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당신은 특별 던전 영혼의 무덤에 들어왔다.]
[영혼의 무덤이 당신이 내재한 영혼들을 일으켰다.]
[당신은 살아남아, 던전을 정복해야 한다.]
투박한 알림음까지는 이상할 일이 없는 영혼의 무덤.
잡은 몬스터를 또 잡을 기대에 두근두근해졌던 내 가슴은 다른 의미로 뛰게 됐다.
눈앞에 있는 영혼들의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언데드 리자드맨, 쥐쟁이, 거대 개미, 내게 죽은 헌터…….
이들이 내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리저리 형성된 던전 룸을 오고 가며, 다시 태어난 영혼 조각들을 수습하고.
그 뒤에 최종장으로 남아 있을 가장 강력한 영혼을 흡수하는 게 내 할 일.
피라미들이 모여서 모습을 드러내 봐야 남은 건 학살이었기에 긴장 따위는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쟤들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이번 생과 전생을 통틀어서도 잡지 않았던 존재들이 던전 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 몸이 깨어나게 된다고?
-하. 잠들어 버린 나를 깨운 자가 누군가 했더니, 너였더냐?
그들은 악마며 마족이었다.
그 수가 적었다면 차라리 이해했을 터다.
‘수가 적으면 악마 볼프가 처먹은 걸 내가 흡수했다고 생각하겠는데…….’
그러나 아니었다.
-안식을 위해서라면…….
-마지막 살육을 해 보자꾸나.
무덤에 영혼들은 계속해 차오르고 있었으니까.
많아도, 너무 많았다.
* * *
계속해 차오르는 압도적인 영혼들.
그 앞에서 멍하니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우선 상황 파악부터.’
정보를 얻어야겠다 생각했다.
때문에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 시작은 바로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족부터였다.
-감히! 인간이 나를 노려?
“감히는 무슨.”
후우웅-!
이름도 모를 마족은, 내가 다가가자 적개심을 드러냈다.
동시에 망설이지 않고 제 손에 쥔 창을 휘둘렀다.
나 또한 마찬가지.
순순히 내 말을 듣지 않을 걸 잘 알았기에 바로 대응했다.
콰아앙-!
내 사슬과 놈의 창이 부딪쳤다.
‘과연. 약하지 않긴 해.’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놈의 강력함을 알 수 있었다.
놈도 나도 그것을 느꼈다.
-하. 인간이 이걸 막는다?
“못 막을 것도 없지 않나? 쉽던데?”
-어디. 이것도 막아 보라지!
후우웅-!
겉으론 서로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속은 달랐다.
절로 긴장이 됐다.
탐색하는 수준을 넘어, 빈틈을 보고자 서로를 찔러댔다.
‘역시나 마족이란 건가. 강해.’
어떤 이유에서 놈의 영혼 조각이 들어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혼의 조각이라도 마족은 마족이다.
강력하다.
약한 게 이상할 정도로 강력한 게 마족이니까.
그러한 마족을 꿰뚫을 무기는, 이전 러시아에서 구했던 힘이었다.
‘악마의 가호. 이게 답이야.’
가호의 사용.
[당신은 가호 : 악마를 통해 마족이 지닌 약점에 대해 세세히 파악하게 됐다.]
[당신은 적성 영혼의 약점을 읽어냈다.]
서로를 잡아먹는 악마와 마족. 잡아먹기 위해 서로의 약점을 파악하는 그 기질을 나는 가호를 통해 발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속속들이 보이는 놈의 약점들.
‘뭔, 약점이 하필 저곳들이야!? 저건 사람도 약점 아닌가?’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곳은 하필 그곳이었다.
그러나 전투에서 망설임 따위 있을 리가.
“우선 일단 하나 깬다.”
-무슨!
영혼인 상태라도 약점은 유효했다.
나는 곧바로 공격을 날렸다.
-……컥.
뒤늦게 막아 보려 했으나, 약점이 괜히 약점이겠는가.
콰드드득-
둘 중 하나가 깨져간다.
그 순간 이름 모를 마족의 영혼은 온몸을 뒤틀었다.
고통이 가득 찬 거다.
이것이 약점 공략의 힘이겠지.
“한 방 더!”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후우웅-
남은 약점을 향해 한 방 더 후려쳤다.
콰즈즈즈즉-!
다시금 터져나가는 상대의 약점!
-꺼어어어억! 차라리 죽여!
“아직, 아니야.”
가차 없는 두 번의 약점 공격에 상대는 전의를 상실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됐다.
저 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가식이었다.
‘새끼. 역시 마족이라니까? 이 와중에도 손 보게?’
놈은 자신을 죽이라 말하면서도, 제 손에 있는 손톱을 벼리고 있었다.
벼려지는 손톱 사이에서 느껴지는 건, 강력한 독기(毒氣)!
약점에 당해 자신이 죽는 때.
그 순간을 노려서 내게 비수를 날릴 생각이리라.
이른바 너 죽고 나 죽자.
동귀어진의 수였다.
영혼 조각일지라도, 마족이기에 보일 수 있는 독기였다.
그러나 이미 파악된 수는 새로운 약점일 뿐이었다.
“안 통한다. 새꺄.”
-……키익!
츠츠츠측-
독으로 벼려진 놈의 손톱이 산산히 갈려 나간다.
손톱을 지탱하고 있던 손가락조차 순식간에 곤죽을 내주었다.
-크흐…….
비집어 나오는 마족의 신음.
[당신은 적성 영혼을 완벽히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마족은 완벽히 전의를 상실했다.
영혼 조각을 제압한 지금.
본래라면 나는 놈의 영혼 조각을 흡수하는 데 힘을 썼을 거였다. 영력의 힘이 오를 테니 냉큼 집어먹고 봤겠지.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새로운 시작이었으니까.
어떤 시작이고 하니.
“길게 가지 말고. 쉽게 가자고. 쉽게.”
-그, 그건 두고 말하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 * *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당신은 정제된 성수를 사용했다.]
[정제된 성수의 힘으로 적성 영혼이 고통받고 있다.]
“네놈들이 왜 여기서 깨어난 거냐. 나는 상대를 한 바가 없는데?”
-나도 모르는 일이다! 네가 알겠지!
무언가 알려줘야 할 상대는 모른다고 잡아 떼왔다.
그러나 물. 아니, 성수는 답을 알고 있는 법이었다.
치이이익-!
[당신은 정제된 성수를 적성 영혼에게 사용했다.]
-끅…… 정말로 모른다고!
“정말로?”
-정말로 모른다! 나는 네게서 표식이 있어 내 영혼이 끌려왔을 뿐이야!
봐라. 없던 힌트가 나오지 않는가.
“표식?!”
-그조차 모른단 말이냐. 표식은…… 꺽…….
표식이란 힌트에 대해 알려는 그 순간이었다.
[적성 영혼의 조각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당신은 상대의 영력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의 영력이 증가했다.]
“이런…… 약점을 너무 심하게 공격했던 건가.”
츠츠츠츠-
상대의 영혼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사그라들며 남은 빛은 내게 달려 들어와 흡수 돼 버렸다.
영혼의 조각이라 하지만, 상대는 한때 마족이었을 게 분명한 자.
죽으면서도 상당한 영력이 내게 흡수돼 왔다.
이전이라면 꿀을 빤다는 것에 만족했을 터.
지금은 아니었다.
‘이 사태가 왜 일어난 건지 알아내야 하는데. 이거 일이 번거롭게 됐어.’
알아내야 할 것들투성이였으니까.
* * *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가야 했다.
내가 죽이지도 않은 영혼이 특별 던전에 나오는 이 상태.
이 상태에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걸 알아낸다면.
‘뭔가 큰 걸 알아낼 수 있을 거 같단 감이 온단 말이지.’
미리 기대했던 던전 보상보다도 더 큰 걸 알게 될 거 같았다.
회귀와 현생을 통틀어 내 감은 꽤 들어맞는 편이었다.
그 감이 나를 바삐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키에에엑!
-킥!
“잡졸들은 꺼지시고.”
[당신은 하데스의 사슬을 사용했다.]
[당신은 퇴마의 부적을 사용해 상대를 으스러트렸다.]
[당신은…….]
말조차 하지 못하는 영혼들.
리자드맨과 같은 몬스터류 영혼은 보이는 족족 거침없이 재차 영혼을 흡수하며 나아갔다.
그러고 나오는 악마와 마족의 영혼들.
이들 중 여전히 이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 소수 나왔다.
나는 그들은 지나치지 않고 다가갔다.
[당신은 가호 : 마족을 통해 적성 영혼의 약점을 파악했다.]
[당신은 가호 : 악마를 통해 적성 영혼의 약점을……]
-커윽……!
-인간이 어찌…….
서로 적대하는 악마와 마족.
이 둘을 이미 상대했던 나로선, 저들이 그리 어려운 상대만은 아니었다.
마족에게는 악마의 가호를 사용하고.
악마에겐 여기서 새로 얻은 힘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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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마족 F]
태생이 마로부터 비롯되었다 말하고 다니는 자들을 흡수하여 얻은 가호.
가호가 존재하는 거만으로, 격이 점차 상승할 수 있다.
마족의 적대자 천사와 악마를 상대로 전력이 증가한다.
적대 종족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악마는 생각하는 존재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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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마족의 가호.
이를 사용함으로 마족의 약점을 쉽게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성능 죽인다는 걸 이미 한번 실험했고 말이지.’
거기다 그간의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은 적성 영혼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적성 영혼의 적개심을 사그라뜨리는 데 성공했다.]
번번이 드러나는 적의 약점을 이용했다.
약점을 이용한 빠른 전투를 벌인 뒤, 나는 상대를 완벽히 제압해 낼 수 있었다.
제압의 시간 이후는 자연스레 정보 교류(?)의 시간이 이어졌다.
“네놈들이 말하는 표식이 뭐지?”
-모른다! 끄아아아악…….
“표식의 의미는? 넌 알지?”
-그건…… 네놈 같은 종족이 알 만한 게…… 꺽!
그러나.
당연하다 해야 할까.
악마나 마족은 도무지 협조란 걸 할 줄 몰랐다.
[적성 영혼의 조각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적성 영혼의 조각이…….]
재차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저들은 끝끝내 내게 표식에 대한 정보를 넘기지 않았다.
“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고오오-
그 대신으로 수많은 영력이 내게 차오르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답을 구하기 위해선 내가 해야 할 건 하나였다.
“더 들어가 보면 답이 나오겠지…….”
더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야 했다.
* * *
헌터 지한휘가 특별 던전 안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아 움직이고 있을 때.
“저기다!”
“찾았어! 죽여!”
“아씨, 튄다!”
영웅의 전장에 스며들어 있던, 이사야는 때아닌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자식들. 진짜로 팀을 먹고 달려와?’
연승을 향해 가고 있는 그녀를 잡고자 나온 자들이 있기 때문. 지한휘에게 들어 익히 예상은 하고 있었긴 하지만 이건 경우가 심했다.
자기 하나 빼고 전부가 팀을 먹는 게 뭔 짓거리란 말인가.
‘아씨. 이게 다 지한휘 때문이야.’
보나 마나, 제2의 지한휘가 태어나는 걸 막고 싶은 거겠지.
시간이 갈수록 전장이 새로운 스포츠로 올라서고 있으니만큼, 그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으니까.
머리로야 연승 따위 깨져도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지만.
‘씨…… 그 녀석은 왜 그딴 말을 해 가지고는.’
마음 속으론 계속해 지한휘의 말이 떠오르고 있는 이사야였다.
-쫄?
-쫄았어?
-쫄이지? 너 이 말은 안 까먹겠다야.
-에이. 쫄? 이해해. 게임 좀 못할 수 있지.
특별 던전에 가기 전까지. 계속해 있었던 그의 도발!
‘와 씨.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그 도발이 그녀를 계속해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진다는 거.
특히 그 지한휘에게 진다는 건, 언제부턴가 그녀에게 있어 최고 최악의 일이 되고 있었으니까.
이건 그의 책사를 자처하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각성자로서 가진 최후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일까.
쉽게 포기하지 않은 이사야에게 기회가 왔다.
“너만 떨어져 있네?”
“아씨…….”
지속해 오던 추격전.
그 추격전 끝에 낙오자가 나왔다.
낙오자 찬스를 그녀가 놓치겠는가.
“그럼 죽어야지.”
“컥!”
후우웅-!
그녀는 손에 쥔 거대 도끼를 휘둘렀다.
지한휘나 그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뿐. 단체로 추격이나 벌이는 자가 그녀의 도끼를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퍼걱.
그녀의 도끼에 상대의 두개골이 아작 났다.
“으. 이렇게 깨지냐? 이럼 좀 약할 건데.”
상대가 연기를 내며 스러지며, 나온 전장 금화를 얻어내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기술을 사용했다.
“스켈레톤 소환.”
순식간에 이뤄진 술식의 완성.
[당신은 전장 금화를 얻었다.]
[당신은 사령 마법 : 스켈레톤 소환을 사용했다.]
[당신은 스켈레톤을 소환했다.]
덜그럭. 덜그럭.
두개골이 쪼개진 스켈레톤 한 구가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쪼개진 머리는 명백히 약점이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이거면 떼로 달려드는 놈들 상대하는 데 충분하지.’
이전엔 혼자였다면. 지금은 둘이니까. 9대 1에서 8대 2가 된 상황.
그리고, 이 하나가 추가된 거만으로.
“저기다!”
“왔냐? 기다렸잖아.”
그녀는 남은 8을 전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남은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10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럼 다 죽을 시간이다! 축구공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기에.
그녀는 지한휘와 같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도륙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컥. 괴물.”
“괴물은 무슨. 진짜 괴물을 네들이 못 봐서 그래. 어쨌건, 시체는 잘 써 주지.”
그렇게 이루어진 학살.
그 학살의 끝에 전장의 모든 상대를 죽였을 때.
“어? 이건 이야기가 좀 다른 거 같은데.”
[신좌 아키텍쳐가 당신에게 제안을 던지고 있다.]
지한휘의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신좌 아키텍쳐가 접근하고 있었다.
그가 아닌 이사야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