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가볍게는 강남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길드들이 넘기기 어려워했다.
강남의 치안을 맡아주는 대가로 수많은 이권을 챙겨온 길드는 넘쳐났다.
서초의 이수와 송파의 강성.
남은 모든 구를 아우르는 길드 ‘실드’.
이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기보단, 실제 현실에 관여하여 성장을 도모하는 자들이었다.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이들은 지금의 방식으로 길드가 되기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해왔다.
경호, 전쟁 용병, 이외 수많은 무력이 필요로 하는 그런 일들에 발을 담가 왔다.
본래 하던 일들에 이능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생겼기에, 그를 투사했을 뿐이다.
던전이 아닌 현실에서 힘이 제한됐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헌터는 일반인보다 훨씬 강력하니까.
이들은 오히려 지금을 좋아했다.
제힘으로 명예를 추구하기보다는,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움직이는 이들이었으니까.
이 상황 자체를 기회로 여겼고.
다수의 지역 방위 조약을 이유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 그들로선 현 상황이 곤혹스러웠다.
“재계약이 얼마나 남았다고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지라 통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통제?! 그래. 통제를 제대로 했었어야지!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말이야!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X팔.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후…….”
금번 이레귤러 게이트.
그건 그들 주도로 처리가 돼야 했다.
특히 논현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실드’의 경우는 강남구와 재계약 문제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목을 받기는커녕 새로운 루키가 등장했다.
자신들은 들러리만 서게 됐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게이트 자체를 막지 못하는 최악은 피하긴 했다만.
언제나 그러하듯 최악을 넘기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 법이었다.
물에서 건져지니 보따리 내놓으란 논리다.
때문에 주변의 입이라도 다물게 하고 싶었다.
자신들이 들러리인 게 소문나서 좋은 건 없었으니까.
“길드장님 뵙고 올 테니까, 주변 챙기고 있어. 기자들한테도 더 못 떠들게 좀 쥐여 주고.”
“그게…… 힘들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불가능해 보였다.
“또 왜?! 그거 막는 게 네 일이잖아?”
왜 못 막지?
여태 기자들한테 쥐여 준 돈이 얼마던가.
식사 한 번 나가면 스스로 결제를 해 줘, 자리 하나 마련하면 쥐여 준 봉투가 수백 수천 장이다.
그걸 왜 못 막는단 말인가.
그러나 뒤 이어지는 말엔 방법이 없단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 왜 여태는 잠잠했었나 알아보니 미래 길드에 들어가 있습니다.”
“뭐? 어디?”
“미래 엔터테인먼트요. 거기 직속이랍니다. 김시연이 이끌고 있는 팀으로요.”
“하…… 젠장. 생각보다 대어잖아? 걔가 왜 여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은 건데?”
“미래에서는 꽁꽁 쥐고 있다가 나중에 팍 터트리려고 통제하고 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유망주를 두고, 각을 보다가 터트리는 거.
자주 있는 일이었다.
효과가 쏠쏠하니 실제 자신들도 쓰던 방법이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자기들이 짠 판보다 더 크게 터진 거 같습니다. 이번 일로 터진 거죠.”
“하…… 씨.”
“막으려고 해도 흐름을 타 버렸습니다.”
“뭔, 걸려도 이리 된통 걸리냐.”
회귀를 한 지한휘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시작한 길드가 바로 미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강남에서 알아주는 길드인 실드라 해도, 미래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미래 엔터테인먼트.
엔터란 이름을 걸고 있지만, 그들도 길드는 길드다.
그런 길드에 대고 실드가 비빌 수 있을까.
강남 삼 구에서 떵떵거리고 있다지만 규모가 다르다.
그만큼 그에 속한 지한휘도 대어란 의미.
결국 보고를 하려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언론을 조종해 그에 대한 관심을 막을 수 없단 의미였으니까.
되레 언론은 이참에 지한휘를 두고 더 키워줄 거였다.
“후. 어쩌겠냐. 나만 잔뜩 깨지겠구만…… 다녀온다.”
“힘내십쇼.”
그래도.
그도 이 자리까지 쉽게 올라간 자는 아니었다.
“그놈 물 먹일 방법은 나 올 때까지 생각 좀 해 봐. 뭐라도 해야 나중에 길드장님 불똥이 덜 튀지 않겠냐?”
“예, 옙!”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곱게 물러나기보다는 어떻게든 지한휘를 깎아낼 방안을 마련해 보는 실드였다.
그게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이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견제를 시도할 게 분명한 그들이었다.
* * *
사실 이러한 작은 견제 따위는 지한휘로선 신경도 쓸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지한휘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그런 견제들 따위 쓸데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아 봐야, 뒤질 때 오면 다 허망한 거야.
멸망이 목전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그였다.
그가 알기로 이대로 두고만 보고 있으면, 다 끝이다.
어차피 매스컴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건 다 아작 나게 돼 있었다.
전쟁통에도 작동하는 스카이넷이니 뭐니 하는 게 꽤 오래 버티기야 한다만.
그조차도 체계가 무슨 작용을 한 건지 몰라도 얼마 못 가 꺼져 버린다.
결국 사회 전체가 고립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차라리 고립만 되면 편하겠다.
곳곳에서 마족들의 침공이 이어지고.
그에 어울리듯 악마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성좌와 공허, 외신은 또 가만 있나.
성좌는 기다렸다는 듯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하고. <공허>는 제 본 모습은 제 조각들을 던전으로 쉼 없이 뿌려 댄다.
그런 공허의 조각이 결국 던전.
정말 미친 듯 나오게 돼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던전이 겹치고, 중첩되다 터져 버리면?
그 뒤엔 몬스터 웨이브가 확 하니 나와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사회의 견제 따위.
신경이나 쓰는 게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개짓거리지.
그런 일에 신경을 쓰느니, 나가서 몬스터 하나라도 더 처리할 생각이 가득 만만인 게 지한휘였다.
실제로 그는 회귀 이후 그러한 삶만을 살아왔다.
던전행, 미래 길드 가입, 이사야 영입, 영웅의 전장…….
그가 한 모든 행위가 그걸 증명했다.
그는 다 함께 죽어 버린, 최후까지 함께한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생만큼은 공허를 막겠다는 것에 모든 그의 행위를 귀결시키고 있었다.
그러니 견제 따위 그에게 있어 그 어떤 쓸모도 없었다.
그의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쓸모 있는 건, 단 하나였다.
미래에 대한 ‘정보’.
그중에서도 적의 침공 시기에 관한 정보는 꽤 큰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이걸 이용해서 미래 길드에서 자리를 크게 잡고, 결국에는 미래 길드를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계획까지 짜놓은 그이지 않은가.
그런 그에게 정보의 중요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애써 짜놓은 그 모든 계획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당장 일어난 이레귤러 게이트 사태만 해도, 지한휘의 계획과 기억 속엔 전혀 없는 일이었다. 즉, 정보가 없단 소리다.
‘대체 뭐지. 지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그의 가슴이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 * *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해 줄 자가 하나 있었다.
그는 제 몸에 묻은 전장의 흔적을 수습하며 마왕에게 물었다.
“후. 대체 왜 지금 침공이 이뤄진 거냐? 이건 예정에도 없던 건데.”
-아직도 모르겠더냐.
“뭘?”
답답해 보이는 그와 달리 답을 하는 마왕은 담담해 보였다.
나지막이 설명을 더할 뿐이었다.
-이건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게다.
“하 씨…… 네 왕좌가 어설프다는 거?”
-그래. 인정하기 싫으나 그게 사실이다. 여의 자리가 비어 있으니 강경파가 움직인 것이다. 어쩌면 내 흔적을 찾아 충신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빈 지가 얼마나 됐다고. 뭔 왕좌가 그리 빈약하냐? 왕 맞아?”
-빈약이라. 아쉽게도 사실이 그러하니 어쩌겠느냐.
“뻔뻔하기는.”
-칭찬은 감사히 받겠느니라.
문제는 설명을 듣는다 해서 나아지는 건 없다는 거다.
마왕의 말처럼.
벨린카니스가 가진 왕좌가 지니는 권위는 생각보다 빈약했다.
긴 세월을 살아가는 마족일 텐데, 그가 회귀하고 고작해야 몇 달을 떠나 있다고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는 게 그 증거.
그만큼 마왕의 뒤를 노리는 자가 많았단 거란 의미다.
‘씁…… 어디 대통령 하나가 사라져도 이정도는 아닐 거야. 대통령 하나 사라진다고, 침공을 벌이는 미친놈들은 없잖아?’
결국 모든 일의 핵심은 마왕이었다.
마족 중심에 있는 마왕이 사라지자, 그의 계획도 함께 어그러진 거다.
‘기존에 있는 던전 히든 피스나, 곧 출현할 곳들. 그런 것들은 여전히 유용하긴 한데…… 이젠 반쪽짜리가 돼 버렸어.’
마족과 관련한 정보가 사라졌으니, 큰 축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 셈.
이래서야 계획을 실행하는 게 쉬울까.
‘남은 반쪽짜리 정보를 최대한 활용한다 해도. 어려워.’
아무리 생각해도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회귀로 꿀을 빠나 싶었던 지한휘로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반대로 마왕은 마냥 기뻐 보이기만 했다.
-후후.
“웃어?”
-협상의 저울추가 여에게 기울었으니 좋을 수밖에 없지 않더냐.
“씁…… 꼴받네.”
-후후.
투구 사이로 표정은 가려져 있으나, 얼굴은 웃고 있겠지.
그 모습이 마냥 마음에 들지 않는 그였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마왕이 원하든 원치 않든 침공은 시작됐다.
지한휘 자신은 그에 발맞춰 움직여야 할 뿐이었고.
“이사야, 어쩌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휘 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씨. 이럴 때만, 교과서 말투로 말하지 말고. 제대로 좀 생각해 봐.”
“어우. 나도 골이 빠개져서 그래.”
“젠장.”
책사역을 자처하는 이사야로서도 당장 무슨 수를 내긴 어려웠다.
그 모습을 보며 벨린카니스는 한창 미소를 지어댔다.
하기야.
영혼이 귀속된 후 처음으로 지한휘가 막막해하는 걸 봤잖은가.
숙적의 불행이 곧 마왕의 행복이었으니 기쁠 수밖에.
그러나 이 타이밍을 즐기는 것도 순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는 계속 지켜보고 싶다만. 이대로 이자가 무너져 내리는 것도 좋지 못함이니…….’
그에게 귀속된 마왕이다.
그로서 지한휘의 불행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마왕은 다시금 특유의 거만한 자세를 취하곤 지한휘에게 손짓했다.
마치 안심하라는 듯이.
-그래도 걱정은 말거라. 여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노니. 그대가 날 돕는다면 이쪽도 너에게 해 줄 방도가 하나 있느니라.
“하…… 방도? 이거 뭐 병 주고 약 주는 거도 아니고. 침공은 자기들이 해 놓고, 돕는 것도 자기들이 한다네. 그래서 방법이 뭔데?”
그러고 나서 그에게 다시 제안을 던졌다.
대체 무슨 제안을 던지는가 싶어, 마왕을 바라보니.
그제야 마왕은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꺼내왔다.
-혹시 예언자 노릇 해 볼 생각 없느냐?
“뭔 소리야? 앞뒤 끊고 이야기하지 말고, 길게 이야기해 봐.”
-후후. 잘 들어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