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팬입니다. 기억해 주세요.』
어여쁘게 담긴 꽃다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작은 메시지.
보통이면 팬이 스타한테 보내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런데 이게 왜 나한테 오는 거지.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다.
잘못 온 거 아니냐고 하기엔
『to. 지한휘 헌터님』
이라고 떡하니 새겨져 있었다.
분명히 나한테 왔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는 건가.
가슴이 복받쳐 온다.
최후의 칠인이란 전생에도 이런 건 못 받았는데.
그때는…….
‘제령 의식하라고 식칼 보내주면 양반이었지. 어떤 미친 놈은 원귀 담긴 상자라고 보냈단 말이지. 씁…… 그 새끼 거, 생각해 보니까 끝끝내 못 잡았었네?’
선물이 정상인 게 없었다.
팬질 하겠답시고 온 인형을 보면…….
원귀 실린 사탄의 인형. 저주 실린 목각 인형. 부두교 술법이 담긴 인형…….
같은 것들이 왔다.
장인이란 놈들은 써 보라고 이상한 걸 던져줬더랬다.
특제 12방향으로 뻗어있는 방울, 제령의 힘이 담긴 석검, 부두교 지팡이, 십자가…….
죄다 오는 게 그따위였다.
덕분에 우리 집에 동료가 오면 귀신의 집 아니냐고 난리였지.
그나마 쓸 만한 게 하나 있긴 했다.
사인검이었다.
인해, 인달, 인날, 인시.
네 개의 인이 있을 때 만들어졌다고 붙은 이름이 사인이요.
네 개의 인이 모여 만들어진 검이니 사인검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꽤 멋드러진 녀석이더랬다.
이게 의외로 제령 효과가 있긴했다.
악귀가 꺼림칙해 했거든.
근데 내가 상대한 건 몬스터잖아.
쓸모가 있을 리가.
결국 그건 룩템이 됐었다.
쓸모도 없고. 그렇다고 버리긴 아까운데 폼은 났으니까.
하씨…….
생각해 보니까 팬이란 녀석들치고 정상이 없었구나.
‘맞아…… 그랬지…… 씁. 그 새끼들만 잘 받고 말야.’
이집트의 이모텝. 그 녀석은 이집트 비법으로 만들어진 대머리약 받고 눈물을 질질 흘려댔었다. 효능은 없었지만…… 정성은 있잖아!
검성 리바이는 중국의 국보급 검은 죄다 받아냈다.
건맨?
걔는 미국 국방부가 직접 권총을 마련해 줬었다.
유보라랑 마리. 걔들은 말하면 입이 아팠다.
미쳤지.
나가면 사진 찍자고 홈마가 달라붙었더래니까.
팬아트라고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와 댔다. 몇몇은 그걸로 커미션 들어와서 생업을 삼았다고 할 정돈데…….
하…… 나란 놈은 홈마가 뭐냐.
-히히. 악령! 악령이 쓰였다!
-대신이시여! 여기 있으셨군요!
-크흐…… 어둠. 어둠의 냄새가 나.
밖에 나가면 웬 미친놈들만 왔었더랬지.
나한테 신내림 받겠다고 덤비는 무당 후보자도 있었다.
큽.
그때만 생각하면 대략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거 같은데.
꼬, 꽃다발이라니!
내가 이런 걸 받는 날도 온 다 이거지.
눈앞에 있는 건 분명 실존하는 꽃다발이라고!
감격이다.
당장, 다시 집으로 들어가 꽃다발 평생 보관법부터 찾아야겠다.
마석을 갈아 녹여서 코팅하면 천년은 가지 않을까.
아니다, 미래 그룹에 가서 부탁을 해 봐?
던전 한번 돌아주면 만년은 보관해 줄 걸 만들어 주지 않을까.
크…… 이게 꽃다발의 효과냐?
가슴이 웅장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얼른 들고 가려고 하는데, 저 자식들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꽃다발을 들려는 내 손을 잡아채고 있었다.
그러고 한다는 소리가, 하.
-새로운 테러 방법 아니겠느냐? 폭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한휘 손대지 마! 독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새로 익힌 독 추출 마법 써 봄.”
-그래! 좋은 생각이다. 바로 해 보자구나!
……이 새끼들이?
나는 이 귀한, 만년은 보관될 꽃다발을 향해 독 추출 마법을 날리려는 이사야를 말렸다.
“질투하는 거냐?!”
“하, 한휘!”
-안 된다고 했잖으냐! 기운이 심상치 않다!
그러며 꽃다발을 보호하기 위해, 안아 올렸다.
지켜야 했다.
우선 살려야…….
천년이고 만년이고 보관할 거 아닌가.
저들의 마수(?)에서 이 꽃다발을 지켜내야 했다.
그렇게 가슴에 폭 안는 그 순간.
[당신은 강력한 마비 독에 중독되었다.]
아잇, X펄?
감격으로 불타오르는 것도 아닌데 왜 몸이 굳냐.
* * *
[당신은 강대한 영력을 통해 독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 내가 그렇지 뭐.
큽…….
제령 의식이나 해 볼까.
아냐. 이 참에 인형에 원귀 집어 넣기나 연습을 해 볼까.
“후우…….”
하늘로 치솟았던 기분이 지저로 처박히면 이러는 걸까.
독은 금방 해독되었지만, 내 마음의 해독은 도무지 되질 않았다.
“한휘…… 힘내.”
-그래. 힘내거라. 그런 날도 있는 거 아니겠느냐.
옆에서 날 말리던 둘은 위로랍시고 해 주고 있지만.
아잇? 그럴 거면 제대로 좀 해 주든가.
“선물로 온 사탕부터 입에서 버리고 얘기해라.”
“아앗…… 유통기한 있잖아? 너무 많이 와서 다 먹으려면 애써야 함.”
입은 위로하는데 눈은 웃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위로하는 입도 사탕을 쪽쪽 빨아대느라 놀리는 거였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난 독에 걸렸는데, 얘는 아닌 게 이상하지 않나.
알고 보면 독이 있는데, 독 추출하겠답시고 먹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사령 마법 중에 독을 쓰는 거도 있었으니까.
“……독은 없고?”
“있을 리가? 그게 말이 됨?”
근데 없단다. 뭐지?
나는 독인데, 얘는 왜 아닌 건가.
“씁…… 뭔데. 기자회견은 난데 선물 받는 사람은 왜 너냐고. 그러고 마왕, 너는 왜 그걸 같이 먹고 있냐? 아니, 왜 영혼 상태로 그게 먹어지는 건데?”
-여의 기본 능력이니라.
“아오! 씨!”
무려 마왕도 먹을 수 있는 사탕이라니. 대체 뭘로 만든 귀한 걸 준 거냐.
그렇게 맛있으면 나도…….
아니지.
존심이 있지, 여기서 하나 얻어먹기는 더 싫었다.
아니, 저 녀석들만 싫은 게 아니었다.
다 싫었다.
세상 따위. 꺼지라 그래. 다 망해 버려.
“……혼자 있고, 싶어. 다 꺼져 버려. 어? 응? 꺼지라니까?”
그래. 혼자 있고 싶다.
언제 왔는지 모를 부두교 인형.
전생에 이어 이번 생도 보내준 이 인형이나 안고 싶었다.
여기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그 꽃다발 주인을 뒤지게 할 수 있을까? 응? 그래 그러면 이 세상도…….
그렇게 지저로 들어가려 하는데.
“한휘! 미치지 마! 여기서 더 미치면 진짜 훼까닥 하는 거라니까? 까딱 하다간 빌런 되는 거야. 아유 오케이?”
“……이럴 땐 팩트로 후려치지 말고 진짜 위로를 좀 해라!”
“그걸 내가 왜 함? 그거보다 이거나 봐보라고. 이거!”
이사야는 되도 않는 방식으로 나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건 위로 따위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거였다.
어떻게 놀라게 하는 거고 하니.
“……뭐지?”
눈앞에 있는 티비.
그곳에서 방영되고 있는 것들이 영 심상찮았다.
* * *
영상은 다큐로 보였다.
[처음엔 그런 곳인 줄 몰랐습니다. 몬스터 사태 이후 혼자 살게 되는 저를 노릴 줄은…….]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터뷰의 내용은 무언가에 대한 폭로였다.
그 폭로가 향하는 방향은 어딘가에 있을 사이비 시설.
방송국은 그 시설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온 정체.
“뭐냐? 쟤들도 광신도였네?”
“허…….”
광신도였다.
한마디로 사이비란 거지. 세기말이나 다름없는 이 시국에 있을 법한 녀석이긴 했다.
근데 웃긴건 말야.
“저 녀석 저거. 지금 찾을 녀석이 아닌데?”
“한휘도 기억하는 녀석이면 거물 아냐?”
“거물이지! 아니, 거물이 될 뻔한 놈이라 해야 하나.”
내가 아는 놈이란 거다.
모를 수가 없다.
“엥? 그게 뭔소리야?”
“저거 원래라면…… 그 마리가 속해 있었어야 하는 곳이거든. 난민으로 왔다가 이상한 곳인줄도 모르고 말이지.”
최후의 칠인 중 한 명, 마리.
어디서 받아왔는지 모를 신좌의 성녀.
그녀가 난민 수속이 끝나고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 저 사이비 광신도 교단이었다.
사이비 집단이 세를 불리자고 난민이나 불우이웃, 힘든 자들을 데려다 쓰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웃긴 건 그 뒤다.
녀석은 마리를 상징적인 인물로 써먹으려 했다.
일종의 성녀로.
마리의 외모가 뛰어난 것도 한몫하기도 했다만.
가장 중요한 건 그녀로부터 이름 모를 성좌의 기운이 불쑥불쑥 나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행사장을 만들고, 그녀를 발표하던 그 날.
“그렇게 마리 데려다 써먹으려고 하는데, 그러다 마리한테 뒤져.”
“응? 내가 들은 마리라는 사람 성격은 쉽게 사람 못 죽이지 않아?”
녀석은 뒤진다.
성녀인 마리가 아닌 성좌에게.
“뭐, 그렇긴 한데…… 뒤를 봐주는 성좌가 좀 미친놈이거든. 냅다 신성력 부여해 주더니, 그 신성력으로 태워 버렸다나?”
“와우.”
어쨌건 그 뒤로 저 사이비 종교는 힘을 잃는다.
중심인 교주란 녀석이 신벌을 받아 구워 뒤져졌는데 세가 유지될 리가.
놈은 죽어서도 고통 받았다.
지금처럼 폭로가 이어지면서 그나마 있던 티끌같은 명예도 사라졌다.
그와 함께 긁어 모았던 재산들도 사라졌다.
그뿐이랴.
후에 마리의 명성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녀석은 더 욕을 먹었다.
진짜 성녀 같은 마리를 건드린 자가 되었으니까.
꽤 어이없게 죽은 녀석이라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이야.
‘언제 시간나면 찾아가서 밟아 줄까 했는데…… 이렇게 폭로가 돼버리네?’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회귀 전의 상황도 웃기긴 한 거다.
성좌가 직접적으로 힘을 쓰기 위해선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터.
그런데도 그 성좌는 단지 마리가 이용당한다는 일 하나로 스스로 신벌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힘을 썼을지 상상도 안 간다.
그런 짓을 마리의 성좌는 몇 번을 저질렀다.
즉,
앞뒤가 없는 성좌란 이야기다.
-미친 자는 맞구나.
“맞아. 미친놈이긴 해. 나도 가끔 노리더라니까?”
“……나는 걔 보면 피해야겠다. 사령술사라고 죽이는 거 아님?”
“별로? 마리만 건드리지 않으면 돼. 걔가 속이 썩거나 답답하다거나, 위기에 빠지지만 않으면……?”
“근데 한휘는 왜 노림? 설마 마리한테 해코지라도 했음?”
“……어? 생각해 보니 그러긴 하네? 뭐지?”
문젠, 그 성좌가 괜히 내게도 한방씩 날리려고 들었다는 건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씁. 나중에라도 물어 봐야겠는데?’
생각해 보면 괜시리 억울해지는 일이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최후의 칠 인 녀석은 왜 너만 모르냐고 난리들인데.
하씨, 이번은 마리를 보면 그거부터 물어봐야할지도.
어쨌거나, 우리가 만담을 하는 사이 영상은 끝을 맺었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방송국 놈들을 피해 도망치는 걸로.
교주는 끈질긴 방송국 놈들을 피하는데 결국 성공했다.
문제는 그 뒤라는 건데.
방송이 있고 며칠이 지났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거 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냐?”
“응? 이거 다 한휘가 불태운 거 잖아.”
회귀 전에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