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영 아니올시다-였다.
‘대체 뭐지…….’
지금까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침식을 돌파할 수 있었다.
[당신은 침식된 마력에 저항하고 있다.]
[당신의 마력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하고 있다.]
[당신의 마력에 대한 이해가 상승하고 있다.]
[당신이 지닌 가호 : 언데드가 D급으로 강화되었다.]
[당신의 등급 상승을 위한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다.]
[당신은 수준 높은 사령술을 보고 느끼었다.]
[당신이 지닌 악령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고 있다.]
…….
가호 등급 상승과 경험치 상승은 기본이었다.
사령술에 대한 이해도가 오르며, 악령 그 자체를 잘 알아가고 있었다.
내 알기로 사령술 자체는 크게 일곱으로 나뉘었다.
언데드. 영혼. 키메라 제조. 육체 변이. 악마 계약 및 사역. 생명. 저주.
이 중에 이사야는 언데드와 저주에 치우쳐 있긴 하다만. 그걸 느끼고 보는 거만으로도 왜인지 사령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오르고 있었다.
‘전생엔 아무리 봐도 이런 식으로 느는 경우가 없었는데 말이지.’
보는 거만으로 이해도가 오르는 이유?
알 수 없다.
전생에도 그녀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다만,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막말로 검성 옆에서 검술을 본다고, 검술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겉모습을 흉내 내고, 전투 스킬 정도는 얻어 배울 수 있으나 그 진의(眞意)까지 아는 건 나라도 무리였다.
그런데 왤까. 이번 생은 그게 되어가고 있었다.
‘얻는 게 분명 이득은 이득인데.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영 꺼림칙하네. 전생과 뭔가 달라지긴 한 건데. 뭘까.’
회귀 부작용으로 사령 마법에 대해 천재가 되는 건가.
역시 알 수 없다.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 수 없을 일에 하릴없이 머리를 싸맬 나도 아니었다.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우선은 의문을 잠재웠다.
의문을 버린 대신 치열하다 싶을 만큼 빠르게 전투를 치러왔다.
그렇게 도착한 마족의 앞이었다.
* * *
[당신은 악마 벤티와 조우했다.]
[악마 벤티가 지닌 존재력이 당신을 공격한다.]
[당신은 존재력의 침습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악마 벤티가 품은 존재력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악마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했다.]
[당신은 가호 : 마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벤티와의 조우까진 내 예상대로의 상황이었다.
이곳 던전은 처음이었으나, 이미 악마는 지겹도록 상대해 봤으니까.
바로 전에도 볼프를 상대하고 왔지 않은가.
‘벤티라. 사령술 계열 악마일 테니, 비실거리는 육체를 노려봐야겠네.’
그에 대한 대응과 전략까지 머리로 다 돌려놨다.
약한 육체를 이용해 제압.
제압 이후에는 마피아와의 계약을 깨부수게 한다.
이 뒤엔 얻을 보상까지.
싹 다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 말이다.
그런데.
-대, 대체 무얼 품고 오는 것이냐…… 으으…….
놈은 나를 보더니, 제가 앉아 있던 왕좌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없는 이를 딱딱 부딪치는 꼴이 겁을 먹은 상태!
-이,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사자를 본 사슴처럼, 두려움에 떨어댔다.
“악마를 보면 긴장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애 상태가…… 왜 저래? 원래 저러냐?”
“이건 나도 모르겠는데. 아니 악마들이 상태가 왜들 저러지. 나만 보면 지리네?”
보자마자 겁을 먹는 악마라니.
이건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 * *
흔히 공포에 잡아 먹히면 일어나는 건 패닉이었다.
패닉이 일어나면 둘 중 하나.
쥐가 고양이 물 듯 광기에 잡아먹히거나.
그도 아니면 겁에 잡아 먹혀 도망을 택하거나.
‘악마가 공포에 빠지면 어떻게 되나 궁금은 했는데.’
벤티란 악마는 도망을 택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놈은 우리에게 마법을 날릴 생각도 없었다.
왕좌에서 벗어나더니, 슬금슬금 뒤로 움직이며 무언가 그려대기 시작했다.
“저거 튀는 거 아냐?”
“글쎄다. 내 알기로 튈 곳이 없을 건데…….”
대체 어디로 가려고 저러는 걸까.
이 공간 자체가 놈이 침공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내 알기로 침식의 조건은 제 영역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똥개도 제 영역에선 반은 먹고 들어갔다.
같은 원리로 악마도 제 영역에선 먹고 들어갔다.
반은 더 넘게.
그러다 보니 침식에 이용되는 공간은 제 영역이었다.
영역을 제물처럼 바쳐서 침식을 하는 거랄까.
그러니 놈은 도망칠 곳이 없었다.
“영역이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무리이지 않을…… 어?”
“포기하는 거 같지 않냐?!”
근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놈은 정말 무언가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마법진. 악마를 소환할 때나 사용하는 마법진의 역순이었다.
저걸 그리면?
정말 악마가 사는 음차원으로 연결된 차원 문이 열릴 수 있었다.
“잡아!”
저대로 벤티가 사라지면, 남은 건 침식 된 공간뿐이다.
그 자체로 던전을 클리어한 거나 다름없지만, 우리에겐 벤티가 중요했다.
계약한 악마를 인질 삼아(?), 마피아 두목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이대로 튀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다.
나나, 이사야나 그건 최악이었다.
움직여야 했다.
먼저 움직인 건 그녀였다.
“포박. 마력 방해. 차단. 소음 형성.”
[당신의 동료가 사령 마법 : 포박을 사용했다.]
[당신의 동료가 사령 마법…….]
…….
빠른 마법 생성!
스스슷-
그녀로부터 튀어 나간 마력이 벤티를 휘감았다.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마력을 흐트러트리며, 언령을 써 현혹지 못하게 주변을 내리 앉힌다.
그러나 마족을 잡기엔 무리였다. 그 속도를 조금 더디게 할 뿐이었다.
여기서 나서야 하는 건 결국 나다.
“이러다 감옥이 가득 찰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묶어 놓고 물어보자고.”
쒜에에엑-!
나는 사슬에 영혼을 부여하며, 그대로 던졌다.
카우보이가 황소의 목을 잡아채듯 날아간 하데스의 사슬!
날아간 사슬이 벤티를 묶는 데 성공했다.
-아,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철컥!
발악하는 벤티에, 길게 늘어진 사슬이 팽팽하게 조여졌다.
이대로 끌어당기면, 이제 승리는 이쪽이었다.
이사야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제압하고, 이 뒤 마피아 보스를 해결하면 될 거니까.
“이쪽으로 오…… 어?”
그때. 조여졌던 사슬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힘을 놓아서가 아니었다.
반항하듯 빠져나가려던 벤티가 점차 녹아내리고 있었다.
“……뭐지?!”
볼프처럼 감옥에라도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는 건가.
그렇게 돼서야 감옥에 수감자만 늘리는 셈이다.
본격적으로 써먹으려면 그래선 안 됐다.
나는 힘을 풀고, 하데스의 사슬로부터 벤티를 풀어주려 했다.
그러나.
-아아아악!
사슬이 먼저였다.
콰드드득!
사슬이 다가가기가 무섭게 녹아내리던 벤티의 몸이 사라졌다.
* * *
사라졌나? 사라졌다.
스스스-
던전의 보스라 할 수 있을 벤티가 사라지자마자, 침식된 던전의 핵이 떠올랐으니까.
핵을 처리하면 던전 바깥을 향하는 건 진리.
설사 침식된 던전이라도 이는 통용되는 일이었다.
깔끔하고도 완벽한 정복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랜만에 발광을 할 수밖에 없었다.
터어엉-! 텅!
미친 듯이 사슬을 쳐댔다.
“새끼야! 나와! 나오라고!”
손이 피가 배어 나오다 못해, 뼈가 울리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지 않고서야 받은 열이 풀리지 않을 거 같았으니까.
“이 새끼가! 감히 내걸 잡아먹어!? 감옥에 처박혀 있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새끼가!”
-…….
나의 발광.
사슬이 아닌, 그 안의 볼프를 향해 있었다.
이 미친 악마 자식이 같은 악마 잡아먹을 줄이야.
본래 악마란 족속들이 동족 의식 자체가 없는 건 알고 있었다만.
“야야! 그만해! 너만 다친다고!”
“아니, 이 새끼가! 때를 안 가리고 먹방을 처하니까 그러지. 감히 내 걸 쳐 먹어? 어?!”
감히 내 걸 뺏어 먹었음에는 분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르르-
“어쭈? 살살, 떠는 것이 약 올리기라도 하는 거냐?”
부르르-
“아니라고? 뒤질래? 어?”
-…….
“하…… 이젠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
내가 이리 발광하는 것.
아무런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증거는 명백히 내 눈 한쪽에 떠 올라 있었다.
[당신이 지닌 하데스의 사슬이 타의에 의해 스스로 움직였다.]
[하데스의 사슬이 악마 벤티의 본질에 다가서는 데 성공했다.]
[하데스의 사슬을 통해 악마 벤티를 흡수하였다.]
눈앞에 알림음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볼프 이 새끼 말고 누가 사슬을 움직여?’
내가 사슬을 움직이는 게 아니면, 남은 움직일 수 있는 놈은 볼프다.
그 뒤에 악마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걸 흡수한다? 뻔하지 않나. 볼프가 잡아먹은 거다.
알림음이 알려주고 있는데, 이만큼 확실한 증거가 더 있겠는가.
“하…… 진짜 X랄 맞네.”
이러니 열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감히, 내가 노리는 걸 타인이 가져갔다는 게.
내 것을 빼앗겼다는 거 그 자체가 열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버라고?
절대로 아니다.
공허에 모든 걸 뺏긴 이후.
다시는 그 무엇도 뺏기지 않겠다 마음먹었던 나다.
뻈긴 거, 아니 처음부터 없어져 버린 건 동료들로 충분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서 악마를 빼앗는다고?
“너 이 새끼. 나오기만 하면 모조리 씹어 삼켜 주마. 각오해라. 지금부터 너 새끼 사슬에서 꺼내는 거에 확실히 집중할 테니까.”
결국 내 분노는, 언제라도 저 볼프를 뼛속까지 씹어 삼킨다는 각오를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터억.
그제야, 사슬을 패대던 걸 멈춘 나였다.
그런 나를 이사야 녀석은 질린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어휴. 미친 새끼…….”
“미치긴 뭘 미쳐. 내가 제일 정상인데.”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내가 좀 심했나를 자각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미친 녀석 중 탑 쓰리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건 꽤 충격이었으니까.
‘회귀 부작용인가…… 감정이 격해지긴 했단 말이지.’
새삼 나는 안 미쳤음을 어필해 보지만.
“미친놈이랑은 러시아서도 말이 안 통해요. 유노?”
“말을 말자.”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되도 않는 영어를 들먹이는 이사야 꼴을 보아하니.
‘설득은 글렀네.’
당분간 녀석 앞에선 미친놈 소리를 들을 거 같긴 했다.
하기는, 미친놈은 원래 자기가 미친놈인지를 모른다지 않나.
저 녀석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 자체가, 반대로 내가 정상이란 증거일 수도 있었다.
어쨌건 발광도 끝났으니 내가 할 일은 결국 하나였다.
“나가기나 하자.”
“오케이. 제압이 아니라 잡아먹었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던전에서 나가는 것.
터어어엉!
내 손이 던전 핵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