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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72화 (72/206)

제72화

만병 통치약인 엘릭서.

그에 대해서 설명하던 사회자의 곁으로 직원으로 보이는 자가 귓속말을 했다.

저 멀리 있는 내게도 목소리는 살짝 들려왔다.

-뭐?

-잠시 미루시랍니다.

-아씨. 지금 하라고? 최고가가 뜰 거 같은데. 내 인센은?

-책임져 주신다고…….

들려오는 말에 집중을 하고 있던 내게, 더 가까이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한휘 씨?”

고압적으로 사람을 내려다보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이네?

방금 전까지, 나와 경매에서 경쟁하던 녀석이다.

이름까지는 몰랐었는데.

“박동길이라고합니다.”

악수를 하자고 제 손을 내미니 알게 될 수밖에.

나는 그 악수를 받는 대신 얼굴을 빤히 바라 봤다.

어딘가 익숙했거든.

‘박동길…… 박동길…… 아아. 어딘가 익숙하나 했더니만!’

이름에 저 얼굴.

한 십 년 더 늙으면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크. 이걸 맞춰 내다니.

“맞아. 길동이지!”

“…….”

-호오. 길동. 나도 기억나는구나.

나도 모르게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길동이 아니 동길이의 인상이 퍽 찡그려진다.

박동길. 뒤로 해서 길동이.

이 녀석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오성 그룹의 혼외자식 중 하나가 이 녀석이거든.

그런 녀석한테 오성 회장은 동길이라 붙여놨다.

거꾸로 불러서 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말야.

심한 악취미지 않나.

그 때문인가.

이 녀석은 후에 오성이 망하는 데 큰 일조를 해 주신다.

손수 마족이랑 손을 잡아 주신다.

제 가족, 아니 가문의 사람을 전부 제물로 바쳐서 말이지.

가만 있어도 잘먹고 잘 사는 게 재벌이시다.

한국에 끼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보니, 이것들은 제물로써 가치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꽤 대단한 마족을 소환해 내셨더랬다.

그때 그거 제압하자고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진짜 뒤지게 패고 싶다. 안 그래도 이 자식, 그때 너무 쉽게 뒤졌어.’

여튼 그런 녀석이었다.

이 녀석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아까 경매를 한창 진행할 때 못 알아본 게 아쉬울 정도다.

알면 더 노골적으로 놀렸을 건데.

아깝다.

그래도 길동이란 말을 들어선지, 알아서 인상을 찌푸려 주는구만.

“후……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군요.”

“뭐, 딱히 뒤로 빼고 하는 재주도 없어서.”

“반말도 입에 붙어 있고요?”

“괄시하는 집안에 붙어 있는 거 보다는 낫지.”

빠득…….

이야. 제 이 갈았어.

저러다 입에서 보라색 맛 나는 거 아니냐.

그걸 보고 옆에 있는 한시영은 안절부절못했다.

길동이가 어떤 녀석인지 아는 듯했다.

하기야 매니저기 이전에 미래 엔터의 실장 직속 직원이었던 그녀다.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오성의 인물들은 꿰고 있겠지.

안 그래도 길동이가 사생아기는 해도, 능력은 있거든.

오성 엔터에서 힘 좀 쓰는 놈이다.

그래도 영영 인정은 못 받지만 말이지.

나로선 마음에 드는 표정이다.

아오. 그러니까 왜 회귀 전에 마족을 소환해서 오성을 날려먹어요?

덕분에 서울 한복판 아포칼립스물 찍을 뻔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갈구지.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갈굼이라 이 말이지.

근데 그게 신호로 보였나.

“……협상을 위해서 왔는데, 명백히 거절을 보이시네요.”

“협상?”

얘는 협상을 말하고 앉았네?

아아. 이제 이해가 갔다.

이 자식이 경매를 휴회시킨 게 분명하다. 나랑 협상을 하려고. 그 내용은 너무 뻔했다.

엘릭서.

그 때문이겠지.

“예. 이번 엘릭서 노리시고 계시는 거죠?”

“그렇다면?”

“이번은 포기해 주시죠. 포기만 해 주시면 차후에 오성 엔터 차원에서 편의를 한 번 봐 드리겠습니다.”

“하…….”

이거 봐라. 바로 엘릭서를 말해 주신다.

재밌는 농담을 들은 듯한데.

오성의 편의 한 번에 엘릭서를 포기하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매니저로선 꽤 괜찮아 보이는 듯했다. 귓속말을 해왔다.

“팀장님. 이거 받죠? 수백억 쓰는 거보단, 잠시 기다리고 빚을 지우는 게 수지맞는 장사일 거 같은데요.”

이해 못할 건 아니다.

구하기 힘든 엘릭서지만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

통째로도 아니고 두 방울.

2ml 정도는 어떻게든 된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언젠가 구할 수 있는 엘릭서를 포기하고, 오성에 빚을 지운다는 선택.

이성적으로 보면, 분명 나쁜 선택은 아니다.

때문인지 한시영도 나를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

길동이. 이 녀석도 자신감이 보였다.

네가 협상을 받지, 안 받겠냐 하는 자신감이었다.

새끼. 착각하기는.

기대감은 깨라고 있는 거 아닌가.

“싫은데?”

“당연히 받으실 줄…… 예?”

“싫다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에베베베-

인상 찡그려지는 거 보시래요.

얘, 이러다 흑화하는 거 아니냐.

십 년 뒤에 계약하는 거, 지금 확 당겨 버릴지도.

하지만 내 대답은 절대 바뀔 수 없었다.

나는 확언하듯 한 번 더 말해 줬다.

“지한휘 씨. 우리 오성의 편의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시나 본데…….”

“아는데? 미래 그룹한테 아주 잘 받고 있거든. 뭐, 그룹 믿고 덤비는 건 아니고. 어쨌든 안 돼. 돌아가. 못 바꿔 줘.”

“……하.”

협상은 결렬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돌아가는 길동이.

나는 그를 뒤에서 보고 한참을 웃어젖혀 주셨다.

잘 보란 듯이.

* * *

협상 결렬 이후 경매는 바로 시작됐다.

경매 휴회 자체가 저 녀석이 만들어 낸 거다.

길게 시간을 끌 것도 없었겠지.

그렇게 진행된 경매.

낮게 측정된 100억부터 시작하여, 금방 200억에 도달했다.

딱 이 정도가 엘릭서 두 방울의 정가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액은 금방 치솟아 올랐다.

금세 250억.

-자 250억 나왔습니다! 받으시나요?

-260억! 다음은요?

-300억 바로 올리시겠다고요? 좋습니다, 300억!

260억 찍고, 바로 300억.

여기서부턴 그 침착하던 경매 진행자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해한다.

인센티브 단위가 여기부터는 달라질 테니까.

흥분을 감추기 어렵겠지.

하기는, 진행사의 흥분은 흥분도 아니었다.

저 멀리 있는 길동이.

진행사의 말에 맞춰 가격 올리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눈은 계속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 눈빛을 해석해 보자면,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

뭐 이런 한 마디가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을까.

아주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고 계시는구만.

그 모습이 꽤 호러다.

“팀장님 얼굴 뚫어지겠는데요.”

“한번 뚫어 보라지. 내가 낯짝이 두꺼워서 뚫릴 리가 없다니까요?”

“이야. 우리 팀장님 이상한 걸 자랑하는 취미가 있으시네요. 덕분에 일이 복잡해지긴 했죠?”

“그러라죠. 자자, 저 경매에 집중해야 하니 잠시만 있다 이야기 합시다.”

“넵!”

물론 나로서는 그조차도 즐기고 있지만 말이지.

그러기에 회귀 전에 잘하지 그랬나.

그땐 내가 네 녀석을 그렇게 봤었거든.

알려나.

아니 모르겠지.

어쨌거나, 한시영도 이젠 자기도 모르겠다 싶었는지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길동이 표정 한 번 보고. 나 한 번 보고.

심심하면 올라가는 가격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재밌기야 하겠지.

원래 남의 돈 쓰는 거 보는 게 재밌거든.

본인만 속이 썩는 법이었다.

근데 이번은 나도 재밌네?

-500억!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 나와 버렸는데요. 더 가시나요?

금액은 순식간에 치솟아 주셨다.

500억이라.

이 정도면 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예언을 위한 복채를 받는다고 해도, 500억은 결코 쉬운 돈이 아니거든.

그 때문인가.

저쪽 길동이도 얼굴이 반쯤 헬쓱해져 있었다.

-신호 주셨습니다. 510억! 520억 바로 받으시는데요?

어쭈? 그런데도 바로 받네? 무리일 텐데.

여기가 승부수였다.

나는 그걸 깨닫고 이번엔 호가 신호가 아니라, 더 크게 외쳐 버렸다.

“600억! 600억 가죠. 어때요?”

-……600억. 바로 가겠습니다.

이게 전쟁이라면 600억은 필살기였다.

-자아. 더 없으십니까? 600억! 600억! 600억!

따아앙. 따앙. 땅.

-낙찰입니다! 이번 대미를 장식하는 엘릭서 두 방울은 323번 패널에게로 넘어갑니다.

승리였다.

필살기를 맞은 길동이는 그대로 침몰했다.

필살기를 쓴 나의 위엄에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얗게 질린 채, 나를 보는데 눈에 힘이 풀어져 있었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직접 때리지도 않았는데 그로기 상태라니.

그때 실감했다.

이게 돈으로 때려 보는 거라는걸.

‘이 맛에 돈 버나.’

중독될 거 같은 맛이다.

아니 이미 중독이 됐을지도.

* * *

길었던 경매가 끝이 났다.

이후는 일사천리가 되어야 했다.

-자 이것으로 오성 건설에서 후원하고, 오성 엔터테이먼트에서 주최한 경매가 끝을…….

진행사도 그걸 알아서인가.

경매 종료사를 내뱉고 있었다.

종료를 고하는 목소리에 마지막까지도 힘이 들어가 있는 건, 진행사로서의 프로의식 덕분일까. 아니면 이 뒤에 들어 올 인센티브 덕분일까.

답은 아무래도 인센티브 같았다.

진행자는 말을 끝마치고는 나를 향해 걸어 오고 있었으니까.

이 경매 자리를 돈으로 빛을 내주었으니, 감사하단 인사라도 하러 오는 걸 거다.

평소라면 이런 자리는 귀찮다고 내빼 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팬 놈 또 패는 게 더 재밌거든.’

저어기- 체면 때문에라도 끝까지 자리에 붙어 있는 길동이.

녀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내빼면 내가 아니지.

“패널 님. 아니, 지한휘 헌터시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경매 진행사 이수진입니다.”

“처음뵙네요. 덕분에 좋은 물건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휴. 그게 어디 제 덕분인가요. 헌터님께서 대단하신 거지요.”

“하하하. 이거, 그렇게 되나요.”

나는 금칠을 해 주는 경매사 앞에서 크게 웃어 줬다.

웃을수록 짜릿했다.

길동이가 부들부들 대는 꼬락서니가 전율을 가져다 줬거든.

“하하하. 하하하하.”

“후후. 많이 기쁘신가보네요.”

“아무렴요. 후흐흐흐.”

축하를 해 주러 온 진행자.

그녀가 어색하게 웃을 때까지 나는 한껏 크게 웃어 주셨다.

이 웃음이 슬슬 뇌절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쯤이었나.

진행자는 프로답게 일을 진행했다.

“자, 그럼 경매 대금은 바로 치르실 건가요? 이번 경매는 대금을 치르시면 물건을 바로 가져가실 수 있게 조치해놓았습니다.”

“오. 따로 배송 없이요?”

“원하시면 배송도 따로 가능합니다. 이번은 지한휘 헌터님께서 급히 원하시는 거 같아서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불편하셨을까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고맙죠. 바로 가져가겠습니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실상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성이 다시 엘릭서를 회수하기 위한 준비였겠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이쪽에선 빨리 가져갈수록 이득이었다.

저 오성에서 어떤 수작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안 그래도 원한을 산 거 같은데, 조심해야지.

‘자자. 어서 와라.’

옆에 있던 매니저 한시영이 대금을 금방 치러줬다.

엘릭서를 포함한 수개의 물건을 사선지, 잔고는 금방 마이너스로 치솟았다.

이거 따서 갚으려면 몇 달은 고생은 하겠다만.

“후후…….”

그럼에도 난 금방 올 물건들에 기대감이 컸다.

이것으로 둘을 살리는 준비는 슬슬 마무리에 가까워져 갈 테니까.

이 둘을 부활시키면, 그때는.

‘뭐라 놀려 주지?’

오랜만에 본 그 둘.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누구보다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둘이다.

이 둘에게 뭐라 말해야 할까를 상상하며 기다리던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큰 폭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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