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스슷-
아비트라의 영혼을 흡수하자, 던전의 핵이 떠올랐다.
던전의 핵은 변질돼 있었다.
아비트라의 손길이 묻어 있는 듯, 곳곳에 녀석의 마력이 버무려져 있었다. 제대로 된 핵이라 판단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핵은 파괴를 할 필요도 없었다.
쩌정-
비틀린 제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스스로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외부의 힘이 개입하기라도 한 거처럼.
‘공허도 악마가 장난질 치는 건 싫단 거겠지.’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이내 보상 공간 안에 떠올라 있었다.
던전의 끝. 보상의 공간이다.
* * *
던전이 종료됐단 판정이 만들어지면, 보상의 공간으로 가는 건 진리.
급작스레 이사야와 떨어졌다 해서 불안해야 할 법은 없었다.
알아서 보상을 받고 있겠지.
그러기에 나는 안심한 채, 눈앞 글씨들을 바라봤다.
[당신은 변형되던 미궁의 최단 거리로 탐색했다.]
[당신은 변형되던 미궁을 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최초로 변형되던 미궁을 정복했다.]
[당신은 악마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적성 악마의 영혼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자신보다 상위 존재의 영혼을 흡수하였다.]
[당신의 활약이 이전에 체계에 기록된 바가 있다.]
[당신의 행동 결과에 따라서 보상이 정산됐다.]
[당신의 보상이 정산되었다.]
“햐…… 짧게 치고 왔는데도 업적으로 쳐주는 게 꽤 많네. 지난 이레귤러 때 활약해서도 있는 건가.”
처음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내가 던전에서 한 행위에 대한 정리.
분명 최단 루트를 걸어 왔는데 말야.
본래 최단 거리는 보상창도 짧을 수밖에 없는데 생각보다는 기네?
아주 액기스만 뽑아다 놓은 느낌이다.
만족스러웠다.
스스슷-
확인이 끝나자, 글자들은 다시 조합됐다.
[당신은 악마의 영혼을 포식하여 가호 : 악마를 강화하였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위압의 숙련도가 상승하였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살인의 숙련도가 상승하였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존재 포식의 수준이 한 단계 상승하였다.]
[당신은 대량의 경험을 얻어 더 나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당신의 등급은 26이 되었다.]
등급, 기술, 가호. 삼박자가 고루 숙련도를 얻었다.
그 근거는 명확했다.
악마인 아비트라에게 공포를 주고, 잡아먹는 게 큰 지분을 차지한 거겠지.
뭐, 짧게 치고 빠진 거치곤 너무 많이 받은 거 같긴 하다.
감정이 없다 여겨지는 <공허>로서도 악마가 제 던전을 조종하는 게 마음에 안 든단 의미일 거다.
제 것을 마음대로 변형시키고 가지고 놀아댄 놈을 죽였으니 이리 퍼 주는 거겠지.
이거만으로 놀라운데, 그 마지막은 더했다.
[당신은 보상을 받아 가호 : 영력이 한 단계 상승하였다.]
영력의 가호.
영혼 술사인 내게 있어 근본.
개미굴에서 한번 상승하고. 그 이후는 숙련도만 쌓아왔던 영력이 대번에 등급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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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영력 B]
세계를 이루는 근원적 요소 중 하나인 영력을 깨우치기 위해 내려지는 가호.
영력의 힘을 다루게 해 준다.
이는 창생과 사멸 중 생과 사의 사이에 존재하게 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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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 등급이 B.
영력을 다루게 해주고, 그 힘을 깨우치게 만들어 주는 이 영력이 올라감은 내게 큰 의미가 됐다.
안 그래도 영력 수련을 하면서 꽤 막힌 나다.
이리저리 해 처먹어서 영혼이 비대해졌으니까.
덕분에 등급 상승이 고플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게임을 해도 장비빨이란 게 있잖나.
같은 사람이라도 좋은 거 쓰면 더 잘하게 되는 법이거든.
그렇잖나.
모니터 하나만 바꿔 줘도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안 보이던 거 더 잘 보게 해 주고.
반응 속도는 수배로 빨라지게 해 준다. 뭐, 물론 그걸 다루는 자식의 실력이 받쳐 줘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가호가 상승하게 되면.
‘영혼을 보는 해상도가 상승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내 수련 속도는 더 올라갈 거였다.
내가 지닌 근원을 탐색하는 게 더 쉬워질 테니까.
고로, 이 보상 하나를 얻었다는 거만으로도 잔뜩 배가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 탐색 능력을 인정하느냐?
“안할 수가 없네. 성능 확실하구먼?”
-후후. 이제로 알았으니 다행이구나.
하도 배가 부르니.
오죽하면, 이 몸이 벨린카니스를 쉽게 인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인정에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는 마왕을 보며, 나도 같이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자, 그럼 동맹은 하는 것이렷다?
“일단은, 그리하자고. 임시 동맹이다. 어때?”
-후후. 좋구나. 그게 시작인 게지.
흐흐.
가만 있어도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동맹을 얻어서?
그럴 리가. 그렇게 순수하게 마냥 기뻐하기엔 때가 너무 타서 말이지. 알잖나. 나란 놈은 영혼부터 비대해진 것을.
그런 탐욕스러운 나로선, 머리에 온갖 아이디어가 번뜩이고 있었다.
뭐나면.
이 성능 좋은 탐지기를 이제부터 어찌 쓸지에 관한 아이디어들이었다.
‘뒤지게 부려먹어 주마.’
* * *
던전 탐색이 끝이 나고.
곧바로 미래 엔터에 연락을 취했다.
김시연 실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 그래도 그녀의 요청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금방 만남이 이뤄질 거라 여겼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회의실에서 보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찾아 갈 수도 있는데.”
-죄송해요. 그게 아니게 돼서요. 자세한 건 오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하, 참. 우선 알겠어. 별다른 이유가 아니라면 꽤 실망하게 될 거야.”
-그렇진 않으실 거예요. 그럼, 금방 연락드릴게요.
알지 못하는 이유로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성질머리 같아서는 에잇, X팔 이건 아니잖아? 하면서 깽판 치고 싶었다만.
이제 회귀를 꽤 하게 된 이 몸도, 체통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이 몸도 이젠 무려 영력 B등급 오너니까.
라는 건 개소리고.
이쪽도 예언자 판을 짜자니,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쪽도 예언자 행세를 어찌해야 할지 판을 짜긴 해야 했다.
냅다 나 예언자요, 하면 누가 믿겠나.
“던전에서 예언 능력을 얻었다 해야 하나, 얻는 경우가 없진 않잖아? 맞힐 확률이 안 좋아서 문제지.”
“그럼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희귀성도 안 좋고 말이야.”
“차라리 지난번에 얻은 가능성의 기물이란 걸 핑계로 대는 건?”
“그건 좋기야 한데…… 으음…….”
“왜? 영 시원찮아? 그럼 다른 방법도 좀 찾아보고.”
김시연을 만나기 전까지의 며칠간.
덕분에 이사야와 나는 꽤 많은 계획을 들을 짜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여러 가지 안건이 나왔고, 그중에 하나의 계획이 선택받았다.
“……킁. 이거 무당 행세하는 느낌인데.”
“어허이. 요즘 대세가 이거라니까. 먹혀. 확실히 먹혀.”
선택받은 계획은 꽤 그럴싸했다.
쉽게 말해 내가 잡아먹은 영혼 중에 미래를 예지하는 게 있었다.
처음엔 그 가능성이 작아 무시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가호 : 영력의 등급이 오르며 내게 없던 영안(靈眼)이 열려 그 가능성을 키운 상황.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 던전에서 그걸 시험했더니 먹혀들었다.
라는 게 나와 이사야가 그럴싸하게 짜놓은 계획은 중요 부분들이었다.
세밀하게 들어가면 이야기가 꽤 길어지긴 했다.
그래서 그럴싸하게 몇 가지 장치를 더 준비했다.
그 장치 중 하나는 시각 효과.
영력을 활용해 이 몸에 신비감을 조성하는 방법을 연구해 적용했다.
이럴려고 영력의 가호를 상승시켰나 자괴감이 들기는 하는데.
[당신은 영력 일부를 세밀하게 사용했다.]
샤아아아-!
“와우. 알고 봐도 이 정도면 믿음직해. 그러니 걱정 말라고?”
-꽤 볼 만하긴 하구나.
내가 빚어낸 영력을 그럴싸하게 흩뿌리는 거만으로도 둘의 반응은 꽤 열렬했다.
“에휴. 내가 헌터를 하는 건지, 예능을 하는 건지. 쯧…….”
“에이, 신나 하라고. 혹시 알아? 다 끝나고 나면, 이런 잡기술로 먹고 살지도 모른다구?”
“어떻게?”
“도네이션 같은 거 받으면 영력 효과 보여 주는 거지? 이름하여 스트리머 랭커 헌터의 도네 리액션?!”
“……말을 말자.”
실제 일이 끝나면 같이 동업하자고 날뛰던 이사야.
아무리 영력이라도 카메라를 통해선 그 효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서야 녀석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걸 듣고 이사야는 한참 아쉬워했다.
그녀와 몇 번이나 계획을 재점검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며칠.
-이제 오시면 될 거 같아요.
나와 이사야는 김시연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 * *
모두가 간 장소는 평소와 달랐다.
미래 엔터도, 김시연와 미팅을 갖었던 식당도 아니었으니까.
나와 이사야는 예상치 못한 장소를 방문하고 있었다.
“이야. 여기는 저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하지 않냐?”
“러시아에선 이런 거대 저택은 흔하긴 해. 그래도 서울 땅값 생각하면 심각한 낭비긴 하네.”
“그치? 크긴 커. 거기다 곳곳에 돈 X랄도 해놓은 거 같은데. 흠…….”
그곳은 저택이었다.
단순히 100평, 200평을 말하는 주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저택.
중세로 치면 영주나 살법한 거대한 성 한 어귀를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크기만 단순히 큰 게 아니었다.
곳곳에 놓인 조각상들은 작품인 게 분명했다.
그 사이엔,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나 보일 만한 보안 장치들이 깔려 있었다.
‘저건 마석을 쓴 거고. 얼씨구? 저건 결계를 통째로 때려 박았네? 저건 마법을 이식해 놓은 거 같고…….’
이 시대의 최신 장치들이 다 깔려 있는지라 나로서도 감탄이 나올만했다.
“과연…… 집 하나도 이쯤은 갖고 있어야 한국 정도는 해 먹는다는 건가. 멋지네.”
“멋지기야 한데. 한휘, 전에 온갖 곳들을 다 다녀봤다며? 딱히 놀랄 이유가 없지 않아?”
이사야로서는 그런 내가 영 이해가 안 가는 듯싶다만.
“놀랄 만하지. 내가 강해졌을 때는 세계가 거의 폭삭 망한 때였다니까? 이런 호화의 극치는 잘 보기 힘들었다고. 전시체제라 죄다 전시와 관련된 거만 나오기도 했고 말이지.”
“아하. 이해했어.”
그 이유가 충분했기에 이사야는 감탄하는 나를 못 말리겠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곤 즐길 테면 즐기라는 듯 한참을 가만뒀다.
그 상태로 몇 개의 복도와 거대한 전시실 같은 곳을 몇을 지났다.
가만 지나는 거만으로도 주눅이 들고, 절로 위압감에 몸이 움츠러드는 설계였다.
‘보통 독재자들이 이렇게 꾸미는 데 말이야. 거, 집주인 성격이 어떤지는 알만한데.’
안내인의 안내를 따라 얼마나 들어갔을까.
“여깁니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주인이 있을 곳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저택의 주인이 아니라, 그 딸인 냥곰이 김민하가 있을 거지만 말이지.’
숨을 한 번 들이쉬며, 이사야를 바라봤다.
나답지 않게 긴장을 했달까.
무리도 아니었다. 만남이 성사된 김에 나는 나답지 않은 일을 해야 할 참이었으니까.
“…….”
“…….”
그녀도 한껏 긴장했는지, 비슷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안내인이 있어 말을 하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건 분명했다.
‘계획대로 해야 해.’
‘예언자 노릇 한번 제대로 해 봐야지.’
이 문 뒤에 들어가서 우린 예언자 노릇을 해내야 했다.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실하게.
그럴싸한 말을 던지는 거보단, 때려 부수는 게 내 취향이긴 하다만.
미래 그룹의 믿음을 얻어 내고.
그 믿음을 이용하여 미래 그룹 자체를 잡아먹어야 하는 나로선 꼭 해내야 하는 첫 단추였다.
그러기에 계획을 준비하며 안으로 들어섰고.
예언자 노릇을 위한 첫 마디를 던지려는 그 찰나였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혼을 쏙 뺄 수밖에 없었다.
“당신, 미래를 보고 제안을 하러 왔죠?”
예상치 못한 선공을 제대로 맞아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