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그 새끼인가.’
철컹. 철컹.
영혼 병사들이 전진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과거, 서울 일부가 날아간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변종 개미 때문이었다.
여럿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나의 개체가 서울 서부 일대를 날렸다.
그때 놈이 보였던 파괴력에, 놈은 속칭 재앙 중 하나로 지정되었었다.
수많은 길드가 전투에 참여했고.
그보다 많은 자들이 죽어 나갔다.
그때 놈에게 수많은 능력이 기록돼 있었다.
소환, 폭발, 비행, 갑주, 도발, 신체 변이, 흡수…….
수많은 능력이 있던 가운데 가장 위험한 능력은 단 하나.
흡수였다.
‘미비하나마 가호를 가져갔다 했지.’
놈은 자신이 죽인 능력자의 능력을 흡수해 냈단 기록이 있었다. 제 손을 입처럼 변이, 사체를 씹어먹었다던가.
웬 거머리 같은 능력인가 했는데 이제 이해가 갔다.
능력을 흡수하는 변종이 태어난 거다.
다행히도, 지금 놈이 가진 능력은 이 개미둥지의 변이들이 가진 능력들만이 허락돼 있을 뿐이었다. 바깥을 나가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아직 내 힘을 다 되찾지 못한 이 순간에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긴장감을 느끼며, 놈을 향해 움직였다.
* * *
콰아앙-!
내가 도달하기 이전, 개미 인간과 영혼 병사가 먼저 부딪쳤다.
영력으로 가득 찬 갑옷들이 개미 인간을 두르고.
그 틈을 노려 무구로 형성된 영혼 병사들이 쑤셔 버리는 형태였다.
공수의 조화가 완벽한 공격이었다.
사방이 갑옷으로 막히고, 그 틈마저도 공격이 들어오니까.
-이따위 것!
콰드드득-!
그러나 개미 인간도 만만찮았다.
제 몸에 두른 기묘한 투기로 영력과 공격을 막아냈다.
투우웅-!
뒤이어 거대화로 제 몸을 크게 부풀렸다.
순간적인 육체 변이로 인하여, 개미 인간을 감싸고 있던 갑주들이 튕겨져 나갔다.
과연 시의적절한 반응!
‘어쭈? 전투 센스를 타고났는데?’
전생에 재앙급이라 불릴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계산하지 못한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뒤에서 달려오고 있던 나다.
“영혼 분리. 부여.”
[당신은 기술 : 영혼 분리를 사용했다.]
[당신은 영혼 조각을 하데스의 사슬에 부여했다.]
[하데스의 사슬은 당신의 영혼의 일부를 담아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
차르르륵-!
겹겹이 두르고 있던 하데스 사슬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기술을 연이어 사용했다.
‘됐고. 그림자 제어.’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주변의 그림자가 당신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놈이 갑주들을 퉁겨내기가 무섭게, 내 몸은 이미 놈의 가까이에 다가가 있었다.
사슬에 불어 넣은 영력이 강하게 부풀어 오른다. 그 아래서 침잠되어 도도히 흐르는 그림자들.
나는 그런 하데스 사슬을 쏘아냈다.
타아앙-!
그렇게 쏘아진 하데스의 사슬!
-이미 한 번 막은 걸 보고도!
놈은 그 사슬을 보고도, 자신만만했는지 특유의 붉은 투기로 팔을 감쌌다.
그 팔로 내 사슬을 막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컥!
“머저리.”
드드드득-
내 사슬은 처음부터 놈과 부딪치는 걸 노린 적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놈의 투기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감싸 버리는 것!
영력이 놈의 붉은 투기를 감싸기가 무섭게, 뒤이어 사슬이 놈의 팔을 칭칭 감았다.
그 아래 모습을 숨기고 있던 사슬의 그림자들이 나섰다.
칭칭 감긴 놈의 몸을 점차 압박하기 시작했다.
“멍청아, 그런다고 영력의 사슬이 찢어질 거 같냐?”
-크아아앗!
스슷-
그뿐이랴. 사슬에서 뻗어 나온 영력이 마저 움직였다.
사슬이 미처 휘감지 못한 남은 팔도 영력이 휘감는 데 성공했다.
하나는 사슬로, 다른 하나는 영력으로.
순식간에 두 팔을 잡아 채 버린 상황.
나는 놈의 움직임을 제압하기가 무섭게 바로 다음을 행했다.
“영혼 병사! 재생!”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상당한 영력이 당신으로부터 빠져나간다.]
[빠져나간 영혼이 영혼 병사를 재소환하는 데 성공했다.]
다시금 영혼 병사를 불러일으켰다.
부활한 영혼 병사는 재차 전투 지능 특성을 이어받았음은 당연했고.
[똑같은 상대와 재대결. 영혼 병사의 전투 지능이 강화됐다.]
전투지능을 부여받은 영혼 병사들은 이전에 제 몸이 으스러진 게 자존심 상한 듯했다.
재차 내 몸으로부터 영력을 요구하며 지능을 강화해댔다.
터어엉-! 텅-!
강화된 영혼 병사들은 집요하게 두 손이 묶인 개미 인간을 노렸다.
마치 전투 지능을 부여한 아키텍쳐가 손을 쓰는 듯했다.
놈의 철갑처럼 변이된 갑각을 부술 수 없다는 걸 이미 안다는 듯, 갑각 사이에 틈만을 노렸다.
쑤우욱-!
-키야아아악!
검으로 몸을 쑤셔 버리고.
쑤셔져 벌어진 상처 사이를 갑옷 병사가 비집고 들어가길 시도했다.
상처 내고 그 틈을 벌리고, 또 벌려갔다.
제아무리 개미 인간이라도 버티기 힘들겠구나, 하는 그 상황.
-이까지꺼어어엇!
개미 인간은 발악이라도 하듯, 재차 붉은 투기를 쏘아 올렸다.
* * *
개미 인간 주변으로 쏘아 올린 투기는 이내 두 팔의 형태를 띠게 되더니,
드드드득-!
그 형태 그대로, 살이 돋아났다.
“와? 없으면 만든다 이거냐?”
가지고 있던 두 팔 외에 팔 두 개가 더 형성됐다.
그거로도 모자라다 여긴 걸까.
드드득- 드득-
실시간으로 팔을 두 쌍이나 만들어 냈다.
내게 잡혀 있는 한 쌍의 팔을 제외하고도, 세 쌍의 팔이 만들어진 셈.
총 네 쌍의 팔을 가진 녀석의 몸은 흡사 아수라와 같았다.
‘실시간 진화냐.’
만화 영화에 나오는 변신 타임이었더라면. 그 변신 타임을 노리고, 한 방 크게 날려 줬을 건데. 저 새끼는 없는 걸 만들어 버리니, 그걸 막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까드드드득-
놈은 세 쌍 중 두 쌍의 팔을 이용. 제 손을 묶은 사슬을 거둬 내려 했다.
-이따위 것이라 했지!
“미친놈이 말을 이따위 하나만 배웠나.”
이따위 것. 이따위 것만 해대는 놈을 보자면 지능 지수가 의심이 되는데, 전투지수는 상당히 높았다.
두 팔로 투기를 감싸더니, 정말로 제 팔을 감싼 영력을 뜯어 내기 시작했다.
놈은 여기에 또 하나의 전투 수단을 더했다.
그 수단은 제 몸이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나왔다.
-나와서 막아라!
스스스슷- 스스슷-
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벌레 기어 다니는 소리가 났다.
놈이 먹은 제 어미와 알의 사체로만 가득했던 보스 룸이 대번에 가득 차 버렸다.
“어쭈? 소환 능력도 흡수했어?”
-이건 왕으로 기본인 것이다. 멍청한 인간.
본래 제 어미인 여왕 개미가 가질 능력을 사용한 거다.
개미 인간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이 둥지에 남은 모든 개미가 이곳을 향해 달려 나오고 있을 터.
여기까지 오면서 상당한 수를 죽이긴 했다만.
‘둥지 전체를 놓고 보면 그 수가 많기는 하겠지.’
하지만.
이 안에 병사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유리해지는 건, 놈뿐만이 아니다.
“글쎄다? 누가 멍청한 건지는 두고 봐야겠지?”
-쓸데없는 허세는!
“허세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지.”
츠츠츠측-
둥지에 있던 개미들이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내 웃음은 짙어졌다.
나는 사슬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개미 인간을 견제하는 한편, 영혼 병사 일부를 보스 룸에 들어 온 개미들에게로 보냈다.
일개미, 병정개미, 변종 개미.
-키이익!
-킥!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여왕을 누가 잡아먹었는지도 모르고.
그 능력을 강탈한 개미에게 충성하고 있는 머저리들.
카가가가가각-!
그러한 머저리들의 대가리에 박아 줄 참교육은 악에 받친 영혼 병사들의 영력이었다.
콰즉- 콰즈즈즈즉-!
영력 한 방이 수놓아질 때마다, 개미들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사냥 속도는 더 빨라졌다.
[당신은 동일 종족의 영혼 300을 포식했다.]
[당신은 충분한 양의 영혼을 포식했다.]
[당신이 가진 영력의 가호가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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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거대 개미 E]
거대 개미 종족의 영혼을 다수 포식하여 얻은 가호.
거대 개미의 근력을 다소나마 얻게 된다.
거대 개미의 집단 행위 능력을 다소나마 이해한다.
개미가 지닌 근력 일부를 계승한다.
영혼의 본질을 통해 힘을 얻어 내는 것은 기나긴 세월 동안 흔하게 이루어진 일이다.
———————————————
이곳에 오기 이전, 얻었던 가호 : 거대 개미의 능력이 무섭도록 올랐기 때문!
본래 하나의 던전에서 가호를 올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알아서 와서 쓸려 주는데 못 먹으면 병X 아닌가?’
입에 떠먹여 주는 이 상황에서 가호를 올리는 거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다.
내 가호의 등급이 올라가고, 가호를 통해 거대 개미에 대해서 이해하는 만큼 그를 상대하는 영혼 병사들의 능력이 상승했다.
[영혼 병사들이 당신의 가호 : 거대 개미를 통해 전략을 수립했다.]
[영혼 병사들이 당신의 가호 : 거대 개미를 통해 근력이 소폭 증가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영혼으로 빚어낸 병사들이니만큼, 내가 개미에 관한 이해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병사의 이해도도 상승하니까.
츠츠츠측-
덕분에 학살의 속도는 떡상하는 상태!
여기서, 개미 인간이 한 방 먹여 줬으니 나 또한 한 방 먹여 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어찌!
“애당초 저걸 못 뚫었으면, 여기까지 도달하겠냐?”
-그런 게 아니지 않느냐!
“멍청한 이따위 것 같으니라고.”
-으으……!
[당신은 거대 개미의 영혼을 포식했다.]
[당신은 거대 개미의 영혼을 포식했다.]
[당신은 거대 개미의 영혼을 포식했다.]
…….
수많은 영혼을 포식해서 가호까지 올린 상태.
나는 수없이 많이 포식해 낸 거대 개미 영혼 중에 일부를 영혼 분리를 통해 바깥으로 꺼냈다.
왜 꺼냈는지는 뻔하지 않나.
“영혼 병사 생성!”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바로 병사를 생성하기 위함. 병기도, 갑옷도 없는데 이 영혼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이곳에 이미 널려 있지 않은가!
[분리된 영혼이 거대 개미 사체에 깃들었다.]
[분리된 영혼이 거대 개미 사체에…….]
죽어 사라진 제 몸으로 돌아가게 하면 될 뿐이다!
츠츠츠측-
수 없이 많은 사체, 수많은 영혼이 재차 분리되며 영혼 병사로 탈바꿈했다.
-키이이이!?
-키익!
탈바꿈한 영혼 병사들은 제 주변에 있는 동족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즈즉- 콰즉-
죽은 것이 산 것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영혼 병사 생성!”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
그럼으로 수를 불려 나갔다.
죽음이 새로운 죽은 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었으니까. 죽음이 번지고 있었다.
수많은 죽음 끝에, 결국에 남은 건 개미 인간 하나였다.
“덕분이야, 새꺄.”
-아, 안 되는…… 내 왕국이…… 아니, 내 힘이 되어야 할 것들이…….
놈은 절망했다.
회귀 전, 한때의 재앙이라고 불리었던 존재. 그 존재는 제대로 된 재앙으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봉우리조차 으스러졌다.
본래 그의 가능성이 되어 줘야 할 개미들은 모두 내 영혼 병사들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니 절망할 수밖에.
이러한 절망스러운 영혼 병사들이 가야 할 곳 결국 하나.
“잡아먹어 버려.”
[당신의 영혼 병사들이 적을 향해 돌진한다!]
제 모든 수단이 무너졌음에, 망연자실한 개미 인간을 향해서였다.
카드드득- 카드득-
한때나마 개미 왕을 꿈꾸었을 개미 인간의 몸을 죽은 영혼 개미들이 휘감았다.
갉아대고, 또 갉아댔다.
-크흐으!
-키익!
갉아대면 갉아댈수록 제 몸의 이는 나가고, 육체는 으스러져 갔다.
개미 인간이 두르고 있는 투기가 영혼 병사의 몸들을 갈아대는 덕분이다. 그래도 영혼 병사들은 괘념치 않았다.
‘그림자 가호가 있으니까. 둘이 궁합이 죽이거든.’
[당신은 기술 : 그림자 제어를 사용했다.]
[당신의 영혼 병사들에 그림자가 스민다.]
[스며든 그림자가 병사의 몸 일부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으스러지고 망가져 버린 몸뚱어리의 빈자리를, 발아래 남은 그림자가 불쑥하고 올라와 채워 나갔다.
육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 한, 그림자는 계속해 존재했으니.
몸을 수복한 그림자는 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무한한 자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수단도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홀로 존재하지 못하는 게 그림자 아닌가.
‘본체가 완전히 으스러지면 답이 없지.’
콰드드득-
본체가 완전히 으스러지면 그때는 그림자로 수복된 몸도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몸과 그림자가 사라져도 영은 남아 있었다.
“영혼 병사 소환.”
그러한 영에 나는 다시, 힘을 불어넣어 주면 될 뿐.
[당신은 기술 : 영혼 병사를 사용했다.]
[당신의 영혼 병사들이 적을 향해 돌진한다!]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영혼들은 재차 남은 거대 개미의 사체에 들어가 다시 놈에게 돌진했다.
카가가각- 카가각-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커억.
병사들 사이에 완벽히 둘러 쌓여 버린 개미 인간의 투기가 사그라들었음이 느껴졌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다시 이어지는 영혼 병사들의 세례!
-크아아아아악!
동족을 포식하던 개미 인간이, 제 동족이었던 것들에 잡아 먹히는 순간이었다.