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쿠우웅. 쿵.
거칠게 난도질당한 몬스터 사체들이 옮겨진다.
거대한 사체 수거 차량의 수용량이 금방 차올라, 몇 대를 더 동원했어야 할 정도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야야. 이거 다 어떻게 싣냐.”
“그래도 이렇게 일감이 많은 게 낫지! 출발해서 왔는데 별거 없으면 특근 수당도 덜 나와.”
“그른가. 어쨌건 옮겨 보자고.”
사체를 치우러 온 동원된 직원들도 연신 감탄을 했다.
그러다 생겨난 궁금증.
이 광경을 누가 만들어 냈느냐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별한 일을 만들어 내는 자가 누군지는 항상 궁금한 법이니까.
“근데 이거는 또 누가 다 죽인 거래? 근래 들어서 특별 출동이 많잖아.”
“소문 못 들었어? 지한휘 팀. 거기가 또 나온 거라더라.”
“또 한휘!? 이야…….”
그 궁금증을 해결한 사체 처리 업체 직원은 더 눈을 크게 떴다.
지한휘라니.
근래 자주 듣는 이름이지 않은가.
특히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서 와야 하는 이들은 그 이름이 더 와닿을 수밖에 없다.
비록 전투가 끝난 이후의 처리를 도맡는 거라지만.
시체 처리도 같은 현업 관계자라고 할 수 있으니까.
“우리야 덕분에 출근 수당 늘어서 좋기는 한데. 미쳤네, 미쳤어.”
“요즘 다 쓸고 다닌다더라. 안 그래도 인터넷서도 난리긴 하더만. 이제 랭커 올려야 하는 건 아니냐고.”
“와, 벌써 랭커? 하긴…… 다른 녀석이면 말도 안 된다고 하겠는데, 여긴 다르긴 하지.”
“그치. 덕분에 우린 돈도 벌고. 이거 다 나르면 얼마냐.”
이들 입장에선 이런 지한휘의 활약이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버는 돈이 달랐다.
여기만 오면 사체 처리 차량이 평소보다 가득 찼다.
차량이 몇 배로 와도 그걸 소화해 냈다.
현 시대에서 몬스터 사체는 곧 돈이다.
돈이 붙다 보면,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은 법이었다.
그러니 출동할 때마다 기쁠 수밖에.
“다음 출동도 지한휘 팀 쪽이면 좋겠다.”
“되겠냐. 요즘 경쟁자 넘쳐.”
“그래도 최대한 비벼 봐야지.”
때문에 처리 차량을 맡은 운송 기사들은 매번 이런 풍요로운 사냥을 바랐다.
던전이 있는 곳까지 오는 게 고되기는 해도 그만큼 보람이 있었으니까.
매번 지한휘와 그 팀원들에 대한 찬양도 빼먹지 않는 그들이었다.
어쩌면, 그 장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
“…….”
한시영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이곳의 책임자로 있는 한시영의 의사에 따라 그들이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없을지가 정해지니까.
“한 매니저님 오늘도 이거 다 정리하려면 야근이겠네요.”
“그러겠죠.”
“휘유…… 오늘도 고생길이 훤하네요.”
“그만큼 수당 나오잖아요.”
“후후. 그건 그렇죠.”
그런 한시영의 침묵을 깨는 건, 같은 팀원으로 보충된 새로운 매니저였다.
참고로 매니저란 직위는 같아도 처지는 달랐다.
즉, 한시영이 위란 소리다.
지한휘가 크게 활약을 하는 만큼 대우를 받고 있는 한시영이었다.
매니저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협력 업체 직원이 피로한 가운데 웃는 기색으로 다가왔다.
“매니저님, 총 18대 분량 나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같은 미래의 직원인데도, 한시영에게 공손히 고개 숙이고 있었다.
누가 갑인지를 아는 것이었다.
둘 모두 회사 내 직위는 비슷하나, 계열사 자체가 달랐다.
한시영이 있는 미래 엔터는 미래의 노른자.
반대로 사체 처리 계열사는 그보다는 못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희가 고생이랄 게 뭐가 있나요. 교대로 돌아가고 있는데요. 매니저님이 더 고생이시지요.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째 아닙니까.”
“이 정도쯤은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휴. 아무렴요. 그럼 저희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오는 한시영.
그런 그녀에게 손사래를 치고는 처리 업체 관리자는 물러났다.
사체를 실은 차량들도 얼마 가지 않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차로 꽉 찼던 자리가 순식간에 비었다.
그제야 한시영은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서류 작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작은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사체 처리가 마무리됐으니 한결 부담감이 덜해져서 나온 숨이었다.
‘이제 들어가서 마무리 작업만 하면 되겠어.’
그제야 피로감을 느끼는 한시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한휘가 고군분투하는 만큼, 그를 보조해 줘야 하는 그녀도 할 일이 많아졌으니까.
김시연 팀장이 보조할 팀원들을 추가해 주긴 했다.
하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편이라, 당장 전력으로 써먹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괜찮은 팀원이라고 하면, 바로 옆에서 있던 매니저 정준이다.
그는 경력이 있어선지 금방 일을 따라잡고 있었다.
정준이 없었으면, 전투 후속 처리가 힘겨워졌을 터였다.
사냥을 나간 지한휘 헌터팀도 문제없이 해 내는데, 그걸 보조하는 매니저가 제대로 일을 처리 못하는 일이 난다라.
망신도 그런 망신이 또 없을 거였다.
‘정준 씨, 어디 갔지?’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서 돌아가 처리를 해야 하는데, 정준이 보이지 않았다.
듣기로 지한휘의 개인적인 팬이기도 하다던데.
또 오늘 활약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건가.
매니징하고 있는 헌터를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일은 일이었다.
아무리 덕업일치라고 하더라도, 가끔 집중하지 않아서 혼난 게 얼마 전이지 않나.
듣기로 지한휘의 은밀한 팬클럽에서 꽤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던데.
그 점이 마음에 들긴 하다만.
이런 식으로 멋대로 움직이면 일이 힘들었다.
‘오면 한 번 혼내 줘야겠네.’
한소리를 해 주려 한시영은 팔을 걷어붙였다.
때마침 정준이 다시 오고 있었다.
한데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올 거라 여겼는데, 웬걸.
그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뭐지.
일이라도 터진 건가.
그녀의 궁금증은 정준의 입을 통해 금방 해결됐다.
“매니저님, 실장님 연락입니다.”
“왜요? 이런 일 처리로 쉽게 연락하실 분이 아니실 텐데.”
“큰일이 터졌답니다. 대책을 위해서 당장 본사로 오시랍니다.”
“뭔가 벌어진 거로군요. 복귀해야겠어요.”
“옙!”
무언가 벌어진 게 확실했다.
* * *
회사로 급하게 돌아온 한시영.
그런 그녀를 맞이하는 건 이제 막 실장급 회의를 끝마치고 온 김시연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직 오프더레코드긴 한데. 금방 알려지긴 할 거야. 임진강 대장벽이 뚫렸다.”
“예? 거기가요?”
“그래. 일부지만 이게 시작일 수 있어.”
임진강 대장벽.
몬스터 사태가 터지고 만들어낸 거대한 장벽이었다.
임진강을 시작으로 장벽을 쌓기 시작하여, 이전에 있던 38선을 같이 활용하며 만들어 낸 장벽이었다.
대장벽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충분히 거대한 그곳.
그곳은 현재 대한민국에 있어 최북단이며 동시에 최전선이었다.
달라진 거라면, 하나다.
적이 달라진 것.
이전엔 북한.
북한이 망해 버린 지금은 통제가 되지 않는 몬스터가 적이다.
그때 한국은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동원해 장벽을 세웠다.
건설에 관련한 이능력자 이창복이 없었으면, 만들지 못할 곳이기도 했다.
그건 일종의 발악이었다.
생존을 위한 발악!
사실 이러한 장벽들이 한국 곳곳에도 아직 남아 있었다.
통제 대신 포기를 한 것이다.
그러한 대장벽이 터져 나갔을 줄이야.
“대응은요? 어떻게 한답니까?”
“우선은 정부에서 대응팀을 급히 파견했어. 하지만 이미 뚫려 버렸으니 쉽지는 않겠지. 몰아내는 건 더 힘들 거고.”
“……피바람이 불겠네요.”
예상치 못한 큰일이 하필 이거라니.
이쯤에서 한시영으로선 하나 더 궁금증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수작질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해서 그를 물어보지만.
“중국 측의 수작인가요? 또 단둥성에서 보낸 거 아니에요?”
“차라리 그러면 낫겠어. 인위적인 거니까…….”
“설마…….”
“이걸 봐. 미국 측에서 보내 준 위성 사진이야.”
답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한시영이 보내 준 위성 사진.
대장벽과 비슷한 식으로 무장이 된 단둥성이 찍혀 있어야 할 그곳은, 반파가 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떻게?’
한국에 대장벽이 있다면, 중국은 단둥성을 요새화했다.
단둥을 중심으로 요새를 구축하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섬멸하는 방식으로 방어 체계를 짰다.
때로 수작질도 부렸다.
단둥에서 몬스터를 처리하기 힘들 때.
비밀스러운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몬스터를 남한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 수단이 무언지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대장벽에선 피해자가 속출했다.
중국은 제 영토를 지키자고 벌인 일이지만, 당하는 이쪽 입장에선 열불이 치솟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니란다.
단둥성도 대장벽처럼 반파돼 있으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건 그리 좋지 못했다.
“그 단둥성이 반파가 돼 버렸다는 게 의미하는 건…….”
“아니길 바라지만…… 몬스터 웨이브가 터진 걸지도 몰라.”
“아…….”
몬스터 웨이브.
오래전 수많은 인구가 죽어 갔던 대사건이 터진 걸지도 몰랐다.
* * *
중국에서 터진 던전 브레이크.
무려 그 수가 36개였다.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중국 요령성.
현 랴오닝성의 도시 단둥이었다.
중국에 있어 최전방이며, 요새화된 그곳이 대번에 무너졌다.
이는 심각한 일이었다.
중국 기준 동쪽이 뚫려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운이 좋지 못했어.”
랴오닝성 서기 말대로였다.
운이 좋지 못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지역이 문제다.
하필이면 단둥 중심지와 위험지대일 것인 이유가 뭐란 말인가.
가장 중요한 중심지와 평소 방위를 철저히 해야 할 위험지대.
이 둘이 전부 터져 나가자, 단둥시의 당원들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위험 지대로 헌터들을 보냈어야 했다.
위험 지대가 터져 나가게 되면, 모든 게 끝이 나게 돼 있으니까.
그러나 정작 그들이 내린 판단은 중심지부터 병력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제 가족, 제 재산들이 있는 그곳부터 지키고 싶었겠지.
그게 아니면, 일이 터지고 난 이후 책임을 져야 해서일 수도 있다.
단둥시를 이끄는 수뇌 입장에서야 일반 사람이 백 죽어 나가는 거보다, 중심지에 있는 주요 인물들이 더 중요하였을 테니까.
그건 완벽한 오판이었다.
그 결과가 단둥을 넘어서, 랴오닝성 전체의 몬스터 사태였다.
“상황은?”
“급히 수습은 하고 있지만, 좋지 못합니다. 겨우 막고 있습니다.”
일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시의 서기로 있는 라오창으로서도 어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확실한 대응책을 말하라는 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없단 소리군.”
해서 아래에 있는 자들을 쪼아 본다만.
뾰족한 수가 나올 리는 없었다.
이대로면 서기직은 물론이고, 당직 전부를 버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그에 대한 각오는 끝마치긴 했다.
하지만 수습은 하긴 해야 할 것 아닌가.
랴오닝성이 끝장이 나면, 제 당직을 버리는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게 된다.
그래선가.
그들은 자신들 다운 본성을 끌어냈다.
“당장은 최대한 동부와 동남부 쪽으로 몬스터들을 몰아붙이고는 있습니다. 중국 내륙에 터져 나오는 거보다는 나아서…….”
“그건 잘했군.”
저 자신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몬스터.
그들을 최대한 중국 내륙이 아닌 동부로 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 동부면 러시아와 옛 북한 영토가 있는 곳이었다.
쉽게 말해 국경선에 몬스터를 몰아 버리려 한단 의미.
저 자신들의 문제를 떠넘기는 격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자는 당원 중 단 하나도 없었다.
자연스레 그에 대해서 논의할 뿐이었다.
다만.
그러한 수작을 위해선 그들도 희생은 감안해야 했다.
몬스터를 한쪽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가 필요했으니까.
그 미끼는 금방 정해졌다.
“예. 때문에 특무 부대도 그리 보내려고 합니다.”
“특무 부대를?”
“몇 정도는 미끼로 처리를 해야…… 동쪽으로 몰아내는 게 가능할 듯 보입니다.”
“그래? 어쩔 수 있나.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지.”
“그들도 당을 위한 희생이니 영광이라 생각할 겁니다.”
“아무렴! 당연한 소리를!”
몇 마디의 말로, 랴오닝성에서 자랑하던 특무 부대의 처우가 결정 됐다.
정식으로 명명된 그들의 작전의 이름은.
<랴오닝 몬스터 사태 토벌전>
실제 이뤄지는 작전은 사태를 축소시키기 위한 미끼 작전이었다.
보통은 전멸, 잘해야 소수의 생존자나 겨우 살아남을 법한 위험한 작전이 곧바로 시행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미끼 작전에는.
“리바이 잘 할 수 있겠지?”
“예! 스승님! 첫 임무인데 해내야죠!”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리바이.
후에 최후의 칠 인 중 하나가 될 그가 특무 부대 첫 임무자로 참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