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아님, 말고!”
자식. 변절이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저리 오버 하는 거야.
뭐. 상황을 보니 이해는 간다.
잘 보니 길동은 광신도들을 상대로 어딘가의 입구를 막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지키는 듯한 행동이다.
그 입구 안.
뭐가 있는지, 나는 기운을 통해 읽어 들일 수 있었다.
스스스스-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악독했다.
나와 연결된 마왕도 그걸 읽어 들인 걸까. 한 마디 보탠다.
-저기. 악마의 흔적이 느껴지는구나.
“내 보기에도 그래. 어쩐지 경매 물품 중에 악마의 육체 조각이 있더라니.”
-저 안에 있는 걸 일부 뜯어내서 내다 판 거로구나.
“그런 걸 거야. 실험이라도 하겠답시고 가지고 있는 걸 내다 판 거겠지. 어차피 경매가 끝나고 회수하면 될 테니까.”
저 안, 악마가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해가 갔다.
어쩐지 이 시기에 악마의 육체가 경매에 나오더라니.
신기하긴 했다.
악마의 육체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육체로 실존하기보다, 영체에 가까운 상태로 있는 자들이다.
그만큼 육체 조각은 귀했다.
그런 악마 육체가 어떻게 나왔는가 했더니.
저 안에 악마가 있다면 모든 게 이해가 갈 수밖에.
더불어 음습한 수작도 읽혔다.
“재밌는 장난질이네.”
-그런 게지. 안에 있는 악마는 분명 살아 있느니라. 죽은 척하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뿐이야.
“하여간 악취미라니까. 그게 악마답긴 하다만.”
악마는 죽지 않았다. 죽은 척을 하고 있다.
그러며 이곳 실험체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 대가로 내어주는 건 자신의 육체 조각들.
이 육체 조각들은, 사실 미끼다.
악마의 육체 조각은 본래부터 광신도들에게 먹음직스러운 먹이니까.
특히 외신을 모시는 광신도들에겐 그만한 진미도 없었다.
고로 그걸 종합해 보자면.
확실해진다.
“이쪽에 저 광신도들이 오도록 홀린 게 저 악마겠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했을 거야. 그리고 오늘 마침 딱, 쾅 하고 터진 거지.”
-가히 악마의 장난질이지 않은가.
이 사건.
모두가 저 녀석의 장난질에 놀아난 거다.
이건 전생에 없던 일이다.
그러나 왜인지는 가늠이 갔다.
‘이 일의 방아쇠 자체는 나야.’
요즘 들어 광신도의 움직임을 내가 계속해 막아오지 않았나.
때문에 게이트 변질을 통한 침공이 힘들어졌겠지.
그걸 참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몰아서 들어 온 거다.
그러나.
전이라면 일이 틀어졌음에 화라도 냈겠다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 와 여러 가지로 꼬여 버린 현재 속에서 악마 한 마리가 미꾸라지처럼 장난질하는 거 따위.
그런 거에 심각해지진 않는다.
겪은 게 많으니까.
“우습네.”
-여도 귀여우니라.
그 대신.
광신도 무리를 끌어들이는 장난질에 나까지 끌인 대가.
그 대가는 확실히 받을 생각이었다.
“죽일까?”
-그게 좋겠지. 여는 악마의 죽음은 언제나 환영이니라.
그 대가는 죽음.
아주 완벽히 죽여 버릴 생각이다.
마왕은 영체 상태임에도 흡족한 듯, 투구 사이로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오해라도 한 건가.
“죽이긴 누굴 죽여! 이 미친 새끼야아아!”
어울리지도 않게 살신성인하며 이곳을 지키던 길동 녀석.
때아니게 각성한 데다, 제법 잘 싸우는 거도 웃긴 일인데.
오해를 또 거하게 하네.
“또 반말……?”
“X바! 그럼 이 상황에 뭘 그런 걸 따져!”
“씁!”
“내가 애냐! 그런다고 조용하게!”
마음 같아선, 저 자식도 단번에 쓱-삭 하고 싶다만.
아직 흑화는커녕.
이곳을 지키겠다고 나선 녀석이다.
이유를 몰라도 전에 없던 각성까지 스스로 했다.
때문에 놈을 죽이자고 바로 손 쓸 수가 없었다.
무언가 달라진 거 같기도 하고.
미래의 변절자가 현재의 각성자가 된다면, 그도 나쁜 결과는 아니지 않은가.
해서 좀 살려 주려고 하는데.
“진짜로 변절했으면 넌 이미 뒤졌어.”
“퉷……!”
저 새끼…… 진짜 침을 뱉어?
아잇? 선 넘네?!
이러면, 죽이지는 않더라도.
참교육 한번 해 주는 건 나쁘지 않겠지.
콰아앙-!
“내 한 번만 봐준다.”
“켁…… 너 새끼…….”
나는 겨우겨우 버티고 선, 녀석의 가슴팍을 쳤다.
[당신은 상대에게 영력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타격을 입힌 가슴팍 사이 내 영력이 흘러 들어갔다.
영력은 녀석의 영혼 그 자체에 강한 울림을 끼얹었고.
쿠우웅.
그 대가로 길동은 기절해 버렸다.
쓰러지면서도 놈은 내게 눈빛을 보냈다.
눈빛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후회가 보이는 가운데, 뭔지 모를 영- 껄끄러운 감정이 섞여 있었으니까.
뭐, 그조차 내가 알 필요는 없겠지.
이제 이 녀석이랑 엮일 일은 없을 테니까.
자, 어쨌건 이 녀석이 쓰러지는 것으로 주변은 조용해졌다.
놈과 나.
그리고 마왕.
이 셋 외에 생명 줄이 붙어 있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이젠 목격자 없지?”
-여를 뺀다면?
“흐흐. 그래. 그렇단 말이지.”
자아, 이렇게 목격자가 없어졌으니 내 일은 이제 쉬워졌다.
거칠 게 없어졌다.
일의 마무리를 위해서.
저 안의 악마,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처리할 시간이다.
“영력 폭발.”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일으켰다.]
[당신은 기술 : 영력 폭발을 사용했다.]
콰아아앙-!
폭음이 건물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 * *
기자 도은용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경매장에 나가서 사진 촬영을 한 게 몇십 분 전이었다.
사진을 송출한 장비를 수습하고.
곧바로 다음 촬영 장소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다 온 다급한 연락이 왔다.
-어디야?
“일산으로 가고 있습…….”
-거길 왜 가! 소식 못 들었어? 당장 차 돌려. 경매장으로 돌아가!
다시 경매장으로 돌아가란 말에, 도 기자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이 뒤로 그의 스케줄에 있는 스타는 헌터 출신 연예인 조은아였다.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힘을 써서 발광하기까지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을 두고 펑크를 내라고?
누가 책임을 지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예? 약속 펑크 나면 그 녀석 난리란 난리는…….”
-됐고! 차 돌리라고! 책임은 내가 진다.
다행히 그 책임을 상사가 진단다.
해서 다시 돌아가려고 도로의 유턴 차로에 차를 가져다 대는 찰나.
“그러시다면…… 그럼…… 엇?”
콰아아아앙-!
저 뒤로 거대한 폭음이 들려 왔다.
그가 떠나온 지 얼마 안 된, 오성의 경매장 방향에서였다.
그 순간 도 기자는 직감했다.
‘특종이다!’
생각지 못한 대어를 물지도 모르겠다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였다.
끼이이익- 끽-
각자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던 게 분명하던 차들.
언론사, 방송국 차고 할 거 없이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됐다.
‘X바. 딱지 끊으라지!’
도 기자는 신호조차 무시한 채, 냉큼 차량부터 돌렸다.
그때부턴 전쟁터였다.
경매장에 가기까지 미친 듯 밟아댔다.
거의 다 도착해선 도로가 통제되는 걸 보고, 몸부터 내렸다.
“어엇! 도 선배님! 지금 차 버리고 가시면…….”
“어차피 수습 안 돼! 따라와!”
오랜만에 피가 끓고 있어서일까.
그는 필요한 기본 장비들만 냅다 챙겨 들었다. 대신 차를 버렸다.
“선배님……! 에이 씨. 같이 가요!”
절절히 소리치던 후배 녀석도 그 뒤를 따랐다.
덕분에 도로는 엉망이 되었다만.
어차피 길은 막혀 있는 상태였다.
자신 하나가 차를 버렸다고 별로 달라진 거도 없었다.
그러고 도착한 경매장.
포토존이 만들어져 있고, 그에 따라 쭉 이어졌던 레드카펫의 흔적은 어디도 없었다.
짧은 시간, 많은 게 변해 있었다.
엉망이 된 경매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을 본 도 기자는 기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 자부한 도 기자였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현장 뛰는 걸 즐겼다.
해서 온갖 괴이한 걸 다 봤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저런 것들은 그도 처음이었다.
두근- 두근-
건물 전체가 생물이라도 된 듯 맥동하고 있었다.
단단히 닫혀 있어야 할 창문들은 곳곳이 깨어져 나가 있다.
그 사이로 기이한 울림과 함께 인간도 아닌 존재들이 보였다.
괴물이었다.
흡사 몬스터와 같이 생긴 게, 사람 말을 해대는 게 간간이 들려 온다.
그 사이 비명들은 더 또렷해져갔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비명이 내질러질 때마다, 분명 사람이 죽는다.
그때마다 맥동은 커졌다.
“……거, 건물에 저게 뭡니까? 무슨 생물이 빙의라도 한 거 같지 않습니까.”
“나도 처음 본다. 저건. 대체 뭐냐. 우선 찍어!”
“네, 넵!”
이거,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황을 몰라도 기록은 해야 했다.
차르르르륵-
송출 준비를 하면서도, 미친 듯 셔터를 눌러댔다.
반사적으로 하는 행위였다.
그러며 도 기자는 생각했다.
‘특종이고 뭐고, X바. 이거 사람 다 죽는 거 아냐?’
정말 다 죽는 거 아니냐고.
저 행사장에 있던 자들 모두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죽는 게 아닌가.
저 맥동하는 건물이 당장 살아 움직일 거 같았다.
자신에게 다가와 잡아 먹기라도 할 거 같았다.
그런 감이 왔다.
‘아니겠지.’
위협적이다.
애써 그런 감을 무시해 보는데.
“으아아아! 오, 옵니다.”
“뭐가? 헛…… X바!”
스르르르-
건물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유기체들이 스멀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촉수와 같은 그것은 주변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흡사.
건물을 잡아 먹은 거대한 촉수 괴물.
그것이 주변에 있는 모든 걸 잡아 먹고자 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순간 도 기자는 깨달았다.
‘망했다!’
자신도 저것에 잡아 먹힐지 모르겠다고.
저 경매 행사장 안에 있는 자들과 같은 꼴이 될 수 있겠다 여겼다.
그런데 웬걸.
콰즉. 콰즈즈즉-
“터, 터져나갑니다.”
“나도 봤어!”
일 순간-
영역을 퍼트리듯 다가오던 촉수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의 발 바로 앞까지 다가왔던 그것들이 전부 멈춰 섰다.
마치, 길게 다리를 늘어뜨렸던 오징어가 충격을 받아 몸을 움츠리듯 줄이는 듯했다.
‘이…… 괴물이 뭐에 당해서?’
과연 누가 촉수에게 타격을 준 걸까.
이 촉수의 정체는 뭐고?
실상 이 촉수의 정체는 외신의 줄기 중 하나.
광신도들이 제물을 바치면 바칠수록 점차 그 줄기가 뻗어 나오는 성질을 지닌 게 놈의 정체긴 하지만.
하지만 당장, 도 기자는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이 시대에 누구도 아직 그 정도까지 비밀을 파헤친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가만 있어도 작은 진실 하나는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사, 살았다…….”
“으아아아! 살았어!”
건물 안.
저 안에 갇혀 있었을 게 분명한 자들이 건물 바깥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생존자들이었다.
그리고 동시, 크게 맥동하고 있던 빌딩의 움직임이 멎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던 촉수들은 안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알 수 없는 괴음과 비명이 들려 올 때마다, 빌딩 아래 내려앉았던 기이한 기운도 점차 사그라들어갔다.
“누, 누군가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건 나도 예상해! 근데 그게 누군데?!”
후배 말대로 누군가 활약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누구냔 말인가.
거기까진 알아내야 기자로서 제 몫을 했다 할 수 있지 않은가.
‘X벌. 어떻게 알아내지?’
그걸 알아내려면 생존자한테로 가야 했다.
가서 물어야 했다.
너무 놀라 호흡이 가빠진 생존자들한테는 그래선 안 됐다.
곤란했다.
딱 기레기 다운 일이지 않은가.
이 세상에 얼마 안 남은 기자라고 자신을 자부하던 도 기자가 할 일은 아니었다.
고민만 깊어졌다.
‘어쩌지?’
그러다 도중에 빠져나온 몇몇 헌터를 발견했다.
저거다.
그는 냅다 다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