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그러한 차원은 마족이 사는 마계와 악마가 사는 지저의 음차원.
두 차원 모두가 포함되고 있었다.
마족은 태생부터 마족으로 태어난다면, 악마는 욕망 자체가 빚어져 만들어지는 존재였다.
인간이 보기엔 엇비슷해 보이나, 그 둘은 확연히 달랐다.
태초부터 존재하는 게 이어지는 것과 인위적으로 빚어진 것은 본질 자체가 달랐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악마와 마족은 서로가 협력하는 것보다는 적대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문에 잦은 다툼이 있었다.
그런 두 차원이 비슷한 일을 겪는 건 드문 일이었는데.
이번에 일어났다.
-어디로 가신 거냐?!
-그분이 사라지고 나면 군집체란 개념이 사라진단 말이다.
-소환이 잘못 이뤄진 건가……!?
-대체 어디에 계시기에!?
어느센가 두 차원 모두, 사라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두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사라진 존재는 최소 둘이었다.
먼저 음차원의 하나는 익히 예상은 되는 바이긴 하였다.
-어서, 볼프 님을 찾아! 그분이 있어야 영혼 군집체가 유지된단 말이다. 대체 본체를 어디에 보내신 건지…….
-마지막. 마지막 신호를 찾겠습니다!
-그래! 어서!
그 주인공, 악령의 군집체 볼프였다.
모든 악령과 소통하는 존재이며, 음차원에 떠도는 악령을 조율하는 자가 볼프.
음차원을 구성한 부속품 중에 꽤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자가 그였다.
그가 사라졌음에 음차원이 난리가 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마계만큼이나 수많은 영혼이 떠도는 게 음차원이다.
그러한 음차원의 악령 조율이 이뤄지지 않으면 음차원만의 세밀한 규칙이 흔들리게 돼 있었다.
-끼이이이!
-키킥. 날 어디로 데려온 거야?
-하아…… 이 느낌은…….
-흐흐. 좋구나.
그 결과 악령들이 날뛰기 시작한다.
그러한 흔들림은 음차원과 연결된 곳곳에 영향을 끼치게 돼 있었다.
저 멀리 위에 있는 천상의 울림이 아래에 영향을 끼치듯, 지저(地底) 아래에 있는 음차원의 흔들림은 같은 원리로 위에 있는 수많은 차원을 흔들게 돼 있으니까.
본디 차원의 흔들림 자체를 즐기는 악마들이라지만.
이러한 방식은 즐기질 않았다.
-어서 찾아! 이러다 공허가 이곳에 내려앉는단 말이다!
-……찾고 있습니다!
제 차원이 망가지는 거까지는 즐길 리 없었으니까.
차원에 대한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 고향인 음차원 자체가 사라지는 건, 결국 인위적으로 빚어진 자신들의 소멸을 이야기했다.
제아무리 파괴를 즐기는 악마라지만. 제 소멸까지는 바랄 리가.
그러니 그들은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군집체이자 조율자인 볼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그러한 찾음은 저편 마계서도 동시에 이뤄졌다.
-그분의 흔적이 대체 어디 있는 거냐…….
-계약도 없으셨을 건데!?
마계에서 그분이라 불릴 몇 안 되는 존재.
그를 찾기 위한 하위 마족들의 분주한 조사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조사는 볼프가 사라지기 전부터 이뤄졌던 일이었다.
그분이 볼프보다 먼저 사라졌으니까.
덕분일까.
마계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게 음차원보다 빨랐다.
-찾았습니다!
-오오! 어디냐!?
-악마 벤티! 그 녀석이 이번에 죽었지 않습니까?
-그 악마 따위가 왜?
-그 녀석이 죽어 폭발하면서, 나온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가니, 그분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 벤티…… 벤티 녀석이라 하면…….
-차원 명, 지구입니다!
특정된 위치는 지한휘가 활개 치고 있는 지구!
-그래, 어서 움직이자. 그분을 어서 찾아야 해.
-명대로!
마계의 악마들은 그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사라진 그분이란 존재가 중요하였으니까.
해서 마족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러한 마계의 움직임을 온 곳곳을 쏘다니며 조사하던 음차원의 존재들이 읽고 있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볼프를 데려갈 만한 몇 안 되는 용의자 중에 하나가 마계였으니까!
-마계의 것들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방향이 공교롭습니다.
-흐음…… 설마 녀석들도 연관되어 있나?
-조사를 해 볼까요?
-우선 따라가 보도록 하자. 여긴…… 차원 지구?
그러한 흔적을 찾아서 도착한 곳이 지구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계의 마족들은 진득한 오해를 하게 됐다.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잔향 속에서 볼프의 흔적이 읽힌 것이다.
-……볼프 님의 흔적도 같이 이어지는데요?
-역시?! 마계의 마족들이 움직인 거야! 뭣하나. 같이 움직이지 않고!
오해는 바로 행동을 낳았다.
악마들이 지구를 향해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볼프의 본체를 없앤 것이 마계의 짓이라 여기는 것.
이는 완벽한 오해였다.
그러나 어쩌랴.
그 오해를 풀어 줄 이가 없는 것을.
-당장 움직여라! 그분을 찾아서!
-차원 지구로! 볼프를 찾게 해. 아니 사라졌으면, 배상이라도 받아 내!
두 차원 모두 말릴 자가 없었다.
수많은 차원을 침공했던 전력을 살려, 지구를 향한 입구를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득-
체계와 수많은 신들의 강림으로 인해서, 안 그래도 헐거워졌던 지구의 차원막이 점차 벗겨져 갔다.
그러한 흔들림으로 인한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 * *
“경기도 일산. 새로운 던전 출현입니다!”
“부산 방향도 출현.”
“하루가 지날수록 출몰하는 던전의 등급이 상향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의 첫 번째는 던전 출현이었다.
체계가 들어오고, 그 몇 년간 새로운 던전은 드물게 출현하고 있는 상황.
그러한 가운데 정부는 출몰한 던전을 수습하고 관리하는 데 성공했었다.
“예년보다 세 배는 늘었습니다.”
“이게 한 달간 일입니다. 이 추세면…… 올해가 가기 전에 다섯 배 이상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닫히는 던전은?”
“대다수가 일회성 던전이기는 한데, 당장은 닫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헌터들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시잖습니까?”
“후…… 어렵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던전 등장이 가파르게 이뤄지는 상황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수습과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단지, 한국에 국한된 일이라면야 차라리 이야기가 편했다.
던전이 출몰하고, 각 나라가 서로 간 적대보단 협력을 추구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어디까지나 겉으로의 이야기야 하지만, 겉이라도 중요했다.
다른 나라에 일정 비용을 치르고, 협력을 요청하면 되니까. 하지만.
“일본에서도 거절이랍니다. 자신들도 몇 배는 치솟는지라…….”
“중국. 러시아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싱가포르가 여유가 있었는데, 그들도 한계치가 올 거란 계산에 헌터들 묶어둔 거 같습니다.”
모두가 위기에 닥치면 그런 협력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불난 옆집보단, 제집에 난 불이 더 급하니까.
그리고 그 상황을 가장 먼저 전달받는 건, 자연스럽게도 여러 길드였다.
미래 그룹의 김시연 또한, 그러한 소식을 들었고. 대책을 마련 중이었다.
“이거 때아닌 호황 아닙니까?”
“호황은 무슨. 집어먹다가, 넘치면 배터져 죽는 거야. 당장 집계부터 해 봐. 감당은 되는 거 같아?”
던전은 실제지 게임이 아니다.
호황이라 좋게 보기엔, 출몰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아직까지 아슬아슬하게는요.”
“아슬아슬이라.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자세히는?”
아직까지는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 뒤다.
“차라리 하급 던전은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하급 던전에 죽치고 있는 헌터들도 헌터넷에 꽤 되잖습니까. 그들은 호재로 여기고 있긴 하죠.”
“뭐…… 걔들이야 평생 하급만 할 생각인 녀석도 많으니까.”
“문제는 그 위부터입니다. 안 그래도 겨우 버텼는데, 이대로 두었다가는…… 아시죠?”
“브레이크라 이건가.”
“당장 최상급이야 철저히 관리해 놨으니 문제는 없을 거 같기도 합니다. 최상급은 잘 안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문제는 그 중간입니다. 초창기 제대로 던전이 자리 잡기 전에 터트리면 어떻게 소멸도 가능하다는 진단도 나오기는 하는데…… 누가 터트리러 갈까요?”
“하. 위험하니 거의 없겠지. 초기 던전 진입은 자살이나 다름없는 짓이니까.”
하급도 상급도 당장은 괜찮은데, 문제는 그 허리를 맡은 중급이다.
하급과 달리 중하급만 돼도 난이도는 확 올라간다. 그런 상황에 초기 진입이라.
누가 갈까.
‘그 지한휘라면…….’
잠시지만, 지한휘가 떠오른 김시연이었으나. 이내 머리를 휘휘 저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가 기대되지만, 그는 아직 유망주였다.
중급?
당장 입장 조건을 위한 등급부터가 될 리가 없다 여겨졌다.
그러니 그를 제외하고 나면, 없다고 봐도 되었다.
상황은 비상이다.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맡은 영역들이라도 막을 방법을 찾아봐야지. 당장, 사람들 전부 소집해. 긴급회의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급히 움직이는 김시연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제가 할 일에 분주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움직이는 자도 하나 있었다.
지한휘였다.
* * *
“으…… 오랜만에 몸이 다 쑤시는 게 느껴지네.”
숙소에 들어 온 뒤.
나는 최대한 쉬고 있었다.
스카우트 당시 김시연의 말대로, 숙소는 5성급 호텔 이상이었다. 미리 준비된 것들로만 생활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사이즈는 또 어떻게 알았데?’
끝끝내 구매하지도 않았던 전투 슈트를 무려 세 벌이나 채워 넣기까지 해놨다.
미래 그룹에서 얼마나 나를 신경 쓰는 지 알 수 있을 부분이다.
미래의 랭커급, 현재의 유망주 대우를 확실히 해주겠다는 거겠지.
회귀 전엔 이만한 대우를 받은 바 없다.
지금 이맘때가, 영혼 술사의 능력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할 때였다.
짐꾼 역할을 하면서, 기웃기웃해 댔다.
그나마도 고생을 퍽이나 많이 했다.
‘몬스터 영혼을 빨아들이면 마석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속설이 있었지.’
그 속설 때문에, 동료 짐꾼들도 감시의 눈길을 보냈었다.
혹여나, 사냥터에서 수확물이 적으면? 그건 내 탓이 되는 거였다.
그런 나날이었다.
“새삼 격세지감이 느껴지네.”
그러니 내 성격이 좀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더랬다.
어딜 가나 그따위 시선들이 날 감쌌으니까.
‘그래도 안 미친 게 어디냐.’
해서, 이번 생은 그런 이상한 눈빛들을 받을 일이 없을 거라 여겼는데.
“아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의를 하려고 하는데 넌 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나를 보는 이사야의 눈빛이 영 이상했다.
김필서가 데려다 준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계속 저 모양인 상태.
샤워를 하고 나오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로도 여전히 묘한 눈빛들을 보내고 있었다.
“흠…… 후음…… 음…….”
마치 나를 품평하는 눈빛을 하는가 하면.
‘미래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을 잡느라, 저리 보나?’
또 어떨 때는 나를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당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
‘괜히 지금 데려왔나.’
리치가 되고 나서 몇 년은 숙성(?)을 시키고 데려왔어야, 제 몫을 했을까 하고 후회가 들쯤이었다.
“미래 계획을 짜라고 놨더니 왜 그리 보고 있어?”
“으음. 계획. 계획은 짰지! 그건 차라리 쉽더라.”
“오…… 그래?”
계획은 짰다니.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리치로 될 때까지 다시 러시아에 던져 놓으려고 했는데.’
이리되면 이사야를 다시 보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단 의미이지 않은가.
“그럼 뜸 들이지 말고, 계획이나 어서 말해 봐.”
“해야지. 하긴 해야 하는데…….”
“뭔데 자꾸 뜸을 들여.”
이 녀석. 전생에도 자기만 아는 거 있으면 뜸을 들이더만. 리치 전에도 이럴 줄이야. 타고난 성격인가.
“아, 이거 하나가 계속 궁금해 가지고. 그래서 그래.”
“뭐가? 물어봐서 해결할 수 있는 거면 어서 물어보든가.”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재촉했다.
빨리 해결하고 계획을 들어야 했으니까.
근데 요 자식 보소.
“……너 정말 미래에서도 모태 솔로야? 레알? 죽어서도? 끝까지? 미래까지 가서?!”
어째, 잘못 데려온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