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분명, 날 봤다.
저택을 벗어나자마자 하는 소리가 이거였다.
김민하가 마왕인 자신을 봤다나.
말이 되는 소린가.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다? 내가 보여 주질 않았는데 어떻게 봐.”
-분명 눈이 마주쳤다 하지 않았느냐.
“허공에 먼지라도 있었나 보지. 그러다 마주친 거고.”
-헤휴…… 여의 말을 그리 믿지 못한다면 되었다.
아잇? 외로움은 마왕도 헛것을 보게 만드는 건가.
확률상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벨린카니스의 목소리엔 확신이 실려 있었다.
약간 미친 건가 싶기는 한데.
전이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무려 마왕을 탐지기로 써야 하는 나다.
탐지기 복지 차원으로다가 나는 녀석을 설득했다.
“사령 술사인 이사야도 내가 보여 주기 전엔 널 보질 못 했어요. 그런데 김민하는 봤다? 그게 말이 되냐?”
-미래 일부를 본다는 건 말이 되고?
“……음.”
설득당하는 건 나였다.
미래 일부를 본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이긴 하다.
그런 짓을 하는데 자기 자신 정도는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
빈약해 보이기는 한다만.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게 이 세상이다.
마냥 아니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여기에 마왕은 한마디를 더 더했다.
-묘하지만 그 안엔 상위 존재의 냄새가 났다.
“……응?”
-확실한 건 아니다. 존재감이 옅었으니까.
“마계면 바로 알아봤을 거고. 악마면 네가 당장 쳐들어가자고 난리를 쳤을 건데. 그럼 설마…… 천계?”
이야, 여기서 천계가.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하는 식으로다가 쳐들어오면, 앞날은 계산도 안 된다.
놈들은 전처럼 거의 끼지 않는 게 나았다.
던전에서나 슬쩍슬쩍 모습을 드러내서 성좌 대리 노릇이나 해주면 된다 이 말이다.
호구처럼.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그럼 천계도 아니면 대체 뭐지?”
-그게 나도 의문이로구나. 분명 한번 느껴보기는 했던 것인데…… 희미하다.
“갈수록 의문만 더해지네.”
-여도 마찬가지니라.
이거 원, 여기서 새로운 세력의 출현인가.
내 감으로 봐선 그건 아닌 거 같기는 한데.
‘뭐…… 기다리면 나중엔 밝혀지겠지?’
이 작은 지구에 집어 먹을 게 뭐 있다고.
이리들 몸을 들이밀거나 뭉개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김시연이 구르는 동안 우리도 준비는 좀 하자.”
“히히. 당연하지. 우리가 짠 작전대로면 아주 죽어 나갈 거야, 그치?”
-그걸 정말로 실행할 것이더냐? 악마들 같으니라고.
“헹. 그걸로 악마 소리 듣기엔 섭섭하지 않냐. 여튼 당장 움직이자.”
이쪽도 움직일 시간이었다.
잔뜩 굴러야,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을 때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예측된 대로 일은 터졌다.
* * *
몬스터.
그중에 몬스터화된 수인이 생각보다 기괴하다.
집고양이보다 길고양이가 사납게 생긴 편이 많은데, 이 녀석은 그거보다 몇 배는 더 사납게 생겼다 생각하면 된다.
입에선 광견병 걸린 놈처럼 침이 질질 흐르고.
싯누런 이빨은 줄기줄기 나 있는 게, 하관이 징그러움의 80%는 차지한다.
그럼 나머지 20%는 뭐냐면.
‘어휴. 눈빛 보소.’
걸리는 건 다 죽이겠다는 흉포한 눈빛이다.
이 두 개가 조합되면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게 된다.
씹히면 뒤지는 게 아니라, 나도 병 걸릴 거 같은데다 눈은 시뻘겋게 뜬다니까.
그런 광견병 걸린 수인 녀석들이 당황한 얼굴을 상상해봤나?
안 그래도 괴이한 얼굴을 한 수인들이 당황하게 되면, 그 표정이 꽤 볼 만하다.
웃기거든.
눈앞에 수인들이 딱 그랬다.
하이에나과. 갯과.
가릴 거 없이 찌그러진 얼굴은 당황이 서리며, 더 찌그러들었다.
아직 제대로 처맞지도 않았는데 몇 대는 처맞은 듯 멍한 얼굴이다.
그럴 만도 하겠지.
-키이이……?
“어서 와, 함정은 처음이지?”
던전 브레이크라는 방식으로.
언제고 먼저 침공해서, 뒤통수를 때리는 건 몬스터인 수인들 자신 아니었나.
그런데 이번에 뒤통수를 맞는 건 자신이네?
표정이 멍한 것도 이해는 간다.
이게 뭔 말인가 하면.
이번엔 이쪽이 함정을 미리 파놓고 기다렸다 이거다.
콰아아앙-!
던전 게이트를 넘어 온 몬스터들이 도착하자마자 맞이한 건, 묻어 놓았던 마력 폭탄에 의한 폭발이었으니까!
처음 1차 진입한 선발대가, 저 폭발에 죄다 터져 나갔다.
기습을 주로 하는 수인들로선 선발대가 꽤 강력한 개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게이트를 넘어 오자마자 처맞았으니 얼이 빠질 수밖에.
치러 왔다가, 먼저 처맞은 거니까.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이쪽에선 당연한 수순이었다.
‘예언은 이렇게 써먹으라고 있는 거지. 안 쓰는 게 바보 아닌가?’
고성능 탐지기로다가 오는 날짜도 확인 완료.
이번은 사흘이라는 시간까지 있네?
그 시간을 써먹어 주는 게 제대로 된 예의였다.
콰아앙! 쾅!
수인기 게이트를 넘자마자 터져 나가는 거 따위, 환영 행사(?)의 시작밖에 안 된다 이 말이다.
얼마나 많은 폭발들이 이어졌을까.
“어쭈? 그래도 살 놈은 살았네?”
-그르륵…….
-킁.
선발대는 터져 나간 가운데, 후속으로 들어왔던 수인은 몇 살아 있었다.
놈들의 육체에 서려 있는 기이한 마력과 갑각처럼 변질되어 버린 육체가 수인들을 살렸다.
변질된 육체 형식으로 봐선 악마들의 농간에 놀아난 거 같은데.
수인 놈들로선 제대로 침공 준비를 했다 이거겠지.
하지만 이쪽도 던전 브레이크가 예상되는 판국에, 준비된 함정이 고작 폭발 하나 일리가 있나.
그런 건 아마추어나 하는 거지.
폭발 속에서 비산하는 놀들의 사체들.
-크흥!
-크롸락!
그 가운데, 살아서 돌진해 오려는 적들.
발굽으로 덮힌 발에 힘을 주고, 달려들려는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어줬다.
그건, 다 뒤질 놈들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잖나.
“다음 함정 작동시켜보자고. 영혼 폭발.”
“오케이! 영혼 폭발 받고.”
[당신은 기술 : 영혼 폭발을 사용했다.]
[당신의 동료는 당신의 영력 일부를 섞어 사령 마법 : 시체 부활을 사용했다.]
내가 준비한 함정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니까.
‘다 뒤졌다.’
* * *
콰가가각-!
영혼으로 이뤄진 폭발이 가장 먼저 이뤄졌다.
영자체를 건드리는 영혼 폭발로 내가 노리는 효과는 우선 하나.
-킁…….
-크륵!
수인들의 몸을 변질시키고 있는 마력의 제거였다.
가까이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마력은 악마로부터 나온 거였다.
탐지기인 마왕의 예측이 그러했거니와.
회귀 전에 저런 변형을 자주 보았던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이야 뻔하다.
악마의 속삭임이 있었을 거다.
그 수단이 어찌되든 육체 강화를 본능적으로 즐기는 게 수인의 문화고 본능이다.
강해지기만 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저들을 꾀낸 악마는 그걸 노렸을 거다.
육체를 강화해 주겠노라고.
그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는 순간, 수인들의 육체는 잠식된다.
계약대로다.
그 부작용이라 하면.
육체에 이어서 그 정신도 같이 잠식된다는 게 문제.
계약을 이뤄주긴 이뤄주되, 정작 이득은 악마가 채우는 구조랄까.
‘그래서 악마지. 계약에 장난을 치니까.’
그 마력을 제거한다는 건, 악마의 수작을 막는 거나 다름없단 의미.
즈즈즈즉-
마력이 흐트러지고, 강화된 수인들의 육체가 급속도로 약화되기 시작한다.
-크르르륵!
-켁!
급속도로 약화된 육체.
그로 인해 느껴지는 탈력감에 수인들이 몸을 부르르 떨어댈 때.
2타가 간다.
“지금이야.”
“오케이. 시체 폭발!”
[당신의 동료가 사령 마법 : 시체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콰앙!
이사야가 만들어 낸 시체 폭발이었다.
사방에 널린 게 수인의 시체.
그 시체를 폭발 시키는 건 준비 된 우리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케르르륵!
-켁!
“꺄하하. 터진다고! 터져!”
이사야의 손에 쥐여진 마나가 춤을 출 때마다, 폭발음이 이어졌다.
이사야가 지닌 놀랄 만한 광기를 채우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폭발이었다.
‘광기하고는. 그래도 성능 확실하구먼?’
콰아앙-! 쾅!
춤을 추며 사방을 노니는 폭발은 2차, 3차로 계속해 이어졌다.
수인들이 나오는 족족 이어지는 폭음의 세례!
게이트를 넘어 나오는 수인들로선 막을 방법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는 족족 죽어 나가는데,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할 시간 따윈 존재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던전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했다.
* * *
보스였다.
쿠우웅. 쿵.
일반 수인보다 거대한 몸체. 온몸은 변형된 지 오래였다.
그 머리에는 일반 수인과 다른 마력을 지닌 게 보스였다.
‘악마한테 영혼까지 팔아넘긴 상태네.’
본래는 하이에나 수인이었을 존재.
지금은 온몸이 악마의 마력에 잠식되어, 조종당하는 수인이었다.
-크롸라락!
거대한 덩치는 그 존재감만으로, 주변을 압박하기 마련이었다.
“으…….”
“저거, 우리가 준비한 함정으로 처리되는 겁니까?”
우리 바로 옆.
모든 일이 끝나고 시체를 수거하기로 했던 처리자들이 몸을 잘게 떨어댔다.
보스의 등장만으로 공포가 사방을 잠식했다.
‘무리도 아니긴 하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녔다.
일반 보스로도 무섭기 마련이다.
눈앞에서 악마의 마력을 풀풀 풍겨대잖는가.
도망치지 않고 있는 게 용할 정도다.
이러한 공포가 길게 이어지게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즉석으로 만든 마지막 함정을 사용할 때였다.
그 재료는 사방에 깔린 수인의 시체들이었다.
내게서 신호를 받은 이사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곤 주문을 완성한다.
“얼기설기 기어오는 시체의 부름!”
즈즈즈즈-
사방에 있던 시체가 모여든다.
조각조각 넝마가 됐든, 잘 보존되었든 상관없이 시체는 기어서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어어어!
그간 남은 모든 시체로 빚어져 만들어진 존재.
보스에 비견 되는 거대한 덩치가 만들어진다.
얼기설기 이어진 육체는 흉악하기 그지 없었지만, 이로써 완성은 아니었다.
“어서 마무리해 줘.”
그래봐야 실상은 좀비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니 저건 좀비라고도 하기엔 빈약한 수준이다.
완전체인 시체를 살려 만드는 거보다, 저리 조각을 이어붙인 건 약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 부족함을 채워 주는 건 이제 내가 할 몫이었다.
어떻게 채우냐면.
바로 영혼을 부여해서다.
“영혼 분리.”
[당신은 자신의 영력 일부를 분리했다.]
다른 자에겐 이게 식상해 보이겠다만.
내가 그리 단순하게 부여를 할 리가 있나.
스스스-
나는 내게 분리된 영혼 중 다시 일부를 떼어 냈다.
‘어디 보자. 저거군…….’
그 영혼.
-뭐냐아……!
내 근원 안에 수없이 많이 혼재된 것 중 하나.
따로 떼어 놓으면 잠들었던 의지를 다시 일으킬 수 있을 영혼 중 하나였다.
‘무려 마족의 영혼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괜히 상위 존재는 아니니까. 영혼 부여.’
[당신은 자신의 영력 일부를 부여했다.]
즈으으윽-!
내 손길의 끝. 그곳이 가리키는 거대 좀비에게로 마족의 영혼이 부여됐다.
-그아악…… 이리 하찮은 곳에 이 몸을……!
상위 존재랍시고 존재하는 마족.
그 영혼을 좀비 따위에 집어넣었으니 만족할 리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거 같았던 마족을 멈춰 세우는 건 내가 아니었다.
-……허?
-그롸락!
멈춰 세우는 건, 던전 보스였다.
[당신에게서 분리된 영혼이 적을 인식했다.]
악마와 마족은 영혼 깊이 서로에게 적의가 각인된 존재.
설사 제 몸이 좀비 따위에 갇혀 불편한 상태라 할지라도, 숙적인 악마가 있다고만 한다면 상관없다.
그리고 그 조악한 몸의 힘이 악마의 기운이 서린 것을 부수기에 충분한 기회만 된다면.
마족이란 족속들은 악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흐…… 흐하하. 잘도 이런 식으로 판을 짜 놓았구나? 이런 거라면…… 그래. 내 기꺼이 속아 주지!
후우웅-! 콰아아앙-!
두 거체가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