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당신은 보상을 얻었다.]
정산 이후 바로 보상이라.
‘가호의 업그레이드는 없네?’
이전처럼 가호가 주어질 줄 알았는데.
이번은 없었다.
보아하니 포식은 알아서 상승한 덕분인 거 같고.
나머지는 가호 등급을 올리기 위한 모든 경험치를 채우지 못한 듯하다.
하기야, 가호 자체가 등급을 올리기 힘든 걸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애당초 포식이 오른 거 자체가 사기지.’
안 오른 게 당연한 거지, 아쉬워할 필요는 없단 이야기랄까.
하기는 아쉬움을 오래 삼킬 이유가 없었다.
스슷-
수많은 글자의 열람이 사라지고 남은 글귀들이 날 더 놀라게 했으니까.
[당신은 다량의 특별한 보상을 얻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췄다.]
[당신에게 보상들이 주어졌다.]
[당신은 기술 : 영기 구체화를 얻었다.]
[당신은 기술 : 영기 구체화보다 상위인 기술 : 영기 폭발을 얻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 소환을 얻었다.]
[당신은 악령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혼 마법 : 악령의 절규를 습득했다.]
짧게 끝이 날 거라 여겼던, 보상이 길게 이어졌다.
“워. 아예 쏟아 주네?”
<영기 구체화>.
이 기술은 전생에도 가지고 있던 거였다.
기존에 사용하던 영기를 더 쉽게 구체화시켜 주는 기술이랄까.
기술이 있기 이전엔 단순히 영력을 크게 퍼트려서 사용할 수 있는 식이라면, 이건 사물을 빚어내듯 영력을 빚을 수 있게 해줬다.
예를 들자면, 기술이 있기 이전엔 영력 덩어리를 뭉쳐 적을 훅 때린다면.
기술을 얻고 난 이후에는 영력 자체를 주먹으로 빚어서 더 구체적으로 패줄 수 있다는 차이랄까.
‘대충 패는 거랑, 구체적으로 패는 건 차이가 큰 법이지! 암, 암.’
구체화 기술을 크게 올리면, 나중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복잡한 물체도 빚을 수 있게 돼 있었다.
이를테면, 열쇠 구멍!
작은 열쇠 구멍 안에 영기를 비집어 넣고, 즉석에서 열쇠를 빚어내는 거도 가능했다.
심력 소모도가 상당히 크기야 하다만.
딸칵-
던전 안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 때의 그 쾌감. 그걸 한번 느끼면 끝이다.
숙련도를 안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뒤에 바로 상위 기술을 얻을 수 있을 줄이야.”
그게 ‘영기 폭발’!
구체화시킨 영기에 폭발 속성을 심어 내는 게 영기 폭발의 묘미였다.
영기 폭발의 묘미는 물리적 폭발과 영적 폭발을 동시에 해낼 수 있다는 것!
화염 마법사의 폭발과 비교하면 물리적 폭발은 약한 편이지만.
‘진짜는 영적인 폭발이지.’
괴물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지닌 영혼.
이 영혼을 뒤흔드는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제아무리 강자라도, 영혼은 쉽게 단련하거나 강화시킬 수 없는 법이었다.
대다수 영혼은 보통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
그 말은 곧, 꽤 강력한 존재라도 영기 폭발을 사용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단 거다.
타격의 결과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못해도 경직이고. 심할 경우 공포, 절망에 빠져 정신 착란도 일어난다.
한치를 알 수 없는 게 전장인데, 정신이 망가진다라?
‘뒤지는 거지.’
그 어떤 뛰어난 전사라도 전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영혼 마법의 마법 중에 꽤 쓸만한 게 내게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이 둘은 아주 잘 알겠는데.
[그림자 짐승 소환]
이거는, 순간 왜 툭 튀어나왔는지를 몰랐었다.
그러다 생각해 보면.
“으음…… 보아하니 이번에 그림자와 영력을 섞어 쓰는 데 성공해서 준 건가?”
하데스의 사슬에 영기를 불어 넣어 이용하고. 드문드문 그림자도 뒤섞어 이용하지 않았나.
그뿐인가.
영혼 병사의 부서진 몸을 수복하는 데도 그림자를 사용했다.
수많은 병사가 망가지고, 수복되길 반복했다.
두 가호를 수없이 조합하여 사용한 거다.
<가호 : 영혼>과 <가호 : 그림자>를 사용한 걸 던전은 그러한 이용 방식을 꽤 눈여겨본 듯했다.
‘그러니 이런 걸 던져줬겠지.’
결국 던전에서 행동이 가져다준 스킬이란 거 정돈 예상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기술의 기본은 그림자가 될 터였다.
그리고 그것에 영기를 부여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려나?
“폭발도 아니고 소환인데 예상 안 가면 한번 써 봐야지. 그림자 짐승 소환!”
망설일 것도 없었다.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짐승 소환을 사용했다.]
[당신은 영력 일부를 분리해 사용했다.]
[당신의 그림자 일부에 영력이 스며든다.]
-키이이……!
기술을 사용하자마자, 반응이 왔다. 발아래 그림자로 빚어진 작은 짐승이 소환됐다.
[당신은 그림자 짐승을 소환했다.]
[당신이 소환한 그림자 짐승에 전투 지능이 스며든다.]
‘짜잔! 예상대로잖아? 재밌네.’
영혼 병사에 이어서, 바로 새로운 개체 소환이라.
“흐음…… 이거도 폭발에 이어서 연구할 거리가 또 넘치겠는데?”
소환 성공 이후, 바로 느낌이 왔다.
영혼 병사가 그러하듯, 이 그림자 짐승도 그 활용을 위한 연구가 꽤 필요하다는 느낌이!
단순히 소환하는 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크기, 위력, 영기의 조절, 전투 방식까지.
이를 이용하면 생각지도 못한 꽤 많은 전략 전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떠오르는 영감은 많았다.
간단하게는 크기를 키운 짐승에 영혼 병사를 태우는 거부터. 복잡하게는 작은 암살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거 같았으니까.
‘이거 재미있겠어.’
던전이 새로운 장난감을 쥐여줬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악령의 절규].
“이건 솔직히 예상도 안 간다…….”
이건, 내가 수많은 저주를 흡수하는 데 성공해서 얻은 건 분명했다. 전 던전 시작부터 하데스 사슬에 있는 악령들을 정화, 흡수했었으니까.
여기서 멈춘 것도 아녔다.
전생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기까지 했다.
뭐냐고?
바로, 온갖 때가 묻어 있는 인간의 영혼.
‘전생엔 인간 영혼을 일부러 흡수 안 했는데 말이지.’
빌런부터 시작하여 사채업자, 그런 사채업자가 보낸 악질적인 영혼들을 손수 흡수해 냈던 나다.
때가 탄 영혼의 영력들을 쉼 없이 흡수해 왔다.
때 탄 영혼이 죽으면, 그것이 곧 악령.
그러한 악령들을 흡수해 왔으니 내가 악령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이상한 일은 전혀 아녔다.
그러니 주어진 것이라는 걸 스스로 알 수는 있었다.
문제는.
“영기로 정신을 교란한 적은 있어도, 본격적으로 저주를 써 본 적은 없는데. 직업이 달라져서 주는 것도 계열이 변한 건가.”
저주에 대한 내 경험 자체가 없다는 거였다.
저주 걸리면 해주하느라 바빴지, 언제 저주를 쓰겠는가.
“씁. 이럴 때, 그 녀석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전생에 그 녀석, 리치 이사야.
그 녀석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알려줬을 건데.
아쉽게도 고 녀석은 한국에 없었다.
러시아 녀석이다.
거기다 아직 리치도 안 됐을 거라, 현재는 잘 모르긴 했다.
고로,
“이거도 내가 직접 실험을 해야 한다, 이거네.”
할 일이 더 추가된 듯했다.
해내긴 해야 했다.
전생에서도 겪어 봤듯, 기술에 대한 확실한 이해는 그 자체로 전투력 상승을 가져다주니까.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내가 악령을 잘 쓰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종류의 영기들을 다룰 수 있을지도.
이를테면, 종 자체가 다른데다 일종의 영혼으로 존재하는 악마 같은 것들?
“흐…… 그 새끼들은 영혼을 집어 먹으려고 하면 튀곤 했지.”
그렇게만 되면, 꽤 많은 능력 상승이 있을 거였다.
당장, 악마만 해도 우리 인간보다는 <공허>에 대해서 더 잘 아는 듯했으니까. 영혼을 뜯어내고, 정보만 얻어도 얼마나 좋겠나.
“악마 새끼들 다 뒤졌다.”
생각만 해도 짜릿해진다.
뭐, 당장도 꽤 많은 전력 상승은 된 거 같았다.
상상해 보라.
영혼 병사로 전위를 지키고. 몇의 영혼 병사는 그림자 짐승 위에 탑승해서 적을 쓸어 버리는 모습을.
뒤를 이어, 구체화된 영기가 날아다니고. 영기 폭발도 있을 거였다.
캬. 전설 속에 나오는 사악한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전장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나를 상대할 적은 기술로 소환하는 영혼 군단을 상대해야 하는 게 되는 거다.
여기서 재밌는 포인트가 또 있었다.
영혼 군단을 상상하는 적.
그 적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거다.
영혼을 다루는 술사를 죽여버리면, 이 군대를 파괴시킬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오로지 나만 죽이면 다 끝날 거라고 말이다.
여기까진 옳은 상상이다.
그리고 그 옳은 상상을 바탕으로 적은 수많은 희생을 뒤로하고, 내게 달려들 거다.
나를 죽이는 것만이 답이고 상식이니까.
그리고 이 부분에서!
“이거 꽤 절망하겠어.”
적은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 때문이다.
술사가 되기 이전 본래 나는 근접전을 선호하는 전사였다.
전생에 온갖 근접 기술도 익혀 놓은 나다.
그런 내게 다가왔다고 해서 내가 죽어 줄 리가 있나.
없지.
결국 겨우겨우 다가온 적이 얻을 거라곤 절망뿐이다.
이 방법도 망했다는 절망.
“쥑이네.”
이건, 내가 상대할 생각을 해 봐도 절망적이다.
아마 내가 게임 보스로 나왔다면, ‘망겜 뒤져라’ 하면서 수많은 유저가 게임사에 항의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게임 자체가 망하거나.
하지만 이 X망겜이나 다름없는 세상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돼야 기본은 된 거지.”
그나마 밥값은 했구나 하는 보람찬 기분이 드는 나였다.
“그럼 이제 나가 볼까…… 음?”
그렇게 모든 보상을 다 얻었다 생각한 찰나.
스스슷-
압도적 보상 뒤에 생각지도 못한 한 가지 글귀가 더 새겨졌다.
[당신은 ‘가능성의 기물(奇物)’을 획득했다.]
“……이게 뭐지?”
가능성의 기물이라니.
내가 이해를 하기도 전에 전생에서도 본 적 없던 글귀는 구체화되어 내 손에 툭 떨어졌다.
“이야.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냐.”
가능성의 기물.
그것은 빛을 흡수하듯 검은 무언가였다.
원형의 구슬처럼 생겨있는 그 안엔 <공허>와 비슷한 기운이 내포돼 있었다.
불가사의하며 불가해하고, 또한 불길한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손에서 떨어트리고 싶은 물건, 그러며 동시에 이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당신은 모든 보상을 획득했다.]
[당신은 본래의 세계로 전이된다.]
파아아앗-
그 모든 걸, 알고 있을 던전 보상의 방은 그 순간 깨어져 나갔었다.
‘새끼들, 스스로 알아보라 이거지?’
가능성의 기물은 바깥으로 나온 그 순간에도 내 오른손 한쪽에 분명 쥐어져 있었다. 이 세계에서 제 모습을 숨기려는 듯, 모든 불길한 기운은 이미 잠잠해진 채였다.
‘재밌네?’
나는 그러한 기물을 한 손으로 꽉 쥐며 웃음 지었다.
전생을 겪은 나로서도 전혀 모르는 무언가를 얻어 냈으니까.
보기에 따라 이 기물은 절망적일 수도 있으나, 알아내기에 따라 내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 * *
그러기에 나는 던전 바깥으로 나와서도 한참 미소 지었다.
이 상황 자체를 음미하고 있달까.
사람들이 한참 사체들을 치울 때도.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내가 손에 쥔 기물을 음미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하는 듯했다.
변수를 늘리면 늘릴수록 안정감이 커져 갔으니까.
한데, 역시 이 빌어먹을 세상은 내 마음대로 일이 돌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변수가 내게 유리한 건 아니란 걸 말해 주고 싶은 걸까.
일을 마무리 짓고 냥곰이 -김민하-를 데리러 왔을 김시연.
“지한휘 헌터.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음? 무슨 일인지? 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싶은데. 나 지금 기분이 꽤 좋그든요. 즐기는 상태에 있달까?”
내게 말을 거는 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웠다.
그 어두움.
나와는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야기해야겠어요. 실패해 버렸어요.”
“음? 뭔 실패?”
“계약 조건 중에 하나요. 그게 실패해 버렸어요.”
“어? 자세히 말해 봐.”
그녀가 말하는 실패는 지금껏 내가 생각해 놓은, 아니 여기까지 해 놓은 그 모든 걸 깨부수기에, 충분한 실패였다.
그 실패는…….
지금껏 해 왔던 내 모든 계획을 깡그리 무너트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