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곧바로 탐지기 성능 확인을 시작했다.
그렇게 확인된 성능!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 변형되며 함께 바뀌어 버린 던전 지형.
벨린카니스는 그 지형을 꿰뚫어 봤다.
최단 루트를 만들어내어 안내했다.
도중에 만나야 할 수많은 몬스터.
그녀의 안내 덕분으로 건너뛸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보스 룸이 아닌, 그보다 더 뒤에 있는 곳.
이 던전을 변형시킨 주인공인 악마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우리가 도달하였을 때.
-아니, 어떻게 알았지!?
“다 수가 있어, 임마.”
“와. 나 악마가 놀란 거 처음 봐!”
나는 곧바로 악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머리 아래 여덟 개의 다리가 움직인다.
그 아래 다시 여덟 개의 다리가 나 있는 문어X문어 악마.
지식이 얕은 자는 문어면 대뜸 크툴루라 외쳐 대지만.
그건 만들어진 신화고.
눈앞에 존재하는 건, ‘아비트라’라는 이름을 지닌 악마다.
탐욕스러운 욕망의 다발이 뭉쳐 빚어진 존재.
욕망의 한 갈래를 제 권능으로 타고난 자였다.
놈은 욕망을 실체화한다.
제 몸에 있는 다리를 무한히 증식하는 게 그 실체화의 증거.
그리고 그 다리를 재료 삼아 제 부하를 만들어 내는 게 놈의 특기였다.
덕분인지 아비트라의 주변엔 제 몸을 찢어 만들어 낸 다리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 뒤는 뻔했다.
제 부하들을 무한 증식해 내서, 이 던전을 완전히 제 것 삼았을 거다.
그 뒤에 들어오는 헌터들을 잡아먹었을 거고.
그중 일부는 제 다리를 심어서 하수인을 만들었을 거다.
그들은 던전을 나와 하수인 노릇을 하며, 바깥을 어지럽혔겠지.
악마들이 취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이다.
일종의 침공 본부이자, 추종자 양식장을 만드는 거다.
그러니 녀석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조금만 더.
몇 분만 더 주어졌어도 녀석은 던전을 장악했을 테니까.
-이익! 끝을 낼 수 있었거늘!
“끝나는 건 네쪽이구요.”
하지만, 이쪽에 잡혀 버린 이상 그도 끝이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나는 걸음을 내디디며, 그림자를 제어했다.
던전의 천장 아래 널린 게 그림자였다.
촉수는 촉수로.
돋아난 그림자들이, 땅에 즐비한 문어 다리들을 쪼개기 시작했다.
[당신은 악마를 적성으로 상대하고 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마족의 힘이 당신의 파괴력을 상승시켰다.]
가호의 힘과 더불어, 그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비트라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져 갔다.
-아, 안 돼!
그에 절규하는 아비트라.
-일어나거라! 어서 일어나!
놈은 한 걸음 씩 물러나며, 간절하게 외쳐댔다.
꿈틀. 꿈틀.
놈의 살고자 하는 욕망이 실체로 구현화됐다.
남아 있던 문어 다리들이 산 생물처럼 움직였다.
움직인 생물은 서로 얽혀들며, 또 다른 개체들을 만들어 냈다.
아비트라의 새끼들이었다.
-그어어어……!
-그륵…….
아비트라와 똑 닮은 녀석들.
이성만 지니지 못하였을 뿐, 녀석들이 지닌 육체적 능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무려 악마의 육체를 빚어 만들어 낸 존재니까.
그러나.
우리라고 이에 대응하지 못할까.
“이건 나한테 맡겨! 이 참에 시험할 게 있으니까.”
“오케이.”
부하는 이쪽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히히. 시체를 빚어 만들어 낸 존재가 지저에서 지고한 존재로 변화하니, 그 육체는 하등하여도 빚어진 존재는 고등하리라.”
……취향 한번 특이한 주문이 이사야의 입으로부터 외워지고.
스스스스-
그녀로부터 뻗어 나온 마력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마력이 향하는 대상은 그림자 기술로 찢어발긴 아비트라의 다리들.
내 손에 조각조각 나 버린 시체들은 이사야의 손에 의해 기워졌다.
살점들이 모이고, 만들어져 형태를 이루었다.
-크륵…….
거대한 시체의 산은 하나의 형태로 빚어졌다.
마치 아비트라를 조롱하듯, 그의 새끼와 비슷한 형태였다.
더 크고, 곳곳에 기운 흔적이 가득하다는 거만이 다를 뿐이었다.
이러한 소환 방식.
내겐 익숙한 방식이었다.
‘시체 수거자……잖아. 벌써 익힌 건가.’
시체 수거자.
던전에 깔린 시체를 빚어 만들어 낸 전투 병기.
특유의 재생력을 지닌 시체 수거자는 전생의 이사야가 애용하던 사령술이었다.
다만 사용하는 시기가 매우 빠르다는 게 전생과 다를 뿐이었다.
본래라면 지금의 이사야 수준으론 불가능한 소환이었으니까.
이 또한 마왕으로부터 배운 덕이겠지.
그러기에 가능한 소환이었고.
이러한 소환은, 아비트라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찌 나의 자식을 그런 식으로!
“헹. 이제 누구 자식이지? 너는 몸으로 낳았고, 나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인 것이다!”
“……미친 녀석. 그런 걸로 자랑스러워하지 마.”
더불어.
저 미쳐 버린 광기도 꽤나 놀라운 것이기도 했다.
“시끄러, 한휘! 너는 강해졌다. 출격해!!”
-크륵!
리치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미친 거냐.
이사야 녀석은 괴이한 드립을 날리더니, 시체 수거자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쿠웅.
녀석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시체 수거자는 끈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처럼 명을 따랐다.
오른손의 손짓 한 번에, 그 거대한 덩치가 춤을 췄다.
던전 안 전체가 시체 수거자의 무대였다.
주인공인 시체 수거자를 빛나게 하기 위한 소품은 조악하게 만들어진 아비트라의 새끼들이었다.
콰즈즈즉- 콰즉-
시체 수거자가 거체를 움직일 때마다, 아비트라의 새끼들이 곤죽 났다.
부수어진 시체 위로 남는 것은 검은 핏줄기뿐이었다.
“으흐흐흐. 잘하잖아! 다 먹어 버리라고!”
-크르륵!
그 남은 시체들마저도, 시체 수거자는 이름 그대로 전부 쓸어가 버렸으니까.
시체 수거자의 몸은 계속해서 불어났다.
불어난 몸을 주체 못 할 때가 될 때쯤이면.
-크롸라라락!
쯔즈즈즉-!
둘로 쪼개져 나눠졌다.
또 다른 시체 수거자의 탄생이었다.
둘이 된 시체 수거자는 더 많은 형제를 원했다.
-그르르륵……!
콰아앙! 쾅!
거체가 움직일 때마다 아비트라 새끼가 사라지고, 시체 수거자의 몸이 늘어났다.
저게 시체 수거자의 무서운 점이었다.
시체만 있다면 이론상 무한하게 증식할 수 있으니까.
그 대가가 큰 것도 아니었다.
‘시체 수거자를 움직이는 동력은 시체 그 자체니까…… 사실, 이거도 다른 외신의 능력을 본 딴 거기긴 한데.’
어쨌거나.
처음 시체 수거자를 일으킬 때만 거대한 마력이 들 뿐이었다.
이후는 제 몸을 살라먹으며 거체를 유지하는 게 시체 수거자의 기본능력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점차 그 크기가 사라지기야 한다. 그러나 이를 부리는 사령술사는 힘이 크게 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니까.
극히 효율적인 전장 병기랄까!
덕분에 그를 부리는 이사야로서는 여유가 넘치기야 한다만.
“오우. 내 새끼, 다 컸구나.”
“이사야, 미친 소리 그만하고, 마무리나 하자.”
“쳇.”
그 여유를 전장을 찢어발기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드립이나 치는 데 쓰고 있는 이사야였다.
하여간에 나사 하나가 빠진 녀석이다.
뭐. 새로 익힌 사령술을 전장에 사용했으니, 잔뜩 흥분하는 건 이해 못할 바가 아니긴 하다만.
누구라도 새 장난감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그러나 그러한 놀이도 길면 지겨워지는 법이었다.
‘끊을 땐 끊어야지. 영혼 폭발.’
[당신은 대규모 영력을 사용했다.]
나는 영력을 이용해, 이 와중에도 내게 달려드는 새끼들을 치웠다.
그러며 동시에.
[당신은 마법 : 영혼 폭발을 사용했다.]
[당신은 마법 : 영혼 폭발을 연속으로 사용했다.]
-크으으! 잡힐 줄 아느냐!
콰아앙! 쾅!
발악하는 아비트라를 향해 쉼 없이 영혼 폭발을 사용했다.
-이따위 것!
놈은 쉴 새 없이 저항을 시도했다.
최대한 영혼 폭발을 회피했고.
주변에 유탄처럼 터지는 영혼 조각은 제 저항력으로 버텼다.
콰아앙-!
그러며 회피를 하지 못할 때는, 제 육체 일부를 제물로 바쳐 공중에 폭발시켰다.
어지간한 수준의 헌터는 보이기도 힘든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과연 악마는 악마라 이거지.’
꽤 감탄이 일었다.
본체 자체의 능력은 그리 강하지 않은 아비트라 주제에.
저 정도 발악하는 건, 놈으로서도 사력을 다한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어쩌냐.
-흐흐흐. 네놈의 수! 다 버텨내었다.
“아, 그래?”
녀석이 발악하는 사이, 녀석과 나의 거리가 좁혀져 버린 것을.
아비트라로선 영혼 폭발 자체가 사력을 다한 전투였겠지만, 나로선 아니었다.
내게 있어 영혼 폭발은 단지 미끼다. 녀석을 내가 원하는 곳에 몰아붙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서, 설마…….
놈이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멀지?”
-……아아!
녀석이 이곳 던전에 타고 들어왔을 게이트.
악마가 만들어 낸 그 게이트와 놈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한 마디로, 도망을 칠 수 없단 소리다.
-어찌 인간이 숨은 게이트를 알고…….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 같이 숨겨놓은 상황에선 이를 찾는 건 상급 탐색 능력을 각성한 각성자가 와야 겨우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보았느냐? 이게 여의 힘이니라.
“그러니 이제 포기하지?”
-어허. 이 여의 탐지 기능…… 아니 능력에 어서 경의를 표하란 말이다.
“얼씨구? 끝까지 반항을 하려고?”
-……!!! 여의 말에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을 참이냐.
“그래. 끝을 보자.”
내 옆에서 쫑알거리고 있는, 만능 탐지기가 있으니까.
어쨌거나.
이러한 탐지기의 기능에 상관없이, 아비트라는 끝끝내 저항을 택했다.
-이이이익! 그래! 죽여라! 날 죽여! 그러나 쉽게는 죽이지 못할 것이다.
“휘유. 기세 보게.”
-네놈이 나를 이리 몰아붙인 것이 잘못이니라! 끝을 보자! 끝을!
궁지로 몰린 주제에, 여덟 다리를 휘젓는 아비트라.
후우우웅-! 후웅-!
그 기세가 새삼 매섭긴 했다.
여태 도망친 녀석이 내보일 기세는 분명 아녔다.
그런 아비트라를 보며 난 쓴 웃음을 삼켰다.
저리,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것.
그게 악마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긴 하였으니까.
지금도 사슬 어딘가 숨어 있을 그 미친 악마 볼프가 이상한 놈일 뿐이었다.
“끝까지 반항이라. 그래. 이게 네놈들 본 모습이지.”
-흐흐. 흐…… 날 죽여도 끝은 아닐 것이니라.
콰즈즈즉- 콰즉-
제 몸이 잘려 들어가고.
계속해 재생하는 온몸이 고통으로 점철될 텐데도 버틸 이유야 뻔했다.
죽어도 음차원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기에 보이는 객기다.
그러나.
객기도 사람을 가려가며 부려야 하는 법이었다.
“본래라면 그러겠지. 하지만. 이거면 어때?”
-컥……?!
내가 아비트라의 육체를 끊임없이 상하게 하고.
놈의 기운이 쇠락하게 만드는 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손속이 본래부터 잔혹하긴 하다지만, 쓸데없이 잔혹함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잖은가.
썩둑- 썩둑-
놈을 계속해 썰어대는 한편으로, 나는 다른 한 가지 일도 동시에 진행했다.
-네놈…… 설마…….
“이제 눈치챘냐? 영 눈치가 없네. 하긴, 게이트랑 멀어질 때 제대로 눈치채지 못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다만.”
그건, 녀석의 영을 찾아내는 거였다.
제아무리 강대한 악마라도.
끝없는 고통과 기운이 쇠락한 가운데선 틈을 보이는 법이었다.
특히나.
‘나는 혼자가 아니지.’
[당신이 지닌 가호 : 마족이 당신의 영혼 탐색을 돕는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천족이 당신의 영혼 탐색을 기꺼이 돕는다.]
수만 년이 넘도록 서로를 적대시했던, 가호들의 도움이 있는 한 그 틈은 더더욱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작은 틈이 완벽히 벌어졌을 때.
“잘 가라.”
-아, 안 돼!
스으읏-!
나는 음차원 게이트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아비트라의 영혼 한줄기를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
이 뒤는 뻔하지 않은가.
“네 힘을 잘 써 주마.”
-크아아아아악! 죽어서…… 죽어서도…… 켁!
[당신은 적성 악마 : 아비트라의 영혼을 잡아채었다!]
[당신은 적성 악마 : 아비트라의 저항을 이겨내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스스로 적성 악마 : 아비트라의 영혼을 흡수하는 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