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미려하게 이어지는 철제 갑옷.
하나의 예술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저러한 갑옷이 둘일 리가 없었다.
가슴 부근에 새겨져 있는 마왕의 표식도 둘일 리 없다.
‘……대체 마왕이 왜?’
저 녀석이 마왕이 아닌, 가짜라고 부정하고 싶기는 하다만.
더 강력한 증거는 아무래도 저 말투였다.
-답도 없이 무시라니. 상호 존중이란 걸 모르는 게냐……?
-하…… 역시 하급의 존재란 어쩔 수 없는가.
침략군인 주제에 상호 존중을 논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 하며.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저 되지도 않는 무시까지.
“후우……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쉬는 게 한숨과 현실 부정이라니. 이 몸을 잡는 녀석치고는 여전히 비루하구나?
일 절, 이 절로 끝나지 않고 비난으로 뇌절까지 하는 게 그 마왕 놈이 아니면 누구겠는가.
-회귀를 하면 좀 달라야 하거늘. 쯔쯧…….
“씁…….”
현재로선 나와 이사야만 알아야 하는 회귀까지 아는 걸 보면 게임 끝이다.
크기가 내 팔보다 짧게 한창 작아진 덕에 겉모습만 귀여울 뿐이지.
저 속은 시커먼 차원 침공군 그 자체라 이 말이다.
뭐, 예상도 못 한 특이한 게 또 하나 있다.
-뭐라 말 좀 해 보거라.
-내 얼마나 안에서 답답했는지 아느냐?
-하…… 정말. 할 줄 아는 게 무시밖에 없구나.
회귀 전에는 적군의 대장으로서 카리스마 넘치기만 했던 마왕.
그 녀석이 내 앞에서 하루 종일 종알종알대는 성격이란 건, 이 나도 예상치 못한 바였다.
-인간. 네 녀석이 그리 상호 존중의 예의가 없으니 우리 마족에게 계속해 시종일관 밀리기만 하는…….
“그래 놓고 졌잖아?”
-윽…….
다행인 건 최후의 양심은 뒤지지 않긴 했다.
팩트를 냅다 때려 박으니까, 가슴을 부여잡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거나.
이 녀석이 이리 종알대는데, 되도록 말을 섞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나를 세뇌할 수도 있으니까.’
공허가 내려앉기 이전.
얼마나 많은 종말론자들이 이 녀석의 추종자가 되었던가.
-으. 짜게 식은 눈빛은 그만 날리게나.
“후…….”
세상의 멸세를 이야기하던 자들 다수가, 내 앞에서 종알대는 저 입 녀석의 입발림에 넘어갔다.
말 그대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아니, 녀석은 마족의 속삭임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그래.
차라리 속세에 찌들고, 냉소적이고 패배주의에 물든 것들을 제 추종자로 만드는 건 그렇다 치자.
이 마왕의 사탕발림은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사회 지도부란 것들이나 정치가 녀석들이야 넘어가는 건 내가 예상하고도 남았다. 박쥐가 넘치니까.’
놈의 사탕발림은 최후의 결사대에까지 손길을 뻗쳤었다.
본래라면 결사대에 속했어야 할 자들.
끝끝내 같이 목숨을 다했어야 할 수많은 전우를 변절시켰다.
최후의 칠 인.
아니 최후의 십 인을 짜보려고 했을 때.
그때도 마수를 뻗쳤다.
‘수많은 후보가 놈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지.’
수많은 능력자가 변절했고, 배신했다.
그중엔 나 이전에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던 자들도 있었다.
나도 한때는 동경하던 영웅들.
최후까지 분투하던 그 모두가 놈에게 넘어갔다.
조금만 과장을 더 해서 말하면, 인류 절반은 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할 수 있을 정도다.
놈은 그 와중에 배신자를 고르고 또 고르기까지 했으니.
‘실제로 따지면 가져간 전력이 절반이 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가 이긴 거 자체가 기적이었고.’
가히 녀석의 입은 마왕이 지닌 최고의 무기일 지도 몰랐다.
그러기에 나는 입을 놀리지 않는 거뿐이었다.
잘못하다가는 나도 마왕에게 설득될 수 있으니까.
“숙소로 모시면 되겠죠?”
“네.”
-하. 저런 기사의 말은 잘도 들어주는 주제에!
-말 좀 해 보라니까!
“…….”
그렇게 만들어진 침묵이었다.
* * *
그러한 침묵.
내가 차를 타고 숙소에 이르기까지 계속됐다.
그 짧은 시간 꽤 많은 생각 정리를 했다.
‘이놈이 대체 왜 내 근원이라고 칭하는 거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 정리 끝에 내가 알아야 할 건 3개였다.
1. 마왕이 내 근원이라 칭해진 이유.
2. 이 상황을 이용한 내 행동 방침.
우선, 쉬지 않고 조잘대고 있는 마왕이 대체 왜 내 옆에 있는 건지.
그걸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이 녀석이 내게 있음으로써 벌어지게 된 마계의 변화.
‘이놈이 내게 있다는 건…… 마계에 마왕 자리가 비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건데. 이럼 내가 아는 것과 많이 달라지지 않나?’
그 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확인해야 한다.
마왕이 사라짐으로써 곧 본격화 됐어야 할 마족의 침공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도무지 예측 불가능했으니까.
많은 게 엉켜 버렸다.
‘침공에 대응해서 왕이 되자고 말했는데, 적의 왕은 이미 잡혀 있단 말이지. 뭐, 마왕을 잡는다고 공허가 끝나는 건 아니긴 하다만…… 이럼 계획이 확 뒤바뀌긴 해.’
어쨌건 마왕이 내게 묶여 있으니, 좋게 생각하자면 적의 수괴가 내 손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긴 하다만.
그 마족의 지독함을 생각하면, 상황은 더 안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는 법이었다.
마왕이 없기에 폭주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부분은 분명 이사야와 많은 대화를 해야 할 거였다.
이미 가진 계획에 수많은 변화를 줘야 할 거다.
그에 발맞춰 나도 더 바삐 움직여야 하겠지.
‘그런 모든 건 다 좋다 이거야…….’
사실, 이 마왕이 출현하든 하지 않든, 죽어라 달려야 하는 건 달라진 게 아니었다.
방향성만 달라질 뿐이다.
그러니 이건 어찌 보면 다급하지 않은 문제였다.
중요한 건 내가 알아내야 할 마지막 세 번째였다.
-뭐냐? 이 시답잖은 작은 건물은…….
“하.”
-이게 숙소란 거냐. 초라하구나. 초라해.
“좀 닥쳐 봐.”
-어허. 존중을 해야 한다 하지 않았더냐.
3. 저 입을 어떻게 다물게 하지?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질리게 하는 저 입을 어떻게 다물게 하느냐였다.
그러기에 던전을 끝마쳤음에도 미래 엔터에 가지 않았다.
급하게 숙소로 올 수밖에 없었다.
숙소엔 이사야, 그 녀석이 있으니까.
‘이사야랑 논의를 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 녀석이 옆에 있으면 서로 확인을 하니, 마왕 녀석의 입놀림에 넘어가는 법도 없을 거고.’
가장 시급하다 할 수 있는 3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후우…… 후…….”
-거 한숨이 너희 종족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었더냐? 내 기억엔 없는데?
“아, 좀!”
-허. 내가 원래 이리 말이 많은 건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네 안에 갇혀 있는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 것이다.
“젠장. 한 마디를 안 져요.”
이거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간 소음공해가 왜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알 거 같았다.
철컥. 철컥.
해서 숙소의 보안 장치들을 빠르게 넘겼다.
그대로 백수 여동생마냥 늘어져 있는 이사야에게로 직행했다.
“여어! 역시 빨리 왔네?”
“야야. 이거 좀 어떻게 해 봐.”
이 녀석이라면 해결해 낼 수 있을 거니까.
‘흑마법을 쓰든, 뭘 하든 해서 입을 다물 수 있게 하겠지.’
문제는 녀석이 영문을 모른다는 거다.
보아하니, 이 마왕이 눈에 보이는 건 아직까진 오로지 나였거든.
“뭘? 뭘 어떻게 해?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한단 거냐?”
“아, 지금 안 보이냐. 야 나와 봐!”
[당신은 기술 : 영력 구체화를 사용했다.]
-여가 나오란다고 나올…… 엇! 나와지는구나?
“와 씨?!”
다행히 스킬이 먹혀, 놈이 이사야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작은 마왕.
그것을 보고 이사야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야!?”
“마왕! 이 녀석이 아까부터 종알거리는데 이거를 해결해야…….”
이사야는 내 말도 안 듣고 몸을 벌떡 일으켜, 마왕에게 다가왔다.
문제는.
“마왕!? 마왕이라고……?! 와! 미쳤네! 저 귀엽고 하찮은 게 마왕이라고?”
-가, 감히 하찮다니!
“와 씨……!”
-으…… 얼굴을 그만 들이밀거라!
“이 녀석이 마족의 왕? 그러면…… 우와.”
-그 탐욕스러운 눈빛은 무엇이냐!
이사야의 저 격한 반응을 보아하니.
‘……입 다물게 하기는커녕, 더 시끄러워질 거 같은데?’
문제 해결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고 있는 거 같단 거다.
* * *
과연.
안 좋은 예상은 들어 맞는 법이던가.
이사야는 마왕을 보자마자 반쯤 넘어가 있었다.
작아진 마왕의 모습 하나, 하나를 세밀히 관찰했다.
그것은 마치 최애캐(최고 애정 캐릭터)를 바라 보는 덕후의 그 눈빛보다 짙었다.
‘전생엔 안 이러더니만…… 이 생엔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전생에 마왕만 보면 이를 득득 갈던 이사야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질린 전지, 마왕도 하찮은 입을 조금 다무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이사야였다.
“너 마왕이면 사령 마법도 잘 알겠다? 어?”
-알기는 한다.
“가르치는 것도 소질 있겠지? 이래 봬도 왕이라며? 아, 듣기로 입도 잘 놀려서 애들도 잘 전향시킨다더만. 그러면 가르칠 줄 알겠네.”
-가, 가능은 하다.
“와! 걸어 다니는 교보재가 여기 있었던 건가.”
-사실……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녀석은 따로 있긴 하다.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지. 걔는 내 앞에 없잖아?”
-…….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마왕에게 질문 세례를 던지고 있었다.
이 기세대로라면 사 령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스스로 무릎을 꿇지 않을까 느껴질 때쯤.
역지사지라 했던가.
-으으으…….
귀에 피가 나듯 폭행을 당한 마왕은 질려 버린 표정을 짓더니, 냉큼 이사야로부터 몸을 뒤로 뺐다.
그대로 몸을 날려 내 뒤로 왔다.
“……억? 안 떨어져?”
-싫다. 이 몸은 이제 막 일어나 전혀 회복도 못 한 상태란 말이다! 그런데 저런 것이 들러붙어서야……! 저거 좀 어떻게 치워 보거라!
“내가 왜? 그리고 지금 들러붙는 건 너잖아?”
-이, 입을 다물겠다!
“……와.”
그러곤 당당하게 항복선언에 가까운 일갈을 던졌다.
더위는 더위로 이겨내고. 불은 불로서도 끌 수 있다고 하더니.
‘이게 이렇게 해결된다고? 3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어?’
방법이야 어떻든, 저 작은 마왕에게는 이사야가 쥐약이라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이렇게도 다 물 수 있게 할 수 있구나.
새삼, 회귀를 했어도 내가 모르는 해결 방식이 있다는 거 하나는 확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뭣 하느냐? 아니면 모습이라도 숨겨 달란 말이다.
“야야, 지한휘. 나한테 어서 줘 봐. 응? 내가 얘한테서 지식은 확실히 뽑아낼게.”
-어서! 어서!
뭐, 이대로 두면 이 차전이 벌어질 거 같기는 한데.
어쨌거나 3번의 해결 방안을 마련했으니, 없던 살인 충동쯤이야 쉽사리 씻어낼 수 있는 나였다.
정 뭣 하면, 저 악마보다 더 한 이사야에게 마왕을 넘기는 거도 방법이었으니까.
3번을 해결하는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이미 바뀌어 있었다.
“둘 다 우선 떨어져. 씁, 이사야. 마력은 집어넣고.”
“아, 왜!”
-후우…….
“진짜로 할 이야기가 따로 있잖아. 대체 너, 왜 나한테 들러붙어 있는 거냐? 어째서 네가 내 근원이지?”
바로 그건.
남은 1번과 2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