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였네.”
이를 모를 개미 인간.
분명 놈은 강력한 개체였다.
어미를 잡아먹어 얻은 능력 때문인가.
놈은 둥지에 남은 개미 전체를 소환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제 육체를 통한 폭발에 변이까지.
‘다 성장하기도 전에 잡혀서 이 정도 인 거지. 전에는 재앙이라 불릴만한 녀석이긴 해.’
저놈이 둥지를 넘어서 바깥에 풀려나간 그 순간. 수많은 헌터가 잡아먹혔다는 게 납득이 갈 만했다.
그래 봤자긴 하다.
[당신의 눈앞에서 원령이 생성됐다.]
[원령이 당신을 저주한다.]
[당신은 강력한 저주를 받았다.]
[당신은 저주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당신의 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스스스스-
이제는 한낱 원령이 돼서, 저주로나 위협하는 머저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일개 몬스터 주제에 죽어서도 영으로서 제 의식을 지켜내고.
저주까지 날리는 걸 보면 놈은 확실히 괴물이다.
“죽어서도 괴물이로구먼. 존재 포식.”
그러한 괴물을 나는 망설임 없이 삼켜냈다.
[당신은 기술 : 존재 포식을 사용했다.]
[자아를 지닌 희귀한 영혼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상당한 영력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당신을 위협하던 저주가 사그라든다.]
[당신은 가호 : 흡수를 얻었다.]
과연 재앙급의 영혼이었다 이걸까.
“햐. 이게 이렇게 된다?”
그 결과 내가 얻어 낸 건, 생각지도 못한 <가호 : 흡수>였다.
‘과연, 단지 기술 수준이 아니라 가호 정도는 돼야 헌터의 능력도 흡수할 수 있는 거겠지.’
놈이 동족을 포식하면서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던 이유.
놈에게 쥐어진 가호 덕분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몬스터가 가호를 가지는 경우는 드문데. 확실히 희귀종이네.’
말 그대로 희귀종이다.
몬스터는 가호 자체를 아주 드물게 지니고 있었다.
놈들이 가호를 쉽게 지니고 있었더라면, 전생에 나는 가호로 도배를 했을 거였다.
그게 아니니 아무리 전생의 나조차도 이런 가호를 지닌 적은 없었다.
‘흡수라. 이걸 어떻게 사용하지? 나도 놈처럼 사체를 씹어야 하면 그건 좀 에반데.’
해서 그 가호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할 찰나.
더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는 듯이, <가호 : 흡수>는 또다시 내가 생각지 못한 상태로 변화했다. 아니, 거름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당신은 가호 : 흡수의 상위 가호 : 포식을 획득한 상태다.]
[당신은 가호 : 흡수를 통해 가호 : 포식의 등급 한 단계를 스스로 깨우쳤다.]
[당신이 가진 가호 : 포식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최상위 가호 중 하나 포식. 포식의 가호에 새로 얻은 가호인 흡수가 잡아먹혔다!
꽈득- 어딘가 씹어 삼켜지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순간, F급에 자리하고 있던 포식의 가호가 E급으로 올랐음을 나는 확실히 느꼈다.
‘미쳤네.’
올리기도 힘든 가호.
포식과 같이 강력한 가호가 이런 식으로 올라가 버릴 줄이야. 던전 보상은 제대로 받지도 않았는데, 생각지 못한 선물을 얻은 기분이다.
그렇게 능력을 얻음과 동시에, 또 다른 하나도 얻었다.
그건.
“괴물.”
“……어떻게 한 거예요? 보고도 모르겠던데.”
“…….”
잔뜩 독기를 품었던 일행이 가진 경외였다.
* * *
‘이야, 태세 전환 보게.’
보스 룸 전까지만 해도, 내게 독기를 품던 일행이다. 내가 사냥한 걸 본 이후 그들의 눈은 변해 있었다.
일종의 존경. 경외.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두려움.
내겐 익숙한 눈빛이었다. 전생에도 수없이 겪어봤던 눈빛이니까.
‘냥곰이. 아니, 김민하라 부르긴 해야 하는데…… 어쨌거나 쟤는 의외네.’
그러는 한편으로 특이한 게 있다면 냥곰이 -김민하-였다. 저 녀석만큼은 두려움 대신에 다른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게 착각이 아니라면 그건.
호승심.
캬. 내가 이리 위력을 보여줬는데도 호승심이라.
이건 나로서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그러기에 나는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눈을 가진 녀석은 꼭 둘 중 하난데.’
중간은 없다.
나를 따라올 만큼 강해지거나. 강해지지 못함에 절망해서 망가지거나.
망가질 경우 최악의 경우 빌런이 되는 건데.
‘그땐 내가 손수 처리해 줘야겠지. 내가 살린 녀석이니까.’
안 그래도 본래라면 전에 빌런에게 죽었을 냥곰이다.
우연이 겹쳐서 살려 놓았으니, 그 끝이 좋지 않다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도 결국 내 몫인 거다.
어쨌거나.
모든 걸 <공허>에 잡아 먹히고 전생한 나로선 썩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전생과 다르게 변수 하나를 늘렸으니까.’
죽을 애가 살았고. 그러니 녀석의 존재 자체가 변수 아닌가.
그런 냥곰이 저런 눈빛까지 가진다면, 기꺼울 수밖에.
동시에 걱정되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냥곰이 녀석. 악운이 너무 강한 거 같단 말이지.’
바로 녀석의 운이 걱정이었다.
지난번엔 첫 사냥부터 빌런에 위협받은 냥곰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놨는데 시작부터 변종에다가 던전 브레이크가 예상되는 던전에 들어와 버렸다.
‘미래 그룹에선 분명 우리 넷으로 수월하게 사냥할 거라 생각하고 여기 이 던전에 우릴 들이밀었을 거란 말이지.’
제대로 된 첫 사냥부터가 변종 던전이라니.
그거도 미래 그룹이 다 계획을 짜 놨을 던전인데 말이다.
이 정도면 악운이 강하달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치 세상이 녀석의 죽음을 바라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또, 내 옆에 있음으로써 살아남았으니.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거 같기도 하고 말야. 악운인지 운인지 지켜봐야 하나. 아님 뭔가 있을지도?’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켜볼 일이었다.
어쨌거나, 전생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나다.
저런 악운이 있는 녀석 옆을 지키다 보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게 분명하니 나쁜 건 아녔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나는 멍하니 있는 셋을 향해 피식 웃어 주며 말했다.
“자, 이제 돌아가서 좀 쉬어 볼까?”
“네. 당장이라도 쉬고 싶으니까요.”
“좋아. 그럼 부수자고.”
나는 그사이 떠오른 던전 핵을 향해서 사슬을 날렸다.
콰아앙-!
사슬에 휘감긴 던전 핵이 터져 나갔다.
완벽한 파괴.
파괴 뒤, 세상은 붕괴되고 조각나기 시작했다.
원자 단위로 세계가 갈라져 간다.
그 뒤 나는 검은 공간 안에 홀로 떨어져 있었다.
* * *
촤아아아악-!
공간이 갈라지고, 던전이 자리해야 하는 콘크리트 건물 내부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포탈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파란 빛.
새파란 빛은 내부를 밝게 변화시키고도 힘이 남았는지, 짙은 백광으로 온 공간을 물들였다.
그를 바라봐야 하는 미래 엔터테인먼트 사람들로선, 눈이 시릴 정도였다.
“와…… 시연 실장님이 놀랄 거라곤 했는데 이 정도란 말이지?”
“이런 빛은 처음인데…… 대체 얼마나 잡아댄 거야.”
김시연에게 들어, 이 안에 들어간 루키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어 벌벌 떨어댈지도 모를 정도의 빛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공간 안에선 사체가 쏟아지다 못해, 뿜어지고 있었다.
“저, 저 미친…… 저게 얼마야?”
“가득 찬다! 차 버린다고! 어서 문 열어!”
얼마 가지 않아 던전 브레이크를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공간이 가득 차 버렸다.
그러고도 빛이 지닌 기세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문 열었다가 몬스터 쏟아지면요! 만약에 던전 브레이크면 어쩔 거예요?”
“X벌. 이 상황에 몬스터가 나오겠냐!? 사체가 이리 쏟아지는데? 책임은 내가 지니까 어서 열어!”
“네, 넵!”
“거기 공무원분들, 멍 때리지 말고! 어서 같이 열라니까요! 갇혀 죽을 생각이에요?”
“예!?”
“여기 누가 들어갔는데! 우리 헌터들이 나왔다가, 사체에 낑겨 죽으면 어떻게 뉴스에 어떻게 나올 거 같아. 아니 뉴스 전에 당신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
“으어엇!”
“가, 갑니다!”
쏟아지는 사체에 모두가 압사당하기 전에 폐쇄된 문을 열었어야 할 정도였다.
대기하고 있던 엔터테인먼트 직원들과 공무원들이 모두 나섰다.
그제야 문을 전부 열 수 있었다.
촤르르르- 쿵. 쿵.
그 문을 넘어서, 쌓여있던 거대 개미의 사체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사체의 산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
“대체 안에서 뭔 짓이 있었던 거야…….”
김시연에게 이야기를 들어 모두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계속해 이어지는 사체의 쏟아짐엔 모두 경악하고 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건 루키 수준을 넘어서 괴물이잖아?”
“다른 곳에도 보고를 해야겠는데요?”
“아서라. 라인 잘 타야지. 이거 다른 부서에 괜히 보고했다가는, 김시연 실장님한테 한 소리 크게 들을걸.”
“아, 그거도 그러겠네요. 조심해야죠.”
미래 엔터테인먼트가 새로운 괴물을 들였음에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파아앗-!
그렇게 몇 분.
떠내려오는 개미 사체 파티가 끝이 나자 빛이 터져 나왔다.
터져 나온 빛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넷이었다.
들어간 게 넷이고, 나온 게 넷.
그걸 본 엔터 직원은 안심했다. 보고를 해야 했으니까.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수가 달랐을 테니 다행이었다.
그러며 직원은 저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기이한 점을 깨달았다.
‘……한 명만 멀쩡해?’
쌓인 사체만큼 힘겨운 전투였는지 모두가 녹색 피를 덕지덕지 묻힌 가운데, 단 한 명만이 멀쩡했다.
다소 지친 기색이 보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존재가 바로, 지한휘였다.
모두 놀라고 초췌한 가운데 오로지 그만이 멀쩡했다.
던전을 나오고 멀쩡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이상할 수밖에.
이상함을 풀 길은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
그런 가운데 지한휘가 움직였다.
“뭐 합니까? 쉴 곳 좀 마련해주지 않고.”
“아! 네, 넵!”
“사체는 외곽부터 치우도록 해요. 변종이 꽤 있으니까, 그건 알아서 잘 분류해 놓도록 하고.”
“……예!”
그는 주변 정리에 신경을 쓰는 여유까지 보여줬다. 이 또한 던전에 막 나온 헌터가 보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기야 이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의 여유로움 곁에 떠오른 또 다른 표정.
직원이 보기에 그건 큰 기쁨이었다.
헌터가 던전을 다녀와 저리 미소 짓는 경우는 단 하나뿐이지 않은가.
‘미친 보상이라도 받은 거 아냐?’
보상.
무게를 잡고 있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보상이 주어졌을 때, 저런 표정을 짓는 법이었다. 그러니 저 기쁨은 이해가 갔다.
그리고 궁금할 뿐이었다.
‘대체 뭘까?’
저 기이한 헌터가 받아낸 보상이 뭘 지가.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지한휘는 제가 얻었던 보상에 대해 한 번 더 음미하고 있었다.
* * *
다시 생각해 봐도, 보상을 얻던 그 순간은 짜릿했다.
늘 새롭달까.
[당신은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의 행동 결과에 따라서 보상이 정산됐다.]
[당신은 두 번째로 미궁의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은 미궁의 완전 답파를 완료했다.]
[당신은 최하등급의 미궁에서 모든 적성 괴물을 살해했다.]
[당신은 최초로 600이 넘는 괴물의 영혼을 흡수했다.]
[당신은 미궁에서 가능성을 지닌 자를 살해했다.]
‘가능성을 지닌 자라. 이건 개미 인간을 말하나. 근데 어떤 가능성을 말하는 거지?’
내 예상대로 개미 인간은 강력한 무언가가 될 녀석이 분명했다.
전생에는 재앙 중 하나가 되었었고, 지금도 이대로 두었더라면 그 비슷한 존재가 되었을 거다.
시스템은 그걸 ‘가능성’이라 명명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무너트려 버린 셈이고.
내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신은 미궁 답파 와중에 16등급이 되었다.]
[당신은 괴물의 영혼을 포식하여 가호를 얻었다.]
[당신은 <가호 : 포식>을 E등급으로 만들었다.]
[당신은 빠른 속도로 가호를 상승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두 가지 가호를 합일하여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그림자와 영혼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다.]
[당신은 수많은 저주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신은 영혼 마법사로 악령의 본질을 이해했다.]
등급, 가호, 이에 의한 가호 : 포식의 등급 상승, 저주의 이해, 흡수.
그에 대한 언급까지.
이러한 일들이 쉽게 일어나는 건 아니기에. 생각지도 못한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당신을 다수의 신들이 주시하고 있다.]
[당신을 신좌 : 아키텍쳐가 철저히 주시하고 있다.]
[당신을 주시하던 신 중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신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
‘벌써 행동에 나선다 이거지? 그 굼뜬 신이란 작자들이 말이야.’
전생에서도, 일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움직이는 게 신이었다.
<신좌 : 아키텍쳐>처럼 특수한 존재들이나 인간 세상에 빠르게 끼어들 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움직인다라.
이 또한, 내가 전생과 다른 변수를 만들어 낸 셈이라 쳐도 무방하겠지.
그렇게 내가 만들어 낸 변수는 곧.
‘미래를 바꿀 수 있단 의미일 거야. 다 망할 빌어 처먹을 미래를 말이지.’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이 망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총알들이 될 거다.
그 총알들의 방아쇠를 당길 자는 정해져 있었다.
바로 나다.
최후의 칠인 중에서도 언제나 나는 행동하는 자였으니까.
그리고 그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표적의 방향을 정해 주는 건.
언제나 그러했듯이.
‘유보라. 그 녀석뿐이지.’
그 천재 녀석이 해 줄 거였다.
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그게 여태껏 녀석이 내게 보여 준 방식이었다.
그러니 한편으로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유보라와 마리.
그 둘을 어서 찾아 주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이 어둡기만 한 보상의 공간이 던전 안에서의 내 행동에 대한 맥락을 이어 주고, 그에 따른 보상을 쥐여주듯이.
마리 그 녀석도 회귀 후 내 모든 행동의 맥락을 읽어 내고.
그를 토대로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쥐여줄 테니까.
‘어떻게든 이전처럼 최악으로 가지는 않게 만들어 줄 녀석이니 기대될 수밖에 없지.’
어쨌거나.
당장은 이 보상의 마지막까지 읽어 들여야 할 때.
나는 다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지막 음성을 읽어 들였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였으니까.
[당신의 보상이 정산되었다.]
[당신은 보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