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시험적인 토벌 무대는 시작일 뿐이었다.
작전을 바꾸고, 진행하면 할수록 토벌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치이익-
-서쪽은 문제없습니다.
-동쪽 밀립니다.
“이리로 몰고 와! 아니 내가 가지.”
-감사합니다. 대장.
영역을 훑듯이 뒤져대고.
전투 중 밀리는 곳이 생겨나면 지한휘가 튀어 나간다.
“수에서 밀리는 거네. 영혼 가르기. 영혼 병사 소환.”
[당신은 미약한 적성 개체의 영혼을 갈랐다.]
[당신은 주변에 퍼트린 영혼을 이용하여 영혼 병사를 소환하였다.]
병사 수가 밀리면?
잔뜩 죽은 영혼을 만들어 낸 다음에, 영혼 병사와 원귀를 이용하여 적을 압도시켰다.
이로써 적보다도 아군이 많게 만들었다.
설사 보스급이라도 상관없었다.
-동쪽 보스급 출현! 기존 조가 지연은 시키고 있지만, 금방 본진까지 들이닥칠 거 같습니다.
-북쪽도 출현!
“바로 간다. 이사야, 너는 북쪽을 지원해 줘.”
“오케이.”
이 또한 지한휘와 그 팀원들이 묶여서 달려가는 것으로 종결할 수 있었다.
개체로 강력한 보스는 지한휘나 이사야가 홀로 처리.
군집체로 강한 경우는 이진성, 이진아가 그때마다 달라붙어 같이 보조를 하는 방식이었다.
토벌대의 발길을 막을 수 있는 모든 존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속도가 느려지면 그게 더 이상하였다.
이를 통해서 지한휘는 과할 정도의 보상을 얻고 있었다.
[당신은 주변의 영혼들을 흡수하였다.]
[당신의 소모된 영력이 보충되었다.]
[당신의 영력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당신의 영력이…….]
토벌대 중에 영혼 술사가 유일하다시피 한 지금.
적이 죽고 남은 잔해를 제외한 모든 영혼은 그의 몫이었다.
각 전투가 있을 때마다.
그가 얻어 내는 영혼의 수가 수백이다.
하루에 몇 차례의 전투가 이어지니, 그 속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게 체계에 켜켜이 쌓여갔다.
[당신은 한 번의 전투로 천 이상의 적성 영혼을 흡수하였다.]
[당신의 업적 : 학살이 체계에 기록된다.]
[외신들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성좌 : 희망에 차오른 자가 그대를 부르고 있다.]
[성좌 : 절망을 부르는 자가 그대를 찾는다.]
“다들 난리네.”
그 기록을 보고 성좌와 외신들이 침을 삼켜댔다.
-네가 지닌 업적이라 하는 건 성좌에게 재미있는 유희거리니까.
“실제로 힘이 되고 말이지?”
-그래. 전설이나 설화라는 건 보기 드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법이거든.
그들은 탐욕스레 지한휘를 찾았다.
아마 던전에 찾아간다면, 제 영향력을 소모해서라도 그를 불러들이려는 존재도 있을 터였다.
그가 쌓아 온 업적.
그것을 그가 자신에게 받치기를 원해서였다.
신이라지만 정체된 채로 존재하는 게 신좌이고, 외신이었다.
그러한 신들로서는 지한휘의 업적이 먹기 좋은 진미.
또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매개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들의 집착도 이해는 가는 바였으나.
“그럴 거면 자기들이 직접 나서지 말이야. 쯧. 구걸이라니까.”
-성좌도 체계가 불어 넣은 제약이 있어서니라.
“헛소리지.”
이를 직접적으로 보고 있는 지한휘로선 입맛이 쓸 뿐이었다.
저런 식으로 힘을 쓸 거면, 세상을 구하는 데나 힘을 써 주면 좀 좋은가.
와서 하는 거라곤 구경뿐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어쨌든…… 다들 너를 주목하기는 하는구나. 마치 여가 한창일 때 모습과 같으니라.
“헹. 괜히 가져다 붙이기는. 너랑 나랑 같냐?”
-한때는…… 뭐 되었느니라. 여는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으니.
다만 그러한 지한휘의 태도를 두고.
옆에 붙어 있는 마왕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기야.
성좌니 외신이니 하는 게 이제 와 무슨 상관인가.
“쓸데없이 분위기 잡지 마라. 어쨌건 우린 우리 갈 길 가야 하니까.”
-동감하느니라.
결국 저들도 <공허>가 내려앉을 때, 단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
제 신도 몇을 데리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갔을 뿐이다.
신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 지한휘는 제 갈 길만 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체계를 통해 보내는 메시지 따위는 신경을 껐다.
되레 신경이 쓰이는 건, 같은 인간들의 신호였다.
* * *
현재 대장벽에서 이뤄지는 토벌전은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사건이었다.
대장벽 수복이 안 되면, 그것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
관심을 두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스타가 나오기 시작했다.
개성 방향에선, 오성 길드의 이수향, 이준수, 강일우 등이 이끄는 토벌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금강은 정부에 소속된 이재하, 박금성, 오춘일 등이 점차 인기를 끌어갔다.
각기 토벌의 속도가 빼어남은 당연했다.
여기에 시원스레 적을 처리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송출되다 보니 인기가 올라갔다.
특히 박금성의 경우, 지난 시간 남몰래 쌓아온 성과들이 새삼 노출됐다.
빌런 토벌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며 그 인기를 더했다.
토벌대마다 몇씩, 스타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였다.
평강 쪽 토벌대도 스타를 만들어 내는 흐름이 있었다.
재밌는 건, 단 한 명에게 집중이 돼 있다는 거다.
바로 지한휘다.
-야야. 지한휘 토벌전 뜬 거 봐라.
-가장 선두 아니냐?
-오…… 미친. 오늘도 쓸어버리네
-보스를 몇 잡은 거냐?
└모름. 스물까지 세고 안 세 봄.
-ㅅㅂ. 미친놈이라니까 진짜.
세 토벌대 중 평강의 속도가 가장 빨랐다.
그런 평강 토벌대의 빠른 속도 가운데서도, 언제나 그 선두를 지키는 게 지한휘의 토벌대였다.
집중이 안 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난리네.”
-네가 특출나기는 하느니라.
상황이 이러다 보니, 그 지한휘도 슬쩍 여론이 신경 쓰이긴 했다.
여론이 자신에 대한 좋은 여론이었으니까.
그걸 보고 작은 희망도 가질 정도였다.
“이 정도면…… 그 이상한 팬덤은 와해 되고 정상 팬덤이 오지 않을까?”
-택도 없는 소리이니라!
“아 왜!”
전생부터 이어지던 수상하고 이상한 팬덤.
저주 인형 따위를 보내는 그 팬덤!
대중이 이런 식으로 좋아해 주다 보면, 그 팬덤의 힘도 점차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한시영이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데, 저주 클럽이 더 커졌다더구나.
“……젠장. 대체 어떤 새끼가 그딴 걸 팬클럽이라고 만든 거지.”
문제는, 그 힘이 줄어들기는커녕 되레 커지고 있단 거였다.
이들은 거기서 더 나아갔다. 그에 걸맞는 힘까지 점차 갖춰가고 있었다.
-여도 모르겠다. 그러나 보게 되면 꼭 데려오도록 해라. 그 저주 인형, 분명 심상치 않은 주술사가 만들어낸 거니까.
“닥쳐. 보면 다 죽여 버릴 거니까. 그리 알아둬.”
오죽하면 그 저주술의 깊이를 본 마왕이 신경이 쓸 정도.
물론, 지한휘로선 그 깊이가 어떻게 되던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만.
-쯧. 성격이 그러니 그런 팬이 생기느니라. 팬은 소중히 해야지.
“……윽.”
마왕의 팩트 폭행에 침몰해 버리는 지한휘였다.
* * *
그렇게 이뤄지는 토벌은 점차 그 속도를 더해갔다.
어느새 한 달.
말 그대로 시간이 순삭되듯 지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세 개의 토벌대는 목표로 했던 지역으로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때 많은 헌터들이 점차 피로도를 호소해 왔다.
평강에서의 토벌대들이 특히 피로도 호소가 두드러졌다.
지한휘의 토벌대가 툭 튀어 오르듯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에 발맞춰야 하는 다른 토벌대 헌터들은 힘들단 소리를 해댔다.
-이미 예정보다 빠르잖아. 좀 살자고.
-속도를 맞춰 줘야 같이 가지!
-같이 가는 사람 생각도 좀 해 줘야 하지 않냐.
겉으로 봐선 바른말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살피면, 아니었다.
혼자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한휘에 대한 불만들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토벌을 지속할수록 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상황.
현재에 있어 토벌이라하는 건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사업이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스타도 마찬가지.
어떤 헌터가 스타가 되느냐에 따라 길드에선 막대한 이권들이 갈리곤 했다.
그런 상황에 이런 우는 소리가 뜻하는 바는 뻔하였다.
속도 좀 조절하며, 주목받는 걸 나눠 받자는 거다.
실제 미래 길드의 타 팀이나 길드에서는 요청이 오기도 했다.
-발을 맞춥시다. 이대로 툭 튀어 나갔다가 문제라도 발생하면 어쩌려고요.
-지금껏 문제가 난 적이 없습니다만?
-그러다 발생하면요?
-책임은 내가 질 겁니다.
-허 참…….
발을 맞추기 위해 속도를 늦추잔 요청이었다.
지한휘가 그걸 받아들일 리가.
때로는 압력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러면 일이 커집니다?
-뭔 일요?
-나중에 그쪽 팀이랑 협력은 안 할 겁니다. 그때가 돼선 어쩌려고요?
-하…….
나중을 생각해라.
언제고 협력할 일이 있지 않냐.
그러니 사정을 봐줘라.
그건 일종의 협박이었다.
지한휘가 이런 거에 넘어가겠는가.
그는 존대하던 말투조차 버렸다.
-지금 토벌을 잘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한휘 토벌대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줘야 우리도 그에 맞춰서…….
-발을 맞추질 못하면, 지휘권을 내게 넘기든가. 알아서 움직이게 만들 테니까. 어때? 줄 겁니까?
-…….
지한휘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상대는 당황했다.
‘적당히’가 없어서겠지.
하기야 지금까지는 이런 식으로 잘도 서로 말을 맞춰을 거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느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느니 하며 합을 맞췄겠지.
그러며 권력을 나눠 먹고 말이다.
그러한 모든 일들이 지한휘가 보기엔 의미가 없었다.
‘쓸데없어. 다 머저리들이고.’
공허가 내려앉는 지금에 있어서.
저따위 협잡질로 얻는 권력 따위.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에게 있어 진짜는 자신이 지닌 힘이고, 같이하는 동료였다.
저것들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면 흔들리는 옅은 합의다.
그런 건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지한휘는 단순히 거절을 넘어 한 발 더 나갔다.
아예 협박을 해 버렸다.
-한 번만 더 이따위 일로 귀한 연락 능력을 쓸 거면, 당장 때려치우도록 해.
-너, 너……! 어디 이따위로 하고도 괜찮을 줄 알아? 지금 인기는 잠깐이야 새꺄…… 너 언제고 인기가 없어지면 그때는…….
그에 들어오는 상대의 반발.
진심으로 화난 듯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쯤 하면 지한휘가 숙이리라 믿은 거겠지.
아니면 지한휘가 몸값을 높이려고 배짱을 부린다고 믿거나.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지한휘는 이미 진심이었다.
뒤는 안 본단 소리.
-그때는 어쩔 건데? 죽이기라도 하게?
-……미친 새끼.
-죽이고 싶으면 언제든 와. 진짜 뒤지게 해 줄 테니까.
-…….
-끊는다. 다음엔 뒤지기 싫으면, 연락하지 마라.
결국 그는 거친 숨결을 내보이는 상대를 침묵시키고 나서야, 연결을 끊었다.
몇 차례 그런 식으로 연락들이 있었다.
회유, 협박, 협상…….
그 모든 것들에 지한휘는 그 답게 대응을 할 뿐이었다.
협상은 파기.
회유는 조롱하고.
협박엔 역으로 협박을 돌려줬다.
그 모든 게 누군가의 심기라도 건들었던 걸까.
“너, 새끼 내 동료가 되…… 음?”
“예?”
“아니, 잠시만.”
토벌 전 중에 낯이 익은 헌터가 보여 다가갔던 지한휘.
빌런도 아닌데, 그에게 낯이 익는다는 건 미래가 창창한 헌터란 의미였다.
해서 아직 제대로 개화(開化)하지 못한 헌터 유망주들을 직접 팀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던 그였는데.
‘뭐지……? 진짜 협박을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그의 신경이 곤두서게 하는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