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뭐야, 이거?!”
앞뒤가 전부 막힌 상황.
나에게 한 대 처맞지 않고선, 다시 열린 균열을 빠져나가지 못할 그 때다.
놈은 내가 예상도 못 한 선택을 했다.
-백 년이고, 천년이고 버텨 주마! 네놈 뒤질 때까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를 하더니.
샤아아악-!
덫으로 설치한 길게 설치한 하데스 사슬 안으로 퓩- 하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원령이 당신을 인지한다.]
그러더니 들려 오는 알림음.
하데스의 사슬에 원령이 들어가고 나서야 울리는 울림과 같았다.
문제는 그 뒤.
“저주를 안 하네?”
하데스 사슬에 들어간 녀석은 내게 저주를 흩뿌리지도, 어떤 기척을 내지도 않았다.
차르르륵-
덫으로 설치했던 사슬을 잡아당겼다.
축소된 사슬에서 볼프가 어딨는지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반응이 없다.
“씁. 희미하게 느껴지는 게 있는 건 확실한데…….”
사슬 안에 있을 볼프가 완전히 인지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놈을 불러들여 영혼의 격이 뭔지 어쩐지 설명 자체를 들을 수 없는 상황.
아니, 그 이전에 한 방 먹이는 거도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되면, 수를 달리해야 했다.
“이러고도 안 나오나 보자. 이미 넌 독 안에 든 쥐다, 이 새끼야. 존재 포식!”
[당신은 존재 포식을 사용했다.]
존재 포식을 이용해 놈의 영혼을 끌어 올리려 했다.
스스로 감옥에 갇힌 악령이 되었으니, 이대로 끌어당기기만 하면 된다 여겼다.
[하데스의 사슬에 있는 영력 일부가 당신에게 흡수됐다.]
[당신은 영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어쭈?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래?”
아주 작은 일부 영혼만 들어왔을 뿐이었다.
내 알기로, 볼프는 수많은 악령의 군집체.
그러한 놈은 존재 포식 자체를 저항해 냈다.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바친 듯 하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왕도 결국 흡수가 됐는데…… 이걸 버틴다라.”
가호의 레벨 자체가 아직 낮아서 그런 건가.
하기야 그때는 존재 포식이 아닌 영혼 포식이었더라도 가호 레벨은 S였다.
그걸 감안하면, 악령 군집체인 볼프를 단숨에 잡아 먹지 못하는 건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 안 가는 건.
“나한테 본체가 한 대 처맞기를 두려워했다 이거지. 하데스 사슬에 들어가 갇히는 거보다, 나를 두려워했어…… 전생엔 이때보다 강할 때 봐도 안 그랬는데 말이지.”
나를 피했다는 그 자체다.
대체 나의 무엇이 녀석을 스스로 갇히게 만들어 낸 걸까.
힌트라고는 단 하나.
‘격’이라는 말.
“으음…….”
격의 사전적 의미야 모를 게 아니다만. 그 진짜 의미는 나로서도 알 수가 없으니, 골이 아파 왔다.
결국 당장 풀 수 없는 문제다.
“이거도 같이 상의를 해 봐야겠네.”
나보단 악령에 더 전문적인 이사야.
그를 만나면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하다.
그때가 되면.
부르르르-
내 시선을 느끼듯, 움직이는 하데스 사슬로부터 놈을 꺼낼 수 있겠지.
“나중에 두고 보자. 아주 뒤질 줄 알아.”
두려움에 찬 듯 떨림조차 멈춘 하데스의 사슬.
스스스스-!
그와 동시 본래 볼프가 들어갔어야 할, 균열도 스러져갔다. 균열을 유지할 힘이 다한 듯했다.
그리고 바로 뒤.
우우웅-!
던전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던전이 끝났다는 의미.
이는 언데드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의 특징이었다.
본래 언데드 리자드맨만 싹 쓸어버려도, 일정 시간 뒤에 핵은 모습을 드러나게 돼 있었다.
이런 던전의 경우는 보스 몬스터가 없었으니까.
지금은 예외다.
의식을 진행해 악마를 소환한 경우.
악마를 쫓아내거나, 인정을 받아내야만 던전 핵이 소환됐다.
시스템이 악마를 보스로 치는 셈이다.
때문에 악마를 언데드 던전의 진(眞) 보스이니, 히든 보스이니 부르는 게 전생에 유행하곤 했는데.
그 발동 조건이 쫓아내거나 인정받는 거도 아닌, 감옥에 가두는 거도 포함될 줄이야.
몰랐던 사실이다.
“수백 번은 더 굴러먹은 던전인데, 아직 모르는 게 많다니까.”
하기야, 시스템에 대해 모든 걸 통달했다면 <공허>에 당하는 일도 없었겠지.
이래서 사람이 알고 봐야 했다.
알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하는 거고.
‘그래야 이번엔 공허를 막을 수 있겠지.’
나는 괜히 느껴지는 씁쓸함을 집어삼키며.
푸우욱-
모습을 드러낸 던전 핵을 꿰뚫었다.
물이 빠지듯, 썩은 늪을 구성하던 모든 액체가 어디론가 빨려들어 간다.
그 악취가 사라질 때쯤.
내 몸은 이젠 익숙한 검은 공간 안에 들어서 있었다.
* * *
[당신은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의 행동 결과에 따라서 보상이 정산됐다.]
[당신은 미궁에서 모든 적성 괴물을 살해했다.]
[당신은 괴물의 영혼을 포식하여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미궁 답파 와중에 17등급이 되었다.]
[당신은 최초로 썩은 늪의 숨겨진 의식을 찾아냈다.]
[당신은 악령의 악마 볼프에게 인정받았다.]
[당신은 악령의 악마 볼프의 존재 일부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최초로 썩은 늪의 완전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악마가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신들이 당신을 주시한다.]
[당신의 보상이 정산되었다.]
검은 공간 안.
그 안에서 썩은 늪에서 내가 한 모든 행위에 대한 정리를 볼 수 있었다.
‘검은 공간 안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건 관음증 신일 거야.’
올라간 등급.
의식의 발현.
그에 대한 처리까지.
언제나 그러하듯 무엇 하나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관음의 신이 담당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또한, 이 관음의 신은 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당신은 놀라운 업적을 세웠다.]
[당신은 대량의 경험을 얻어 더 나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당신의 등급이 단번에 2 상승하였다.]
[당신의 기술 : 존재 포식이 상당한 양의 경험을 습득했다.]
[당신이 지닌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의 등급이 E에서 D급으로 상승한다.]
[당신의 지닌 기술 : 그림자 짐승이 F에서 E급으로 상승한다.]
[당신이 지닌 기술 : 영혼 병사가 F에서 E급으로 상승한다.]
[당신은 가호 : 악마를 얻었다.]
강력하기에 이러한 보상을 내게 던져줄 수 있을 거니까.
“음. 관음에다가 더불어, 보상까지 던져주는 걸 보면…… 관음과 보상의 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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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 지한휘
등급 : 19
가호 : 영력 E /쥐쟁이 F /그림자 E /위압 E /살인 F /포식 F / 언데드 E/ 리자드맨 F/ 악마 F
직업 : 근원의 영혼 마법사.
기술 : 존재 포식(F). 영혼 구속(F). 영혼 분리(F). 영혼 감지(F). 그림자 주머니(F). 그림자 제어(F). 영혼 병사(E)). 영기 구체화-영기 폭발(F). 그림자 짐승(E).
마법 : 악령의 절규(D).
특수 : 전투 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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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야, 내 능력치 확인 창이 이렇게 가득 차올랐을 리는 없으니까.
쥐쟁이. 개미둥지. 썩은 늪.
도중에 있는 전장이나 전투가 몇 있었다지만, 대다수의 성장이 던전에서 이뤄진 걸 생각하면. 역시 이곳을 맡고 있는 신, 혹은 체계는 분명 강력한 존재다.
어쩌면<공허>조차도 이곳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가 담당하고 있을 지도.
세계 자체를 관음하고, 평가.
그 존재의 기준으로 보기에 미흡하면 <공허>를 내려 세계를 지워 버리는 걸지도.
꽤 그럴싸한 생각이지 않나.
그렇기에, 허공에 대고 미친 듯 말을 지껄여 본다.
“그러니 답을 알고 있지 않냐? 대체 볼프 그놈이 왜 나로부터 도망치려 한 건지. 어떻게 하면, 공허에서 도망칠 수 있는지 말이야. 어이? 알고 있지?”
…….
하지만 그 어떤 답이 내려올 리 없다.
대답을 대신해 나오는 건 수많은 열람이 사라지고 나오는 한 줄.
[당신은 보상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쉽게는 못 알려준다, 이건가.”
나는 짜증을 내듯이, 마지막 남은 한 줄을 손으로 흐트러트렸고.
흐트러졌던 글씨들은 다시 조합돼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호 강화>, <가능성의 기물>
이지선다였다.
가호를 A급까지 단숨에 올릴 수 있는 가호 강화와 가능성의 기물이라. 가호 강화를 선택한다면, 올릴 만한 가호는 넘쳐났다.
당장 이번에 얻은 가호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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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악마 F]
이 세계에 존재치 않는 악마를 흡수하여 얻을 수 있는 가호.
가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의 격이 점차 상승할 수 있다.
스스로 지닌 힘의 양이 증가하고 질이 올라간다.
악마의 적대자 천사와 마족을 상대로 전력이 증가한다.
-모든 악마는 생각하는 존재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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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상승만 시키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꽤 될 게 분명했다.
‘이건, 전생엔 없던 녀석인데 말이야.’
보아하니 가지고 있는 거만으로 힘이 강력해지는 가호가 악마다. 전생에 볼프가 지닌 악령을 흡수해도 나오지 않은 게 왜 나왔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설명만 보아도 가호 등급이 올라가면 꽤 유용할 건 분명했다. 가만있어도 힘이 점차 상승하니까.
가만있어도 강해지다니.
게임으로 치면 오토(AUTO) 돌리는 거와 같지 않나.
본래라면 이걸 골랐을 거다.
근데.
“으음…….”
그 옆에 있는 가능성의 기물.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다만. 이번에 겪어 본 저 기물의 사용처는 무려 뽑기권이지 않은가.
‘대체 뭔 조건으로 돌아가는 뽑기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저 가능성의 기물이 없었더라면.
애당초 볼프를 불러내는 것도 불가능했을 터.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쓰레기.
“또 다르게 보면…… 변수 자체를 늘리는 보물이란 말이지.”
회귀를 해 버린, 나로서도 모르는 일을 벌어지게 하는 귀한 물건이다.
전생에 없던 일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미래는 달라지게 될 테니까.
‘미래가 달라지면 공허가 내려앉는 최악은 피해갈 확률이 점차 높아질지도. 이 이상 최악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내가 그리 똑똑하진 않더라도 이 정도는 안다.
변수를 만들면 만들수록 최악의 엔딩은 피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다.
“씁. 가호가 아깝긴 한데,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네. 가능성의 기물, 내놔.”
투우웅-!
말이 끝나자마자 반응이 왔다. 허공에서 가능성의 기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걸 바로 받아, 품으로 집어넣었다.
“이걸로, 변수 하나를 또 늘릴 수 있겠지.”
가능성의 기물을 고름으로써 당장 힘이 강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품에 구슬 하나가 들어갔을 뿐이다.
그래도 기대감은 가득 차올랐다.
품에 둔 가능성의 기물이 다음번엔 대체 어떤 변수를 일으킬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변수는 곧 내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걸 테니까.
어떤 변수든 가져다주면 좋다 생각하며, 나는 검은 공간이 무너져 내려가는 걸 지켜봤다.
조각난 세계인 던전이 원자 단위로 쪼개지듯, 이 안의 검은 공간도 모든 보상 수령이 종료됐기에 사라지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다음엔 또 가능성의 기물이 어떤 변수를 가져다줄까 생각을 하다가, 본래 내 계획에 없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가만…… 변수라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