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편하네.’
팀원들을 수습하여 출발했다.
이런 내게 주어진 헌터의 수는 총 600여 명.
이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붙여준 인원이 다해서 1,000이다.
총합 1,600명.
만들어진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팀.
그를 이끌어야 하는 팀장인 나에게 주어진 수치고는 많았다.
덕분인가. 처음엔 꽤 많은 자들이 우려를 표했다.
오죽하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그 김시연도 따로 불러냈을 정도다.
-괜찮으시겠어요? 팀을 이끄는 거랑, 이 정도 숫자를 이끄는 건 다른 문제예요.
“걱정 붙들어 매. 누구보다 잘해 줄 거니까.”
-믿어요.
“그래. 믿음에 대한 대가는 성과로 보여줄게.”
-든든하네요. 한 번 제대로 밀어줄게요.
“그럼 나야 고맙지.”
내 말대로, 그녀가 지닌 우려는 성과로 씻어 주면 될 일.
해서 나는 내 병사들이 되었다 할 수 있는 헌터들부터 한곳에 모았다.
“…….”
“…….”
모아 놓고 보니 꽤 많은 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1,600쌍이나 되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거.
경험 없는 자라면 주눅들 법한 숫자다.
근데, 내가 그럴 리가.
나는 되레 피식 웃어줬다.
그러곤 약간 도발하는 듯한 표정도 잊지 않으며, 말했다.
“앞으로 당신들을 책임지고 지휘할 지한휘라고 합니다. 헌터 토벌전 특성상, 자율성은 주겠지만 방종은 용납 못 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 점에 이의 있으신 분?”
“…….”
어딜 가든 대우를 받는 게 헌터다.
이런 헌터에게 방종이니 용납 못 함이니 하는 단어는 금기어나 다름없다.
지휘를 하는 대장이라도 서로 간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걸 깬 거다.
해서 내심 기대했다.
어디 한 명 나와서 반발이라도 할 거란 기대였다.
그런데 기대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깨져 버렸다.
“있으면, 지금 말하시죠. 전장에 가서 그러면 뚝배기부터 깨 줄 거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뭐…… 지한휘 헌터면…….”
반항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도무지 반항이란 게 없다.
‘금발 태닝 양아치를 곤죽 내서 그런가?’
내가 최시윤을 처리하는 게 그리 충격적이었던 건가.
아니면, 싸가지 없는 헌터가 회귀했더니 사라지는 이세계 역전 회귀 세계 같은 거냐.
내심 손맛을 기대했는데.
뭐지?
손맛은커녕, 입맛만 버리는 느낌이다.
이 자식들.
이러다가 막상 토벌전에 나가면, 명령 불복종하는 거 아닐까.
여기서 한 번 개겨 주는 건 국룰인데. 이상하다.
한창 고민을 하고 있을 쯤.
“조장은 따로 정하는 겁니까?”
“……어?”
되레 더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기 시작했다.
‘씁.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
얘들이 뭘 잘못 먹은 걸까.
나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우선 미리 생각한 배치를 말해줬다.
“네. 평상시 짜 온 팀 단위로 조장. 그 위로 100명 단위로 나눠서 합치면 됩니다.”
조를 이상하게 짜면, 털어먹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아잇. 보통 이럴 때 한 번 군기도 잡고 해야, 나중에 사상자도 줄고 그런 거 아닌가. 이게 다 우리 아군을 위해선데.
“예!”
“다들 헤쳐 모여!”
이거 보게? 조금의 잡음도 없이 조 6개가 만들어졌다.
정확히 100명 단위로 딱딱 떨어지진 않았다만.
그거까지는 기존 팀의 숫자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그 뒤로 보조로 온 1,000여 명의 병력도 기다렸다는 듯 쪼개졌다.
여기에 대고, 앞으로 지휘를 위해서 반말을 한다느니.
명령 불복종은 바로 처벌한다느니 몇 마디를 도발 삼아 던져줬는데도.
“알아들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다들 협조적이었다.
대체 이게 뭔 상황인 걸까.
내가 회귀했더니 군주로 각성한 부분인가.
전생엔 몇 놈은 분명 뚝배기를 까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나 알고 보니 지휘에 재능이 있을지도?”
-헛소리 말아라. 네가 그 광신도를 죽인 걸 보고 잔뜩 겁을 먹은 거겠지. 그래도 일사불란한 게 보기는 좋구나.
“씁…… 펙트로 후리기는.”
짐짓 놀라는 와중에 초를 치는 건, 언제나 마왕이었다.
여튼, 그러한 협조 속에서 내가 이끄는 부대는 가장 빠른 출발을 할 수 있었다.
* * *
이 뒤는 순조로웠다.
내가 맡은 게 1조이자 선봉.
나머지 2조부터 6조까지는 그 옆을 따르는 방식으로 토벌은 시행됐다.
“적들 발견.”
“정지. 정체는?”
“고블린 부락 상급 한 개 규모. 약 1,000마리입니다. 이 중 변종으로 추산되는 개체 200여 마리입니다.”
“깔끔하네.”
가장 먼저, 이진아를 필두로 한 암살자들을 정찰대로 이용.
그들이 미쳐 날뛰는 몬스터들을 발견하면, 진형을 갖췄다.
이 뒤에 선봉엔 바로 내가 나섰다.
“들었지? 후방의 원거리 딜러들 쏟을 준비해.”
“예!”
“유인은 내가 한다.”
특별히 희생 정신을 발휘해서 선봉에 선 게 아니다.
단지 이게 효율적이어서다.
“영력 부풀리기.”
[당신은 기술 : 영력 부풀리기를 사용하였다.]
콰아아앙-!
영력 부풀리기.
사흘 단위로 던전을 오고 가며 여러 기술을 얻은 나다.
영력 부풀리기는 그중 하나.
이전에 익혔던 영력 폭발은 공격력을 얻는 데 있다면, 이건 저 멀리까지 영력을 퍼트리는 기술이었다.
본래 이거.
공격성 따위는 찾기도 힘든 기술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간단한 잡 기술을 섞으면, 그 사용처가 달라진다.
쫓아내고 싶을 땐 영력에 살기를.
적을 유인하고 싶을 땐, 약한 몬스터의 영혼을 흉내 내면 된다.
이번에 내가 원한 건 바로, 약한 인간의 흉내!
-키에에에엑!
-끼웨엑!
변이하며 사기가 치솟은 고블린들이, 내 존재감을 읽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게 내가 선봉에 서 유인을 도맡은 이유!
두두두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땅에 묵직한 울림이 생겨난다.
점차 울림이 가까워진다.
작은 고블린이라도 1,000마리쯤 되면 느껴지는 묵직함에, 선두를 맡은 헌터들의 부담감이 커질 즈음.
나는 명령을 내렸다.
“일제 사격 시작!”
미리 준비한 수를 마음껏 펼쳐내라고!
“좋지. 바로 갈게!”
“다들 파편 조심해요!”
[당신의 동료는 사령 마법 : 쇠약의 저주를…….]
[당신의 동료는…….]
수많은 이능력들이 내 주변에서 뻗어나간다.
그 목표는 달려드는 모든 몬스터들의 제거.
콰아아앙-! 콰앙!
거친 폭발이 눈앞을 뒤덮는다.
움푹 패여져 나가는 땅 위, 비산하는 사체 조각들.
그 가운데서도 이미 광기에 사로잡힌 고블린들은 겔겔대며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도무지 겁이 없다.
체계에 새겨진 인간에 대한 강한 증오와 변질되어 버린 육체가 빚어낸 결과물인 광기겠지.
그러한 광기는 아무 대비 없이 맞이하면 공포로 다가오지만.
우린 아니다.
“전열 준비!”
처어어억.
미리 준비한 우리에게.
저들의 광기가 공포로 바뀔 리 없었다.
되레 조소가 지어질 뿐이었다.
이미 충돌을 대비한 우리들에게, 저것들은 먹잇감일 뿐이니까.
퍼어어억-! 퍼억!
살아남은 고블린과 아군이 맞붙는다.
뒤엉키는 일 따윈 없다.
“1차 방벽 버텨!”
“2차 교대까지 3분만 버텨라.”
“3분 갈 것도 없어!”
미리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
터어어엉-
고블린들의 조악한 공격은 탱커진의 방벽에 사그라들어 버린다.
그 뒤 만들어진 조악한 틈.
“찢어발겨!”
촤아악-
앞서 정찰부대에서 합류한 암살자와 같은 근접 딜러들이 틈을 노렸다.
-케에에엑
-……끽!
틈이 찢어발겨지며, 선두의 고블린들의 멱이 따인다.
-키이이…….
변종 고블린은 멱이 따인 상태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본다.
그래봐야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내가 내린 명령을 기억하는가.
그건 사살이 아니라 찢어발기라는 명령이었다.
선두의 딜러들은 그 명을 제대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멱이 따인 채로 버티는 고블린들을 두 개, 세 개로 나눠 발겼다.
그만으로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광경에, 하이라이트를 수놓는 건 역시 나였다.
[당신은 수많은 영혼을 느끼고 있다.]
한 번의 포격.
단 한 번의 부딪침.
그 결과 만들어진 수많은 영혼이 울부짖는다.
그것을 재료 삼아, 마지막을 수놓을 생각이다.
“이번엔 제대로 터트려 주마. 영력 증폭. 더하고 영혼 폭발.”
[당신은 마법 : 영력 증폭을 통하여 주변이 지닌 기운을 증폭시킨다.]
[당신은 증폭시킨 영력에 기술 : 영혼 폭발을 사용하였다]
[당신의 기술에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그그그그그긍-
순간 진짜 폭발이 이뤄진다.
기이한 쇳소리가 들리며 터져나가는 폭발의 중심지는 고블린 병력의 한 가운데!
콰아아앙! 쾅!
그 모든 것들이 터져나간다.
아주 강력한 폭발이었다.
“읏…… 앞이 안 보여.”
“모두 자리 지켜!”
“예!”
비산하는 육편 조각과 먼지. 헌터의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거대한 돌풍.
온갖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고 남은 건.
[당신은 적성 개체 : 고블린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가호 : 고블린을 얻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학살, 가호 : 살인이…….]
[당신이 세운 업적이 체계에 기록된다.]
적성 개체인 고블린 죽였다는 수많은 울림.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학살의 광경이었다.
폭발이 사라지고 남은 잔해 속, 살아남은 고블린 따위는 존재치 않았다.
그나마 사체를 유지하고 있는 건 한 마리.
방금 전까지 주술을 사용하려는 듯, 지팡이를 높이 쳐들고 있던 고블린 주술사 하나.
놈은 변종된 육체로 시체를 보존하는 데는 성공했다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쿠우웅.
그조차도 얼마 가지 않아 쓰러질 뿐이었다.
잠시 이어지는 짧은 적막-
그리고 이내 그 적막은 금세 깨어진다.
“이겼다!”
“승리했어!”
내 명령을 들어 움직이는 헌터들의 목소리로, 숲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 * *
전투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다.
지쳤는지도 모르는 채로, 헌터들은 만족스럽게 웃어댔다.
내 지휘에 불만을 표하는 자는 따로 나오지도 않았다.
뒷수습을 해 주고 있는 지원 병력들을 위하여, 호위를 서고 있을 뿐이었다.
전투 중에 갈등하나 일어나지 않을 줄이야.
“자식들.”
마음에 들었다.
한 번의 전투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우려했던 것들.
명령 불복종이나 합이 안 맞는 거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사야. 이제는 작전을 더 적극적으로 바꿔도 되겠어.”
“더 유기적으로 움직이자는 거지?”
“그래. 이 정도 전력을 가지고, 몬스터 부락 한두 개씩 처리해서 언제 정벌을 하겠어. 더 크게 일을 벌여야지.”
“마침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히히. 더 큰 학살이라고!”
이사야와 내가 처음 짜냈던 작전.
지금처럼 단순히 몬스터를 정찰 후 떼로 부딪치는 방식이 아닌, 영역별 토벌 방식으로 전환을 할 때였다.
쉽게 말해, 한 번에 영역을 쓸어버리는 방식으로 작전을 변환.
동시에 여러 전투를 단번에 벌이겠단 이야기다.
그리하면 한 번의 전투로 고블린 떼 한, 둘을 겨우 정리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몬스터를 단번에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하면 전투를 통한 성과는 확실해진다.
문제는 있긴 하다.
“몬스터끼리 전투를 벌이도록 유도를 하긴 하겠지만, 밀리는 곳도 있을 거야. 각오돼 있어?”
“물론이야.”
전장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전력 차를 누군가는 메꿔야 한다는 거.
어느 한 곳이 뚫리지 않도록 주의를 해줘야 했다.
그 역할을 맡기로 한 게 바로 나였다.
‘나 아니면 할 녀석이 없기도 해.’
어쩌면 가장 위험한 자리기도 하다.
하지만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그 위험한 자리를 망설임 없이 택했다.
“죽이려고 해도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뒤에서 조율만 도와달라고.”
“그쯤은 내가 기꺼이 해야지.”
그러한 내 뒤를 지금껏 손발을 맞춘 팀원들이 따르는 가운데.
“좋아. 날뛰자고.”
토벌전의 속도는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