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어째서라니? 당연한 소릴 하고 있구나.
“뭐가 당연한데?”
-허…….
마왕 벨린카니스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러곤 나조차 알지 못했던 비밀을 잔소리하듯 내뱉었다.
-공허가 내려앉기 이전, 마지막. 네가 나를 어떻게 했더냐?
“잡아먹었지?”
-영혼 술사가 혼을 흡수한다는 의미를 모르겠느냐. 그건 곧 너와 내가 합일됨을 이야기하느니라.
“……어 씨?”
혼의 흡수가 합일이라.
이건 나로서도 예상 못 한 바였다.
-몰랐느냐. 하기는 몰랐으니, 그리 영혼을 흡수해 댔겠지. 흡수가 가지는 무게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야.
“무게라니?”
-역시 몰랐구나. 하기는 그런 영혼의 무게를 지녔으니 네 영혼에, 내 영혼과 고작 둘을 보태는 거만으로 회귀에 성공했겠지. 무지가 낳은 회귀라니. 웃기는 일이지 않으냐?
영혼. 무게감. 회귀.
생각지 못한 정보의 나열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소음공해 따위보다도, 이에 담겨 있는 단어의 의미가 소름 돋았다.
‘흡수가 근원까지 잡아먹는 거라고? ……설마, 그건 아니겠지?’
문득 떠오르는 가설이 있었으니까.
정신이 아득하더라도, 지금은 쓰러져선 안 됐다. 회피는 더더욱 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들어야 할 게 있었다.
옆에 있던 이사야도 그게 뭔지 짐작한 건가.
사령 마법이라 외쳐대며 신났던 얼굴이 어느새 굳어져 있었다.
우리 둘은 벨린카니스에게 거의 동시에 물었다.
“설마 그럼 나머지 둘도 합일된 거냐?”
“하나가 돼 버린 거야? 모두?”
나머지 둘, 유보라와 마리.
이 의미를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마왕도 마찬가지.
그녀는 재는 법이 없이 순순히 그 답을 말해주었다.
-당연하지 않으냐? 모두 합일되었지. 그게 대가이니까.
“아…….”
그날 난, 회귀 후 처음으로 절망에 주저앉았다.
* * *
이제 와 빠졌던 퍼즐 조각이 채워지는 듯했다.
‘…… 아무리 찾아도 찾지를 못하더라니.’
유보라와 마리. 최후의 칠 인이자 내 가장 오래된 동료들.
나는 회귀 후 그녀들을 가장 먼저 찾았었다.
가장 믿음직한 전우들이었으니까.
그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찾아내 그들을 옆에 두려 했음에도 그 결과는 보다시피 실패.
둘은 찾지 못하더라도 유지는 잇기 위해 나는 이사야를 찾았다.
둘의 빈자리를 채웠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내심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그 둘이라면.
내가 아는 유보라와 마리라면 회귀에 실패하여 설사 차원의 미아가 되더라도 살아 올 거라 믿었으니까.
-조금 늦었어.
유보라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늦어 버렸네요. 고생 많으셨죠? 미안해요.
그 옆에 있는 마리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고 내 옆을 찾아오겠노라 믿었다.
그러며 생각했다.
내게 오면서도 온갖 사고를 일으켜서, 주렁주렁 적을 달고 오겠지 하고.
갖은 위함을 다 갖고 온 주제에.
-해결하면 되잖아?
-같이 힘내 봐요!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하게 같이 하자 말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또 못 이기는 척 함께했겠지.
그래.
그랬을 거다.
한편으로 그리 믿었다.
내가 지금 찾지 못하더라도, 저들이 차원의 미아가 됐더라도 타 차원에서 올 거고.
설사 못 온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면, 내가 찾아가 데려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게 내 마음 한구석에 있는 희망인데.
그게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근원이 합해진다는 건 완벽한 합일을 말하는 게다.
마왕은 둘 모두 저 차원에 있는 게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그럼 둘은?”
-합쳐졌겠지. 둘 모두. 예외는 없다. 그러기에 이 시간 선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 같은 영혼이 둘 존재할 수는 없으니까.
단언했다.
둘은 내 상상 따위대로 타 차원을 떠돌고 있는 게 아니라고. 이 세상 다른 어디도 아닌, 네 근원인 영혼과 합쳐져 있다고.
마왕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뭐…… 지금 와 애써 부정은 하지 말도록 해라. 이 나를 보면 알지 않겠느냐? 마왕인 나도 너와 합일이 됐는데, 인간이 안 될 리가.
“하…….”
자기 자신도 빠져나가지 못했으니, 그 둘은 어림도 없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욱씬- 거림이 느껴진다.
마음 같아선, 팔짱을 낀 채 그런 거만한 거짓 따위 뱉지 말라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론 안다.
상급 존재인 마족. 그들 중에서도 왕을 자처하는 마왕조차 내게 영혼이 흡수되었다.
내 근원의 일부가 되어 같이 회귀했다.
이것은 <공허>가 내려앉을 때도, 차분히 그 사실을 설명하던 체계가 증명해 준 사실이다.
미궁을 답파하고 나온 보상에 그리 쓰여 있었으니까.
체계는 망겜을 운영하는 망할 놈일지언정, 거짓을 말하는 자는 아니었다.
끝끝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흡수됐다. 흡수됐다. 이거지. 이 몸에?”
-그래. 아주 완벽히! 그 증거가 네가 성공한 회귀인 것이다.
“아닐 확률은 없나?”
-있겠느냐. 내가 증거인데. 그래. 그걸 못 믿겠으면, 다른 것도 있을 텐데?
“뭐가 있는 건데.”
-네 능력. 네가 지닌 마법. 능력의 상승. 그 속도가 심상치 않지 않더냐?
“설마…… 그것도 흡수했단 거냐?”
-그래! 정보는 단지 정보일 뿐이지. 실제 네가 강해지는 건 정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근원 덕이다. 이 몸과 그 인간 같지도 않았던 둘의 근원을 일부 흡수한 덕이겠지. 그게 네 재능을 일깨워 준 것이고.
“……시X.”
마왕, 체계, 회귀 후 빨라진 성장과 가호, 마법적 재능, 점차 돌아가는 머리…….
이 모든 것들은 모든 게 사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절망할 수밖에.
입을 나불거리는 마왕을 제외하고 이사야와 나, 둘 모두 그 깊은 절망에 빠지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하하. 이 미친…… 대체 이게 뭐냐…… 회귀해서 다 구해도, 둘은 구원받지 못하는 건가. 하…… 어쩐지 회귀치고 그 대가가 싸게 먹히더라니…….”
“혹시나 몰라서 짜놨던 차원 구출 계획은 우선 폐기할게.”
“…….”
“…….”
그리고 이어진 잠시의 침묵.
이는 절망을 깨어나게 하기는커녕, 더 깊은 침잠으로 우리를 이끌려 하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암담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근데 왜 그리 절망하고 있는 것이냐? 그게 나로선 나쁜 기분은 아니다만.
“지금 시국에 절망을 안 하고 배겨? 둘 다 이제는 영영 못 찾는 상황인데?”
-음……? 네 녀석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근원이 합일됐다고 해서, 둘을 영영 찾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더냐?
“뭐?”
-둘 모두 꺼내 올 수 있다. 그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자세히 이야기해 봐!”
아직 절망하기엔 이른 시간인 듯했다.
* * *
제게 상황이 집중된다 여긴 걸까.
내 등에 있던 마왕은 쪼르르 몸을 움직이더니, 탁상 위로 올라가 한껏 거만한 포즈를 취했다.
저 작은 몸으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기까지 했다.
갑옷을 입은 주제에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취한다. 그런 주제에, 녀석은 자기 멋에 한껏 취한 듯했다.
냉큼 헛기침 한번을 하더니, 제 할 말을 시작했다.
-합치는 게 되는데, 분할이 되지 않겠느냐?
벨린카니스의 논리는 단순했다.
제 자신의 영혼도 합쳐졌었으나, 특별 던전을 통해 다시 나온 상황.
그러니 유보라와 마리의 영혼도 분할은 가능할 거란 이야기였다.
-그래도 고생을 해야 할 거다. 나야 특수한 관계로 미궁에서 나왔지만, 다른 두 영혼은 나올 수 있을 확률은 0에 수렴하거든.
“그럼 어떻게 하라고?”
-네 녀석이 영력을 다룰 줄 알아야 하겠지.
“지금도 다룰 줄 아는데? 주문이라도 있는 거냐?”
-하, 다룰 줄 알기는. 아이가 힘을 얻은 듯 주먹구구식으로밖에 다루지 못하지 않느냐. 거의 본능에 맡기는 편이지. 아주 하등한 수준이다.
“그런 하등한 수준에 진 건 누구고?”
-……윽. 어쨌건, 네가 꺼내 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강해져야 한다는 건가.”
결국 마왕의 말대로 내가 영력을 분리해 낼 줄 알아야 한단 소리다.
거기다 페널티도 있었다.
-그렇지. 거기다 제한도 있다. 네가 빨리 꺼내지 않다가는, 다음 특별 던전에 네가 말하는 둘이 몬스터로도 나올 수 있음이야.
“하 씨…….”
20등급 다음의 특별 던전.
그곳에 도달하기 전에 자칫 그 둘을 꺼내지 못한다면, 둘은 이번 던전에 등장했던 다른 영혼들처럼 몬스터가 되어 나올 수도 있었다.
-그때는 완벽한 흡수가 되는 거다. 안 그래도 겪어서 알지 않느냐? 내가 지난 생에 잡아먹은 마족, 악마, 천사들의 표식을 겪었을 테니까.
“걔들은 그럼 이 세계에 없나?”
-당연한 게 아니냐. 그들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잡아먹은 자들이다. 어쨌건 그들을 겪었으니 알겠지. 그렇게 흡수되면 완전히 끝이다.
“젠장. 뭔 시간 제한이 있어.”
그때가 돼선 최악이었다.
결국 다음 특별 미궁 이전에 어떻게든 둘을 분리해 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하나 있었다.
가만 보던 이사야는 그걸 지적했다.
“둘의 영혼을 깨우면, 그 뒤에는? 둘이 돌아올 육신이 없잖아.”
-그건 누가 해결하겠느냐?
물음 뒤에 되돌아오는 물음.
마왕은 이사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나?”
-그래. 사령 마법사라 하지 않았느냐. 자네가 육체를 빚으면 되는 거지. 뭐…… 재능을 보아하니 될 거 같네만?
“이야. 마왕이 인정해 주는 재능인가? 회귀자 친구를 둔 내가 알고 보니 사령 마법 지배자?!”
-큼…… 헛소리를 거창하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어쨌건 네 녀석이라면 가능은 하다. 나머지는 뭐 내 도움이 조금 들어가면 되겠지.
잃어버린 육체를 창조해 내는 것은 가능했다.
문젠 결국 영혼이었다.
-뭐 백이고 천이고 만들어 봐야, 지금 멍 때리고 있는 네 녀석이 분리에 성공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건 육체를 빚어내는 것에 비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떻게라…… 우선, 네가 제대로 근원도 모르면서 무식하게 쓰는 그 영력에 대해 알아야겠지. 이건 내 전문은 아니긴 하다만…… 그 녀석도 지금은 여기 없고 말이다. 그러나 길 정도는 터줄 수 있다.
“오!”
길이라.
그 정도만 되어도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감을 잡지 못해서 문제지, 감만 잡아내면 어떻게든 해내는 게 나였으니까.
그런데, 역시 쉽게 가는 법은 없었다.
순순히 대답하던 마왕 벨린카니스.
-그러나 대신!
“……대신, 뭐?”
마왕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 자식 어쩐지 순순히 말하더라니. 요구할 게 있었네…….’
분위기로 봐선 분명 조건을 말하는 거였다.
마음 같아선 그 조건이 무엇이든 받아 줄 생각이었으나, 단 하나만은 하지 못할 예정이었다.
그 하나.
침공의 협조였다.
나는 그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배신을 말하는 거면 절대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렇게 해서 살려봐야 둘 모두 날 죽여 놓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애들이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뭔데?”
그 조건은 나로선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도와줘라.
“응?”
-내가 사라진 지금. 우리 마계도 공허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해달란 소리다.
그건, 도움 요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