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그러니까, 미래서 왔다고.”
타악.
도끼를 휘두르던 유려한 손놀림으로, 라이터를 켜고. 불을 붙이는 이사야의 모습은 어딘가 묘한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머릿결이 깔끔하게 정돈 좀 되고, 날뛰느라 찢어진 블라우스가 아니었더라면 퇴폐가 아니라 퇴폐미까지 갔겠다만.
나로선 도끼 자루를 휘두르다 반쯤 정신을 놔 버린, 광인(狂人)으로 안 본 게 최선이었다.
“어. 그러니까 너만 아는 똥 먹은 흑역사를 알지. 아, 참고로 미래엔 나 말고도 꽤 여럿 안다. 최소 일곱은 알아.”
“……그건 좀 그만 말하라고. 후우.”
“아니, 그러면 다른 거 말할까? 열네 살에 네가 토한걸…….”
“блин, Пашалл!…… 개X끼가. 이건 진짜…… XX를 까 버리고 죽여 버려야 입을 닥치나. 좀!”
성능 좋은 번역기도 해석하지 않는 몇 번의 욕설 세례가 있기야 하다만.
미래인이 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건 애교 아니겠는가. 미치지 않는 게 다행인 거지.
“아, 네가 안 믿으니까 그러지.”
“믿어! 믿는다고! 그러니까 그딴 거 그만 지껄이란 말이다!”
어쨌건, 이사야가 나를 믿게 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거다.
대단하지 않나!?
‘크…… 오졌다. 내가 이렇게 설득의 귀재일 줄이야. 이쯤 되면, 공허를 막고 나면 협상가로 나서야 하나?’
때아닌 성공에,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후우우…….”
이사야는 끝까지 피워서 연기를 뿜어내고, 남은 걸 바닥에 지르밟았다. 그러고 나서야 이사야는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른 듯했다.
“……저런 거나 말하고 다니고. 미래의 나 새끼는 도무지 어떤 새끼인 거지.”
뭐긴 뭐겠어. 쪼갠 두개골로 축구하고 다니는 새끼지.
라고 하는 말까지는 참았다.
알잖나. 나란 놈은 상대의 프라이버시를 챙겨주는 놈이라는 걸.
‘이렇게 배려를 또 해주고. 나란 놈이 칠 인 중엔 제일 정상이긴 해.’
내 배려를 모르는 건가.
이사야는 한참 나를 째려봤다.
얼굴이 뚫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러다 물었다.
“그래. 네놈이 미쳤든 뭐든, 미래에서 왔다 치고. 그래서 그걸 갖다 써먹으면 될걸, 왜 나한테 말을 하는 건데?”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그게 말이지.”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류가 적응한 듯 보였던 세계가 변화하고. 그 변화된 세계 속에서 이전의 몬스터는 선봉대였을 따름이며.
본대는 따로 있다고.
마왕, 악마, 마족 하물며 이 세계의 군대까지.
그들이 내려온 이후.
모든 침략자를 물리치고, 그 끝에 내려앉던 공허까지도.
나는 최후의 칠 인이자.
내 한때의 친우였던 이사야에게 그 모든 걸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회귀를 한 전생 이후 가장 많은 입을 놀렸다.
그런 나의 말을 이사야는 한 구절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봤다.
때로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멍한 눈을 하는 그녀는 그 모든 걸 다 듣고 나서야 미래를 한 마디로 칭했다.
“최악이네.”
최악.
미래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묘사였다.
그러기에 우린 또 다른 최악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이다음의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그래야 하는데.
‘……요 녀석?’
낌새가 영 이상하다.
* * *
회귀 전 리치 이사야는 표정이 없었다.
뼈만 존재하는 녀석인데 표정이 드러나는 게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전우로 오래 있다 보니 그 기색은 읽을 수 있었다.
놈이, 아니 녀석이 즐거워한다거나 기뻐할 때, 때로 죽어 버린 동료로 인해서 느껴지는 암울한 기색을 나는 느껴 왔다.
칠 인 중 오로지 둘만 가능했다.
나와 유보라.
유보라 그 녀석이 어떻게 그런 걸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경우는 영혼 술사기에 가능한 일이란 건 확실했다.
피육(皮肉).
흔히 가죽과 살이라 말하는 게 전부 사그라든 게 리치다.
오로지 영혼만이 남은 채로 제 몸을 마력으로 조종하는 기이한 존재.
그런 존재로부터 기색을 읽어 내는 게 쉬울 리가.
영혼 그 자체를 느껴 버리는 영혼 술사기에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이사야 녀석은 때로 나를 피했다.
특히, 동료가 죽어 버리는 그 날엔 어디론가 숨기까지 했다.
‘찾느라 고생했지.’
나중에 녀석이 술에 취해 알았지만 제가 만든 특별한 아공간에 몸을 숨겼단다.
겉은 뼈밖에 남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감정이 많은 녀석이었다.
적에겐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는데, 적어도 동료에게 있어선 여린 뼈다귀.
그 감정을 표현할 줄은 몰라서.
숨어 버리고. 이젠 뼈 사이로 흘러내리지도 않는 눈물을 흘려 젖히고. 부끄러워서 화를 내며 저주나 뿌리던 뼈다귀.
그 녀석이 묘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에 없이 표정까지 더해지니, 그건 아무리 봐도 어느새 이 상황을 즐기는 표정이었다.
‘또라이란 건 알았지만…….’
사연을 알게 되자마자 이사야가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왜인지 알 거 같았다.
“너, 이 자식.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이네?”
“어머. 미래에서 왔다더니, 역시 나를 잘 알잖아? 이게 그 전우끼리 통한다는 이심전심?”
“이심전심? 그 말은 어디서 또 배워 먹어 가지고는.”
“한때 러시아에선 K만 붙이면 먹혔지. 왜? K-뽕이 그득 차냐?”
“……하.”
저 표정 보게. 미래나 지금이나 뻔뻔하기는.
과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은 건가.
이사야는 바닥에 남은 꽁초를 한 번 더 지르밟았다.
그러곤 빙긋 웃어대더니 말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잖아. 너랑 나랑 미래 친구아니냐? 거기다 전우라며?”
“그래서?”
“그런 전우가 마침 위기에 처해 있잖아. 너도 알고 왔지? 나 마피아랑 한판 뜨고 있는 거?”
“……X바.”
이쯤 되면 왜 웃어대는지는 보였다.
아니 알 수밖에 없다.
“마침 미래의 전우 씨가 와줬으니 도와 달란 거지.”
“뻔뻔 레벨은 이때부터 만렙이었네.”
“야. 이건 뻔뻔한 게 아니지.”
그녀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제 딴에는 제 모습에 취한 거 같다만, 내 눈엔 얼굴에 큼지막한 멍을 달고 있는 빙구였다.
어? 빙구가 아직도 말을 하네?
“까놓고 말해서 아직 우리가 진짜 친구는 아니잖냐. 우정을 나눈 건 미래지 지금은 아니잖아?”
“……하.”
그건 맞다.
녀석과 내가 서로 마주하던 미래.
전장을 헤쳐 나가며, 마왕을 깨부수자고 단합했던 그 미래는 없다.
이게 현실이지.
“야야. 그렇다고 그런 표정은 짓지 말고.”
“됐고.”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한번 우정이란 거 쌓아보자. 알잖냐? 나는 적어도 빚을 받으면 그건 확실히 갚아.”
이 말은 맞다.
이 녀석은 은혜는 은혜로, 원한은 원한으로 갚는다.
그 부분은 신용이 있다. 문제는.
“갚는 방식이 너 꼴리는 대로 해서, 문제지, 이 새끼야!”
“……진짜 미래에서 오긴 왔나 보네. 그래서 안 할 거야? 응?”
와, 저 뻔뻔하게 해달라는 표정 보게.
김시연이 나한테 당할 때 기분이 이런 거였나.
아마, 지금 거울을 보면 그녀 표정이랑 내 표정이 똑 닮았겠지? 젠장.
“그리고 잘 생각해 봐라. 지금 네가 나 도와줘야, 나도 널 돕지 않겠냐? 당장 내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혼자 마피아한테 비비다가 뒤질 상황이지.”
“꼭 그렇게 더럽게 말해야 하냐.”
“팩트잖냐. 후…….”
녀석의 말도 맞기는 했다.
유보라와 마리가 없는 지금.
머리를 믿고 갈 만한 건 이사야다.
경험이 많지 않은 현재도 이리 영악하게 구는 걸 보면 머리는 여전히 팽팽 돌아간다.
‘하기는 뼈다귀만 있는 거보다는, 뇌가 살아 움직이는 게 핑핑 돌기는 하겠지.’
신용도 확실하다.
도와만 주면, 이 뒤에는 나를 도와주겠지.
그게 전력이 될지, 슬금슬금 게으름을 부리는 게 될지는 그 뒤 문제고.
“어쨌든 콜? 이번만 도와주면 나도 잘해 볼게. 어차피 미래가 그딴 최악이면, 나도 열심히 할 생각이야. 발버둥이라도 쳐 봐야 하지 않겠냐?”
어느새 녀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요청을 하고 있으니.
어쩌랴.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지 않겠어?』
발버둥이란, 저 말. 보기보다 부끄러움 많은 이사야 저 녀석이 부탁할 때 쓰는 말투인데.
결국 내 대답은 정해져 있을는지도 몰랐다.
“알았다. 새꺄. 가자, 가.”
“오케이!”
일단 급한 불부터 꺼 줘 보자.
* * *
부부 사이도 보지 못한다는 뼈도 본 사이인데, 이사야는 나를 호텔 방 바깥으로 내몰았다. 보아하니 전투복을 입어야 해서인 거 같은데.
‘귀찮게.’
이쪽에선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귀찮을 뿐이었다.
전생에 온갖 꼴을 다 본지라, 녀석은 전우일 뿐이거든.
어쨌거나.
“가자.”
사령 술사 주제에 등 뒤엔 도끼를, 몸에는 방어력 높은 방어구를 걸친 이사야.
그녀가 나오자마자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급히 가는 게 낫긴 하지.’
당장 호텔 방에서 한바탕 했거니와 마피아에 쫓기는 이사야다.
여기서 시간 더 벌려놔 봐야 일이 복잡해지니 우린 급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한창 생각하긴 했다.
근데 내가 호구는 아니잖냐.
근데 당장 이사야부터 구해 주는 게 억울하긴 했거든.
해서 새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만 넘기면 내가 고생한 거보다 백 배는 굴려 주마.’
굴려 주겠노라고.
백 배가 뭐냐. 천 배, 만 배 굴려줄 생각이다. 굴려도 안 되면, 내 손으로 공허에 쳐 집어넣어 줄 거다.
내가 너무 깊이 생각했던 걸까.
반보쯤 앞서 걷던 이사야가 쓸데없이 눈치는 좋아서 내게 물어본다.
“너 무슨 생각하는데 그리 진지해?”
“네가 말 안 들으면 흑역사를 어디까지 꺼낼까 하는 계산 중이야.”
솔직히 말하자 질린 표정을 짓는 이사야.
“……미래의 나 새끼는 대체 뭐지.”
“열심히 할 거지?”
“당연하지.”
그러면서도 이사야는 걸음을 재촉했다.
호텔은 나선 지 오래고. 운하로 뭉쳐있는 시가지를 벗어나 어느새 외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마피아의 끄나풀로 의심되는 것들이 우리 둘을 보면 어디론가 연락을 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그 모든 걸 무시하고 빠른 속도로 직행했다.
어느새 도시는 우리 뒤에 있었다.
‘뭔 마피아 본부가 이리 외곽에 있어?’
이쯤 되자 슬슬 이상함이 느껴졌다.
방향이 영 이상했다.
마피아가 도시 외곽에 지낸다거나 하는 건 옛말이다.
현시대의 마피아는 권력도 쥔지라, 도심지 가장 화려한 곳에 살곤 했다.
원래 나쁜 놈들이 사는 건 화려하니까.
근데 여기부턴 아무리 봐도 마피아 본부가 있기엔 초라한 곳이었다.
황량하기까지 했다.
‘뭐냐?’
이사야, 마피아와 전투를 끝내기 위해 내게 도와달라 했던 게 아니었나. 그런데도 영 방향이 이상해 물음을 할 찰나.
거대한 콘크리트 벽 앞에서 그녀의 걸음이 멈춰 섰다.
“도착했다!”
여기. 마피아와 도무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