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파산이라…… 하겠어요?”
“거기서 파산하는 헌터들이 꽤 됐으니까요. 지닌 현금을 다 썼다가 흐름이 막혀서 나앉는 거죠.”
“후음…….”
그의 요청은 경매장 참여였다.
작은 경매 따위가 아니었다.
미래랑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성 그룹에서 주최하는 경매였다.
오성은 경매 물품에 힘도 많이 준 상태였다.
근래 들어 미래 그룹의 기세가 좋지 않은가.
그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오성에서 흐름을 바꿔보자고 준비한 경매다.
그들은 언론에 자료를 떠들썩하니 뿌려 댔다.
참여자들을 모아 자리를 빛내고자 로비도 상당히 진행했다.
그런 자리에 덥썩 참여를 하겠다고 한 지한휘이다.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해서 한시영이 걱정스레 말하는데도 그는 평온하기만 했다.
보아하니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했다.
“내가 파산할 거 같으면 미래 그룹에서 도와주지 않을까요?”
“도와는 주겠죠.”
문제는 믿는 구석이 한시영이 속한 그룹이란 건데.
평소라면 그냥 둘 터.
하지만 괜스레 저 평온한 지한휘의 표정에 한 방 먹이고픈 그녀였다.
“그럼 된 거 아닌가.”
“후후. 그럼요. 안 그래도 지한휘 헌터 몸값이 치솟아서 어떻게 묶어둬야 하나 걱정인데…… 빚쟁이가 되었다고 하면 그룹 차원에서 좋아할 거 같네요?”
“……윽.”
해서 먹인 묵직한 한 방.
뼛속 깊이 들어가는 묵직한 한방에 그가 비틀거린다.
그리고 들어가는 마무리.
“그날이 제가 승진하는 날이겠어요. 그땐 팀장이 아니라 노예 주인과 노예 정도 아닐까요? 어때요?”
“……위험 발언은 거기까지.”
“어머. 전 잘 다룰 자신 있는데.”
“대체, 뭘 어떻게 잘 다룬다는 거야…….”
“궁금해요?”
“……후.”
이어지는 말에 그제야 상황을 실감하는 듯 보이는 지한휘였다.
겉모습으로 봐선 한시영의 발언에 현실을 자각한 게 보였다.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인가.
돈을 주면 그 이상으로 부리는 게 대기업이지. 대우할 땐 해도, 일정 이상이 되면 어찌 다룰지 모르는 게 대기업이시다.
그런 현실을 한시영이 직접 알려주었으니.
‘이제는 자중하시겠지.’
경매장에 가서 무리는 안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러나 정작 그런 그녀의 조언을 들은 지한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획대로면 어차피 미래 그룹 잡아먹어야 하잖아? 못 먹어도 고 하는 거지. 냅다 지르고 본다. 어차피 그걸 사려면 어느 정도 무리는…….’
그로서는 꼭 구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유보라와 마리.
그 둘을 다시 구하기 위해선 경매장에 나올 ‘그것’들이 꼭 필요한 그였다.
어쨌거나 따서 갚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준비 다 해두었으니 가 볼까요?”
“그러죠.”
그렇게 둘의 동상이몽 속에서.
경매장 행이 시작되었다.
* * *
경매장으로 향하는 길은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최근 들어 치안이 좋다는 서울.
그런 서울 한복판을 달리고 있는데도 그만은 그 안전에서 예외였다.
치이이익-
-동쪽에서 신원 미상의 차량 발견.
“따돌려 버리세요.”
곳곳에서 지한휘를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어지간한 것들은 그룹 차원에서 미리 차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까지 노리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몇 개의 차를 따돌리고. 설치된 함정을 파헤쳐야 했다.
그만큼 많은 자들이 그를 노리고 있단 의미.
“캬…… 이 해묵은 원한들 보게.”
“헌터님, 창문 열지 마세요. 저격당할 수도 있어요.”
“안 될걸요? 해도 실패할 거고.”
“어쨌든요. 협조 좀 해 주세요.”
“예이. 예이. 그럽죠.”
걱정이라도 할 법하지만, 지한휘는 되레 즐기고 있었다.
바깥 구경을 하겠다는 걸 몇 번은 말려야 했다.
‘하여간에…… 별종이야.’
그렇게 해서 도착한 경매장이었다.
찰칵. 찰칵.
내려선 한시영과 지한휘.
대기하고 있던 많은 기자들이 그를 향해 사진을 찍어댔다.
곳곳에서 이사야는 대체 왜 빠졌느냐는 야유도 들려왔다.
그런 가운데 한시영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휴…… 여기까지 왔으니 됐어요.”
“여긴 테러 안 나나요?”
“그러겠죠. 오성 그룹에서 칼갈고 준비한 경매인데요. 거기다 설사 나더라도 여기부턴 오성 책임 아니겠어요?”
“오호. 회사원 마인드. 좋은데요?”
“받은 만큼 하는 거죠.”
그녀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은 모두 끝난 덕이었다.
그녀 말대로 여기서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오성의 책임.
그녀가 책임질 일은 이제 더 없었다.
거기다 누가 여길 공격하겠는가.
다수의 귀빈이 참여한 경매장이다.
이런 경매장에서 난동이나 테러를 부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테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후의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
“자, 그럼 에스코트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꺼이. 나도 이런 거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후후. 됐어요. 자, 어서 들어가 보자고요.”
그러기에 그녀는 한결 안심을 하며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농담을 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둘이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서.
쿠우웅-!
시상식처럼 꾸며졌던 행사장이 문이 닫히고. 가득 주변을 채우고 있던 기자들과 구경꾼들이 흩어졌다.
그러고도 남은 몇 명의 소수는.
치이익-
“1차 준비 완료.”
-신호를 보내면 시작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점차 움직이고 있었다.
* * *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엘릭서 두 방울. 용골. 만다린. 바빌룬. 악마 다룬의 시체 조각…….
이번 경매장에서 내가 구해야 하는 물건들은 이리도 많았다.
따로 리스트를 추려야 할 정도였다.
‘매니저 말대로 정말 파산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나 나로선 꼭 구해야만 했다.
유보라와 마리.
얼마 후 있을 둘의 부활 의식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니까.
정확히는 부활이라기보다는, 창조에 가까운 행위긴 하다만…….
어쨌거나 파산을 감수하고라도 구해내야 했다.
더 있다가는 이 둘도 내게로 합일돼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찾은 경매장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경매를 찾아주셔서 감사 말씀드립니다. 처음 시작을 여는 물건은 바로 만드라의 뿌리로…….
경매의 시작은 차분했다.
영화나 애니에서 표현되는 경매는 시끌벅적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경매 자체가 소위 있는 자들의 놀자판이다.
속마음이야 에헤라디야- 쾌지나 칭칭 나네 하고 있어도 겉으로는 교양 있는 ‘척’을 해 주시는 장소라 이 말씀.
그러다 보니 사회자도 조금씩 물건을 올려 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킬 뿐이다.
아, 그럼 재미가 덜하지 않냐고?
-2억 나왔습니다! 다음 호가부터는 1천만 원씩 올라갑니다! 자, 2억 1천만 원. 2억 1천만 원. 없으십니까?
-오! 저기 있으시군요! 자, 다음은 2억 2천!
액수가 다르다. 액수가.
한 번 손드는 거에 천이 달라진다.
여기서 5억을 올리면? 다시 3천씩 올라간다.
그러다 30억을 가면 1억씩이 툭툭 올라가는 식이다.
1천. 3천. 1억.
말이 쉽다.
손짓 한 번, 부름 한 번에 금액이 달라지는 거.
실제 보면 흥미진진해진다.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 툭툭 오고 가거든.
여기서 묘미는 둘이 자존심 싸움으로 맞붙었을 때다.
경쟁이 시작됐을 때.
다들 조용한 가운데 사회자의 목소리만 가늘게 떨려온다.
-오! 30억! 이거 예상하지 못한 금액이 나왔는데요.
-31억 나오셨습니다!
-자, 32억?
-오. 받으셨고요. 바로 33억 가셨네요. 자 그럼 이번엔 호가를 빠르게 올려보겠습니다. 35억 가시나요?
1억. 2억.
올라갈 때마다 가늘게 떨리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긴장감을 더해 주게 돼 있었다.
-40억! 40억 나왔습니다. 이대로 가시나요?
내 돈이 아닌데 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정점을 찍었을 때.
사회자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자, 40억. 40억. 40억!
따아앙-!
손에 쥐어진 작은 도장이 나무판을 치면서, 정적으로 가득 차 있는 경매장 안을 도장 소리가 메우는 그 순간.
경매자는 시끄러울 것도 없이 나지막하게, 낙찰자의 뽕을 한 번 채워 주게 돼 있었다.
-경매 시작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네요. 자, 다들 박수 한번 쳐 주시겠어요?
짝. 짝. 짝.
요란스럽지도, 경박하지도 않은 박수 소리가 경매장 안을 채운다.
그때가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는 때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경매장에 들어설 정도면, 재력을 증명한 자들.
그런 자들이 오로지 자신만을 이해 박수를 쳐 준다.
그러며 눈짓 한 번을 던져주고.
방금 전까지 경쟁하던 자는 부럽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게 돼 있었다.
크…….
그때 낙찰자는 아무것도 아닌 척 어깨를 으쓱 한번 해 주면, 끝이다.
저 가슴 깊은 아래부터 뽕이 차오르게 돼 있었다.
대중이 보는 SNS? 요튜브? 동창회에서 자랑?
그런 거와 결이 다른 또 다른 뽕이란 게 차오르게 돼 있다.
장담하건대, 확실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거든.
‘쥑인다.’
대기업 임원, 기업 총수, 이름난 헌터, 경쟁하던 경쟁자 놈.
모두가 보내는 이 시선을 보니 가슴 깊이 만족스럽다.
이 맛에 경매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 이렇게 지르셔도 되겠어요? 벌써 100억은 쓰신 거 같은데요?”
“예상하고 왔던 바예요. 꼭 구매해야 하고요. 설사, 매니저 말대로 미래에 저당 잡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걸 즐기고 있는데, 옆에 있는 한시영이 되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만다린. 바빌룬. 용골.
리스트에 있는 걸 구할 때마다, 나 대신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특히 방금 전 용골에서는 자신이 다 쫄깃함을 느꼈는지 움찔거리기까지 했다.
하기야 말이 40억이다.
경매 수수료가 20%에 육박한 걸 생각하면 내가 지르는 건 부려 48억이다.
고작 용 뼈다귀 한 방에 40억이라.
기업 연구용으로 쓸만한 걸 사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거기다 저기 저 시선을 봐라.
방금 전에 내게 경매에서 진 녀석.
저 자식 사실 이 경매를 연 오성 녀석이거든.
녀석들은 이 경매에 장난질을 쳐놨다.
“…… 저쪽 박전무 약이 잔뜩 오른 거 같아요.”
“그러겠죠. 보아하니 귀한 용골 내놓고, 자기가 다시 구매해서 가져가려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완전히 망쳐놨잖아요?”
자신들이 귀한 물건을 내놓고, 다시 구매하는 방식.
주최측에선 수수료만 적당히 처리하면 될 일이기에 자주 쓰이는 방식이었다.
용골을 내놔서 경매의 격은 올려놓고, 실제론 자신들 연구용으로 쓸라 했겠지.
뭐, 사실 어지간하면 주최측에선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긴 하는데.
‘몸이 달아오르긴 했을 거야.’
미래 그룹이 이 몸 덕에 워낙에 주가가 상승하고 계시니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해서 이 뒤도 문제긴 했다.
“저들이 용골을 포기한건 엘릭서 때문일 확률이 커요.”
“알아요. 다른 건 몰라도 저건 꼭 회수해야 하니까.”
나는 엘릭서도 구해야 했다.
문젠 이 엘릭서를 녀석들이 최대한 회수하려 할 거란 거다.
용골은 어떻게든 구해도 엘릭서는 또 다른 문제니까.
결국 최종 난관이 남아 있다 이건데.
“그쵸. 그러니 조심하셔야 해요. 차라리 이번은 포기하시고 저희가 구해 오시는 걸 기다리는 것도…….”
“안 됩니다. 난 꼭 구해야 해서.”
이쪽도 물러날 순 없었다.
어떻게든 부활 의식을 해야만 했으니까. 그러니 나도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김 실장에게 연락해 봐요. 나 얼마까지 땡겨 줄 수 있는지를요.”
“……꼭 그러셔야겠어요?”
“나름 급하거든요. 얼른.”
“휴우…… 알겠어요.”
현재를 저당잡히더라도, 미래에서 땡긴다 이거다.
미친 짓 아니냐고?
아잇, 따서 갚으면 되잖아. 따서.
‘도박 한두 번 하나.’
어차피 죽기 살기였다.
외줄타고 움직이는 게 하루 이틀이랴.
그런 마음으로다가 나는 돈 싸움의 최종장을 걸 생각이었다.
“……통과됐어요. 마음껏 써 보시래요.”
“오케이.”
그렇게 돈이라는 이름의 탄환을 준비하고.
-자, 고대하시던 마지막 물품이죠. 무려 엘릭서입니다.
기대하던 물품이 나오는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