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내 두 번째 요청.
그 요청에 대한 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내 몸은 이미 던전 폐쇄 구역, 일명 던전 감옥 안에 있었다.
쉽게 말해 던전을 찾아왔다는 이야기.
그것도 이 안에 장비로 무장하고 있는 건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즉, 사냥을 나가는 게 나 하나뿐이라는 거다.
홀로 사냥을 한다는 소리지.
그것도 전에 사냥한 지 고작해야 이틀밖에 안 돼서 말이다.
이게 내가 원한 특혜다.
알다시피 본래 던전은 홀로 가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나중 가서야 던전 브레이크가 쉬이 일어나 버리니, 이딴 규칙이 없어지지만. 어쨌건 지금으로선 안 되는 게 그 규칙이고 법이었다.
한데 봐라. 미래 그룹에 부탁을 해 주니, 바로 이렇게 들어주신다.
‘크흐. 이게 권력의 맛이지.’
물론, 그 대신에 들어줘야 할 조건이 나도 몇 개 생기기야 했다만. 어쨌건 기분은 오랜만에 째졌다.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조크든요(좋거든요).
“거봐, 하면 된다니까. 김시연 실장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요.”
“……전달드리죠. 그 전에 김시연 실장님께서 먼저 전달해 달라는 말이 있으시긴 합니다.”
“뭔데요?”
“다음부터 이런 걸 하려면 성과를 더 가져오든지, 탈퇴를 해 버리든지 하시랍니다.”
“휘유. 세네.”
반대로 김시연은 감정이 와장창 무너진 거 같다만.
‘겉으로야 규칙을 무시해도, 제 나름 선이 있는 게 김시연이니까.’
나로선 조종에 성공했다고!
크흐흐.
내가 김시연의 감정을 조종…….
……여기까지.
정신을 찾자.
어째 유보라와 마리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 더 폭주하는 듯한 기분이긴 한데, 완전히 미쳐 버려선 안 되니까.
둘이 사라진 상황에 내가 더 미쳐 버리면 그때 남는 건 <공허>뿐이거든.
즉, 패배란 거지.
이 상황에 더 미칠 만큼 나는 멍청하진 않았다.
“글쎄요. 실장님치고 유독 약하게 나오시는 거 같습니다만. 지한휘 헌터님한테만은 유독 그러시더군요. 그래도 주의를 하시는 게…….”
“알겠어요. 알겠어. 거참, 모시는 실장이 누군지 알 만하게 잔소리가 있으시네.”
“…….”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 폭주할 뿐이다.
그를 위해서 이런 특혜를 원한 거고.
“특혜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지불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나 전해 줘요.”
“꼭 기억하죠.”
그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지불할 거였다.
내가 지불할 대가는 이 미친 세계를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거든.
“그럼 갑니다.”
“살아 돌아오시기를.”
“당연한 소리를.”
그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건, 결국 던전의 진입.
파아앗-
던전 입구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각난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 * *
안 전구역을 바로 넘어서자마자, 날 반기는 건 더러운 악취였다.
“크흐. 미쳤네.”
[썩은 늪]
이 던전의 이름이고, 악취를 표현해 주는 그럴싸한 말이었다.
인기가 있는 던전은 아니었다.
하급 던전이라고 하지만,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가 나오니까.
“무려 언데드지.”
인간이 죽어 나온 좀비 같은 쉬운 언데드도 아니다.
리자드맨이 죽어 만들어진 언데드가 여기서 튀어나온다.
때로 오크 이상으로 전사의 재질을 지니고 태어나는 게 리자드맨.
파충류 특유의 힘을 지닌 녀석의 괴력과 단단한 육신은 그 자체로 무기였다.
“그것도 자연…….”
그런 리자드맨이 언데드로 변화된 게 이 썩은 늪 리자드맨들의 정체.
이런 존재들이 약할 리가 있나.
덕분에 등급은 하급 던전으로 나왔지만, 그 위험도는 높았다. 정부에서 최소 10인 입장 던전으로 체크를 해 놨으니 말 다했지.
모종의 일이 있기 이전까지는 인기는커녕 매번 던전 브레이크 위기를 맞았었다. 나중엔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지원금을 줘 가면서까지 보냈어야 했을 정도.
그 모종의 일 이후로는.
“기회가 없어서 못 오는 곳이었는데 말이야.”
썩은 늪 리자드맨보다, 들어오려는 사람이 더 넘쳐났다만.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어쨌건 나는 미래에 있을 모종의 일을 미리 하기 위해서.
“영혼 분리. 부여.”
[당신은 기술 : 영혼 분리를 사용했다.]
[당신은 영혼 조각을 하데스의 사슬에 부여했다.]
[하데스의 사슬은 당신의 영혼의 일부를 담아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
사슬이 만들어지자마자 반응이 왔다.
그륵. 그르르륵.
여기저기서 괴성이 들려왔다.
좀비라고 하기 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언데드 리자드맨이었다.
살아생전 이미터는 됨직한, 거대한 육체는 좀비의 것으로 변해 있었고. 그 뒤에 달린 꼬리는 뼈만 남았지만 위협적으로 휘둘러지며 내게 거리를 좁혀 오고 왔다.
그뿐이랴.
쌔에엥-!
언데드 리자드맨은 내게 달려오면서도 원거리 공격을 던졌다.
그 손에 쥐고 있었던 뼈 창이 그 정체였다.
급작스러운 투창!
타아앙- 탕.
그러나 그 모든 공격 따위. 파괴 불가 하데스 사슬을 사용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꽤 한다니까.’
막기는 쉬웠으나, 사슬을 타고 흘러들어 오는 무게감이 꽤 묵직했다.
저들이 던지는 투창의 강력함을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한 정도.
거기다 저 강력한 투창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륵!
츠츠츠측-
“우웩. 더런 놈들.”
제 손에서 새끼손가락 마디를 뽑아내고. 순식간에 뼈를 증식. 거대한 투창을 다시 만들어 내 버렸으니까!
저 무한 재생의 투창이 언데드 리자드맨을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놈들이 지난 강력함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르르륵!
-그륵!
놈들은 언데드가 됐어도, 타고난 전사였다.
아니, 정확히 언데드가 되기 이전 전사로서의 전투 방식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전투를 할 줄 안단 의미지.’
타아앙-! 탕!
내게 투창이 먹혀들지 않음을 깨닫자 놈들은 더 빨리 거리를 좁혀 왔다.
살아생전의 몸에 비하면 한없이 느리다만.
쿠웅. 쿵.
거대한 육체를 지녔어도 그 속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놈들이 거리를 좁히는 이유는 하나.
후우웅-! 후웅-!
제 뼈로 만들어 낸 창을 내게 내지르기 위함이었다.
“휘유, 많기도 하다.”
그런 녀석들이 부족 생활을 하는 리자드 종족 특성답게, 그 수도 단번에 20마리 이상이 쏟아져 왔다.
위협적이며 매서웠다.
내가 기술을 사용하기가 무섭게, 이들이 쏟아져 온 이유는 뻔했다.
‘영력을 읽은 거지. 언데드 특징이기도 하고.’
내가 기술을 사용할 때 흐른 영력의 흐름을 보고 온 거였다.
영혼을 잃어버린 언데드에게 있어서, 흘러내리는 영력이라는 건 그 무엇보다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기운이니까.
시간이 멈춰 버린 언데드도 영력을 흡수하게 되면 성장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언데드가 영혼을 지닌 산 자를 발견하면 미친 듯 달려오는 건 기본 상식.
언데드가 등장하는 던전에서 영혼 술사 계열이 천대받는 이유기도 했다.
몬스터가 몰려와서 사냥 난이도가 올라가니까.
어쨌거나, 이러한 영혼 술사의 특색을 떠나 눈앞의 언데드들은 매섭기만 했다.
살아생전의 전투력을 지닌데다가, 언데드 특유의 지치지 않는 특색도 지닌 게 이것들이니까.
하지만, 지금 내게 있어서는.
“자동 몰이라니까.”
차르르륵-
움직일 필요도 없이,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었다.
* * *
촤르르륵-
영기를 부풀려 비대해진 내 몸.
그 영기를 잡아 먹으려 오는 리자드맨에게 던져지는 건 하데스 사슬이었다.
검은 사슬이 공중에 질러질 때마다.
-그르륵!
-켁!
리자드맨들은 썩어 버린 성대로 비명을 질러댔다.
“영력으로 후려쳐지니, 뒤지겠지?”
육신의 고통은 없더라도, 영적 고통을 느끼기에 지르는 비명. 일종의 영혼이 지르는 비명이었다.
그 소리가 제법 괴악하나.
나는 막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콰드드득-!
고통받은 영혼은 죽어서, 악령이 되기 마련이었고.
[원령이 당신을 인지한다.]
[원령이 당신을 저주한다.]
[당신은 저주받았다.]
그 악령은 하데스의 사슬을 타고 들어와서.
“잘 먹겠습니다. 존재 포식.”
[당신은 기술 : 존재 포식을 사용했다.]
[당신은 영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게 영력을 채워 주는 맛있는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영력을 직접 흡수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하데스의 사슬로 흡수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당신은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를 습득하고 있다.]
[악령 습득을 통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한다.]
[당신이 지닌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의 등급이 F에서 E급으로 상승한다.]
악령을 흡수하는 거만으로도, 새로 익힌 마법에 도움이 되고 있어서였다.
한마디로 악령 흡수 하나로 영력도 먹고, 등급은 상승하고, 스킬까지 강해진달까.
일석삼조다.
‘뭐, 아직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부족하다만. 이거야 나중 가서 이해하면 되는 거고. 등급 높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러한 상황인데, 기어이 악령으로 만들어 흡수하는 게 이득이지 않겠는가.
유보라와 마리를 찾지 못하고 계획이 망가지고 있는 현재.
지금의 나는 강해질 수 있는 이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챙겨야 하는 극한의 이득충 상태였으니까.
참고로 일석삼조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나한테 뒤졌으면, 사골까지 우려져야지.”
푸스스슥-
언데드 리자드맨이 죽고 남은 뼛조각과 살점들.
나는 그러한 살점을 사슬을 이용해 한데 모았다.
그 뒤에 내가 해낼 것은.
“영혼 병사 소환.”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당신 영혼의 일부가 주변의 사체에 빙의한다.]
스스스스-
바로 영혼 병사의 소환.
이틀 전 개미둥지에서 한 전투로, 구매한 장비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지금. 언데드 리자드맨의 사체는 좋은 재료였다.
죽여 버린 20마리의 리자드맨이 영혼 병사로 변했다.
그 수가 총 10마리.
전투 중에 손상된 육체를 전부 이어 붙여 만들어진 육체였다.
[당신의 특성 : 전투 지능이 병사를 강화한다.]
이걸로 나만의 전투 병기가 10마리가 생겨난 셈.
그야말로 사골까지 우렸다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내 보기엔 아직 한 발 더 남아 있었다.
“나는 우릴 게 하나 더 남아 있지. 헤쳐모여.”
-…….
-…….
쿠우웅. 쿵.
내 명에 따라 한데 뭉친다.
몸을 부풀린 영혼 병사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아닌, 열기의 영혼 병사가 뭉쳐 만든 그림자는 한없이 거대했다.
비대해진 그림자가 가장 커지는 그 순간.
“그림자 짐승 소환!”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 소환을 사용했다.]
[당신은 영력 일부를 분리해 사용했다.]
[당신이 지정한 그림자 일부에 영력이 스며든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소환을 끝마쳤다.
쉼 없이 키운 영력이 쑥 빠져나갈 만큼 다량의 영력이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당신은 그림자 짐승을 소환했다.]
[당신이 소환한 그림자 짐승에 전투 지능이 스며든다.]
-키이이이……!
그그긍-
그러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이언트라고 이름 붙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 짐승!
이전에 소환한 작은 짐승의 수십 배는 됨직한 짐승이 내 곁에 생성됐다.
영혼 병사의 그림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졌다.”
이것이 영혼, 시체, 그림자까지 우려먹는 나의 새로운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