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빌어먹게도 특별 던전에 알 수 없는 존재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이 순간.
이 순간을 깨고, 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선 세뇌에 저항하는 거만이 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당신은 기도 : 세뇌를 저항하는 데 막대한 영력을 소모하고 있다.]
세뇌에 저항하는 거.
이것은 기운과 기운의 다툼이었다.
천사 놈은 영혼 조각만 있을지라도, 육 익을 가지고 있는 주 천사.
9개 위 등급에서 상위에 속한 놈의 세뇌가 보통 수준일 리 없었다.
그러나.
‘나도 가만있었던 건 아니지.’
나 또한 여기까지 달려오며, 성장을 도모해 왔다.
악마와 마족.
몬스터가 지닌 영혼 조각을 흡수해 가며 이곳에까지 도달했다.
강력한 영력을 내부에 쌓았단 의미.
고오오오-!
나는 여태 아끼고 사용하고 있지 않던 영력 전부를 아낌없이 불러일으켰다.
[당신이 지닌 영력이 상당히 소모되고 있다.]
스르륵-
하데스 사슬에 맺어, 공격을 위해 사용하고 있던 영력을 저항하는 데 사용했다.
최후까지 몸에 두른 채, 내 몸을 보호해야 할 영력도 끌어올렸다.
한 올, 한 톨까지 아끼지 않고 저항에 사용했다.
온몸이 굳어감이 느껴졌다.
이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 공격을 가한다면, 나는 설사 어린아이의 공격이라도 피할 수 없을 거였다.
저항을 위한 완전한 무방비가 되었으니까.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표하고 있는 저 천사의 손끝이라도 닿는다면 나는 죽을 거였다.
그러나.
‘이게 맞는 방식이야.’
나는 지금의 대항 방식이 맞음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저항하는 이 순간만은 놈도 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결국 기운과 기운의 싸움이었다.
-크……흐. 인간치고 제법 버티나, 결국 끝이 보이는구나.
“…….”
아쉽게도 그 기운이 나는 아직 부족하기만 했다.
[당신이 지닌 영력이 전부 소모되었다.]
내 현재 등급이 20.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해도, 100은 더 넘어가는 하이 랭커들에 비하면 하염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나는 빠르게 성장할 뿐이지, 전부 성장한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러기에 나는 내 영력만으로 놈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놈이 가하는 세뇌를 바로 앞까지 맞닥뜨려야만 했다.
[당신은 기도 : 세뇌에 점차 잠식되고 있다.]
스스스-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눈앞에 있는 천사가 흡사 신처럼 느껴졌다.
이성으론 아님은 알면서도, 감성은 이미 그에게 복속되어 가고 있었다.
차라리.
조금의 이성이라도 남아 있는 지금 나는 물러나야 했다.
더 상대하기보다는, 몸을 내빼고 도망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다른 곳에서 영력을 회복하고 놈이 세뇌를 사용하기 전에 공격하는 이 차전을 벌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이성적으론 그게 맞았다.
그러나.
‘내 계산이 틀릴 리 없어…….’
이성이 있기 전에 감이자 본능.
그 본능으로 나는 점차 물러나려는 내 몸을 꽉 부여잡았다.
아직 내게는 남은 두 개의 무기가 더 있었으니까!
세뇌의 잠식이 더 깊어지려 할 그때.
‘……왔다!’
기다리던 그 순간이 왔다.
[당신의 저항을 가호 : 악마가 숨겨진 힘을 드러내 당신을 보호한다.]
[당신의 저항을 가호 : 마족이 숨겨진 힘을 드러내 당신을 보호한다.]
천사가 모시는 신의 뜻에 반해 처음 태어났으며, 이후에는 모든 신에 반기를 든 자들이 모여들었다는 마족.
‘그조차도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만…….’
모든 음한 것들과 욕망이 모여 음차원에 기거하는 악마.
이들은 서로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천사의 힘이 비집고 들어오는 일에는 같이 합심하여 힘을 보태었다.
그들의 가호가 힘이 되었다.
[가호 : 악마의 힘이 당신의 영력에 깃든다.]
[가호 : 마족의 힘이 당신의 영력에 깃든다.]
[당신은 가호를 통해 영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게 됐다.]
[당신의 가호 : 영력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그 힘은, 한동안 상승하는 일이 없었던 나의 모든 힘의 기반 영력의 힘을 상승시켰다.
일순간 텅 비어 힘을 잃었던 몸에 거친 힘들이 쏟아져 들어 왔다.
그것들은 전부 새롭게 차오르는 영력이었고.
[당신의 가호 : 영력이 E등급에서 D등급으로 상승했다.]
그러한 영력은 내 목표를 이루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은 힘이 있었다.
그 목표는 바로, 세뇌로부터의 저항!
[당신은 기도 : 세뇌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영력, 마족, 악마의 가호.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나는 놈의 세뇌에서 완벽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 * *
일순간 수많은 힘이 차오르고 사라졌음에, 나는 온몸에 탈력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흐으……흐흐. 뒤질 뻔했다, 진짜.”
-아, 안 돼! 큿…….
모든 게 그러하지 않은가.
계책에 실패했으면, 그 대가를 받아야 하는 법이었다.
이는 내게 세뇌를 날렸던 천사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먼저 공격을 했으면, 네가 처맞을 줄도 알아야지.”
-……커으으윽! 큿…… 내가, 이, 인간을…….
파아앗-!
내가 저항하는 데 성공한 세뇌의 기운이 되레 그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새하얗기만 한 빛이 천사의 뇌에 쪼이는 그 순간이었다.
내가 원하던 결과가 드러났다.
[적성 영혼이 당신에게 세뇌당했다.]
나는 쓸 만한 패 하나를 얻을 수 있게 됐다.
* * *
모든 광신도가 그러하듯, 한 번 세뇌당한 녀석은 발이라도 핥을 기세였다.
단지 생각만 그러한 게 아니었다.
“야, 꿇어.”
-……명대로.
쿠웅.
명령 하나에 놈은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다.
여섯의 날개를 지녀 총 9개 위의 등급 중에 무려 주 천사의 단계.
그 상태서 무릎을 꿇음에도 놈은 부끄러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릎도 꿇었는데, 세뇌가 제대로 안 먹혔을 리는 없고.’
그저, 내게 광신도처럼 열렬한 충성 어린 눈빛만을 보낼 뿐이었다.
“새끼. 이제 좀 눈높이가 맞네.”
-더 낮출까요?
“됐고.”
이 순간이 내가 천사를 본 그 순간부터 가장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너 나랑 일 좀 하자.”
-그게 무슨 일이든 말만 해 주시지요!
나에 대한 광신이 차오른 이 녀석이라면, 내게 알려줄 수 있을 거였다.
이 특별 던전에 왜 악마, 천사, 마족이 있는 건지.
그러한 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그 ‘표식’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를.
놈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기에 나는 그 모든 걸 물었고.
-먼저 표식이라고 함은…….
천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 * *
내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들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그러고 더해진 건 새로운 의문이었다.
“뭐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표식부터가 문제였다.
-표식은 저희를 죽인 자에게 나타납니다. 정확히, 같은 격을 가진 자에게만 나오는 게 표식이죠.
천사, 악마, 마족.
흔히 말하는 상급 존재를 죽였을 때 나타나는 것이 표식이란다.
전생에서도 악마나 마족은 여럿 죽였는데, 내가 표식이 남지 않은 이유는 하나.
‘내가 인간이니까.’
나 자신이 상급 존재가 되지 못해서다.
사실, 상급이니 하급이니 하는 종족에 관해선 불만 따위는 없었다.
타고난 존재 자체가 상급이면 뭣 하나.
뚝배기가 깨지면 뒤지는 건 매한가지인데.
약하고 강하고가 중요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표식이 내게 생겼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난 너희를 죽인 적도 없고, 상급 종족은 그림자도 못 밟아 본 거 같은데?”
-거기까진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고선 표식은 남지 않습니다. 본래부터 선마 전쟁에서 누가 죽였는지를 알 수 있게 만든 것이니까요. 때문에 표식을 가진 자에겐 그 종족의 증오가 남게 되어 있지요.
“하…… 이거 뭐 들어도 알 수가 없는데.”
-제가 설명을 잘못 드린 것인지…… 죄송합니다!
들어도 들어도 역시 알 수 없다.
쿠우웅. 쿵.
날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머리를 박아대는 꼴을 보자면 거짓을 말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설명이 안 돼.’
문제는 내가 언제 얘들을 죽였느냐다.
단언컨대, 현생엔 제대로 저들을 죽인 바가 없었다.
악마 하나는 지금도 사슬에 담겨져 있고, 마족도 그 악마 볼프가 먹은 걸로 추정되지 않는가.
그러니 내가 죽인 건 전혀 없다.
‘내가 영혼 술사이긴 하니…… 전생까지 통틀면 전혀 없는 건 아니긴 한데.’
전생엔 악마 몇을 죽이긴 했다.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전부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데, 정작 이 안에서는 그 얼굴을 본 바가 없다.
결국.
머리만 복잡해졌다.
‘답도 모를 새로운 질문이 생겨버린 거 같은데.’
이 문제를 풀기만 한다면, 뭔가 얻는 게 있을 거라는 감은 확실한데.
-주인이시여……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아니다.”
저 녀석으로부터 알아낼 건 이미 다 알아냈거니와.
‘바깥에서 뭘 어떻게 찾는다?’
나가서도 뭘 해야 할지 힌트 자체가 전혀 없었다.
악마, 마족을 소환해서 다 죽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알 수 없는 문제는 붙잡고 있는다고 성과가 생기지 않는 건, 전생에서도 통렬히 배운 바 있는 나다.
“쯧. 복잡한 건 뒤로 미루는 게 좋겠지.”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러기에 우선 복잡함은 뒤로 미루었다.
“시끄럽고. 아양 떨 시간에, 안으로 더 가 보자.”
-명대로!
대신 문제만 안겨 주는 이 던전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가식덩어리에서, 간신덩어리가 된 저 천사를 전력으로 이용한다면, 던전 난이도는 한창 낮아지니까.
* * *
그렇게 나는 여전히 의문만을 품은 채로, 던전 안을 길게 탐색해 들어갔다.
-키에에엑!
-크크큭. 표식을 가진 자가 왔구나…… 켁!
[당신은 적성 영혼을 사살하였다.]
[당신의 영력이 크게 증가하였다.]
[당신은…….]
언제나 그러하듯, 내 전투 방식은 던전 안의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것!
가호 등급이 상승하며 커진 영력의 그릇을 채워 가며, 한참을 전진했다.
그러다 내가 마주한 것은 결국 그 마지막.
“보스 룸이네.”
-저에게 허락된 곳은 여기까지. 저는 이곳을 넘을 수 없습니다.
“오냐. 남은 잔당은 없는지, 처리하고 오라고.”
-명대로!
거대한 문이 자리한 보스룸에까지 도달했다.
내게 명령을 받은 천사가 떠나가자마자, 나는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존재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너무 늦었구나.
“……어?”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게 되었다.
‘소멸한 게 아니었어?’
그곳에.
도무지 존재해선 안 될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