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이거 뭐냐.
토벌전에서 몬스터를 쓸어버릴수록 이득이었다.
현재의 위협을 없앨 뿐만 아니라, 미래의 위협도 같이 없애는 거니까.
막말로 이 변종들 중에 진화하는 개체라도 나와 봐라.
그때 가선 개미 인간 못지않은 재앙이 들이닥칠 거다.
그걸 싸그리 지워 버리는데 손해가 있을 리 없다.
그러기에 몬스터들이 지닌 미래의 가능성을 학살로 지워갔다.
그러며 겸사겸사 작은 이득도 챙겼다.
애들을 주웠다.
“너 내 편이 돼라.”
딱 이 한 마디.
이제는 우스갯소리로도 유명해진 이 말 하나면 충분했다.
어지간한 헌터는 넘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내 주가는 최고를 달리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곳이 미래 길드니까.
그러니 스카우트가 쉽게 가능했다.
그렇게 주워온 녀석이 대략 스물두 명.
모두 미래에선 내 눈에 띈 놈들이다.
‘뭐…… 다 강해지진 않겠지만.’
변수란 게 있기는 하다.
그때의 녀석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회귀를 했더라도, 내가 이들의 모든 개인사를 알 순 없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계기가 없이는 강해지지 않은 녀석들도 있을 거란 이야기다.
과거의 전력을 전부 지닐 순 없단 이야기.
그렇다 해도, 가능성은 충분한 녀석들이지 않나.
그 가능성을 지닌 녀석들을 주워갈 수 있다는 거만으로도, 충분하다.
꽤 만족스러운 토벌의 나날이었다.
매니저인 한시영은 덕분에 일이 늘어서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말이지.
근데 이게 죽을 죄는 아니지 않나.
“이런 저라도 팀에만 받아주신다면…….”
“잠깐. 쉿!”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심상치 않다.
토벌전을 벌이면서, 등급 외로 강해지고 있는 나다.
그런 나로서도 느끼기 힘들 정도의 인기척들이 슬그머니 느껴지고 있었다.
익숙한 움직임이다.
‘암살자다.’
팀에 있는 이진아와 비슷한 기척들이니까.
암살자 특유의 인기척이 내 신경을 간지럽힌다.
저것들.
일부러 인기척을 드러낸 거다.
그들이 노리는 건, 나와 달리 아직까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헌터들.
그들이 막사를 치고 있는 지금.
바로 몇 시간전까지 토벌을 벌이던 내 헌터들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주 은밀한 살기를.
이러한 살기를 드러내면서도 바로 공격을 하지 않는다?
이건 내게 따로 보내는 신호였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 있어 봐.”
나는 그 신호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제 막 넘어 오르는 유망주를 두고 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휘!”
“너도 느꼈냐?”
“지독한 살기야. 근데 이거, 그거지?”
“맞아 그거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 이사야도 그런 내게 합류했다.
러시아에서 산전수전 겪은 그녀다.
이 살기가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안다.
그러기에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이 뭔지 알았다.
“그럼 나는 빠져?”
“어. 우선은 애들을 지켜줘.”
“아쉽네. 그럼 난 뒤로 갈게.”
뒤로 빠져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주는 거.
그게 이 신호를 읽어 들인 그녀가 할 일이다.
이 뒤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이사야는 잘 움직이겠지.
쉬고 있는 팀원들에게 은밀히 악령부터 보낼 거다.
그러곤 미리 약속된 신호를 악령이 사용하겠지.
주의를 기울이고,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니 언제든 대비하라는 신호를!
나만큼이나 성장한 팀원들이다.
신호만 이해하더라도 뒷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였다.
이제 남은 건 이 신호를 해석하고 들어간 내가 할 일뿐이다.
‘잘도 이런단 말이지. 어쩔 수 없이 알고도 당해 줘야겠지.’
이 은밀한 살기. 움직임.
그 신호가 의미하는 건 뻔하다.
오라는 거다.
네가 아닌 다른 헌터들이, 살기를 느끼기도 전에 죽는 걸 보기 싫다면.
먼저 느낀 네가 자신들을 막으러 오란 거다.
웃기지도 않는 짓인데.
하지만 이만큼이나 효과적인 유인 신호는 또 없다.
아무리 나라도,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이 죽어 나가는 걸 즐기지는 않으니까.
‘그럼 가 볼까.’
입에서 비어져 나오는 쓴웃음을 삼키며.
스스스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발걸음 사용하였다.]
[당신의 움직임이 은밀해진다.]
나는 그간의 던전 행으로 새로 얻은 그림자 발걸음을 사용했다.
그림자 발걸음의 효과는 암살자만큼이나 은밀히 움직이게 하는 것.
기척을 죽인 채, 나는 살기가 치솟고 있는 곳을 향해 움직여 갔다.
* * *
그곳은 막사로부터 한참 멀어진 숲 안이었다.
야간임에도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척은 없었다.
변수를 없애기 위해서 미리 처리를 했단 거겠지.
그런 내가 들어서자 살기는 사방에서 일어났다.
주변이 전부 살기다.
‘숙련된 녀석들이네.’
이건 일부러 살기를 드러낸 거다.
바다 안에서, 원하는 한 움큼의 물을 퍼내기가 힘든 거처럼.
살기의 바다를 만들어 내면, 그 안에 은밀히 움직이는 암살자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에 살기를 뿜어낸 거겠지.
과연 생각대로다.
뿜어진 살기 사이에서, 은밀한 공격이 다가온다.
터어엉-!
“시작부터 장난질이냐.”
나는 손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찌릿하게 느껴지는 공격의 여파!
[당신은 기술 : 영력 방어막을 둘러 신체를 보호하였다.]
[당신의 가호 : 상급 저항이 은밀히 들어온 독성을 막아내었다.]
과연, 은밀한 공격 한 번에 상급 저항이 일어날 정도의 독이라.
일류 암살자들이나 보일 만한 행태다.
내가 그것을 막아냈음에도, 적 암살자들은 신음 하나 내뱉지 않았다.
“…….”
“…….”
오로지 침묵뿐이다.
이쯤은 내가 쉽게 막아낼 거라 예상한 거다.
피차, 처음 보는 사이긴 하다만.
‘죽여야 할 대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적은 암살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
나는 그런 암살자를 상대로 수십 번은 살아남은 녀석이다.
아무런 일면식이 없이도, 서로를 이해한단 의미.
콰아아앙! 쾅!
그러한 이해 속에서 상당한 공격들이 내게 쏘아져 왔다.
저 멀리선 암기가.
가까이서는 은밀한 채찍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양손에 검을 들고 몸을 들이미는 자도 있었다.
강력한 연계 공격의 연속!
‘대응 못 할 건 아냐.’
나는 침착하게 그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당신은 영력을 나누었다.]
[당신이 나눈 영력이 여러 갈래로 움직인다.]
순간적으로 공중에 영력을 일으켰다.
피어오른 영력이 원하는 건 암기의 요격!
타아앙. 탕.
내게 다가오던 암기들을, 영력의 벽들이 막는다.
쒜엑-
동시에 은밀한 채찍엔 가득 사슬을 던졌다.
팔에 둘러져 있다 길게 늘어난 사슬은, 뱀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채찍도 그에 대응하듯, 몸을 비틀었다만.
‘내가 더 빠르지.’
내가 손에 쥔 건 하데스의 사슬이다.
악마를 집어삼키기까지 한 하데스의 사슬.
알 수 없을 가치를 지닌 이 사슬은 무구이기 전에 이미 살아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투우웅.
적의 채찍을 비틀고, 그 채찍의 주인을 찾아 스스로 몸을 늘리기 시작한다.
그러한 사슬을 위해서.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하데스의 사슬에 주입하였다.]
나는 영력을 사용했다.
토벌전을 통해 수천, 수만의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한 나다.
그러기에 사슬에 투입된 영력은 내가 지닌 것 중 족히 일부밖에는 되지 않다만.
콰아아아앙!
“……컥!”
그 일부만으로도 채찍을 찢어발기고.
그 주인을 터트려 버리는 데는 충분했다.
[하데스의 사슬이 영혼을 흡수하였다.]
[원령이 당신을 인지한다.]
[원령이 당신을 저주한다.]
[당신은 저주받았다.]
적이 죽었다.
그에 따라 벌어지는 저주의 세례!
‘이제 이런 걸론 고통도 안 느끼지.’
나는 그조차 우습게 여기며, 남은 하나를 향해 대응했다.
내게 양손 가득 검을 내지르고 달려드는 암살자를 향해서였다.
그 암살자를 향해 뻗어 내는 내 두 손.
스스슷-
그 두 손엔 어느샌가 검은 날을 지닌 단검이 세워져 있었다.
단검 형태의 그것들은.
-크르륵…….
음울한 울음을 내뱉었다.
무리도 아니다.
이것들은.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을 사용하였다.]
본래는 그림자를 머금고 날뛰었어야 할, 짐승을 단검으로 빚어낸 것이니까.
타아아앙-!
그 두 개의 짐승을 손에 쥐고서, 단검을 내뻗어 오는 적을 향해 휘두른다.
각자 양손에 꼬나쥔 단검을 휘둘렀다.
“……!”
단 몇 초.
족히 수십 합이 오고 간다.
네 개의 단검이 빚어내는 충돌들은 한 편의 춤과 같았다.
밀고 당기기며 상대의 균형을 만들어 가는 게 춤이라던가.
터어엉!
그 균형은 금방 깨져 버렸다.
‘어림도 없지.’
한 수, 한 수가 오고 갈 때마다 언제고 이득을 보는 건 나였으니까.
적은 단지 두 검을 휘둘렀을 뿐이지만.
이쪽은 두 마리의 짐승을 휘두른 거였다.
내 손에 있는 그림자 짐승의 이빨은 한없이 날카로웠다.
말 그대로다.
내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림자 짐승은 계속해 날을 키워가며 녹이 슬지 않는다.
반대로.
방금 전까지 날카로웠어야 할 적의 검은 계속해 내 그림자에 먹히고 있었으니.
“……켁.”
그 두 날이 완전히 녹이 슬고.
그 주인을 잡아 먹기까지는 단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거만으로 이 한바탕 소동이 그것으로 끝이 날 리가 있겠는가.
“…….”
“…….”
적인 수십의 암살자들.
그들은 제 목숨도 상관치 않는 듯, 쉼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내게 틈을 만들어 내려 했다.
틈이 없다면, 벽인 나 자체를 부술 듯 공격해 왔다.
터어엉. 탕.
초가 지날 때마다 내 손은 바삐 휘둘러져야 했다.
몸에 두른 영력.
적의 공격에 얇게 저며지는 그것들.
다시 영력을 일으켜 부풀려야 했다.
그러며 사슬을 조율하고.
“다 뒤지라지. 영력 폭발.”
[당신은 기술 : 영력 폭발을 사용하였다.]
[당신은 기술 : 영력 구체화를 사용하였다.]
[당신은 가호 : 상급 저항을 통해 상대의 정신계 공격에 대응했다.]
그 가운데 끊임없이 내 힘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많은.
또 얼마나 더 이러한 충돌을 빚어내야만, 적의 공격이 사그라들 것인가.
그 끝을 모른 채로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많군, 많아.’
어느새 내가 죽인 암살자가 서른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다시 서른이 넘는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을 보자는 걸까.
하기는 처음부터 날 죽이자고 달려든 자들이다.
끝을 보기 위한 건 당연하겠지.
차르르륵-
“켁…….”
처음에 그런 그들을 상대하며, 환멸을 느꼈다.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잘도 보내는구나.’
내게 암살자를 보낸 자들.
그들이 다름 아닌 같은 토벌대에 속한 자들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토벌에 따른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게 나이지 않은가.
많은 성과를 얻었고, 사체들을 통해 많은 수확도 얻었다.
그를 막고자 암살자를 보내는 거?
‘무리도 아니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리수도 아니다.
수백, 수천억. 어쩌면 조 단위의 돈이 돌아가는 게 토벌전이다.
돈이 돌면 사람이 늘기 마련이지만, 반대로 그를 독차지하는 소수가 날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환멸을 느낀 거다.
이 판국에 나를 죽이자고 나선 게 아군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행이랄까.
저들은 길드 따위가 보낸 게 아니었다.
저들을 보낸 자들.
“감히 광신도 새끼들이…… 감히 날 노려?”
광신도들이었다.
“키키키킥…….”
“죽어. 죽어! 알면 죽으라고!”
자신들의 정체가 까발려지자, 놈들은 가면을 벗어던졌다.
어디서 받았을지 모를 강한 힘을 드러내며, 내게 매서운 공격들을 날려댔다.
‘확실히 강해.’
그 공격들.
토벌을 나서기 이전의 나라면 감히 막기도 힘들 수준들이었다.
내가 조금만 약했더라면,
토벌을 통해 수만의 영력을 흡수치 않았더라면 확실히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녀석들은 좀 더 빨리 움직여줘야 했다.
이 북쪽에서 뭔가를 벌일 거라면, 전력을 다해 나부터 죽였어야 했다.
이제 와 온 게 놈들의 패착이었다.
적인 광신도를 상대로, 그러한 패착을 더 크게 일으키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지 않겠나.
“뒤지는 건 너희들이지.”
“크아아악!”
콰아아아앙-!
나는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자는 마음으로.
주체할 거 없이 샘솟아 나는 영력들을 이용해 놈들을 쓸어갔다.
영력 방패, 가르기, 폭발, 강한 일격, 가호, 저항…….
그간 얻은 온갖 수단들을 다 사용했다.
내 노력이 통한 것일까.
“흐으으…….”
“네가 마지막이네?”
그 수는 어느덧 줄어들어, 단 하나의 광신도만이 남았다.
그 광신도가 지닌 기운.
이미 내게 익숙한 거였다.
그러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놈에게 손을 뻗으며 조롱했다.
“가게 되면 네 주인한테 전해라. 유희의 농락자는 개뿔. 농락당하는 건 너일 거라고.”
“감히, 네놈이 그분을……!”
“잘 가고.”
콰즈즈즈즉-
날카로운 검이 된 그림자 짐승이 놈의 목을 찢어발긴다.
목이 날아간 광신도의 몸이 쓰러진다.
“후…….”
이것으로 끝일까.
오랜 전투 때문인지 숨이 거칠었다.
그러니 끝이면 좋겠는데.
나라고 해도 어서 쉬고 싶으니까 말이지.
당장이라도 몸을 누이고 싶었다.
내일 해가 떠오르면, 이 뒤에 가능성의 기물과 같은 무언가를 어서 얻고 싶었다.
그리하면 처음 이곳에 온 내 목적인 창조 의식이 가능해질 테니까.
그러기에 이리 달려오고 있지 않았나.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그러니 잠시라도, 아주 조금의 몇 분이라도 어서 가서 쉬고 싶은데.
짜아악- 짝- 짜악-
어디서 되지도 않는 박수 소리가 들려 온다.
“하…… 씨, 또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