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놈들의 괴이한 울음소리.
놈들이 웃을 때마다 기이한 쇳소리가 나면서, 신경을 자극해 댔다.
자극은 청각을 넘어서 오감까지 닿았다.
“으으으…….”
“끄윽…… 저거 좀 어떻게 하라고!”
대피를 하던 자들도 대피 안내 방송을 듣다못해 귀를 막을 지경이었다.
좋지 못한 예외도 있었다.
“꺽……!”
평범한 자보다 감각이 뛰어난 자들이 문제였다.
감각이 뛰어나기에 그들은 자극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고통으로 정신을 잃는 자들이 속출했다.
흡사 지옥에서 울려 퍼진다는 음성이 이곳에 울려 퍼지는 듯한 광경.
당연한 그림이었다.
스스스-
저 붉은 것들의 음성엔 마기가 실려 있으니까.
저들의 존재.
이제 처음 겪는 이사야는 알지 못하나, 지한휘는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마족의 소모품이자.
마족의 첨병이며.
동시에 인류의 가장 많은 자들을 잡아먹었던 것들.
“……임프다.”
모든 마족의 사역자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게 임프라고!?”
“그래.”
그의 대답에 이사야는 혼란스러워했다.
그녀라고 임프를 모를까.
러시아 던전에서도 임프는 출현한다.
그녀는 그걸 몇 번이나 상대해 봤다.
그러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자부했고. 상대하기 좋은 몬스터라고 평했을 정도다.
그런데 저건 형태 자체가 달랐다.
온몸이 붉다는 것만 같았다.
크기가 달랐다. 아이 크기가 아닌 청소년만 한 것들이 있었다.
들고 있는 무기도 달랐다.
창이나 뾰족한 꼬리를 무기로 삼던 러시아 던전의 임프와 달리 눈앞의 것들은 손을 썼다.
-키키키!
-킥!
제 손을 장난처럼 휘둘러댔다.
치이이익-!
그때마다 손톱이 있어야 할 곳에서 기이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독이다.
꼬리가 아닌 독을 무기로 사용하는 임프라니!
붉다는 걸 제외하면 이사야가 아는 그 어떤 임프와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녀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들을 수없이 상대했던 지한휘에겐 확신이 있었다.
헷갈릴 리가 없다.
그는 임프가 어떤 존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종류, 생태, 태어난 방식까지도.
“던전의 것들과 전혀 다르잖아?”
“다를 수밖에 없지. 저건 재생의 악마를 제물로 바쳐서 만들어 낸 특수한 개체들이니까. 지금 등장할 녀석이 분명 아닐 건데.”
-잘도 아는구나.
눈앞의 임프는 마족과 같은 상위 존재인 악마를 제물 삼아 만들어 낸 존재다.
조각난 세계나 다름없는 미궁에서 존재하는 임프들과는 격을 달리한 것들이다.
조각난 미궁의 임프는 진화가 멈춰 버린 개체라면.
“전에 말했다시피 저건 마계의 생체 로봇이자 전투 병기야.”
“들어서 기억은 하고 있어.”
눈앞의 것들은 마족이 지속적으로 개량 개발한 임프다.
그의 말대로 임프는 마계에서도 소모품으로 쓰이니까.
죽은 마족이나 악마의 시체 따위에 마기를 머금게 만들면 쏟아지는 전염병이요.
하위 존재로 태어나 다시 상위 존재로 올라가기 위해 발악하는 하찮은 것들이기도 했다.
즉, 저것들이 지금 출현했다는 의미는 하나.
곧 마계가 본격적으로 지구로 쳐들어온단 의미다.
* * *
현실을 받아들인 지한휘.
그는 마왕을 쳐다봤다.
“아직 침공이 시작되려면 몇 달은 더 있어야 할 텐데. 이리 본격적일 리도 없고. 너는…… 역시 뭘 알고 있는 거지?”
-내 말했지 않더냐. 너는 여를 도와야 한다고. 그와 관련 있는 일이니라.
“하, 씨…….”
이어지는 마왕의 확답.
답을 들은 지한휘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여 버린 거지.”
“그러게. 이러면 모든 걸 다 다시 짜야 할지도? 회귀할 때 난이도 상향이라도 시키고 온 거야?”
“내가 그러겠냐.”
뭔가가 꼬였다.
그의 예상보다 침공이 더 빠르다.
더 큰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거다.
‘유보라와 마리가 사라지고, 마왕이 들러붙지를 않나. 이젠 침공하는 날짜의 변경이라. 난이도 진짜 X랄 맞네.’
결국 상황이 이런 가운데 그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을지도 몰랐다.
적의 파괴에는 더 큰 파괴로.
예상보다도 더 강력한 힘으로 대응하는 게 결국 그가 할 수 있을 최선이다.
“일단 다 부수고 보자.”
“역시, 그게 맞겠지.”
그러기에 그는.
후우우웅-!
제 사슬에 영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몸을 날리었다.
[당신은 상당한 영력을 소모하였다.]
동시에 이사야로부터 들어오는 제안.
[당신의 동료가 당신의 영력을 이용해 사령 마법 : 원귀 소환을 시전하려 한다.]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그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고.
그의 몸에 내재돼 있던 어마어마한 영력이 세상에 풀어헤쳐졌다.
스스스스-
그로부터 퍼져나온 영력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고.
그 근원이 이사야로부터 가공되었다.
[합동 사령 마법 : 원귀 소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당신으로부터 비롯된 원귀의 군대가 만들어졌다.]
-키키키…….
-죽여 줘…… 죽여 줘…… 아니, 죽이자……!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은, 붉은 임프의 군대와도 비견되는 사특한 검은 원귀의 군대.
“와! 유보라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쓴 건데. 이게 대체 몇 마리야? 한휘 네 영력이 최고라니까!”
이사야가 감탄을 터트린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걸까? 회귀자라 해서 이렇게 영력이 많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자신이 이 녀석과 함께 최후의 칠 인이었다는 게 진짜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 사도라는 리치가 돼서야 비슷해지려나?
그녀의 표정엔 이런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그녀 홀로 원귀의 군대를 만들었다면 그 수는 이 반도 되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지한휘의 영력을 이용해 그 배는 훨씬 넘는 군대를 소환했으니, 감탄할 수밖에.
지한휘로부터 전해지는 영력.
그에 따르는 영력이 가져다주는 전능감이란.
‘저 괴물은 이런 영력을 홀로 다룬단 말이지.’
이는 이사야에게 새삼 지한휘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자신이 미래에 최후의 칠 인이든, 뭐든 간에 저 지한휘는 언제나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그러한 이사야의 감탄 속.
스스스스-
지한휘는 퍼져 나가는 원귀의 군세 사이를 노닐고 있었다.
그는 감탄하고 있는 이사야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영력으로 소환된 망자의 군대에 그녀는 감탄을 터트리고 있으나, 기실 그는 가진 영력의 일부만 풀어헤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남은 영력을 더 쓸 생각이었고.
이를 바로 실행했다.
“군세 받고, 나머지도 전부 소환해 보자고. 영혼 병사, 그림자 짐승 소환.”
[당신은 상당한 영력을 소모했다.]
[당신은 영혼 병사를 소환했다.]
[당신은 그림자 짐승을 소환했다.]
[당신의 특성 : 전투 지능이 소환물들에 적용된다.]
-키이이이!
-…….
검은 망자의 군대에 영혼 병사와 그림자 짐승이란 물결이 더해진다.
그 물결.
도망치던 자들과 이제 막 지원을 오던 헌터들도 놀랄 만큼의 거대한 군세였다!
흡사 임프에 비견될 정도의 놀라운 규모.
“와오! 미친!”
그에 이사야는 더 큰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황홀하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 거대한 군세로 얼마나 더 큰 파괴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에서 나오는 황홀감이었다.
그 어떤 파괴든, 적을 분쇄하는 거라면 그녀도 지한휘도 오케이였다.
“감탄만 하고 있을 때냐.”
“그건 아니지! 제 할 일이 뭔지 나는 이미 안다고!”
“알면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해야지?”
“오케이. 먼저 간다!”
도끼를 쥔 이사야가 튀어 나간다.
콰아아아앙-!
뒤 이어지는 검은 군세는 한점의 동요도 없이, 붉은 군대와 맞부딪쳤다.
“꺄하하하! 다 부숴 버려!”
동시에 들려 오는 그녀의 웃음소리. 전장의 흥분이 여실히 느껴져 오는 소리였다.
그 모습에 회귀 전 전장에서 날뛰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 지한휘.
“자식, 장난감 쥐여준 거처럼 신났구먼. 나도 달려 볼까.”
그는 피식 웃어 보이고서는.
후우웅-!
사슬을 길게 늘인 채로, 자신의 몸을 튀어 올렸다.
* * *
현대의 빌딩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건물들.
그사이, 생존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살려 줘!”
“아아악!”
아비규환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검은 망자와 붉은 임프의 군대의 전투.
그건, 흡사 마계의 전투와 같았다.
-캬아아아! 죽어!
-……!
콰아앙-! 쾅!
대화는 없이 서로 부딪칠 뿐이었다.
임프는 특유의 독으로.
망자는 영혼에 맺혀 있는 원한으로.
부딪쳤다.
그러한 부딪침은 치열했다.
서로에게 겁을 집어먹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진격을 막는 서로를 막기 위해 서로를 공격할 뿐이었다.
처음 수세를 드러낸 건 임프 측이었다.
치이이-
그들의 손에 눌어붙은 독.
그 독의 대부분이 통하질 않았다.
-키이…….
피부를 괴사시키는 독도. 신경을 녹여 버리는 그 어떠한 독도 먹히지 않았다.
임프가 상대하는 적은 망자였으니까.
통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게이트를 통해서 저들, 임프를 보낸 자도 필시 당황을 하고 있을 거였다.
그러나, 이들은 괜히 마계의 전투 병기가 아니었다.
-키이……!
온갖 위험이 넘치는 게 마계.
디디고 선 환경조차도 쉴 틈 없이 바뀌는 게 그곳이었다.
격을 쌓지 못해 상위 존재가 되지 못하는 임프는 그곳에 적응하기 위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놈들은 전장 상황에 맞춰 실시간으로 자기 몸을 변형시킬 수 있었다.
콰즈즉. 콰득.
놈들을 마계에서 살아남게 만들어 준 신체 변형!
그들 특유의 기술이 실시간으로 반영됐다.
츠츠측-
독을 내뿜어 대던 손은 손톱이 자라났다.
자라난 손톱은 손을 뒤덮고도 모자라, 검처럼 길게 늘어났다.
이내 40CM가 넘는 길이가 되자, 그 뒤엔 아까와 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츠츠츠츠-
마기였다.
저리 진득한 마기의 에너지원이자 근원은 다름 아닌 임프의 생명력!
-키키킥.
-킥.
실시간으로 제 몸의 생명력이 꺼트려질 텐데도.
손에 든 마기를 휘두르는 임프는 기이한 웃음을 터트려댔다.
-……커윽.
-어째서어! 나는 또 죽고 싶지 않아……!
스스스-
제 생명을 태워 만들어 낸 마기가 망자의 군대에 먹혀 들었으니까.
-키이이…… 키키…….
설사 적을 죽이는 그 대가로, 자신의 생이 다하더라도 임프들은 괘념치 않았다.
자신의 생을 살라 먹는다는 절망보다, 적을 죽인다는 그 쾌감이 그들을 흠뻑 젖게 만들고 있었다.
-키키키!
자기 몸이 타오르더라도, 상관없다.
놈들은 망자의 군대를 하나라도 잡아먹고자 쉼 없이 달려들었다.
생명력이 다 꺼트려진 몸이 쓰러지면.
콰즈즈즉-
그 옆에 있던 동료가 그 시체를 양분 삼았다.
그것으로 다 타들어 가던 생명력을 재차 키웠다.
제 자신조차 갈라 먹고.
오로지 모든 걸 파괴하여 무(無)로 돌리는 듯한 광경.
순식간에 주변 전부가 폐허로 만들어지는 전장이었다.
그리하여.
전장의 기세는 임프에게 넘어가는 듯 보였다.
그들이 새로이 얻은 무기가, 망자의 군세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으니까.
-키키키!
-키킥.
그 기세로 휘몰아치려 하는 걸까.
검은 망자의 군대에 잠시 주춤거렸던, 임프의 군세는 재차 전진을 시작했다.
쿠우웅. 쿵.
그들 손에 맺힌 마기가 거칠게 불타오를수록, 그들의 앞을 막는 건 더 어려워 보였다.
다시금 절망이 파고들어 온다.
이는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지원을 위해서 온 헌터들에게도 통용되는 일이었다.
“아아…… 다 죽을 거야…….”
“젠장. 뒤로 내뺄 것을 그랬나.”
죽음이라는 공포가 다가오는 듯했다.
이대로면, 망자의 군대와 함께 살아남은 모두가 무너질 듯 보였다.
그 기세를 알아챈 건지 다가오는 임프들은 속도를 높였다.
전세가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명백했다.
헌터 중 일부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방위를 위해서 오기야 했다만, 목숨까지 바칠 생각은 없었으니까.
“으아아…… 밀리는 건가!”
“망했다. 살려 줘!”
미처 대피를 못 했던 자들이 다시 울부짖어댔다.
두 번, 세 번 이어지는 절망은 사람을 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예정된 죽음 앞에서, 움직일 수 있는 자는 흔치 않았다.
-키키키!
그러한 사람들의 절망을 즐기듯 임프는 긴 손을 들고 휘둘렀다.
쒜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