 맞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유혹을 해냈다.

그 조건도 어렵지 않다.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같이 있기만 하면 된다니…… 웃기지도 않는 노릇이지.’

오래 있을수록.

그리고 가까이 있을수록 매혹에 성공할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니 뻔하다.

내가 암살자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때를 기회로 봤을 거다.

멀리서 자리를 지킨 채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며 조건을 채웠겠지.

전투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면서.

저런 식으로 몸을 숨기고 적을 매혹하는 거.

나헤나가 흔히 펼치는 작전이었다.

‘효율적이긴 해. 어부지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여전하네.’

내가 이걸 어떻게 아는지는 뻔하지 않나.

전생에도 이 녀석을 봤어서였다.

그때도 이 녀석은 이 능력을 이용해 온갖 일을 벌여댔다.

“친해지면 뭐 어쩌려고?”

“글쎄요. 그건 그때 가 봐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후후.”

저 미소에 넘어간 게 한둘이었던가.

그때도 못내 신경이 쓰이는 게 나헤나였다.

-재밌는 능력이로구나.

‘내가 봐도 그래.’

-이 정도면 어지간한 마족이라도 넘어가겠어.

‘그 정도란 말이지?’

-그래.

이 녀석.

빌런은 아니다.

제 편의를 위해서 그에 비슷한 일도 벌일 뿐이지.

아슬아슬하게 선은 넘지 않는데, 그게 또 눈에 안 거슬리는 건 아닌 수준의 녀석이다.

내 기억으로 처음엔 러시아 정부를 위해 움직였다가, 나중에는 제 세력을 꾸렸던가.

‘지금은 러시아 정부랑 일할 시기겠네. 그럼 러시아 정부가 시켜서 온 건가.’

제 세력을 이용해 온갖 이득을 얻어냈고.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에서도 제 수족들을 이용해 여왕 노릇을 해냈었다.

아마, 지금도 러시아 정부는 모르는 제 세력을 은밀히 키우고 있을 거였다.

매혹을 통해서.

그나마 이 녀석에게 줄 만한 면죄부라면 하나.

막판에 인류를 위해 싸우는 때 힘을 보탰다는 거다.

최후의 칠 인을 같이 도왔거든.

때문에 나로선 귀찮음은 있어도 악의는 없었는데.

[당신은 가호 : 상급 저항을 통해서…….]

계속 이런 식으로 공격이 들어온다면 나도 곤란하단 말이지.

공격을 하면 그게 적이고.

적에게 옛정이고 뭐고를 보여주기에는 이쪽도 닳을 만큼 닳은 녀석이었으니까.

당해 주는 거도 여기까지.

몇 번의 공격을 별말 없이 버텨내 준 거면 충분하다.

이 이상 선을 넘으면 처리해야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수작은 이제 그만 부리고, 떠나지그래?”

“떠나요? 제가 당신을 두고 왜 떠나겠어요?”

“하씨…….”

“앞으로 잘할 우리인데, 그런 태도는 좋지 못해요. 인상도 펴요. 그건 마음에 안 드니까.”

문제는 경고를 해 주는데도 먹히질 않는다는 거다.

하여간에 마이 페이스인 자식이다.

지를 보고 표정이 안 썩으면 이상한가?

하기는.

걸어 다니면서도 매혹을 걸고 다니는데, 세상 모든 게 다 자신에게 호의적이었겠지.

“그만 친한 척해.”

“에이. 너무 튕기시네요. 마음에 들었는데도 이런 식으로 구는 건 남자든 여자든 인기가 없다구요. 그러지 말고…….”

그 호의를 믿는 건지, 그녀는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며 손을 잡으려 했다.

터치를 통해서, 유혹을 더 강화시키려는 생각이겠지.

현재는 내가 유혹이 먹히긴 먹혔는데, 완전히 넘어온 건 아닌 거 같으니까 말이야.

근데 어쩌나.

타악.

나는 그 손을 쳐냈다.

그리고 밀어내기까지 했다.

“……읏! 어떻게?”

“그만 꺼지라니까는.”

더 받아주기가 고역이었으니까.

마지막 경고를 했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거야.”

어서 떠나라고.

진심을 담아 쏘아보는 나였다.

그런 내 표정에서 실패를 읽어 들인 걸까.

그제야 그녀의 표정도 나와 같이 구겨진다.

“후회는 무슨…… 당신 설마?”

“그래. 네 녀석은 나한테 전혀 안 먹히니까 어서 꺼지란 말이지.”

“이익!”

이 정도 경고라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그래도 최후의 공격대에 속한 녀석이었으니.

한 번은 봐주는 거였다.

해서, 나는 자존심 상해하는 나헤나에게 어서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훠이- 훠이- 저 멀리로 가버리라고.

“그러니 어서 순순히 물러나는 게 좋을…… 후.”

“감히! 당신이!”

그게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하기라도 해 버린 걸까.

‘하여간 말로 하면 듣는 자식들이 없어요.’

우우우웅-!

거대한 기운이 나를 향해 덮쳐들고 있었다.

* * *

‘감히…… 나를!’

이능력을 얻기 전에도 누구든 넘겨낼 자신이 있는 나헤나였다.

이능력을 얻은 이후는 더욱 그 자신감이 넘쳤다.

그 누구든 자신의 매혹을 이겨낸 자는 없었으니까.

[가호 : 매혹의 조종자]

이는 자신을 향해서 주어진 최상의 능력이자, 선물.

앞으로 있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였다.

점차 많은 자를 매혹해 낼수록.

그 자신감은 커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혹의 실패는 점차 줄어 들어갔고.

매혹된 자들은 나헤나를 위해서 뭐든 하려 노력했다.

그것이 설사 무리인 일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웃음 한 번을 대가로 뭐든 할 자가 넘쳐났으니까.

이번도 그럴 거라 여겼다.

루키 정도.

아니 이제 랭커에 다가간다는 지한휘.

그 정도 수준을 매혹시키는 거 따위.

미래 길드의 방해로 만남 자체가 어려웠을 뿐이다.

만나기만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고 여겼다.

단번에 매혹으로 넘어가지 않아도 무슨 상관인가.

점차 가까워지고.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넘어올 확률은 높아질 텐데.

처음 그녀가 지한휘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매혹은 끝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덫에 걸린 거라 여겼다.

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조여오는 거미줄 같은 덫에!

그 덫에 거미는 자신이고.

계속해 버텨 내다, 결국 나헤나를 갈구해야 하는 건 지한휘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

“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고오오오-!

저자는 무너지지 않고 있는 걸까.

[당신은 가호 : 매혹의 조종자가 지닌 마력을 대량으로 소모하고 있다.]

지닌 매혹의 마력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상대는 전혀 변하질 않고 있었다.

저 눈!

자신을 한심스레 바라보는 듯 저 눈이 바뀌질 않는다.

‘대체 왜!’

나헤나에게 있어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저자가 뭐라고 버텨낸단 말인가.

그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선가.

[주의.]

[이 이상 마력을 소모할 경우, 이미 매혹당한 자들의 매혹이 풀릴 수 있다.]

‘상관없어. 다시 매혹하면 돼.’

계속해 떠오르는 알림을 무시하였다.

차라리 지금 떠나는 것이 최고의 선택일 텐데.

그녀는 끝을 보고자 마음 먹고 있었다.

언제든. 그게 누구든.

덫을 놓는 자는 자신이 되어야 하고, 덫에 걸리는 건 타인이어야만 한다는 그녀만의 믿음.

그것을 지켜내야 했으니까!

[주의.]

[당신의 가호 : 매혹의 조종자가 지닌 마력이 끝에 다다르고 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이능력을 얻고 처음으로.

자신이 지닌 모든 매혹의 마력을 지한휘에게로 쏟아 부었다.

자신의 덫에 그가 더 꽁꽁 묶이도록.

절대 벗어날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은 가호 : 매혹의 조종자가 지닌 마력을 전부 소모하였다.]

그리하여 온 힘을 다했다.

모든 마력을 소모시켰다.

그 대상인 지한휘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됐어.’

그제야 그녀는 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매혹이 먹혔노라고.

뒷일이야 어떻든, 목표였던 지한휘를 상대로 성공했다고.

그리 여겼다.

“정말 처음으로 애를 먹이는 상대였다니까. 지한휘.”

“…….”

“이제부터 제대로 부려 먹어 줄 테니 각오하라구.”

“…….”

그녀의 말에도 지한휘의 대꾸는 없었다.

더 반응이 없다.

그녀는 그게 되레 마음에 들었다.

자신에게 넘어간 신호라 여겼다.

이제 그 신호를 확실히 확인해 보면 되겠지.

다가가서 얼굴을 한 번 쓸어 주면 몸 둘 바를 모를 거였다.

그때부터는 다른 녀석들처럼, 자신을 위해서 뭐든 해내는 자가 될 거였다.

지한휘는 이미 자신의 거미줄에 걸린 게 분명했다.

‘역시 어느 녀석이든 다 똑같다니까.’

그 확인을 위해.

자신이 맞았다는 확신을 위해서, 그녀는 한 걸음 더 지한휘에게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왜지.

“……언제? 으읏!”

거미줄에 걸린 건, 그가 아닌 자신이었다.

대체 언제였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스-

어느새 그녀의 발아래로부터 뻗어 나온 짙은 그림자가 자신을 묶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주인이 누군지 그녀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차라리 꺼지라 했잖아.”

“……지한휘?”

그 주인.

자신의 매혹에 먹혀들었을, 아니 먹혔어야만 할 지한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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