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소집령은 갑작스러웠다.
예고된 거기도 했다.
임진강 대장벽이 무너지고부터, 정부는 자연스레 총동원령을 내렸다.
헌터들을 소집한 거다.
거부권은 없었다.
평상시 법적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는 게 헌터다.
일종의 편의를 위한 혜택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한 모든 혜택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주어진 것들이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던전에 가 있는 헌터들을 제외하고.
남은 인력이랄 수 있는 헌터들이 죄다 뚫려 버린 대장벽을 향했다.
그 수가 대략 8만.
4천만으로 인구가 줄어 버린 한국.
이러한 한국의 헌터의 총 수가 41만 정도였다.
이 중 8만이란 수는, 모을 수 있는 모든 헌터는 모았다 봐도 됐다.
그렇게 동원령으로 모인 헌터.
그들에게 목표가 주어졌다.
뚫려 버린 대장벽을 수복, 이후 일정 반경까지 몬스터를 몰아내는 거였다.
보기에 목표는 단순하다.
문제는 일은 어렵다는 거였다.
갖은 특색을 갖춘 게 헌터.
그러한 헌터들을 통솔하여 몬스터 토벌전을 시행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처음 시작부터 난항을 거쳤다.
그건 토벌 영역의 문제였다.
“우리가 개성 쪽을 맡는다니까?”
“가장 쉬운 길을 지금 오성이 맡겠다는 겁니까? 그럼 헌터 수라도 줄이시든지요.”
“쉽긴 뭐가 쉽나. 거기다 개성만 북한이 망하기 전에 시였잖아? 규모가 크잖아.”
“그 시는 다 터져 나간 지 오래입니다마는?”
“생존자도 있을 거야! 그들을 구하려면…….”
“생존자요? 언제부터 그런 대단한 분이셨다고 생존자 걱정을 다 하십니까. 전에 구출 작전에는 참여도 안 하시더니.”
“크흠…… 그건 다 이유가…….”
“됐고요.”
대장벽을 넘어 수복할 곳은 세 지역으로 나눠졌다.
개성. 평강. 금강.
다 부서지긴 했어도, 그 길목들이 헌터를 투입하기에 좋은 요충지란 게 그 이유였다.
가장 쉬운 걸로 예상되는 게 개성.
어려운 걸로 보이는 게 평강이었다.
금강은 그 수준이 애매모호하다.
여기서 의견이 부딪쳤다.
가장 어려운 길로 가고 싶은 곳은 없으니까.
이때 정리를 하자고 나선 게 미래 엔터의 신이현이었다.
안 그래도 여러 길드의 마당발로도 알려진 그녀다.
김시연에게 밀리고 있을 뿐이지, 능력은 낮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정리를 시도했다.
“우리 미래 길드가 가장 어려운 평강으로 가 주죠. 그 부근을 수복해 줄게요.”
“오오…… 역시 미래인가?!”
“과연! 저희 정부도 믿고 있었다고요!”
평강. 미래가 가장 어려운 곳을 도맡았다.
“대신, 들어오는 헌터 자원 중 3만 5천은 저희가 데려갑니다. 이에 따른 자원도요. 이의 있으신 분?”
“그럼 우린 남은 4만 5천을 가지고 둘로 나눠야 한다는 거 아닌가.”
“그럼 평강을 맡으시든지요. 3만 5천을 드릴 테니까.”
“…….”
대신 조건을 내세웠다.
가장 많은 자원.
가장 많은 헌터를 데려가기로.
“이의 있으세요?”
“내 어쩔 수 없지.”
“큼…… 나는 찬성하네.”
이의를 제기한 자는 없었다.
여기서 의견을 내 봐야 손해로 돌아올 게 분명하니까.
그렇게 큰 축이 결정된 가운데서도, 그녀는 수완을 부렸다.
미래 엔터를 주축으로 지휘부를 짜냈다.
그를 보좌할 길드들을 최대한 제 입맛에 맞게 꾸리는 거도 잊지 않았다.
셋 중 가히 최고의 전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인선을 짜내는 그녀를 보고, 처음 나섰던 오성의 길드장 백택수나 정부에서 파견된 이한철은 못 당하겠단 표정을 지었다만.
되레 그녀의 표정은 아주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모자람이 있어 보였으니까.
‘아주 완벽하진 않아.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진 않지…….’
그녀 눈에는 당장 예상되는 여러 문제들이 엿보였다.
그러나 상황이 급했다.
‘남은 문제는 알아서들 처리해 주길 믿어야겠네. 대신 팀장급들이 고생할 거 같기는 한데…… 어쩌려나?’
급한 대로 투입하기로 결정한 그녀였다.
현장의 일은 현장에 맡길 수밖에 없단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바로 시행해 보죠.”
그렇게 여러 입장의 동상이몽 속에서, 대장벽 수복 작전이 시행되었다.
* * *
소집령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이동을 시작했다.
내가 있던 곳은 마침 포천이었다.
자연스레 철원을 향했다.
청강까지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모여들 포인트가 철원이니까.
처음 철원에 도착했을 때, 꽤 많은 헌터들을 볼 수 있었다.
동원령에 동원된 헌터들이겠지.
-야야. 저기 봐. 지한휘다.
-와씨. 실물은 처음 보네.
-나도야.
헌터도 급이 있는 법이었다.
유명한 자가 있으면 안 유명한 자도 있기 마련이다.
소속되어 있는 길드에 따라 그 대우도 다른 편이었다.
고로, 내가 받는 대우는 최상일 수밖에 없었다.
미래 길드의 팀장급이니까.
그런 나를 알아보는 헌터들이 다수였다.
그중 몇은 내게 다가와 아는 척을 해 왔다.
‘다 아는 얼굴들이구먼.’
모르는 자들은 아니었다.
지난 임프 침공 사태 당시, 같이 활약하던 헌터들.
경매장에서 마주했던 헌터들이 꽤 이곳에 있었다.
듣기로 나 때문에 이곳으로 자원을 한 자도 있다나.
내 얼굴에 금칠을 해 주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유명한 값이라 해야 하나.
-쟤는 아직 대규모 던전까진 안 다니고, 팀원들하고 다니잖아. 볼 수가 있겠냐.
-팀원끼리 큰 던전도 해결한다는데?
-되겠냐. 미래 길드에서 구라치는 거지. 그걸 믿냐.
-것도 그러네?
-X바. 그럼 저거 순 구라라는 거 아냐.
-그치.
유명해지면, 그 반비례로 욕도 늘어나는 법이었다.
모두가 날 좋아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게 소위 말하는 유명값이다.
안으로 들어서려는 내내, 욕지거리도 들려왔다.
질시, 부러움, 시기.
꽤 좋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이 나와 내 팀원들을 휘감는다.
그걸 팀원들이라고 못 느낄 리가.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흐흐. 한국이라고 다를 건 없다니까.”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
이사야는 부정적 감정을 즐겼다.
대스타라도 되는 양 그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러며 이게 저주에 도움이 되는 음에너지라며 모으기까지 했다.
나는 그걸 옆에서 보며 여유를 부려댔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니까.
의외로 이진성도 조용했다.
얼마 전까지 광대 노릇을 하고 온 덕분인지, 광기를 발산하는 게 없었다.
대신 의외의 반응은 둘이었다.
“해치울까요?”
“제가 이따 조용히 가서 처리해 볼게요.”
“음…… 법적 문제는 제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이진아와 김민하.
둘은 반쯤 눈이 돌아가서는, 욕하는 이들을 담가 버리는 게획을 실행할 기세였다.
암살자인 이진아가 처리하고.
그 뒤를 재벌가 김민하가 마무리라.
‘……실행 가능성이 높아서 더 문제잖아?’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부분이었다.
“어이, 둘. 쓸데없는 짓 말고 어서 따라오기나 해.”
어느새 진짜 대상을 물색하는 듯 눈을 돌리는 둘.
그 둘을 나는 내 옆에 딱 붙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넌 뭘 실실 쪼개며 바라보고 있냐. 그윽한 눈으로다가.”
“지금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싱겁기는.”
의외로 길동이는 조용했다.
이런 걸로 열불이 뻗치기에는 자기도 나이가 찼다 이거겠지.
‘하여간 개성들이 넘친다니까.’
제각각의 반응들을 보며, 중심지를 향한 지 얼마나 됐을까.
다들 앞으로 작전이 어떻게 펼쳐질까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서, 나는 오히려 기대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때아닌 몬스터 사태라…… 보아하니 광신도 자식들이 한국에서 안 되니까 북한 쪽에서 게이트를 터트린 거 같기는 한데 말이야. 이건 기회지.’
내 보기에 이건 기회다.
가능성의 기물.
그에 비견되는 어떠한 것들을 구할 기회였다.
무려 재앙급의 일이 터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날뛰는 몬스터나 광신도를 처리하다 보면, 그만한 물건이 분명 나올 거였다.
그러니 기대가 될 수밖에.
해서 어지간하면 털려오는 시비들도 음소거라도 걸린 듯 무시했다.
어서 미래 엔터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쉴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입 놀리면 참교육부터 하고 보는 나답지 않은 모습이긴 하다만.
어쩌랴.
당장 급한 건 어쨌건 부활 의식이거든.
근데 말이야.
“뭐냐?”
웬 놈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 *
뭐지. 이 금발 태닝 양아치같이 생긴 녀석은.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생기게 하는 녀석이 있다.
특히 같은 동성에게는 더더욱 꺼려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눈앞의 녀석이 그러했다.
기생오라비같이 생겨 먹은 얼굴은 그렇다 치자.
저 한껏 거만한 표정과 입매는 뭔가.
시비라도 걸려는 건가.
그럼 너무 삼류인데 생각이 드는 찰나.
“최시윤이라고 합니다. 같은 미래 엔터의 팀장이니, 인사라도 하려고 나왔습니다.”
반대로 내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정중했다.
손을 척 하니 올리며 악수까지 청하기까지 한다.
누가 봐도 같은 길드의 팀장끼리 친목이라도 다져보자고 하는 의미.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정중하게 나서면, 받아는 주고 보는 편이다.
그런데 왤까.
‘뭐지?’
녀석의 눈을 보면 볼수록, 거부감이 풀풀 차오르는데.
문제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거다.
괜한 기분에 거부를 하려는 찰나였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한시연.
그녀가 내 옆에 와서 작게 귓속말을 던져왔다.
“뭐 하세요. 인사 정도는 나눠 주세요. 박성군 실장님 라인이거든요. 괜히 적 만들 필요 없잖아요? 무슨 짓을 한 거도 아닌데.”
“아아. 그쪽인가.”
내가 왔단 소식을 듣자마자 온 거 같은데.
평소 내가 이런 걸 챙기는 성격도 아닌 걸 알아서 그런가.
보내 오는 귓속말에 걱정이 스며 있다.
‘뭐 악수 정도야…….’
한시연도 이제 내 사람이랄 수 있었다.
이 정도 말은 들어 줄 수 있다.
“알다시피, 지한휘라고 합니다.”
“오. 알죠, 알죠.”
나는 아직도 슬슬 피어오르는 거부감을 무시했다.
시원스레 웃어 보이고 있는 최시윤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차악.
녀석과 내 손이 포개졌다.
이것으로 손을 서로 아래위로 휘젓기만 하면 그건 악수가 되는 건데.
‘……뭐야?’
[당신을 향한 은밀한 공격이 시도되었다.]
[가호 : 상급 저항이 은밀한 공격을 발견하여, 저항하였다.]
악수를 완성하기도 전에, 거부감의 정체를 알아 버렸네?
갑작스러운 은밀한 공격이라니.
상급 저항이 없으면 깨닫지도 못할 공격이지 않나.
이런 식으로 신체접촉을 하며, 몰래 공격을 심어 놓거나 수작질을 부리는 거.
미래에 가선 쉽게 파악되는 것이긴 한데, 지금 이 시기에 이게 나올 줄이야.
순간적으로 나는 방심한 나 자신에 대한 탓을 했다.
동시에 수작질을 한 최시윤의 손을 피하기는커녕, 되레 꽉 잡았다.
“큿…… 왜 이러십니까?”
“왜긴. 튈까 봐 그러는 거지.”
단순 내가 잡는 거만으로 만족할 리가.
본래 이런 식으로 정체를 숨기는 녀석은 바로 처벌해야 했다.
그게 광신도든 마족이든 간에 시간을 주면 내빼는 게 녀석들 특기니까.
쉽게 말해 착한 광신도는 죽은 광신도뿐이라 이거다.
고로.
파아앙-!
나는 한 손은 저놈의 손을 잡아챈 채 힘을 주고는.
다른 한 손으로는 영력을 끌어 올려 녀석의 어깻죽지를 향해 날렸다.
“크아아아악!”
콰아앙. 쾅.
연속해서. 녀석의 팔이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