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콰아앙-! 쾅!
큰놈과 큰놈이 싸우면, 더 큰놈이 이기는 법이었다.
아, 여기서는 끝없이 재생하는 놈이 이긴다고 해야 하나.
거대 수인은 끝없이 이어지는 좀비-마족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그때마다 이득을 취하는 건 거대 수인 쪽이었다.
-크륵…….
-비웃냐?
좀비의 손이 부숴지면, 거대 수인은 고작 금이 가는 수준이니까.
누가봐도 좀비 마족 쪽이 연약했다.
-감히이이! 그 녀석의 손길이 깃든 녀석 주제에!
-크르륵!
잔뜩 성을 낸다고 결과가 달라지나.
분명 좀비 마족이 무너지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그러나.
반전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었다.
“영력 부여.”
[당신은 영혼 일부를 동료의 소환체에게 부여했다.]
“사령 마법, 시체 포식.”
[당신의 동료는 영혼 주변에 쌓인 시체를 이용하여 소환체를 수복했다.]
-흐흐흐…….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거대 수인.
그와 달리 끝없는 지원을 받는 우리 측 좀비 마족이다.
그뿐이랴.
츠츠츠-
주변에 쌓여 있는 시체조차도 좀비 마족에겐 재료였다.
바로, 제 몸을 수복하는 재료.
놈은 지독하기까지 했다.
거대 수인의 몸이 떨어져 내리고 나온 살점.
그 살점조차도 게걸스레 삼켜댔다.
-흐흐. 맛이 좋구나. 안 그렇더냐?
-크륵…….
그러며 빙긋 웃어대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독종 중 독종인 나로서도 감탄이 나왔다.
크흐.
동류끼리는 서로를 혐오한다는데, 나는 되레 없던 흥미가 생겨났다.
“야야. 저 새끼, 대체 뭐냐? 마족치고도 지독한데?”
-……여는 따로 말하지 않겠느니라.
“뭐지, 분명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정신을 유지하는 걸로 봐선 보통 놈은 아니잖아. 좀 알려줘 봐.”
-…….
그러나 이 흥미를 풀어줄 벨린카니스는 침묵만 할 뿐이었다.
아는 게 분명한데도, 입을 닫는 꼴이라니.
‘이거, 이거. 뭔가 있네?’
덕분에 내 흥미도는 더 수직상승 하셨다.
“쳇. 이럴 때만 노코멘트라는 거냐. 두고 봐라. 어떻게든 알아낼 테니까.”
-그리 추천은 안 하느니라.
“헹이다.”
본래라면 쉽게 넘길 흥미였다만.
지금은 정반대다.
말 그대로 어떻게든 정체를 알아낼 참이다.
그러자면, 저 거대 수인으로부터 좀비 마족이 이겨내야 하겠지.
때문에 영력치를 최대로 부여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끝이다. 머저리.
-크롹!
콰가가가각-!
좀비 마족의 두툼한 손이 거대 수인의 대가리에 작렬했다.
투웅. 퉁.
지속되는 연타.
좀비 마족은 살점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면서도 계속해 공격을 날리었다.
그 결과.
[소환체가 적을 격살하는 데 성공했다.]
거대 수인의 몸은 무너져 내렸다.
쓰러지는 것만으로 주변의 땅이 울려 퍼졌다.
“크…… 쥑이네.”
“확실히. 그래.”
크기가 주는 압도감이란 게 있는 법이었다.
절로 감탄이 일었다.
내 감탄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레이크가 일어나며 찢어발겨졌던 게이트에 변화가 일어났다.
억지로 열린 던전 게이트.
붉은색이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다 부서져 겨우 기능을 해내고 있던 게이트의 조각들이 주변에서 다시금 피어났다.
샤아아-
피어난 조각들은 그대로 게이트를 향했다.
누군가 정성스레 빚듯이 게이트는 수복되어 갔다.
그와 함께 나와 이사야에게로 빛이 쏘아져 들어 왔다.
‘역시 이것도 쳐주는 건가.’
[당신은 파편화된 던전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의 공로가 체계의 기억에 새겨졌다.]
[당신의 공로는 후에 보상의 방에서 정산될 예정이다.]
임프 사태보다도, 더 긴 메시지였다.
단순히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내는 것을 넘어서, 수복까지 해냈으니 더 쳐주는 거겠지.
이해는 갔다.
마족은 제 힘으로 게이트를 열어 사건을 일으킨다.
악마는 다르다.
악마는 체계가 만들어 낸 게이트에 빌붙어 조각난 세계를 변질시키는 존재들이었다.
던전을 만들어 낸 체계의 입장에선 제 영역을 빼앗긴 기분이 들기 충분하다.
그걸 내가 수복해 준 거다.
그러니 무려 공로라 칭해 주면서, 후에 정산의 방에서 많은 보상을 챙겨 준다 하는 거겠지.
언제나 그런 식이었으니까.
정작 그를 받아야 하는 나로서는.
‘지들끼리 괜히 이 지구에 쳐들어와서는…… 네 거니 내 거니 하는 꼬라지가 영 마음에 안 든다 이 말이야.’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할 것이지,
왜 여기서 깽판인가 싶다.
쯧.
이게 한때 판타지들에서 이고깽이 유행한 업보 때문일까.
왜, 거 고등학생들이 이계 가서 깽판 치고 많이 해먹었지 않나. 그 대가라고 하면 뭐 이해가 안 가는 거도…….
‘씁…… 뭔 말도 안 되는 망상이냐. 내가 흡수한 영혼 중에 망상쟁이라도 있었던 건가. 회귀를 하고 나서 쓸데없이 감상적이라니까.’
뭐 다 좋다 이거다.
악마고 마족이고, 저 체계란 것도 언제고 때려잡으면 되겠지.
언제고 제대로 깽판을 쳐줄 참이다.
이고깽 따위는 애교로 보일 정도로.
어쨌건 그것도 훗날의 일.
지금은 지금 챙길 수 있는 걸 챙겨야겠지.
“두 분 모실 준비 됐습니다.”
“그럼 바로 가죠.”
현생의 보상을 받을 시간이다.
* * *
보상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사흘 후라고 내가 예측했었던 던전 브레이크는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그러기에 김시연이 준비를 하려면 힘들겠다고 죽은 소리를 했던 거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서 쌓이고 있는데, 보상 시간이 길어지는 게 당연한 거다.
“이야. 그득하게 쌓이네.”
“이게 전부 오늘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긴 해.”
“그렇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눈앞에 상관없었다.
볼수록 배가 부르거든.
왜 안 그러겠는가.
눈앞에 쌓이는 사체들.
그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의 일정 비율은 모두 내 것이 되기로 약속돼 있었다.
가만있어도 배가 부를 수밖에.
“와. 저긴 오우거가 나온 건가?”
“오우거뿐만 아냐. 저기는 하피가 나온 거 같은데?”
“오우…….”
내 쪽에서도 욕심을 부린 건 분명 아니었다.
정당한 대가를 받을 뿐이었다.
“미리 준비 안 했으면 대참사 났겠네.”
“그러겠지. 공중 몬스터가 던전 바깥으로 풀리면, 답도 없으니까.”
당장 눈앞에 하피만 해도 풀리는 상상을 해 보면 답이 나온다.
잡으려고 달려들면, 날 거다.
하급도 아니니 전투기로 때려잡을 수도 없다.
미사일 같은 걸로 맞추는 건 힘드니까.
설사 맞춰도 대미지도 거의 안 들어간다.
그렇다고 함정을 파서 공격을 하자면, 얘가 걸리길 하나.
쓸데없이 예민해서 함정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 된다.
그걸 미리부터 예측하고, 준비했다.
덕분에 저리 쉽게 잡아 온 거다. 안 그럼 재앙이 됐겠지.
‘욕심을 부리긴커녕, 양심껏 받아 온 거야.’
그러므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딱히 욕심이 나지도 않았다.
내가 욕심이 나는 건 되레 저거다.
바로 저 좀비 마족.
사체들에 딸려오는 지금까지도, 녀석은 죽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다시 죽어 시체로 흐트러지기 전 상태랄까.
다른 자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지만, 이사야는 느끼고 있었다.
다름 아닌 소환자니까.
그러기에 궁금증이 생기는 듯했다.
“좀비 마족, 저 녀석 아직껏 안 죽었네? 난 분명 마력을 흐트려 버렸는데.”
“당연하지. 내가 영력과 영혼을 회수하지 않았거든.”
그 궁금증. 그쯤이야 이사야에겐 쉽게 알려줄 수 있었다.
“이야. 그래서 숨만 쉬듯 저리 골골대고 있는 거구나. 설마 새로운 영혼 고문법임?”
“전혀.”
“훔. 마족 영혼이라고 괴롭히는 게 아니면, 저걸 어쩌려고? 벨린카니스에게 인질로라도 써먹게?”
“그러겠냐. 먹히지도 않아.”
-여는 그런 하찮은 인질극에는 당하지 않는다.
“그럼 뭐야?”
“뭐겠냐.”
문제는 이런 내 의도를 이사야는 말도 안 되게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건데.
-흐으…… 저, 정말 고문이었더냐. 꺼내 줘라…… 아니, 차라리 다시 죽여 주란 말이다. 이따위 하찮은 몸에 있는 건 잠시로 되었단 말이다……!
정작 몸 안에 갇혀 있는 저 자식도 저리 외치고 있고 말이다.
‘다들 나를 어떻게 보는 거냐, 대체.’
착하게 살아 온 난데 고문이니 뭐니 하는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긴 하다만.
저 녀석을 굳이 여기까지 데려온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알잖나.
아까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던 거.
함정을 설치하겠답시고 온 자들부터, 시체 수거반도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답시고 있는 헌터도 몇 있었다.
한마디로 보는 눈이 많았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되도록 은밀한 게 좋았거든.
바로 지금처럼.
“그림자 주머니. 잡아먹어 버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주머니를 사용했다.]
생성된 그림자 주머니는 제 몸을 길게 늘였다.
오우거만 한 좀비 마족을 집어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늘어나자.
-어어어억……!?
꽈드득-
생물이라도 되는 거처럼, 그 거대한 몸체를 잡아먹었다.
“그건 또 뭐야? 그림자를 그렇게도 써?”
“은밀한 보관함 같은 거지.”
“오오……! 그런 보관함이라면야…… 전투용이 아닌 거도 된다 이거지. 쓸 수 있는 게 많겠는데. 짜놓을 계획도 많겠어. 후후.”
그걸 본 이사야는 눈을 빛내며, 온갖 공상을 해댔다.
‘이러면 빨리 보여줄 걸 그랬네.’
매번 그림자 짐승 같은 거나 보다가, 이런 유틸리티한 아이템을 봤으니 눈이 훽 돌아가는 게 이해는 되는 바였다.
뭐, 어쨌건 좋다.
이사야의 마력으로 빚어냈고. 마족의 영까지 부여된 좀비라.
의지를 지닌 데다가, 그 영혼은 무려 마왕이 일부러 모른 척하는 놈이다.
‘생각지도 못한 걸 수확했어.’
그 육체 자체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걸 보관하다니. 여는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마음에 안 드니 나는 더 마음에 드는데.”
-……후.
찡얼거리는 마왕을 보아하니 이건 분명 대단한 이득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관하고 있는 예속의 목걸이, 여러 악마와 마족의 영. 그리고 가능성의 파편에 이번에 얻은 좀비 마족까지.
잊은 듯해도 다 하나하나 기억해 주고 있는 이것들을 싸그리 이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꽤 기대되는 바였다.
여기까지 만으로도 이번 사냥의 이득은 상당했다.
그러나 진짜는 아직 따로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나는 늦은 밤이 오기까지 한참을 처리장에 머무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 * *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다가온 밤.
“여어! 가장 늦었잖아?”
“후…….”
저기 멀리서 김시연이 들어왔다.
제 몸으로 직접 저 멀리까지 던전 브레이크를 막고 온, 그녀.
온몸에 피로가 가득해 보이면서도, 그녀는 내게 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내 앞에 섰고.
나는 물었다.
“어때? 이 몸이 직접 알려준 예언을 체감한 소감은? 꽤 믿을 만하지?”
“믿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최고였어요, 당신. 예측도, 그 시간도. 그리고 나올 만한 것들도요.”
“최고였어요, 당신. 그 부분만 다시 한번 해 주면 안 되나? 녹음 못 했는데?”
“……시끄러워요. 그만 놀려요.”
그 물음은 결국 이 몸을 인정하느냐 하는 것.
대답은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불퇴권사 김시연.
무려 그녀의 인정과 신임을 받게 됐다는 거니까.
자, 이제 신임을 받았으니 이다음도 해봐야지 않겠나.
“그래서, 이제 이다음은 뭔가요? 뭐가 예측, 아니 예언이 되죠?”
예언의 뽕맛(?)을 보고 서두르는 김시연.
나는 그녀에게, 하나는 확실히 되짚고 넘어갈 참이었다.
뭘 되짚느냐면.
무려 내가 점쟁이 노릇을 하며 예언을 했잖나.
거, 있잖나.
점쟁이가 예언 한 번 쫙 – 나불거려 주고 나면 받아야 하는 거.
“어허이. 어딜 다음을 싸게 넘어가려고. 우리 아직 계산 안 끝났잖아?”
“……말씀해 보세요.”
바로, 복채를 받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