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아, 이거 내가 오랜만에 기분이 좀 그래.
눈앞에 현장들이 다른 걸 뜻하는 게 아니거든.
이거 광신도 무리들이 제물 바치겠답시고 난리 친 흔적이니까.
웃긴 게 뭔지 아나.
이런 제물 바친 흔적은 몬스터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동안 쳐다도 안 본다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아는진 뻔하잖나.
‘회귀 전엔 많이도 봤으니까…….’
후. 뭣 같네.
벨린카니스가 전하는 신호를 보고 예상하기는 했다만.
역시 볼 때마다 참혹하다.
내가 이 꼴 보자고 세상을 구해야 하나, 자괴감이 든단 말이지.
처참함을 느끼는 게 나만 있는 게 아니긴 해.
“이게 다 뭡니까……?”
“으음.”
처참함에 전투에 미쳤던 이진성도 제정신을 차렸다.
옆에 선 이진아도 신음을 삼켜댔다.
그나마 상태가 나은 건 이사야.
의외로 김민하도 멀쩡했다.
이사야는 경험이 많아서겠고, 김민하는 이 상황을 예측이라도 했겠지.
둘만 알아선 소용없다.
팀원인 남매에게도 가르쳐줘야 했다.
“공양에 의한 소환 의식의 흔적이야. 즉 제물 바치기가 있었다 이거지.”
“뭐요? 공양? 의식? 제물?”
놀라선지 그 말을 처음엔 인식하지 못한 이진성.
나는 그에게 확답을 해줬다.
“들리는 대로라니까. 광신도들이 인신 공양을 했다. 그리고 이건 그 피해자들의 흔적이고.”
“왜요? 대체 그런 걸 한단 말입니까?”
“모르지. 우리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쏘아붙이듯 묻는 그에게, 내가 할 답은 나지막이 조용한 목소리뿐이다.
나조차 이 현장에서 매몰될 수는 없으니까.
“한시영 씨, 여기 있는 거 다 증거로 채증해요. 그래야 죽일 만한 놈이란 증거가 남으니까. 그걸 다들 알라고 일부러 저기 카메라로 찍은 거니까. 알죠?”
“예. 이해했어요. 바로 할게요.”
일을 진행시켰다.
매니저 한시영과 그녀가 데려온 채증 팀이 움직였다.
도망치지 않고 버텼던 카메라맨도 한숨을 내쉬며 영상을 담았다.
현장을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으로서 나는 그 장면을 가만 바라봤다. 한 점이라도 놓쳐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런 나의 집중을 깨는 건, 이진성이었다.
홀로 욕지거리를 날리고 있던 그는 이제 막 진정이 된 듯 물어왔다.
“하…… 그래요. 그래. 무슨 이유로 했는지는 우리가 알 필요가 없지. 범죄자, 아니 인간도 아닌 새끼를 왜 이해해야겠습니까? 이해하면 이상한 거지. 맞죠?”
“그래.”
“근데…… 어떤 새끼들이 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게 정답이지.”
이진성은 분노의 방향을 정확히 잡을 줄 알았다.
역시, 이래야 우리 팀 막내지.
막내가 방향을 잘 잡았으니, 팀장으로서 한 수는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찾습니까?”
“바로 보여 줄게.”
그의 마지막 물음에 나는 바로 답해 줬고, 움직였다.
* * *
이 순간, 가장 많은 걸 알려줄 건 현장의 증거나 흔적 따위가 아니었다.
[당신이 지닌 영력이 사방에 흩어졌다.]
[당신은 타인의 영력 일부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사방에 흐트러지고 남은 영혼들이 남긴 조각.
그들이 죽어 남긴 원한.
영력.
그들을 빚어내면, 몇 개의 기억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인신 공양을 누가 해냈는지.
대체 어느 광신도 집단이 움직였는지를.
알고 싶지 않은 그들의 의도까지도.
읽는 게 가능해진다.
스스스-
나는 그 모든 것들은 외면치 않고 바라봤다.
“후……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고 알게 된 결론.
이들이 인신 공양을 해내 얻은 건 힘. 각성이다.
쉽게 말해 이능력을 얻었다는 이야기.
지휘권을 갖춘 듯 보이는 각성자 하나가 공양을 주도했고.
그 결과 악마의 힘을 여럿 나눠 받은 각성자가 다섯 태어났다.
그 대가를 위해 죽은 자는 스물.
다섯의 각성자를 얻는데 죽는 게 스물이라니.
네 배가 넘는 희생 아닌가.
종말이 다가올 땐, 그 넷을 이용해서 서른을 살리면 되지 않냐는 헛소리도 유행하긴 했는데 말이지.
꼭 저렇게 힘을 얻은 것들은 살리긴커녕 죽이고 다니거든.
미쳤으니까.
한마디로 이런 광기에 잡아먹힌 것들은 살려둘 필요가 없다.
사회를 좀먹는 해충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능력으로 찾은 겁니까?”
“그래. 머저리들이 흔적을 남겼어. 보아하니 서울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 같은데?”
“뭐합니까. 잡으러 가야죠.”
오늘따라 옳은 말만 하는 막내 말대로, 족쳐야 했다.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 *
숲을 나섰다.
영혼으로 이어지는 흔적을 찾아 움직였다.
우리를 막을 존재는 없었다.
일대의 모든 몬스터를 쓸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숲을 벗어나 남양주 외곽으로 진입.
부우웅-
곧바로 준비된 차를 타고 그 흔적을 따라갔다.
흔적대로 그 방향은 서울.
이전에 전해졌던 처참함의 결과인가.
차 안에서 소리를 내는 자는 없었다.
“…….”
“…….”
침묵할 뿐이다.
그 시끄러운 이사야마저도 조용했다.
마왕이 전해 준 마법서를 끄적여댔다.
집중하지 못하는 걸 봐선 내심 신경이 쓰이는 게 분명했다.
나라고 해서 다른 건 없었다.
처참함에 매몰된 건 아니지만,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집중을 해야 했다.
스스스스-
그 상태로 도착한 서울 중랑구.
이전의 숲과 달리 평화롭기만 한 봉화산 부근에서 그 흔적이 이어졌다.
차량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혹여나 놈들이 우리의 기운을 느끼고 내빼진 않을까 싶어,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일행 모두 조금씩 떨어져 걷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러고서 도착한 흔적의 끝.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아주 단란한 가정이 보였다.
몸 곳곳에 영혼의 때를 덕지덕지 묻힌 주제에 저들끼린 행복한 웃음을 짓는 꼴이라니.
저게 이전에 보았던 처참한 인신 공양을 벌인 자들이 보일 법한 모습인가.
차라리 범죄 조직에 들어가 있거나.
암시장 따위에서 보았다면 이리 어이가 없지는 않았을 건데.
남의 목숨을 잡아먹고는 좋은 가정이라.
“얼씨구? 그딴 일을 벌여 놓고 저러고 있다고?”
“하…… 진짜 저 연놈들 맞습니까?”
“맞아.”
쓰레기다. 아니 그 이상, 폐기물이었다.
인간도 아닌 것들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나도, 일행도.
손수 폐기물을 치워 줄 시간이었다.
“가자.”
움직이는 내 뒤로 팀원들이 따라붙었다.
* * *
타아아앙-!
화려하게 들어갔다.
단독 주택의 모든 창을 영력으로 깨부수고 막았다.
담장 바깥은 이사야의 소환물들이 막아섰다.
끼끼끼끼-
죽은 망자들의 울음이 분위기를 기괴하게 만들었다.
단란한 가정. 사이좋은 부부. 그 아래 귀여운 딸 하나.
그곳을 쳐들어가는 우리를 놓고 보자면.
그래.
겉으로 봐선 악당이 따로 없어 보이겠지.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당신 TV에도 나왔던 사람이잖아!”
“으아아앙!”
이런 실감 나는 연기까지 더 해지면, 장면은 더 극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말이야.
원래 악이라 하는 게 쓴 가면은 그리 오래가는 법이 아니거든.
타아앙-!
“아아악!”
막을 만한 공격은 몸으로 때우지만.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이건 못 막으면 진짜 뒤질 거다?”
[당신은 대량의 영력을 하데스의 사슬에 불어넣었다.]
눈에 보일 만큼 거대한 힘이 자신을 공격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려…… 아악! X발!”
사슬이 닿기 바로 직전, 가면을 벗어던진다.
“키히히…….”
그러고 드러난 본모습은 흉악했다.
투두둑.
두텁게 붙이고 있던 얼굴 거죽이 벗겨 던져진다.
어둠처럼 검은 피부를 드러낸 가운데, 그보다 더 검은 기운을 몸에서 쏘아 올린다.
그 기운으로 제 앞까지 다가온 사슬을 잡아챘다.
“키히…… 여기 겨우 얻은 곳인데. 그걸 망쳐? 네놈 각오해라.”
바로 이전. 약해빠진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본 모습을 드러낸 제 몸에 전능감이라도 느끼는 듯 보였다.
“어쭈?”
내 입장에선 그야말로 우습기만 한데.
투두둑. 투둑.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같이 모습을 드러낸 나머지들도 똑같았다.
흉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기 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
“크륵…….”
살기로 점칠 된 가운데, 침을 질질 흘리는 꼴을 보아하니 속이 훤히 보인다.
우리를 죽이고 잡아먹을 생각을 하는 거겠지.
놈들은 제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튕겼다.
아버지였던 자는 검은 기운을 휘두르며 내 목을 노렸다.
작았던 딸은 가장 큰 덩치가 돼서, 그 흉측한 몸을 이사야의 도끼에 들이밀었다.
도끼를 되레 손으로 쪼개겠다는 듯이!
엄마역을 맡은 녀석은 가장 뒤에서 주문을 외워댔다.
제가 제물을 바친 악마의 주술이라도 사용하겠단 거겠지.
하.
단번에 뒤바뀌는 태세 전환이란.
역시 이래서, 같은 동족을 공양하는 족속들은 살려 둘 가치가 없었다.
타아앙!
“컥……!”
내게 짓쳐 오던 검은 기운을 나는 영력으로 깨부수며 말했다.
“처리하자.”
그 말에 나의 팀원들은 바로 반응했다.
* * *
“꺽!”
어느새 이사야는 큰 덩치의 공격을 피해, 마법을 구사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거대한 도끼의 날로.
“끄아아악! 이따위 것……!”
“케케케. 죽어! 죽어! 인간도 아닌 새끼들아!”
큰 덩치는 온몸이 불로 그슬렸다.
이진성의 힘이었다.
그의 불을 맞고도 큰 덩치는 반격을 시도했다.
이진성을 죽이면 광대의 불이 꺼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나 덩치는 하나를 더 생각해야 했다.
즈즈즉-!
제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진아를 떠올려야 했다.
그녀는 양손에 단검을 들고, 덩치의 아킬레스건 전부를 찢어발겨 댔으니까.
잘려진 단면은 절단됐다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으스러졌다는 표현이 딱 걸맞았다.
평소 이진아가 내는 깔끔한 절단과는 다른 모습.
그만큼 그녀의 분노가 컸다는 반증일 거다.
이 분노의 결은 김민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쒜에에엑-!
그녀의 화살이 사방에 쏘아졌다.
갈라진 화살은 전부를 노렸다.
목, 팔, 다리, 손목, 손가락…….
신체 부위라면 뭐든 고통을 주겠다는 듯, 갈라진 화살은 전부에 틀어박혔다.
“끄아아아악!”
“끼엑!”
“켁.”
특수 능력이라도 사용한 건가.
온몸에 박혀 있는 화살에 놈들은 보통 이상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온몸을 비틀어대고, 화살촉을 뽑겠다는 듯 제 살을 긁어댔다.
살겠답시고 저런 발악이라니.
과연.
제 몸들은 끔찍하니 생각하는 모습들이다.
퍽이나 우스웠다.
* * *
나는 뒹굴어 대며 고통을 호소하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야지? 길게 한번 해 보자고.”
“끄으윽…….”
대답도 못 하는 저 꼴들을 보라지.
놈들이 과연 알려나 모르겠다.
지금 느끼는 고통은 앞으로 받을 고통의 십 분의 일도 안 된다는 거.
놈들이 자행했던 잔혹한 일들의 대가를 받아내는 건 이제 시작이란 걸 말이다.
뭐, 몰라도 상관없다.
이제 알게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