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재앙급 플레이어가 빌런을 다 죽임-40화 (40/206)

제40화

몰래 움직일 이유는 하나였다.

몸을 내빼야 해서였다.

이딴 사태가 일어났는데, 조용히 넘어가는 게 더 이상하잖은가.

누군가는 책임을 질 자를 찾을 거였다.

그게 우리가 될 확률이 높았고.

그걸 이해하기에 이사야는 아쉬워하면서도, 러시아를 떠나는 그 자체는 동감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쉬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 움직이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제 영역이 없어진 거에 피해가 막심한 마피아가 먼저 움직였다.

그들이 지닌 속성대로 이들이 보낸 건 히트맨.

“저기다!”

“죽여!”

종류도 다양했다.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란 걸 증명하듯 떼로 몰려다니는 암살단.

이사야처럼 홀로 움직이는 암살자도 왔다.

‘그놈들은 차라리 쉬웠지.’

그들은 되레 도움이 되기까지 했다.

[당신은 타인의 영혼을 흡수하였다.]

[당신은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다.]

[당신은 가호 : 암살을 얻었다.]

[당신을 암살자의 신이 주시하기 시작했다.]

영혼을 얻게 해줬고. 경험치는 차곡차곡 쌓일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얻은 가호는 특히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

[가호 : 암살 F]

대량의 적성 암살자를 살해하여 얻은 가호다. 암살자의 신이 가호에 힘을 더해 준다.

더 은밀히 움직일 수 있다.

움직임에 은밀함이 스며든다.

-수단이야 어떻든 죽이면 그만 아닌가?-

———————————————

암살이란 특성 자체가 희귀했다.

특히 전생에 나는 몬스터의 영혼만을 취했기에, 더더욱 얻지 못했었던 특성이었다.

‘몬스터 중에 암살 특성을 갖는 종류는 거의 없으니까.’

지닌 거만으로도 은밀히 움직이게 해준다.

은밀하게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은밀성을 더더욱 강화시켜 주는 가호다.

보통은 흔히 암살자에게만 쓰인다 여기겠지만. 절대 아니다.

‘바로 앞에 있어도 은밀하기만 하면 득이 되거든.’

진짜 은밀함은 치열한 전투에서 빛을 발휘하게 돼 있었다.

스킬을 섞어 쓴다거나, 공격에 헛점을 심어 넣을 때 은밀함은 그 어떤 상대에게라도 치명적이다.

그런 특성이 들어왔는데 좋지 않을 리가.

다만, 가호나 스킬 등급은 올릴 수 있어도, 등급은 꽉 막혀 있긴 했다.

[당신은 특별 던전에 입성하지 않아 제약이 걸린 상태다.]

[당신은 등급 상승이 보류되었다.]

‘이놈의 특별 던전!’

망겜이란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등급 상승을 막아 놨으니까.

던전만 정복하면 보류된 등급이 올라가기야 한다만.

당장 추격자들이 몰려오는 상황이었다.

나로선 꽤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약이었다.

그래도 어찌 여기까진 처리를 했는데.

“큰일 났다. 정말 정부도 움직였어.”

러시아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내 알기로 러시아 정부가 절대 이리 빠르게 움직일 상황은 아니었다.

러시아 내부에 여러 반군이 날뛰고 있다. 지방 정부 다수는 반기를 들고 있었다.

거기다 땅덩이도 커서, 지킬 곳이 워낙 많은 게 러시아였다.

이 상황에 중앙 정부 쪽 인사들이 움직일 줄이야.

잘해야 지방 정부 인사 몇 정도가 움직일 거라 여긴 나로선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중앙 정부는 반군 세력이랑 한창 전투 중 아니었어?”

“대량의 언데드가 발생했잖아.”

“걔들이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다고? 몇 명이 죽든 신경 안 쓰는 게 러시아 아니냐?”

“그거 때문이 아냐.”

놈들은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이었다.

“그럼 뭔데?”

“피해 발생을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일으키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거 같은데?”

“뭐? 그걸 왜?”

“반군에 언데드를 생산해 풀려는 거 아니겠어? 언데드를 병사로 쓰는 거지! 그 미친놈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돌은 새끼들.”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언데드를 군인으로 써먹으려고 하는 돌은 놈들이었다.

‘이사야 같은 녀석들이 왜 러시아서 태어났는지 알겠다.’

과연 마시면 뒤지는 미친 홍차, 아니 싸이코의 나라다.

“아니, 이 상황에 왜 날 그렇게 보는데?”

“아니다. 움직이기나 하자.”

“아씨. 뭔가 눈빛이 구린데.”

“닥치고 움직여.”

처음 러시아 정부 패거리는 암살자를 보내진 않았다.

대신 회유를 원하는지, 메시지부터 보내 왔다.

푸드드득-

그 수단은 비둘기.

“저거 비둘기 아니냐?”

“다리에 웬 통이 걸려 있는데?”

“뭔, 중국도 아닌데 전서구를 날리고 난리야.”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아는지는 알 수 없다만, 이 시국에 비둘기라니. 소름 돋는 방식이었다.

통 안에 있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이 사태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야기를…….]

[잠시면 됩니다.]

[당신들을 억류하자는 게 아닙니다.]

[사태의 진상을…….]

시도 때도 없이 전서구를 날려왔다.

그만큼 많은 비둘기가 날아왔다.

무슨 세뇌를 당했는지, 비둘기 주제에 잘도 날았다. 이 부분은 한국 닭둘기들이 배울 점이긴 했는데.

-꾸엑……!

내가 전서구를 받기만 하면, 혀를 빼물고 죽는 꼬라지는 절대 배울 점이 아니었다.

‘세뇌의 반작용으로 죽는 거네.’

메시지 한 번에 목숨 하나라.

비둘기라지만, 이런 식으로 생물을 사용하는 녀석이 제정신일 리는 없지 않나.

더더욱 이야기를 할 생각이 안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푸드드득-

[이 사태는 당신 때문에 일어난 걸 명심하십시오!]

마지막 경고를 보내 왔다.

그게 마지막으로 전서구는 툭 끊겼다.

그 뒤부터는 본격적이었다.

러시아에서 특별히 관리한다는 러시아연방보안국, 통칭 FSB의 인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FSB의 핵심이자 통칭 ‘마트료시카’ 볼르첸크.

“볼르첸크. 얘는 까다로운데.”

“너도 아는 녀석이야?”

“어. 뒤져도 뒤져도 죽지 않는 놈이니까.”

볼르첸크의 이명이 마트료시카인 이유는 하나.

그가 까도 까도 나오는 마트료시카와 비슷한 능력을 가져서였다.

그는 하나이나 동시에 여럿이었다.

“순순히 제압을 받으시죠!”

“개소리 마!”

속에서 까도 까도,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마트료시카처럼.

그는 자신의 몸을 복제해 우리를 포위했다.

마트료시카의 특성상, 복제를 하면 할수록 그 크기는 작아지긴 했다.

가장 큰 볼르첸크는 2미터정도 거인.

그장 작은 볼르첸크는 5살 아이만 했을 정도다.

‘큰 인형에서 작은 인형이 나오는 게 마트료시카니까.’

문제는 그 위력이었다.

타아앙-!

육체 크기는 작아지는데, 힘은 복제물도 엇비슷했다.

마트료시카 능력에, 강한 육체 능력을 지닌 괴물.

그게 볼르첸크의 정체였다.

“왜 복제인데 안 약해! 사기네, 이거!”

“어이, 죽이지는 말고 제압만 해. 이 새끼 죽이면, 그 뒤에 FSB들 눈 훽 돌아간다고.”

“그게 더 힘들어!”

차아아앙-!

그는 포위망을 좁히곤 죽기 살기로 우리에게 달려 들어왔다.

애써 포위망을 빠져나와도 문제였다.

-히히. 튈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아악! 이건 언제 붙은 거야!”

전투 중에 손가락처럼 작은 복제품을 붙여댔다.

복제품이 따라붙으면 얼마 가지 않아, 자석처럼 더 큰 볼르첸코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다!

-찾았어!

“저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그때부턴 전투와 추격의 반복이었다.

과연 러시아 정보국 KGB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FSB다운 끈질김이었다.

그 끈질김을 고하게 된 이유는 하나였다.

“여기부터는 반군 영역이야!”

제아무리 FSB라도 손이 닿지 않는 영역, 반군의 영역에 우리가 몸을 들이밀면서부터였다.

-이런!

그때부터는 볼르첸코도 본격적 추격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반군 영역에서 설치다 걸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일이 더 커지게 되니까.

그러므로 FSB의 추격은 떨칠 수 있었으나.

“아직 긴장 풀지 마. 반군도 만만치 않게 또라이거든.”

“알고 있어.”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었다.

이사야나 나나 그걸 모를 리 없었기에 은밀한 움직임은 계속해 더해졌다.

그러다 얼마 뒤.

“드디어 구했다!”

“……와. 끝인가.”

어렵사리 이사야와 나는 작은 공항의 경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 온 지 21일 만의 일이었다.

* * *

러시아는 마지막까지 나를 곱게 보내주질 않았다.

드드드드득- 드득-

“추격 피하다가…… 비행기에서 사망하는 거 아닐까, 이거?”

“바람이 미쳤다.”

작은 경비행기는 바깥의 상황에 극렬하게 반응했다.

와류가 불 때마다 흔들거리지를 않나, 비행기 한쪽 엔진은 이미 나가 버린 지 오래였다.

어떻게 나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덜덜 떨며 나아가는 경비행기 안에선 나도 불안감이 찰 수밖에 없었다.

‘회귀자인 내가 비행하다가 죽음?’

허망한 죽음이 예상되는 그때.

옆에는 툭 하니 비행 몬스터가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끼야아아악!

“저, 저거!”

“……와이번. 저게 여기서 왜 나와.”

비행 몬스터 중에서도 강력함을 자랑하는 와이번이 그 주인공이었다.

스스스스-

날갯짓을 하며 움직이는 와이번의 눈은 분명 이쪽을 향해 있었다.

“정말 뒤지나.”

“엇?! 저기!”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행기에 따라붙으려던 와이번의 옆에 다른 몬스터가 출현했다.

하피 떼였다.

-크라라락!

-끼익!

단체로 움직이는 하피 떼와 와이번은 앙숙인 관계.

정확히는 와이번이 하피의 천적이나 다름없지만, 현재의 와이번은 무리로부터 벗어난 듯한 떠돌이였다.

그 틈을 하피가 노리고 달려 온 것!

금세 둘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가, 갔다!”

“……후.”

우리가 타고 있는 비행기는 그 틈을 노려 잽싸게 빠져나왔다.

일 분, 일 초가 하루처럼 느껴지는 미친 비행!

편도로 몇 시간 되지도 않는 비행 한 번에 진이 다 빠질 무렵.

쿠우웅- 쿵-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는 부서질 듯한 쇳소리를 내며 착륙에 성공했다.

그리고 어려웠던 비행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터어엉.

나나 이사야가 내리기가 무섭게, 날개 한쪽이 떨어져 내렸다. 완벽한 산화였다.

“……미친.”

“저걸 타고 살아 온 거 자체가 행운 아닐까?”

악운이 강하다 해야 할지.

“으아아! 내 붉은 돼지! 돼지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떨어진 날개를 보고 울부짖는 비행사가 대단하다 해야 할지 모를 무렵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오셨군요.”

김필서였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어렵사리 닿았던 연락을 듣고 대기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김시연 실장은?”

“하릴없는 분이 아니신지라, 다른 용무로 가 계십니다. 제가 대신 모시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피로한 게 분명할 내 낯빛과 다르게 김필서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듯했다.

뻔했다.

‘김시연을 보러 간다는 거에 신나서 저런 거겠지. 아주 좋아 죽을라 하네.’

그런데 어쩌나.

나는 받아 줄 생각이 없는데.

“그럼 모실까요? 마침, 김시연 실장님이 계신 곳은…….”

“아냐.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겠어. 보다시피 저런 비행기를 타고 왔거든?”

“아…….”

순간, 김필서의 표정이 나보다 더 피곤해져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