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붉은 기가 도는 부스스한 곱슬머리.
삐쩍 마른 월척의 손은 어느새 내 품으로 향해 있었다.
겉으론 실수로 나랑 부딪친 척 신음을 흘리면서도 손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의 목적은 훤히 보였다.
‘소매치기……! 공항을 나오자마자 소매치기라니. 크흐. 역시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냐.’
감탄스럽게도 범죄 목적이다.
손은 꽤 재빠르긴 했다.
헌터라도 최하급 능력자라면, 저도 모르게 품을 뒤지는 손길을 놓칠 수준이다.
하지만 보는 눈은 부족했다.
쯔쯧. 몬스터가 날뛰는 이 미친 세상에, 동양인 남자 하나가 공항에 나서는 걸 보면 알아서 몸을 사려야 하지 않나?
무려 보드카 나라 러시아에 혼자 온 몸인데, 뭐라도 하나 믿는 게 있겠거니 하고 말이다.
보아하니, 제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
“어딜!”
“억! 놔요!”
월척의 손은 이미 내 손에 잡혀 있었다.
아, 물론 빈손인 채였다.
고작 이런 소매치기 따위가 내 물건을 훔쳐 갈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내 품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거든. 죄다 그림자 주머니에 들어가 있으니까.
그래도 품에서 하나는 꺼내는 데 성공한 거 같다.
“이이익! 어서 안 놔!?”
“이게 품을 뒤져 놓고 어디서 성질을 부리고 앉았어.”
바로 성깔.
“뭐, 뭐!? 뭔 곰이 뒤 텀블링하는 소리야, 그게. 미쳤으면 정신병동에나 가지, 이 나라는 왜 겨와서는…….”
“히야. 입 한번 걸걸한 거 보게.”
아 정정하자. 입도 더러워진 거 같다.
“크흐윽……! 어서 놓기나 하라고!”
어쨌건, 녀석은 내게 잡힌 손목을 계속해 빼내려 하고 있다만.
될 리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손을 잡아끌어 봤자다.
고통스러운 건 자기 자신이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소매치기 녀석.
“놔 주세요. 제발 놔달라고요!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말로 하자고요.”
이제 와서 내게 애원하며 빌어보지만, 놈에 대한 처우는 정해진 지 오래였다.
그 처우 뭐냐고?
“너로 정했다.”
“뭐? 뭘 정해. 꺼윽!?”
꽈드득-!
손목을 꺾어 주며, 고통스러워하는 놈에게 말을 해 주셨다.
“끄아아아악!”
“재능 없는 일은 그만두고, 너 나랑 일 좀 하자.”
“뭔 일?”
“현지 가이드, 어때?”
“미친 새끼!”
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현지 도우미가 되어 달라고.
“대답은?”
“끄아악. 이 미친 새끼가아아아! 할게! 한다고오오!”
전직을 한 게 이리도 기쁜 건가.
상대는 주변이 놀랄 정도로 기뻐하며(?), 전직 요청을 받아 주셨다.
* * *
“저기가 피의 정원이야. 지난번에 사건 하나 있어서 진짜 피도 들어가 있다. 어때, 멋지지?”
넉살이 좋은 건지. 품에 있던 보드카를 처마시고 미쳐 버린 건지 모를 가이드 세르게이.
호텔이나 안내하라 했더니, 이 녀석은 정말로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었다.
“폭탄 테러 일어났던 데를 뭐가 아름답다고. 호텔이나 안내하라니까, 게이야?”
“어 씨. 세르게이라고.”
“애칭이지. 보통 친근함의 표현으로 줄여 부르잖아?”
“그딴 걸 애칭이라고 하는 네놈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
“나는 방금 전에 처맞아 놓고 넉살 부리는 네 정신 상태가 더 의심스러운데? 어때, 한 번 더?”
“…….”
한 번, 침몰을 시켜 주고 나서야 세르게이는 입을 더 놀리지 않았다.
놈이 조용해지니 주변이 눈에 들어 왔다.
‘볼 만하긴 하네.’
운하를 중심으로 한 온갖 관광 명소가 모여 있는 게 상트페테르부르크다. 피의 정원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있는 관광지가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래도. 시간이 늦은 만큼 사람은 적어야 할 텐데. 이리 많다라.
“야, 세르…… 아니. 게이야.”
“그냥 붙여 부르지?”
“됐고. 너는 나한테 당하고 배운 게 없냐? 왜 사람을 불러?”
이놈이 일 절만 하면 될 것을.
이 절까지 하겠답시고, 몰래 사람을 불러올 줄이야.
어느 샌가부터 사람이 많아지나 싶었는데.
이미 내 주변을 싹다 포위하고 계셨다. 이게 그 인터넷으로만 가끔 보던 보드카 형님들의 의리인가?
“미친놈아! 넌 뒤질 준비 해라.”
“……미친놈.”
거기다 가장 정상인 나를 보고, 미친놈이라 하면서 저 패거리에 달려간다고?
“매를 버네. 벌어.”
아무래도 내 전용 안내자들이 늘어날 기세다.
* * *
“헤헷…… 여기, 여깁니다요.”
게이. 아니 세르게이는 앞니가 두 개 빠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셨다.
뭔, 뇌절도 아니고.
소매치기 실패했다고 동료까지 부를 줄이야.
그런 동료가 서른은 더 넘게 와서 다 덤벼들 줄은 나도 몰랐다.
이게 그 대륙의 기상인가.
“빠진 앞니로 숨구멍 좀 만들어주니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응?”
“더, 덕분입니다.”
“그래. 덕분이지. 치료비도 안 받는데 감사해야 할 거야.”
“…….”
대륙의 기상을 치료해 주는 데는 주먹이란 큰 알약이 최고였다.
알약을 한 움큼씩 먹고, 그 부작용으로 이가 빠진 뒤엔 올바른 안내를 해주셨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이, 호텔 아스토리아.
이 관광도시에서도 꽤 알아주는 호텔 중 하나였다.
과연, 의리 넘치는 형님들이 있으신 곳이라 그런가.
이를 지키기 위해 돌아다니는 헌터의 수준도 최소 등급이 10 이상은 되는 듯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호텔 방을 잡았다.
“헤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까 합니다. 형님.”
그러자마자 어느새 나를 형님으로 모시는 세르게이가 몸을 내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턱 하니 잡고 봤다.
“왜, 왜요?”
“아직 일할 게 하나 더 남아 있어서.”
내 잡음에 불안하게 눈동자를 떠는 세르게이.
어쭈?
방의 침대와 나를 번갈아 보는 거 보게.
이 녀석 뭘 생각하는 거냐.
“제, 제가 아무리 미친놈이라지만 그런 취향은 아닌…….”
“미친놈아. 나도 아냐.”
퍼어억-!
“꺽…….”
하여간 가만두면 매를 버는 놈이었다.
‘이런 놈을 갖다가 물어봐야 하는 게, 영 아니긴 하다만. 아까 패거리를 모으는 걸 보면 뒷골목하고 연관은 있을 거니까 어쩔 수 없나.’
영 믿음이 안 가는 녀석인데.
하지만 어쩌겠나.
현재론 목마른 내가 우선 이 녀석을 통해서 알아보는 걸 시작할 수밖에.
“미친 소리 그만. 취향은 존중해 주지만, 더 하면 선 넘는 거야. 어쨌거나 안내는 이제 됐고. 사람 하나를 찾았으면 하는데. 아는 사람도 많은 거 같은데 도와줄 수 있지?”
“제, 제가 돈은 훔쳐 올 수 있어도…… 헙.”
물어보자마자 내빼려는 세르게이.
하지만, 그 앞에 러시아 루블화를 턱턱 쌓아대자 놈은 입을 다물었고.
어느새 내 앞 건너편에 자리 잡아 손을 제 곱슬머리처럼 싹싹 비벼댔다. 누구든 찾아줄 기세.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죠? 누굴 찾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친구 하나를 찾고 있는데. 이름이 이사야라고 나랑 다르게 미친놈이긴…….”
“……허업.”
이사야란 목소리에 놈의 눈이 커진다. 모르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새끼? 너, 이사야가 누군지 알고 있네?”
“모, 모르는뎁쇼?”
모르는 척을 해 보지만, 주먹이란 알약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게 해 줄까? 싫으면 숨구멍 네 개. 콜?”
“……젠장.”
덕분에 일이 쉬워질 거 같았다.
* * *
이사야란 이름 자체가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찾아보면 성경에서나 예언자 이사야로 비슷한 이름이 나오는 정도.
정교회가 퍼진 러시아에선 그러기에 이사야란 이름을 잘 짓지는 않긴 했다. 성경에선 선지자로도 알려진 자였으니까.
‘얘는 여기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그런 이사야를 찾는다 하니 세르게이가 덜덜 떠는 걸로 봐선, 이 녀석은 여기서 선지자가 아니라 미친 자로 통하는 게 분명했다.
“차, 찾아는 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고. 찾아만 오면 이 돈이 다 네 거야.”
몸을 덜덜 떨면서도, 눈앞에 있는 큰돈에 대한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 세르게이.
그는 당장 찾아오겠다며 앞으로 나섰다.
나가기 전까지 돈을 바라보던 탐욕스러운 눈빛.
그로 봐선 무슨 수를 쓰든 데려올 기세였다.
“어떻게든 찾아오겠네.”
어쨌거나, 일을 시키긴 시켰다.
오늘은 여기까지.
저런 놈한테 믿고 맡길 수만은 없다. 나도 내일 바깥에 나가긴 해야 할 거다.
나 자신도 이사야를 찾아 거리를 떠돌아 봐야겠지.
“문제는 어디부터 탐색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데. 리치 시절에도 미친놈이니까. 사건이 휘말리는 곳만 찾아다니면 되려나.”
참으로 바쁘게 하루를 보냈다 여기며.
나는 몸에 쌓인 피로를 샤워로 날려 보냈다.
그러곤 가운 하나를 입은 채 널브러져 머리론 계획을 짜나갔다.
“만나도 문제긴 하네. 어떻게 설득하냐. 흐음…… 이게 먹혀야 할 텐데.”
[당신은 어두운 사령의 저주를 받고 있다.]
[당신은 어두운 사령의 저주에 저항하는 데 성공했다.]
…….
물론 계획을 짜고 있는 나의 바로 옆엔, 놈에게 줄 선물이 여전히 내게 저주를 뿌리고 있었다.
뼈에 깃든 악령의 저주가 들어올 때마다 오싹오싹함이 느껴진다만.
나는 그조차도 즐겨 가면서 머리를 굴려 갔다.
안 그래도 잠이 들 때까지는 계속해 이리 머리를 굴릴 참이었다.
“괜히 감상에 빠졌다가는, 또 유보라나…… 마리 생각이. 씁. 이거, 또 생각해 버렸네.”
이런 식으로 쉬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왜인지 찾지 못하게 된 마리나 유보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엉켜왔기 때문이었다.
“썩을……! 대체 뭐 어쩌란 거냐. 유보라. 아무리 봐도 이번 네 계획은 실패라니까? 회귀를 했는데, 너란 녀석은 없잖냐. 후…… 이건 망한 거라고.”
웃긴 건, 생각을 하지 말자 하니 더 떠오른다는 건데.
이게 그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떠오르는 그런 효과 같은 거냐.
여기까지는 아무리 나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짜아악-
“정신 차리자고. 큿…….”
애써 추슬렀던 정신이 사그라지는 듯한 느낌에 나는 내 뺨을 쳐올릴 수밖에.
왜인지 진심이 들어가서 꽤 큰 고통이 왔다만.
정신은 또렷이 차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선가.
바깥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괜히 더 또렷이 느껴졌다.
“음……? 다른 숙박객이 아닌가?”
다른 객실로 들어가나 싶었던 인기척은 점차, 나를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움직임은 하나.
마력의 흐름도 있었다.
‘이능력을 사용했어? 허, 참. 아직도 포기를 못 한 건가.’
이능력이 사용되었음이 분명한 흔적이 느껴지고 있었다.
흔적에서 느껴지는 건 음습함.
어디 가서 범죄라도 저지를 자가 낼 만한 음습함이었다.
“웃기네, 이거. 세르게이 녀석, 제대로 혼을 내줘야겠어.”
도무지 포기를 모를 줄 놈들이구먼.
내가 생각하는 사이 인기척들은 문 앞에 다가왔다.
똑똑-
그러곤 노크.
“뭔데?”
“룸 서비스입니다.”
“푸핫. 나는 룸 서비스 시킨 적 없는데?”
“호텔에서 나오는 기본 서비스입니다.”
스위트룸도 못 구했는데. 기본 룸 서비스라니. 그런 걸 주다간 호텔 망할 거 같은데. 참 되지도 않는 핑계다.
평소라면 욕부터 날리고 보겠다만.
홀로 있다가는 잠들 때까지, 회귀에 대한 부작용으로 정신머리만 어지러워질 거 같은 나다.
‘뭐…… 괜한 잡생각으로 심란한데, 한 푸닥거리 해 봐?’
차라리 속는 셈 치자 생각했다.
딸칵.
그러고 문을 열어 주는 그 순간.
후우우웅-!
거대한 도끼가 나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어?”
뭔가 익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