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변질된 의식이 공간 균열의 가능성을 찾아냈다.]
[찾아낸 가능성 : 크기, 좌표, 폭발, 역소환, 고정, 전이…….]
“균열에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는 건가.”
제단을 쌓아 만든 의식.
의식의 목적은 악마 소환. 소환 자체가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내서 해내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크기는 균열 그 자체의 규모겠네.’
좌표는 벨베르의 위치.
폭발은 의식 실패 시 일어나는 가능성.
역소환은 되레 날 악마가 있는 차원으로 불러들이는 걸 수 있었다.
전이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옮기는 거.
고정은 저 게이트 자체를 의식이 끝난 이후에도 발현되게 하는 거겠지.
그야말로 균열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가능성의 기물이 열어젖히는 거라 하면.
“가능성의 기물. 그거, 뽑기용 열쇠였던 거냐.”
일명 뽑기. 요즘 말로 이 시국에 가챠.
그 가능성이 1%만 돼도, 저거 해 볼 법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법의 도박 아닌가. 가능성의 기물이 그걸 열어젖히는 물건이었다니.
“이건 못 참지. 미리 알았으면, 사슬에다가 쓸 걸 그랬잖아?!”
예정된 소환 의식에 쓰일 줄 알았더라면.
그림자 주머니에 가능성의 기물을 가져오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숙소, 아니 김시연을 시켜서 사재 금고에라도 맡겼을 거다.
“젠장 할.”
왠지 모를 아쉬움을 삼키고 있을 때. 기물이 선택을 끝마쳤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선택되었다.]
[선택된 가능성 : 규모.]
[가능성 : 규모가 발현되었다.]
[축소 50%, 유지 29%, 소멸 20%, 확대 1%]
“진짜 도박이네 저거. 근데 확대라고 해서 좋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능성이 튀게 될는지.
마음 같아서는 변수가 없는 유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최악인 소멸을 절대로 안 될 일.
마음이 절로 졸여졌다.
‘생각해 보니 억울하네.’
억울하기도 했다.
회귀한 김에 미래 정보로 꿀 좀 빨아 강해지려는데.
계획은 어그러지지를 않나.
이제는 소환 게이트를 여는 거조차 이래 미친 듯 돌아가고 있었다.
“아오, 걍 좀 쉽게 가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능성이 선택됐다.
[1%의 가능성에 당첨!]
“오 당첨?! 아니, 저게 좋은 건지 어떻게 알아?”
선택된 가능성은 확장.
최악의 소멸도 아니고, 차악인 축소도 아니다. 하지만 균열이 커졌을 때의 결과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곧 알게 될 터였다.
균열의 크기는 미친 듯 커지기 시작했으니까.
* * *
쩌어어어억-!
경험상 균열의 크기는 곧 소환되는 개체의 강함이었던가.
‘좀 알아둘 걸 그랬어.’
내 키만 하던 균열이 족히 두 배는 커졌다.
이대로라면 여기서 소환되는 벨비르가 얼마나 강해져서 나올지 모를 상황.
[변질된 균열에 의해 하급 악마 벨비르가 대체되었다.]
[변질된 균열에 걸맞은 악마를 발견했다.]
[발견된 악마가 변질된 균열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벨비르가 하급 악마라는 걸 처음 알기가 무섭게, 열어 젖혀져 버린 균열.
‘이거 당첨이 아니라, 망한 거 아냐?’
이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급 악마 벨비르가 튀어나오는 균열의 크기보다 지금 균열 크기는 두 배가 컸다.
나는 영혼 병사를 추가로 소환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싶은 순간.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건.
-영혼 냄새가 파다하게 퍼져 있어서 나왔더니, 그 주인이 인간이라?
다행히 나도 아는 존재였다.
커다란 지팡이와 로브 안에 거짓된 육체를 가진 자.
악령의 주도자라 불리는 악마, 볼프.
악마가 되기 이전, 악령에 씌어 버려 미쳐 버린 존재.
“네가 거기서 왜 나와?”
그리고.
전생을 통틀어, 최후의 칠 인만큼이나 보고 싶은 녀석이 나와 버렸다.
왜냐고?
꽝이 아니었으니까!
‘이거 진짜 당첨이었네!?’
* * *
오랜만에 놈을 보자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흐흐흐.”
-뭐지, 왜 웃는 거냐. 역시 인간. 공포에 질려서 미쳐 버린 것이냐!
놈은 나와 상극이었다.
쉽게 말해 물이 불을 잡아 먹듯, 한쪽이 한쪽을 잡아 먹는 관계랄까.
참고로 여기서 물은 나고, 불은 쟤다.
영을 부리는 악마 따위.
영혼 자체를 부리는 영혼 술사에게 잡아 먹힐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까.
그거도 이젠 술사를 넘어 마법사가 된 나로선.
“너, 잘 만났다.”
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이집트에 있는 던전을 가야 소환할 수 있는 놈이라 아쉬웠는데 말이야.’
이렇게 되면 계획이 빨라지게 되니까.
1%의 확률이라더니.
진짜 최고의 당첨이었다.
고오오-!
나는 입이 째져라 웃으며, 놈의 앞에서 거대한 영기를 일으켰다.
몸에 내제된 영기를 일으키며 영기를 비대하게 살찌우는 순간.
-어찌 인간이……!
놈이 당황했다.
* * *
놈의 당황.
내게 있어 처음 본 광경은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내게 한 번 당해 봤던 그때도 저랬다.
인간 주제에 어찌 저리 영력이 강하냐며 당황을 했었더랬지.
그때도 놈이 악령을 불러일으키면 쳐 패며, 악령을 빼앗았다.
빼앗은 악령을 내 영력으로 부풀려 한 번 더 패 주었었다.
팰 때마다 영기가 툭툭 튀어나왔었다.
보물을 쥐고 사는 황금 고블린처럼.
그때만 생각하면 그런 꿀이 더 없었다.
‘악마기에 마지막의 마지막에 균열을 통해 결국 도망을 쳐 버려서, 아쉽기 그지없었다만.’
그렇다 해도 놈은 최고였다.
그 꿀을 생각지도 못하게 여기서 더 마실 수 있을 줄이야.
“너는 기억을 못 하겠다만, 한 번 더 맞자.”
나는 놈에게 달려가려, 발을 박찼다.
순식간에 놈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져 갔다.
두근- 두근-
어떻게 또 뜯어먹을까 한 생각으로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
내가 다가갈수록 놈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동시에 나로선 예상도 못한 반응을 일으켰다.
-인간의 영혼이 이런 격을 지닌다고!? 이 몸의 착각이 아니었단 말이냐. 말도 안 되는!
“뭐라는 거야?”
영혼의 격을 논했다.
‘전생에 마주쳤을 땐 그런 말은 없었는데?’
이전에 봤을 때도 그러한 말은 없었다.
몇 번이고 소환될 때마다 좋은 영기 자판기가 돼줬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격이란 말인가.
놈은 알 수 없는 말을 한 주제에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너 설마 튀고 있냐?”
-커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만 있었으니까.
* * *
애당초 내가 유리한 전투긴 했다.
놈이 무슨 악령을 부리든 간에, 나는 그걸 흡수해 버리면 될 일이니까.
가끔가다 사용하는 악령 마법이 무섭기야 하다만.
‘수법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걸릴 리가 없잖아?’
이미 다 아는 수법에 두 번 걸릴 내가 아니었다.
뭘 쓰든 다 피하고 파훼할 자신이 있었다.
근데 이건 좀.
“이리 안 와!?”
-크흐으…… 이 몸이 인정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악마 볼프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게 대응하기는커녕, 계속해 몸을 뒤로 내뺐다.
안 그래도 내가 있는 곳은 썩은 늪.
내가 부리는 병사와 짐승들과 달리 내 육체는 정상이다.
때문에 썩은 늪에서 놈을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도망을 치니 쉽게 잡을 수 있을 리가!
“어서 잡아!”
[당신의 명령을 영혼 병사가 수행한다.]
[당신의 명령을 그림자 짐승이 수행한다.]
이 몸으로 힘드니, 늪에 저항을 받지 않는 병사까지 부려봤다.
-헹. 이까짓 것! 느리게 하는 게 어렵겠느냐! 악령 행진!
하지만 소용없었다.
볼프도 악마 자리를 거저 따먹은 건 아닌 듯했다.
우우우웅-!
악령술을 이용해 내 병사들의 진격을 쉽게 막아냈으니까.
‘아무리 봐도 전력이 약해진 건 아닌데.’
병사들에게 쓰는 기술로 봐선, 놈은 분명 전생의 내 기억대로 강력한 개체였다.
나와 상극이어서 문제일 뿐.
본래는 강력한 악마 중 하나가 맞았다.
“씁. 잡 기술만 드럽게 많네.”
-어허 잡 기술이라니!
“아니꼬우면, 일로 튀어 오던가! 너, 또 내빼고 앉아 있지!?”
-재앙으로부터 잠시 대피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놈은 계속해 몸을 내빼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라도 끌 듯이.
-그래. 내가 인정을 해주마. 네놈을 인정해 준다고!?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었더냐?
[당신은 악마 볼프의 인정을 받았다.]
“인정은 뭔 인정! 너 새끼, 어서 일루 안 와? 한 대, 딱 한 대만 처맞자.”
이쯤 되면 오기가 생긴다.
놈은 유체화된 제 몸을 부리며, 내 손길을 피해 내고 있었다.
따라잡는다 싶으면, 제 몸의 악령 일부를 터트려서라도 거리를 벌려댔다.
[당신은 악령의 저주에 휩싸였다.]
[당신은 악령을 흡수하였다.]
[당신이 지닌 영기가 대폭 늘어났다.]
그때마다 내가 지닌 영기가 늘어나기야 했다만.
이쯤 되면 영기가 늘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대 패는 게 내겐 중요했다. 차오른 오기가 슬슬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그 기색을 읽었는지, 볼프는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래! 기술! 네 녀석 인간들이 좋아한다는 기술을 주마!
“기술!?”
기술이라.
순간, 넘어가고 싶기는 하였으나.
“씁. 이게 아니지. 어차피 인정받았으니 기술은 나중에. 우선 와서, 한 대만 처맞자니까?”
-어허. 그거만으로 넘어가자!
오기에 눈이 뒤집힌 내가 그런 걸 들을 리가 있나.
어떻게든 볼프에게 한 방 먹이려 사슬을 휘두르며 달려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저 새끼 보소……?’
나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겉으로 봐선 무작위로 움직이는 듯한 볼프.
하지만 잘 보면 놈은 일정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분명 한 곳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듯이.
그 중심은 처음 녀석이 들어 왔던 균열이 있던 곳이었다.
‘설마, 그건가?’
그걸 깨닫자 감이 확 왔다.
놈은 나를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더 멀리 가지 않고 균열 가까이 있다는 의미는 명백했다.
균열이 다시 열린다는 것.
‘하기야 소환한 악마를 이기거나 인정받으면 균열이 다시 열리긴 했지.’
전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는 확실했다.
결국 놈은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에게 단 한 대도 맞지 않고서.
‘보자. 전에 경험을 생각하면…… 길어야 몇 분 정도면 균열이 다시 열리겠네?’
내가 그 꼴을 볼 수 있을 리가 있나.
인정이고 나발이고 상관없다.
갈 때 가더라도 한 대는 패주고 가야 했다.
고로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네, 네놈 뭔 짓이더냐!
“대놓고 덫 설치다. 새꺄.”
스스스스스-!
하데스의 사슬을 이용해 덫을 설치했다.
나는 균열이 있던 곳 중심에 섰다.
최대로 늘린 하데스 사슬을 넓게 펼쳤다.
거미줄의 형태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곳곳에 영혼 병사들을 배치해 틈을 없애버렸다.
-키이이!
그림자 짐승은 특별히 내 바로 옆에 위치시켰다.
그림자 짐승의 거대한 몸이 부풀어 오르며, 내 주변을 덮었다.
이 정도라면 균열이 다시 열려도 볼프가 빠져나갈 틈은 없어진다.
“짜잔!”
완벽한 덫이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천라지망이다!”
-……망할 놈이!
소설에선 뚫으라고 있는 게 천라지망.
하지만 과연 이 천라지망을 저놈이 뚫을 수 있을까!?
‘절대 없지.’
나갈 곳은 균열 하나뿐인데, 내가 꽉 틀어쥐고 있으니 놈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결국 놈이 선택할 건 하나다.
“자, 어서 일루와. 처맞고 가자고.”
균열을 빠져나가기 전에 나한테 한 대는 처맞고 나가는 거.
그건, 오기가 복받쳐 오른 내게 있어 최고의 승리였다!
우우우웅-!
“타이밍 좋고!”
마침, 기다렸다는 듯 균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에잇! 빌어먹을 내 여길 다시 선택할 줄은 몰랐거늘!
볼프는 내가 전혀 예상도 못한 움직임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