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벽. 그 앞에 거대한 철문.
버려졌는지 초소는 비워져 있지만, 익숙한 공간이다.
바로 던전이니까.
“버림받은 곳이네?”
“그런 곳이지. 여기선 흔하기도 하고.”
그것도 버림받은 곳이다.
버림받은 이유야 뻔하다.
‘다 뒤지니까.’
들어가 봐야 소용없어서다.
던전 조건에 맞춰 입장해 봐야, 난이도가 극악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
꼭 그러한 이유가 아니어도 나오는 보상이 적으면 언데드 던전처럼 버려지기도 한다.
러시아 같은 땅이 큰 곳은 이런 던전이 많긴 했다.
워낙 던전이 많으니까.
용케 브레이크가 안 터진 곳도 있기는 한데.
그거 다 운이다.
나중에 가면 가차 없이 다 터진다.
그래서 이사야가 지키고 있던 미래 러시아가 지옥이었다.
‘러시아란 국가 자체가 다 망해 있었지.’
지옥이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겠다고 그녀는 리치가 됐고.
강력해진 사령술을 바탕으로 꽤 많은 생존자들을 이끌었다. 성경 속에 나오는 선지자 아사야처럼.
그 광경. 퍽이나 웃겼다.
죽음이 가득한 땅에, 죽은 자가 산 자를 이끄는 모순 가득한 장면이었으니까.
어쨌건 그런 이사야가 데려온 곳이 던전이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냐고.
“마피아랑 싸우겠다는 녀석이 왜 던전이냐? 등급부터 올려달라는 소리?”
“그거도 좋은 방법인데?”
그에 돌아오는 답은 빙긋 지어지는 미소.
“장난은 그만하고. 진짜 의도나 말해 봐.”
“그게 말이지…….”
그 답은 참 가관이셨다.
* * *
‘막장이네. 원래 마피아 같은 놈들이 수단을 안 가리긴 하는데.’
그녀와 대립하는 마피아.
그 마피아 두목이란 녀석이 계약한 게 악마란다.
그 악마의 힘을 바탕으로 성장.
본 초르조에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 중 하나가 됐다나.
“그래서 내가 마피아랑 싸우게 된 거지. 악마랑 계약한 녀석을 살려 둘 수는 없잖아? 응?”
“이제 와 정의의 사도인 척은 관두고. 의뢰를 받은 거겠지.”
“윽…….”
계약한 거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그 두목을 처리하는 의뢰를 받았단다.
의뢰주는 그녀가 죽여야 할 조직 두목과 같은 본 초르조 계열의 다른 계파 두목.
자기들끼리 멱 따자고 의뢰를 넣은 거다.
헌터이자 프리랜서 히트맨으로서 일을 안 가리는 이사야는 그걸 받은 거고.
그게 여기까지 진행이 된 거다.
“뒤지게 꼬였네.”
“시끄러. 어쨌든, 녀석을 한 번 죽였는데도 죽지를 않아. 계약 내용이 불멸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런단 말이지.”
“불멸일 리가 있나.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켜서 제가 살아남는 거겠지.”
희생을 통한 불멸이라.
이사야 녀석은 걸려도 꼭 그런 적이 걸린다냐.
그래도 여태 살아남은 걸 보면 악운 하나는 뒤지게 좋은 녀석이다.
“올, 잘 아네? 나는 몇 달을 뒹굴어서 겨우 안 건데 말이지.”
“괜히 미래에서 왔겠냐. 그 악마 새끼들 습성은 몰라도, 뒤지게 하는 방법들은 잘 알아. 뭐, 보아하니 이 던전에 악마 표식이라도 숨겨 뒀겠지. 그게 놈을 계속 살아남게 하는 매개일 거고.”
“빙고! 그게 정답이야!”
웃냐. 쓸데없이 해맑은 자식 같으니라고.
“자, 그럼 이걸 바로 깨러 가 보자.”
“내 알고도 당해 주마.”
나는 피식 웃어 주며 눈앞에 보이는 게이트에 몸을 들이밀려 했다.
파즈즈즉-
[당신은 허용받지 못한 자다.]
[허용되지 않은 자는 들어갈 수 없다.]
“읏……?”
“미래인도 그건 몰랐던 고야?”
근데 왜 입구부터 막히는 거냐.
‘귀찮은 거에 걸렸네.’
* * *
하. 입밴이라니.
내 어딜 가서 이런 걸 당한 바가 없는데, 오랜만에 겪는 신박한 경험이었다.
이거. 일종의 암호가 걸린 거다.
보통 악마가 막아 놓은 이런 경우는 뚫는 방법이 정해져 있었다.
“제물 바치기? 주문? 특정 조건?”
“특정 조건으로 제물 바치기야.”
“두 개나 돼? 고약한 게 걸렸네.”
이번은 특정 조건으로 제물 바치기란다.
쉽게 말해 조건이 맞는 제물을 바치면 이걸 뚫고 들어갈 수 있단 의미다.
“조건이 뭔데? 뭐냐에 따라 난이도가 갈리잖아.”
“난 어려운데. 넌 가능하더라고.”
뭐지. 이사야는 되는데 나는 안 된다라.
설마 영혼 술사의 육체라도 바쳐야 하나.
고작해야 던전 하나 뚫자고 그러고 싶진 않은데. 내 육체를 바치느니 마피아 두목 멱을 수없이 따줄 선택을 할 나였다.
“쓸데없이 복잡한 조건이면 차라리 두목 멱따러 가자.”
나는 그 선택을 바로 말했으나.
그 말에 그녀는 질린 표정만 지었다.
“뭔 상상하는지를 알겠는데. 지한휘, 네가 희생할 필요는 전혀 없어. 다른 게 희생할 거지.”
“음?”
뼈다귀. 그림자. 영혼.
뭐,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다른 게 있나?
이사야가 최후의 칠 인이니만큼, 다른 자보다 많은 걸 가르쳐주기야 했다만.
예속의 목걸이나 야수의 귀걸이 같은 자잘한 거까지는 가르쳐준 바가 없는데?
그녀는 대답 대신에, 그 눈으로 내 팔에 걸려 있는 사슬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이걸 바치라고!? 미쳤냐?”
“너야말로 미쳤냐! 그 안에, 악마가 있다며? 그 악마를 바치면 될 거 같은데? 그 악마 동족을 처먹나 보더라고. 두목 녀석이 동족을 포식해서 불살하는 거처럼 말이야.”
“오호. 그럼 이해가 가지.”
부르르르-
진실인가.
때마침 하데스의 사슬 품에서 있을 볼프가 떠는 듯했다. 사슬이 떨려왔다.
‘매일 같이 영혼을 빼 대는 데도 반응을 안 하더니, 이런 덴 반응을 한단 말이지.’
요 새끼, 아무리 불러도 안 나오더니 여기 대화를 다 듣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쨌건.
이렇게 되면 사양할 필요가 있나.
“본래라면, 이 볼프가 뭔가 비밀이 있는 거 같아서 안 바쳤을 건데 말이야. 중요한 건 다른 악마한테 들으면 되지 뭐. 악마가 한 놈도 아니고.”
“오케이. 바로 바치자고.”
상큼한 마음으로 볼프가 담긴 하데스 사슬을 통로에 가져다 대자.
[당신은 악마 일부를 제물로 바쳤다.]
[닫혔던 조각 난 세계가 당신의 제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던전 입장이 허용되었다.]
내게 막혀 있던 던전 문이 단번에 열렸다.
이리 쉽게 열릴 줄이야.
나는 묘한 눈으로 볼프가 담겼을 사슬을 바라봤다.
‘일부라 이거지. 그럼 아직 살아 있다 이거네. 볼프 존재 자체가 영혼 군집체여서 그런가.’
제물로 바쳤는데도, 살아남을 줄이야.
새삼 지독하게 끈질긴 녀석이다.
지독하게 끈질긴 만큼 아는 것도 많을 녀석이겠지.
어쨌거나 당장은 이 녀석을 괴롭힐 때가 아니었다.
“들어가자.”
“그러자고.”
던전으로 들어갈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